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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비밀 감옥에는 족쇄와 고문 기구까지 그대로 보존…

시베리아에서의 극한 경험이 그에게 남긴 것은… 옴스끄, 시베리아 유형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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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로 떠나는 마차는 1849년 12월 24일 자정에 출발했다. 덮개가 없는 썰매에 실려 도스또예프스끼는 족쇄를 찬 채 동료들과 함께 뻬쩨르부르그를 떠났다. 참담한 심정에 할 말도 잊었지만 매서운 추위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시베리아 유형지인 옴스끄에 도착한 때는 1850년 1월 23일이었다.

시베리아 유형

 

시베리아로 떠나는 마차는 1849년 12월 24일 자정에 출발했다. 덮개가 없는 썰매에 실려 도스또예프스끼는 족쇄를 찬 채 동료들과 함께 뻬쩨르부르그를 떠났다. 참담한 심정에 할 말도 잊었지만 매서운 추위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시베리아 유형지인 옴스끄에 도착한 때는 1850년 1월 23일이었다.

옴스끄는 뻬쩨르부르그에서 동쪽으로 3168킬로미터, 모스끄바에서 2555킬로미터 떨어진 시베리아의 지방 도시이다. 현재 110만여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서부 시베리아 지방의 산업과 교통의 요충지이다. 서부 시베리아의 젖줄 중 하나인 이르띠쉬 강이 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옴스끄에 대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1854년 옴스끄 감옥에서 나와 형에게 쓴 2월 22일자 편지에서 그는 이 도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편지는 옴스끄 수감 생활을 기록한 『죽음의 집의 기록』과 함께 이 시기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을 전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옴스끄는 구역질 나는 도시야. 나무 한 그루 없어. 여름이면 타는 듯한 더위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겨울에는 눈을 동반한 폭풍이 불어닥치지. 자연다운 곳이라곤 한 군데도 볼 수가 없어. 극도로 부패하고 지저분한 위수衛戍도시야.


내가 본 옴스끄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인상과 달랐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소박한 도시 모습은 왠지 정감이 느껴졌다. 러시아 지방 도시에 사는 사람들 특유의 순박함과 친절함도 인상적이었다. 하기야 도스또예프스끼와 나는 처지가 사뭇 다르지 않은가. 그는 여기서 목숨이 위태로운 감옥살이를 했고, 나는 그의 삶을 좇아 여행객으로 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도스또예프스끼에게 이 도시가 좋게 보였을 리 없다.

 

 

4-1 19세기 옴스끄.JPG

19세기의 옴스끄



옴스끄의 도스또예프스끼 박물관

 

내가 옴스끄에 온 이유는 이곳에 도스또예프스끼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르띠쉬 강변에는 도스또예프스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건물은 19세기 당시 옴스끄 요새 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요새 감옥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이곳에 제까브리스뜨와 도스또예프스끼 등이 유폐되었다.

도스또예프스끼 박물관은 1983년 개관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박물관 관계자들이 동양에서 찾아온 낯선 방문객을 환대했다. 책임자인 라리사는 직접 전시실을 안내하며 도스또예프스끼의 수감 생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박물관은 모두 다섯 개의 홀로 구성되어 있다. 홀마다 제각기 특색 있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사진 자료들이다. 세번째 홀에서 네번째 홀로 들어서자 안내인은 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건 특별한 손님에게만 공개하는 것이라며 마룻바닥을 쇠 걸쇠로 걸어 들어올렸다. ‘아니, 이건 또 뭐야!’

나무로 된 바닥을 들어내자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와우!’ 지하에는 당시 요새 감옥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특별전시실이 숨어 있었다. 당시 죄수들이 입던 옷, 차고 다니던 족쇄, 고문 기구, 잠자리 등등. 지하방으로 내려가니 서늘한 냉기가 온몸에 전해졌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감방에서 도스또예프스끼가 어떻게 지냈을지 이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옴스끄까지 온 보람이 있다. 여기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4-2.JPG

옴스끄의 도스또예프스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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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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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지하에 숨겨진 특별 전시실



죽음의 집의 기록

 

『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유형 생활을 끝내고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와 옴스끄에서 겪은 감옥살이를 수기 형식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때가 1861~1862년이다. 작품은 크게 서론과 1,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형식이 독특하다. 서론에서 저자이자 수기 간행자인 화자(도스또예프스끼 자신)는 시베리아의 소도시에서 고랸치꼬프라는 유형수를 만난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자신의 아내를 죽인 죄로 10년 형기를 마친 사람이다. 고랸치꼬프는 곧 죽고 그가 남긴 수기가 화자의 손에 들어온다. 그것은 10년 동안의 유형 생활을 적어놓은 기록이다. 화자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수기의 일부분을 공개한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또예프스끼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한 부류에 속한다. 이 작품은 수감 생활에 관한 회상기,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생태학적 기록, 예술적 산문 등이 종합된 결과물이다. 이 밖에도 『죽음의 집의 기록』은 등장인물이 대부분 민중이라는 점에서 도스또예프스끼의 다른 작품과 구별된다. 물론 이 차이는 작품의 배경이 유형지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 사실은 작품의 언어적 특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시베리아 방언, 감옥에서 사용하는 은어 등 작가는 시베리아 감옥의 독특한 아우라를 창조하기 위해 다양한 어휘를 구사해야만 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시베리아에서 러시아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과 순수한 영혼을 직접 체험했다. 그것은 뻬쩨르부르그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시베리아에서 경험한 것을 글로 발표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러시아 민중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중에서 도스또예프스끼처럼 극한 체험을 한 인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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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이병훈 저 | 문학동네

저자가 모스끄바 국립대학 재학 시절 도스또예프스끼 세미나에 참여하면서부터 모아온 방대한 자료와 더불어, 2009년과 2010년 여름, 도스또예프스끼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모스끄바, 대부분의 작품활동을 전개한 뻬쩨르부르그,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중 4년간 감옥살이를 한 옴스끄, 말년에 가족과 전원생활을 즐긴 스따라야 루사 등 직접 취재한 기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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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병훈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국립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강의교수로 재직중이며, 같은 대학 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하일 부가꼬프의 『젊은 의사의 수기.모르핀』, 벨린스끼 문학비평선 『전형성, 파토스, 현실성』(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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