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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왜 사람은 꼭 뭔가 되어야만 할까?"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가깝게는 꾸준히 좋은 글을 쓰고 싶고요. 멀리는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것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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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들을 남몰래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녀는 낡거나 지친 귀퉁이를 지닌 그 책들을 애써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눈높이를 맞춘다. 인물들이 겪는 특별한 행운이나 평범한 불행을 두고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담담히 말할 뿐이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따지고 보면 그의 꿈의 변천사는 ‘되고 싶다’와 ‘될 수 없다’ 사이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였다. ‘되고 싶다’가 번번이 패배했다. 기권패였다. (…) 어릴 때 그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다. 꿈꾸는 것은 모두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꿈은 꾸는 동안에만 아름다웠다. 그는 세상의 주변이었다. 서점 베스트쎌러 진열대 뒤 구석에 꽂힌,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책이었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아무도 입어주지 않는 옷이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노래였다. 그것을 알아버린 순간부터 그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꿈이 꾸어지지 않았다.(『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p.25)”



여기 ‘꿈의 책’이 있다. 어렸을 때 자의든 타이든 무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그 책은 그 순간부터 쓰인 것이다. 누구나 그런 책을 한권쯤 품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책은 한 두 줄 쓰이고 말았을 것이고, 어떤 책은 부단히 새 글이 쓰이고 있는 중일 것이다. 보란 듯이 꿈을 이루고 나서 ‘한때 이러이러한 꿈을 꿨다고’ 남에게 펼쳐 보이지 않는 이상 우리의 ‘꿈의 책’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자 나만이 펼쳐볼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라니, 책 제목이 너무 과감한(?) 것 아니냐고 물었을 때, 김미월 작가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책에 실린 아홉 편 소설을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점에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과 같이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요.”라고 답했다.

2004년에 등단, 지난해 『여덟 번째 방』으로 신동엽 문학상을 받은 김미월 작가는 “현실에 대한 진지한 문학적 응전의 정신과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책에 추천사를 쓴 윤성희 작가는 “이 책을 읽다 보면 함부로 동정하지 않고 또 함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도 덧붙였다. 작가가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왜 사람은 꼭 뭔가 되어야만 할까?’ 고민하는 여고생, 달리 할 일이 없어 스스로 이름을 ‘달리’라고 바꾼 청년, 시민이 찾지 않아 직장을 잃게 된 공원 관리사무소 직원, 한국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법체류자들의 고민은 우리들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닥쳐오는 해야 할 일들에 밀려 어느새 낯선 곳에서 낯선 포즈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느끼는 소외감. 꿈이라고 품었던 작은 불꽃은 흔적도 없이 타버리고,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오늘, 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속에 담겨 있다.


세상에 오직 나와 그 책만이 존재하는 순간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들을 남몰래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녀는 낡거나 지친 귀퉁이를 지닌 그 책들을 애써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눈높이를 맞춘다. 인물들이 겪는 특별한 행운이나 평범한 불행을 두고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담담히 말할 뿐이다.

그 아홉 편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한 번쯤 겪어봤던 장면과 마주했을 때, “10년 후에는 기억도 못 할, 29,200일 중의 하루”가 ‘마치 소설 같은 장면’으로 치환되는 순간에 전해지는 묘한 온기.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다.

김미월 작가가 처음 접한 문학의 느낌도 그러했다. “어렸을 때 제일 먼저 접한 책이 동화책인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오빠랑 싸우고 속상할 때, 엄마한테 혼났을 때도 동화책을 읽으면, 이 세상에 오직 그 책과 나만이 존재하는 순간에 빠졌어요. 그 순간의 희열과 위안이 정말 달콤했어요. 이 세상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내 소설이 그런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맨 처음에 소설가를 꿈꾸었을 때, 닮고 싶은 소설가는 오 헨리였다. “소설의 사전적 정의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꾸며낸 문학작품’이잖아요.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에서 어려운 일 같은 아슬아슬한 지점에 있는 이야기를 오 헨리가 굉장히 잘 쓴 것 같아요.

「마지막 잎새」만 해도, ‘저 잎이 떨어지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늙은 화가가 벽에 잎새를 그려준 후에, 자기가 폐렴에 걸려 죽잖아요. 이런 소설을 읽었을 때 독자로서 느끼는 충격, 감동이 있어요. 익숙한 세상에 있다가 문득 낯선 세상으로 건너가는 경험. 그런 순간을 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그녀에게 꿈의 소설을 물었다.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소설. 오래 생각해뒀다는 듯 김미월 작가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연애소설”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모든 사람이 다, ‘이건 내 얘긴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동시에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연애 소설을 쓰고 싶어요. 너무 꿈의 소설인가요.(웃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허탈감에 관해


시인 지망생으로 국문과에 진학, 신춘문예에 응모 후 탈락. 출판사에서 잘 나가는 시인과 계약을 따내야 하는 업무 앞에서 주인공 진수는 옛날 꿈꾸던 시절을 낯설게 떠올린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자신이라는 책을 자신 역시도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작가가 친구와 어린 시절의 꿈 얘기를 하다가 떠올린 이야기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품성도 훌륭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사실 자기는 뭔가가 되고 싶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꿈이 없는 사람.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왜 뭐가 되고 싶은 게 없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어요. 한편 꿈이 아주 많은데 재능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반대편의 사람들도 있잖아요. 두 경우 모두 마음이 헛헛하고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후자 쪽의 경우가 더 많을 거예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저도 한때 작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어떻게 저 가수에게 내 가사를 전달해야 할지, 작사가가 되는 건지 몰라서(웃음) 고민한 적이 있거든요. 한때 꿈꾸었으나 절실하지 않아서, 재주가 없어서 또 여러 가지 이유로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허탈감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김미월 작가는 꿈을 이룬 사람일까. 강원도 태생인 작가는 “순전히 바닥이 좁아서(웃음)” 백일장에 나가면 대부분 상을 타왔던 문학소녀였다. “문학을 좋아했고, 열심히 했던” 소녀는 언어학과에 진학해 틈틈이 국문과 창작 수업을 기웃거리며 글쓰기에 관심을 이어갔다. 졸업 후에는 대학 시절 때 시작한 야학 활동을 졸업 후에도 계속해나갔다.

“그 일에도 나름 만족을 하고 있었어요. 한번은 과로로 하루 병원에 입원했어요. 몸이 아프면 평소에 할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내 삶을 돌아보니 지금까지의 삶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고로 만족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그때 글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진로를 바꾸었어요.”

김미월 작가는 “글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어” 서울 예대 문창과에 다시 진학했고, 지금처럼 한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낸 작가가 되었다. 숙명여대와 한예종에서 글쓰기 강의도 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진로를 정하는 것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글을 쓸 때 관찰도 중요하고, 사유도 중요하지만 역시 자기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자기가 제일 쓰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 막연해도 무엇을 쓰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오래 생각하면 그것과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떠오르거든요.”


청춘, 적립된 것 없고 결정된 것 없는 시기


김미월 작가의 소설에는 20, 30대 젊은이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 본인도 젊은 작가 축에 속하고, 강의를 통해 동시대 젊은이들과 같이 호흡하는 그다. “청춘, 하면 이제는 마냥 아름다운 환상만 부여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청춘은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받아들여져요.” 그녀에게 가까이 지켜본 청춘에 대해 물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지금 20대가 제일 좋은 때다 얘기하는데 사실 졸업하고 나면 더 좋다. 더 다양하고 더 놀랍고,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아직 그런 시기를 겪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다린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으냐.’고요.

그 얘기를 들은 한 학생이 메일을 보내왔어요. 자기가 지금 이 시기가 제일 어렵고 고단한데, 다들 지금 이 시기가 제일 좋은 때라고 말해서 어떤 희망을 품어야 할지 몰랐다고요. 오늘 얘기를 듣고 나니, 문득 내일이 기다려진다고요. 아, 20대들이 지쳐있구나, 갑자기 체감한 순간이었어요.”


“20대는 아직 적립된 게 없는.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게 없는 때죠.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한편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위태롭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고. 위태로워서 치명적으로 약할 수 있는, 그래서 잘 보내야 해요.

이때 ‘잘’이라는 말은, 기반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이후의 많은 것을 바꾸고 결정할 수 있는 시기니까요. 그 시기에는 기존 질서를 다 떠나서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꿈꾸지 못했던 위안 주고 싶어


“진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빌딩들 너머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그는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엇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p.31)” 혼란스러운 속에서 멈춰서는 순간. 망연자실하면서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 소설 속에서 이런 대목을 만날 때,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세계가 하나로 잘라서 묘사하기에는 복잡다단하고 다채로워요. 세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움직이는 어떤 유기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불행한 결말처럼 보이는 어떤 상황이, 나중에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매우 많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사건을 해피엔딩, 배드엔딩으로 색을 입혀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해석은 나중에 천천히 해도 좋고, 다른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좀 내버려두는 식인 것 같아요.”

작가라는 꿈을 이루고 나니 어땠느냐고 묻자, 김미월 작가는 “작가가 돼서 좋은 글을 쓰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그녀 역시 꿈을 이루어가는 중이다. “작가가 되었을 땐 믿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얼떨떨했고 여전히 그렇다”“가깝게는 꾸준히 좋은 글을 쓰고 싶고요. 멀리는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답했다.

“지금도 일기를 쓰는데, 대학교 때 쓴 일기에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화를 못 내는 편이라, 화가 날 때 그 화를 표출할 수도 없고 참으니까 답답해서 글을 썼다고요. 그때 어떤 감정이 순화되는 걸 느꼈어요. 결국, 스스로 평안을 얻으려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 같아요. 동화를 읽으면 정말 재미있는데, 책은 끝이 있잖아요.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끝이 나지 않는 동화를 꿈꿨는데, 그런 책을 정말 원한다면 내가 쓰는 수밖에 없구나 알았고요. 더 자라서는 화, 불안, 슬픔에 시달릴 때 그것을 희석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 두 가지 이유는 여전히 저에게 유효해요. 감히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저 자신을 비롯한 독자들에게 그 책을 읽었을 때 자기가 꿈꾸었던 위안. 혹은 꿈꾸지 못했던 종류의 위안, 동감, 깨달음. 이런 것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씁니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글 김미월 | 창비

2011년 제29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서의 저력을 확인한 김미월이 신작 소설집이다. 한층 물오른 필력과 젊은 감각, 더욱 깊어진 통찰이 돋보인다. 김미월의 소설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남몰래 펼쳐보는’ 이 작가의 섬세한 눈길은 남다른 온기를 머금고 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이라고 해서 섣불리 보잘것없는 삶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제는 무시당하기 일쑤인 이 작은 진리를 작가는 차분하고도 곡진한 목소리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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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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