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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딸 생일 챙기기 프로젝트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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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내 생일날, 딸아이는 내 생애에 가장 감동적이고 푸짐한 생일선물을 내게 선사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딸아이 생일에 국내에 있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 적어도 20년 정도는 생일마다 입에 오르내리게 될 판국이다. 고민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까?”

두 아이의 생일이 문제였다. 고 3이 된 딸아이를 위해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에 해외학회 참석을 3월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저 빨리 다녀오려고만 생각했지 두 아이의 생일이 3월 초라는 것을 깜박 잊은 게 실수였다. 아니, 꼭 내 실수만은 아니었다. 3월 첫 주 집을 비워도 되겠냐는 질문에 딸은 대범한 표정으로 다녀오라고 했고, 아들은 선물을 꼭 사다주겠다는 약속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너무한 거 아니야?”, “학기 초를 엄마 없이 보내라고?”, “꼭 가야 돼?”라며 내 마음을 자꾸 흔들었다. 이미 고액의 등록비를 내고, 비행기 표를 예매한 터라 일정을 바꾼다는 게 가능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나는 생일에 관해 딸아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터였다.

작년 내 생일은 토요일이었다.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기로 계획을 세워놓고, 오전 강의 때문에 지친 나는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그때, 정말 딱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안방 문이 열리더니 두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앞에서 들어오는 아들의 두 손에는 촛불을 환하게 켠 생일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놀랄 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그 케이크는 P 바게뜨, 혹은 T 쥬르 제과점에 산 그런 케이크가 아니었다. 직접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매장을 찾아가 빵의 종류, 생크림 색깔, 필링용 과일 등을 일일이 선택해서 딸아이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케이크 몸체에는 초콜릿으로 만든 알파벳 M, O, M이 꽂혀 있었다.(영원히 보관하려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두었는데 안타깝게도 전화기가 고장나 그 안의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다. 흑흑)

이런 걸 감동이라고 하지 않으면 세상 어떤 일을 감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동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둘둘 말은 아이보리색 전지를 죽 펼치자 한쪽 끝에는 V자로 손가락을 편 셀카 사진이 붙어 있었고, 전면에는 친구들에게 받은 축하 메시지 메모가 열 개 이상 붙어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엽서 크기의 빨간 봉투에는 또다른 친구들의 축하편지가 열 개 정도 들어 있었다(딸아이의 시달림에 편지를 썼을 반 아이들을 위해 나중에 햄버거와 콜라를 돌리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생일마다 늘 수수떡을 해주셨다. 생일에 수수떡을 해주면 좋다는 속설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다는데, 어린 나는 달콤하지도 않고 입 안이 꺼끌꺼끌해지는 수수떡이 참 싫었다. 하필이면 왜 수수떡일까? 고소한 깨가 들어간 송편이나 하다못해 인절미였으면 그렇게 싫지 않았을 것 같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에게 받은 이런 저런 소소한 선물, 결혼 후 남편에게 받은 가운 딸린 야들야들한 잠옷, 드레스에 꼭 걸어야 할 것 같은 두 줄짜리 목걸이. 그 어떤 선물도 지난 해 딸에게 받은 선물만큼 나를 감동시킨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인적자원을 총 동원한 아이의 성의와 사회성이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푸짐한 생일선물을 받아 놓고 바로 그 다음 딸아이 생일에 국내에 있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 적어도 20년 정도는 생일마다 입에 오르내리게 될 판국이다. 고민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까?”

나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준 것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 후배, 김 선생과 이 선생이었다. 평소 아이 키우는 일의 애환과 남편 흉보기를 함께 하는 우리는 일상생활을 꽤 자세히 나누는 사이다. 딸아이에게 받은 선물은 당시 사진으로 모두 돌려 한바탕 자랑을 한 터라 내 고민을 이해한 그들은 함께 머리를 모아 주었다.

“선생님, 저희가 희원이한테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낼게요. 작지만 선물 하나 같이 해서 보내면 좋을 것 같아요.”(평소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김 선생이 안을 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두 사람에게 너무 폐가 되는 거 아닐까.)
“희원이는 충분히 그 정도 선물을 받을 만해요. 엄마한테 그렇게 성의껏 선물을 보냈는데요.”

사람에게 참 다정한 이 선생의 말이다. 고민 끝에 나는 두 사람에게 딸 아이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생일날 당일에 축하 메시지를 부탁했다. 내친 김에 이 정도 부탁을 할 만한 사람 몇 명을 더 찾아보았다. 서너 명이 기꺼이 부탁을 들어주었고, 선물을 하고 싶다고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문자로 보내는 기프티 쿠폰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딸아이의 문자를 받았다.


“엄마, 진짜 감동이당!!! 김 00 선생님이 생일 축하한다고 문자 보내주셨어. 선생님 딸도 같이!!”
“엄마, 감동의 물결이야!!! 선물도 왔어. 고맙다고 문자만 드렸는데 괜찮을까?”
“네가 고마워하는 거 다 아실 거야. 생일인데 엄마가 같이 못 있어줘서 어떻게 하니?”
“내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심지어 후배 이 선생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 생일축하 그림을 그려 사진으로 찍어 함께 보내주었단다. 스펀지 밥 만화 주인공을 그렸다는데 내가 봐도 정말 잘 그렸다. 아이들이 모두 기뻐하며 기꺼이 엄마를 도왔다고 한다.

체코를 떠나기 전 정말 예쁘게 생긴 초콜릿 가게에 갔다. 딸아이에게 스펀지 밥 그림을 그려준,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 이 선생 아들을 위해 주먹보다 좀 큰 축구공 모양의 초콜릿을, 푸드스타일리스트가 꿈이라는 김 선생 딸에게는 다양한 맛의 초콜릿 세트를, 분홍공주인 다른 김 선생 딸을 위해서는 모양이 예쁜 초콜릿 세트를 샀다. 축구공 초콜릿은 속이 비어 있어 깨질까봐 얼마나 조심조심 들고 왔는지 모른다.

외국 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아이는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수록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사람에 대한 신뢰와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는 경험,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 역시 아이들의 정서를 성장시키는데 풍요로운 자원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부주의한 엄마의 “유럽에서 딸 생일 챙기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준 나의 지인들, 또 사랑스러운 그들의 아이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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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선미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한국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수련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부터 아주대학교 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평가와 치료프로그램, 부모교육을 해왔다. 부모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 이상심리, 부모교육훈련, 행동수정을 주제로 다수의 강의를 하였다. 현재 EBS TV ‘생방송 60분 부모’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특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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