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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5분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나의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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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는 사형집행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서본 사람이라면 어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겠는가. 죽음은 삶을 돌아보는 거울 같은 것이다. 인간의 육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면 결국 파멸만이 있을 뿐이다. 삶은 유한하고, 그래서 인간은 무한의 가치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뻬뜨라셰프스끼 서클 사건

M. 뻬뜨라셰프스끼(1821~1866)는 푸리에, 생시몽, 오언의 공상적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러시아 사상가이다. 그는 러시아의 농노제도와 전제정치를 증오했으며, 세상의 기존 질서를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에 따라 개조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이념은 러시아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뻬뜨라셰프스끼 서클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지식인들의 자발적 모임이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1846년 봄, 시인 쁠레쉬체예프의 소개로 뻬뜨라셰프스끼를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서클 회원이 되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1849년 4월 15일 이 모임에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끼의 편지」를 낭독했다. 당시 이 편지는 읽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당시 서클 안에는 경찰의 비밀첩자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첩자의 밀고로 뻬뜨라셰프스끼 서클 회원들이 체포되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1849년 4월 23일 새벽 보즈네센스끼 대로 집에서 연행되었다.


뻬뜨로빠블로프스끄 요새

도스또예프스끼는 비밀경찰 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뻬뜨로빠블로프스끄 요새의 알렉세예프스끼 반월보半月堡감옥으로 이송되었다. 반월보는 요새의 성벽을 일차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반달 모양으로 쌓아올린 방어벽을 말한다. 이 방어벽은 요새 양쪽에 있었는데, 현재는 돌벽만 남아 있다. 알렉세예프스끼 반월보는 요새 왼쪽에 있던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감옥 7호실과 9호실에서 8개월을 복역했다.

도스또예프스끼가 투옥되었던 감옥은 현재 보존되어 있지 않지만 뻬뜨로빠블로프스끄 요새 안에는 19세기에 감옥으로 사용된 건물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당시 감옥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러시아의 유명한 정치범들이 거쳐 간 곳으로 소설가 막심 고리끼와 혁명가 L. 뜨로츠끼도 여기서 감옥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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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뜨로빠블로프스끄 요새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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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뜨로빠블로프스끄 요새 박물관

 

 

니꼴라이 1세의 사형집행극

뻬뜨라셰프스끼 사건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은 9월 30일부터 11월 16일까지 계속되었다. 11월 13일에 작성된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판결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퇴직 육군 중위 도스또예프스끼는 범죄 음모에 가담하여, 러시아정교와 최고 권력에 대항하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표현으로 가득한 문학자 벨린스끼의 서한을 보급하고, 다른 용의자들과 함께 사설 인쇄기로 반정부적 문서를 유포한 죄로 말미암아 신분상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8년간의 요새 유형에 처하는 바이다.



황제 니꼴라이 1세는 그것을 정정하여 ‘4년간의 징역, 그후에는 사병 복무’라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즉시 발표하지 않고, 주요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가 형장에서 특사 칙령을 발표하는 식의 극적인 연출을 계획했다. 이렇게 뻬뜨라셰프스끼 서클에 가담했던 사람들 중 스물한 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1849년 12월 22일, 황제가 각색하고 직접 연출한 해프닝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게 치명적인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같은 날 사형집행에서 간신히 벗어난 도스또예프스끼는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오늘, 12월 22일, 우리는 세묘노프스끼 연대의 연병장으로 끌려갔어. 거기서 우리 모두 사형을 언도받았고, 이어 십자가에 입을 맞추었지. 머리 위에서 칼을 부러뜨리더니, 처형을 위해 우리에게 흰 가운을 입히더군. 그러고는 형 집행을 위해 세 사람을 말뚝 옆에 세웠지. 우리는 셋씩 불려나간 거야. 나는 두번째 열에 있었고, 따라서 남은 목숨은 1분도 채 되지 않았어. (……) 그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형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깨달았어. 내게는 옆에 있던 쁠레쉬체예프와 두로프를 껴안고 그들에게 이별을 고할 시간만이 남아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중단하라는 북이 울리는가 싶더니 말뚝에 묶였던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왔어. 황제 폐하가 우리에게 생명을 내려주셨다는 선언이 낭독되었어. 그다음에 진짜 선고가 낭독되었지. (……) 나는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어. 삶이란 어디를 가나 있는 거니까. 삶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것이지 우리들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 형 지금 뭐 하고 있어? 오늘 무슨 생각을 했어? 우리 상황에 대해 알고 있어? 오늘 날씨가 얼마나 춥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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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묘노프스끼 연병장에서 연출된 사형집행극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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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세묘노프스끼 연병장이었던 삐오네르스까야 광장

 

 

『백치』에서 재현된 사형집행의 순간

도스또예프스끼는 사형집행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서본 사람이라면 어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겠는가. 죽음은 삶을 돌아보는 거울 같은 것이다. 인간의 육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면 결국 파멸만이 있을 뿐이다. 삶은 유한하고, 그래서 인간은 무한의 가치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순간을 20여 년이 지난 후 장편소설 『백치』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미쉬낀 공작은 교수대에 끌려간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었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모든 것을 기억했고, 그 몇 분 동안 일어났던 어떤 일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 사제 한 명이 십자가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남은 시간은 5분밖에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 시간에 수많은 일들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동료들과 작별할 시간을 따로 계산했습니다. 이를 위해 2분을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자신에 대해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데 2분을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이 세상을 둘러보았습니다. (……)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보이고 도금한 지붕이 밝은 태양 속에서 빛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끔찍할 정도의 강렬함을 느끼면서 지붕과 반짝이는 빛을 보았음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이 빛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 불확실성과 지금 다가오고 또 곧 닥칠 새로운 것들에 대한 증오심은 정말이지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나의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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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이병훈 저 | 문학동네

저자가 모스끄바 국립대학 재학 시절 도스또예프스끼 세미나에 참여하면서부터 모아온 방대한 자료와 더불어, 2009년과 2010년 여름, 도스또예프스끼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모스끄바, 대부분의 작품활동을 전개한 뻬쩨르부르그,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중 4년간 감옥살이를 한 옴스끄, 말년에 가족과 전원생활을 즐긴 스따라야 루사 등 직접 취재한 기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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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병훈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국립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강의교수로 재직중이며, 같은 대학 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하일 부가꼬프의 『젊은 의사의 수기.모르핀』, 벨린스끼 문학비평선 『전형성, 파토스, 현실성』(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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