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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소리샘으로 무장한 우리 음악들

나티, 림지훈, 연남동 덤앤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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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가 아이돌 세상처럼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다양한 음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요계가 아이돌 세상처럼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다양한 음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한국 정통 헤비메탈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고 있는 나티의 2집 음반 < Pride >, 해먼드 오르간으로 「연안부두」같은 기존 곡들을 재해석한 림지훈의 신보 < Organ, Orgasm >, 요즘 젊은이들의 일상을 절묘하게 포착해낸 그룹 연남동 덤앤더머의 데뷔 음반 < 우리는 날 것이다 >를 소개합니다.


나티(Naty) < Pride >

지금에야 그저 옛날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언급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 이 땅 위 밴드들에게도 연주력이 곧 권력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야. 이 시기 밴드들의 각축전은 (놀랍게도) ‘누가 가장 빨리 치느냐’, ‘누가 가장 강하게 때리느냐’, 그리고 ‘누가 제일 빡세게 지르느냐’였다고 해. 지금까지 활동 중인 시나위와 백두산, 블랙홀을 비롯하고도, 이제는 추억의 밴드가 되어버린 사두, 사하라, 스트레인저, 디오니서스 등 각자의 신을 달구던 메탈 밴드들이 신을 주름잡던 시절의 얘기야.

그러던 분위기가 얼터너티브 열풍이 이 땅에까지 불씨를 옮기며, 또 ‘연주력’의 기술적인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공기가 확산됨에 따라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고 메탈 신은 급격히 축소되어만 갔어. 당대 이름을 날리던 수많은 밴드들이 소식을 전할 수 없게 된 건 아마 예정된 수순이었을 거야. 나티도 당시 사라졌(었지만 멤버 각자가 메탈 신에서 여전히 활동하)던 그룹 중 하나야. 뿌리가 스래쉬(Thrash) 메탈이니,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크래쉬(Crash)의 직계 선배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역사가 깊은 그룹이야.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일지 모르는 이 ‘나티’라는 헤비메탈 밴드는.

그랬던 그들이 음반을 통해 다시 모습을 보인 게 2006년, < Long Time No See >를 통해서였어. 사운드의 질을 위해 미국의 유명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 작업을 하고 옥슨80의 「불놀이야」, 이은하의 「밤차」를 메탈 사운드로 재해석하는 등 여러모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어느덧 국내 메탈 신의 ‘역사’로 남은 나티의 재도약을 알린 앨범이라 말할 수 있겠지.


그리고 2011년, 나티는 두 번째 정규 작품 < Pride >를 내놓았어. 앨범을 접하는 순간 느껴지는 건, 음악 스타일이 최근의 메탈 밴드들 중에서도 굉장히 ‘20세기적’이라는 점이야. 사운드도 건조하고 리프도 둔중하고, 최근의 트렌드인 ‘감각적인’ 무엇은 찾아벺 수 없어.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거나 시류에 영합하기보다는 헤비메탈 본연의 맛을, 즉 ‘고수’를 고집한 듯해. 가사도 마찬가지야. 요즘 세상에 스스로 'I am a tough guy'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터프가이’라는 어감도 그렇고, 세태도 그렇고.

그래 맞아. 이들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어. 그러나 우리가 나티의 음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놀랍게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 언제부터인가 대중음악은 기본적으로 소비를 전제하며 재미를 추구하는 ‘감각’의 잔치가 되어버렸어. 나티의 사운드는 이런 세태에 되묻고 있는 것만 같아. 감각적인 음악, 새로운 음악, 잘 팔리는 음악이 꼭 옳은 것이냐고. 그리고는 오래 참았다는 듯 한껏 화(火)를 점화하고 있어. 오래전 우리가 열광하던 바로 그 음악을 꺼내들고 말야.

그래서 고마워. 어느새 화내는 법조차 잊어버린 우리 세대를 대신해 이렇게 마음껏 분노해줘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해. 우리 세대의 음악이 아닌 윗세대의 음악을 통해 대리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런데 있지, 요즘에 강한 음악을 들으면 이따금씩 슬퍼지고는 해. 화낼 일 많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은데, 정녕 우리는 화내는 법을 잊어버린 세대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 그런 이유로, 나는 이 땅에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개인’의 문제보다도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고 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해. 정의는 없고 탐욕만 있는 세상이라 불만을 터트리는 메탈 귀신들, 바로 나티처럼 말이야.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림지훈 < Organ, Orgasm >

올드 록 팬들에게는 사이키델릭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흑인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펑키한 그루브를 연상시킬 수 있는 악기. 이처럼 동상이몽으로 나눠질 수 있지만 21세기에서 해먼드 오르간이 선사하는 감흥은 아무래도 복고일 것이다. 야릇하면서도 정신을 일순간에 흐트러지게 만드는 희대의 마취제. 이러한 해먼드 오르간이 한국적인 사운드를 발현한다면 기대가 될 법도 하지 않는가. 실제로도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 펑카프릭 부스터(Funkafric Booster)에서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길렀던 임지훈을 기억한다면 익숙하고 오래된 냄새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예상 못 했을 수도 있다. 댄서블한 재즈와 1970년대 펑크(Funk)를 지향했던 소속팀을 이끌던 전력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장르적인 선택에서 한 번 놀라고 대담한 섹스어필로 두 번 놀란다. 앨범 재킷에서 허리를 활처럼 굽히고 고개를 120도 각도로 쳐들고 있는 처자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는 일본의 성인 여배우 호조 마키(北條 麻妃)란다. 대놓고 농염한 콘셉트로 치닫는 것이다. 오르간으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고야 말겠다는 무모한 패기.

일단 먼저 언급하자면 이번 작품은 기존의 명곡을 재해석한 연주 앨범이다. 에티오피아 재즈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믈라투 아스타케(Mulatu Astatke)가 호출되고, 산타나(Santana)는 물론이며 급기야는 인천 짠물의 「연안부두」까지 흘러나온다. 「연안부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곡이 보컬을 제외시킨, 오로지 림지훈의 손길로써 애무한다. 몸을 이완시키는 느긋한 비트와 미로를 탐색하는 듯 꺾이고 꺾이는 그루브는 지극히 끈적댄다. 손성제가 가세한 색소폰 연주는 어떤가. 경박하지 않게 피치를 올리며 전희의 순간을 거치더니 거침없이 절정에 이른다.

홍조 띤 얼굴을 잠시 가라앉히고 앨범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시 복고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악기의 음색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여유가 넘치는 밴드 세션들과의 게으른 조화가 속도전 시대의 문법과 정반대의 행로를 걸어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르가즘이라는 목표보다 회귀라는 열쇠말을 획득한 것이 더 큰 성과일 수도 있다. 즉 림지훈의 < Organ, Orgasm >은 밴드의 음악보다는 마스타 악단의 음악이며, 스타벅스보다는 지하다방의 배경음이다.

글 / 홍혁의(hyukeui1@nate.com)



연남동 덤앤더머 < 우리는 날 것이다 >

얼치기처럼 보이는 안경을 집어던지고 망토를 휘날리는 사나이 ‘슈퍼맨’의 등장은 악당을 때려잡을 때보다 더 큰 희열을 느끼게 한다. ‘연남동 덤앤더머’에게 느끼는 반가움도 이와 비슷하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름 뒤에 오랜 내공으로 단련된 세 남자가 숨겨져 있다. ‘레이니썬’과 ‘내 귀의 도청장치’의 기타리스트인 김태진(니미 킴)과 ‘내 귀의 도청장치’ 베이스 황의준(갈고리), 그리고 따까리가 그 주인공이다.

앨범은 생고기 같은 ‘날 것’을 표방한다. 일단 사운드적으로 ‘마스터링’을 생략해 라이브같은 현장감이 강하다. 가사 부분도 ‘내 귀의 도청장치’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속사정을 제대로 까발렸다. 이별 후 찌질하게 징징거리고(「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去者必返)」) 초라한 자취생활에 절규한다.(「귀차니즘의 승리」)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술로 시작해 술로 해결될 정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다. (하물며 밴드 결성도 술자리였다고 전해진다.) 가사 속에서 세 명의 캐릭터와 보컬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랩과 저음은 갈고리가, 신경질적인 고음과 기타솔로는 니미 킴, 따까리는 그 이름처럼 보조 역할에 충실하다.

처절하게 화장실을 찾는 「장트러블」과 후렴이 눈물겨운「비와 삼겹살」처럼 이들의 노래는 코믹만화를 떠올린다. 이런 선명한 줄거리는 자연스레 판소리나 쇼툰(showtune)의 형식과 만난다. 태평소와 피리를 넣은 「홍대 아리랑」과 「장트러블」, 추임새가 발군인 「나보고 어쩌라고」는 판소리의 미학이 담겨있고, 「따까리의 난」은 현실감 있는 연기로 뮤지컬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불연 듯 나타나는 플라멩고 기타와 실례를 해버린 상황을 반전시키는 단조전개는 음악적 센스를 대변한다.

‘일상’을 통해 ‘일탈’을 꾀한 데뷔반을 관통하는 것은 ‘지역색’이다. 중간에 계속 튀어나오는 사투리는 무뚝뚝하고 억센 ‘경상도 남자’의 색체를 띈다. 이런 지역색을 ‘기질’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정체성’은 연남동에서 찾을 수 있다. 연남동은 홍대와 1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지만, 확연히 ‘동’이 다른 독립된 구획이다.

글 / 김반야(10_b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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