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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이, 어떻게 해야 하나 - 제주도 가출 사건

“엄마가 너를 책임지고 키워야 하는데, 엄마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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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잔소리나 강압적인 태도가 통하는 나이가 지났다. 아이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 엄마 속상하지 않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까?

“제주도 가출사건!”
나와 남편은 그날의 사건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 부부가 휴가차 제주도에 갔던 어느 날, 딸아이가 새벽에 두 시간 동안 집을 비운 바로 그 사건이다.

2006년, 첫 책을 내고 강연회에, 방송에 지쳤던 나는 충전을 위해 2박 3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평소대로라면 아이들을 데려갔겠지만,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모처럼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남편과 둘이 짐을 꾸려 출발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아주머니의 전화가 온 것은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9시였다. 지난 밤 12시에 딸아이가 집을 나갔다가 두 시간 만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밤에 자다 깨 보니 애가 없더라고. 희원이 엄마한테 전화할까 했는데 그때 해봤자 방법도 없고 걱정할 것 같아 전화 안 했어… 두 시간 쯤 있다 들어와서 지금은 자고 있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표현은 들어보기만 했지 직접 겪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세상을 무너뜨릴 큰 재앙이 갑자기 닥친 듯 했고,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분명 큰 일이 생긴 것이다. 아이를 깨워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호텔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네가 정신이 있냐, 무슨 짓을 한 거냐 등등. 수화기 건너편의 아이는 별 말이 없었다.

“엄마가 비행기 표 알아보는 대로 갈 거니까 기다려! 그때까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 한 시간에 한 번씩 집에 전화할 거니까 네가 받아. 전화 안 받으면 그때는 끝인 줄 알아!!”

전화기를 놓은 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여보, 이게 비행의 시작일까, 아니면 이미 비행청소년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몰랐던 걸까?”
“애가 그랬다면 우리가 알았겠지. 별 일 아닐 거야.”
“그런데 왜 새벽에 나가?”


며칠 전 친한 후배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이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원조교제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은 터였다. 나이도 같고, 지역도 유사하다. 나에게는 그 아이가 곧 내 딸처럼만 느껴졌다.

나의 채근에 남편은 바로 항공사에 전화를 했다. 표가 없단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다니, 헤엄이라도 쳐서 바다를 건너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마음은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차분해지면서 제정신이 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지체된 하루가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와 나의 관계에 정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만일 당장 집에 갈 수 있었다면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날, 집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가서 알아보면 되고, 현재 상황으로 보면 큰 일이 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할 만큼 침착해졌다.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다.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내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였다. 아이는 점차 커가고 있다. 자기 발로 어디든 갈 것이고, 누구라도 만날 것이고,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하려고 할 것이다. 게다가 하지 말라는 일은 골라서 한다는 사춘기 아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의 행동과 예상되는 딸아이의 반응을 생각해보았다.


(고전적인 방법) 머리를 박박 깎아서 집에 가두고, 문을 잠궈 아무 데도 못 가게 한다.
(예상되는 반응) 영화에서 보면 그럴 땐 창밖으로 뛰어 내리던데 우리 집은 8층이라 최소한 중상일 것 같다. 아이 성격으로 봐서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이 너무 커진다.
(가장 흔한 방법) 길길이 뛰면서 죽도록 혼내고, 또 그러면 너 죽고 나 죽을 줄 알라고 협박한다.
(예상되는 결과)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말은 하지만 그걸로 끝! 후회나 반성, 미안함 같은 그런 행동 끝에 반드시 느껴야 하는 감정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결국 재발 가능성 높음.
(쿨하게 마음 읽어주기) “밤늦게 나가면 세상이 어떤지 궁금했구나. 엄마가 한 번도 데리고 나간 적이 없으니 네 입장에서는 나가보고 싶었겠다.”
(예상되는 결과) 나가도 된다는 말로 알아듣고 상습적으로 밤이슬을 맞는다.



아이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잔소리나 강압적인 태도가 통하는 나이가 지났다. 아이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 엄마 속상하지 않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까?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감동!”
강압으로도 공포로도 굴복시킬 수 없다면 감동을 시키자. 아이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조절하게 만들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나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집에 도착해보니 딸이 풀죽은 얼굴로 제 방에 있었다. 조용히 안방으로 불러 질문부터 던졌다.
“너는 엄마가 왜 그렇게 화를 냈다고 생각하니?”
“……. ”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너를 책임지고 키워야 하는데, 엄마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
“……. ”
“그건 바로 안전이야. 성적도 아니고 대학가는 것도 아니고 네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제일 중요해. 그런데 네가 안전하지 않은 곳에 갔기 때문에 엄마가 화를 낸 거야.”
“…… 잘못했어요.”

딸아이는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아끼는데 내가 그걸 몰랐구나, 정말 잘못했구나 하는 감정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중에 들으니
외할머니에게 그 순간이 ‘혼난 것보다 더 무서웠다’ 했단다. 내가 화를 냈으면 다른 일처럼 한 번 혼나고 잊어버렸을 일인데 이런 식으로 내 감정을 전달하니 아이 마음에도 강하게 각인이 되었던 모양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대부분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의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화로 표현하곤 한다. 이렇게 표현하면 간절한 엄마의 마음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아이는 그저 엄마가 기분이 나빠서 나에게 화를 냈다고 생각할 뿐이다. 엄마의 마음이 간절하다면, 그리고 아이를 위한 게 분명하다면 듣는 아이 입장에서도 그런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소통이고 올바른 대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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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선미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한국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수련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부터 아주대학교 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평가와 치료프로그램, 부모교육을 해왔다. 부모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 이상심리, 부모교육훈련, 행동수정을 주제로 다수의 강의를 하였다. 현재 EBS TV ‘생방송 60분 부모’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특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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