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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가 최고 대접 받는 이유는 ‘기부’

‘우연’이 만들어준 네팔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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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포장된 도로이긴 했지만 브레이크를 밟고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할 만큼 푹 파인 곳이 수두룩했다. 한창 덜컹거릴 때는 내가 무슨 ‘짤짤이’ 하는 동전이라도 된 것 같았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포장된 도로이긴 했지만 브레이크를 밟고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할 만큼 푹 파인 곳이 수두룩했다. 한창 덜컹거릴 때는 내가 무슨 ‘짤짤이’ 하는 동전이라도 된 것 같았다.

오후 2시에 카트만두공항을 출발했는데 밤 12시가 다 돼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얼마나 온 거냐고 물었더니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라고 했다. 하긴, 어릴 때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데 여섯 시간이 걸렸으니까. 너무 피곤하면 잠이 안 온다고? 다 거짓말이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졌다.

이번 여행은 멘토링 전문 NGO 인 ‘러빙핸즈’에서 마련해주었다. 카트만두에 있는 학교에 도서관을 후원하는데 학생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려고 나를 초대하였다. 올 초부터 소식지 표지를 그려준 게 인연이 되었다.
러빙핸즈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작년 말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한 단체와 달력을 만들었다. 달력에 들어갈 그림을 저작권 기부 방식으로 줬는데 단체에서 예산 문제가 있다며 되레 돈을 주었다. 이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다른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어떤 단체가 좋을지 물어봤더니 담당자가 러빙핸즈를 추천했다. 투명하게 잘 운영하는 멘토링 기관이라는 말에 바로 기부하였다. 이렇게 러빙핸즈를 알고 여기 네팔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연도 잘하면 만들어진다.


여행자가 되면 참 부지런해진다. 집이었다면 알람을 두세 개 맞춰놔도 일어날까 말까 하는데 여기서는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서 깼다. 창문을 여니 마차푸차레가 보였다. 네팔에는 많은 산들이 있지만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은 마차푸차레 한 곳뿐이었다. 7000미터밖에(?) 안 되지만 여느 산보다 강렬하고 신비로웠다. 굳이 ‘신들이 사는 산’이라 설명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선교사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포카라 시내와 페와 호숫가를 한 시간 동안 걸었다. 선교사가 아침은 근사한 데서 먹자며 호수가 보이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선교사와 나 그리고 마차푸차레

선교사는 카트만두에 있는 한솔국제학교 교장이자, 러빙핸즈의 네팔 지부장이기도 했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운영했고 20년 넘게 네팔에 살았다.
‘피시 테일 로지’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그는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오랫동안 아버지 일을 봐와서인지 자기도 크면 의사가 되어 전 세계를 돌며 선교 활동을 하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소원이 있다면서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을 한 번 더 살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라 했다.

“에이, 그러면 지금 다른 걸 하고 싶다는 거 아녜요?”
“오, 역시. 센스 있네.”
“하나님한테 변호를 맡긴 거네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대뜸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해서 두말없이 축구클럽에 등록해주었다.
지금은 브라질에서 축구 연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브라질에 사는 친구 집에 묵으며 즐겁게 축구를 배우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뛸 때가 가장 행복하다, 브라질에서 행복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제법 어른스럽게 문자도 보내왔단다. 아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재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재능이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행동과 시간의 문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꼭 1등을 한다고 해서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다. 재능은 경쟁도, 평가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그저 ‘제 인생을 꽉 채우면서 산다’라는 느낌과 확신이 어쩌면 재능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재능은 자기만족이며 이기적인 행복에 가깝다. 네팔 커피를 홀짝거리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몇 년 전 카트만두에서 서쪽 골짜기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 프로펠러로 날아가는 아주 작은 비행기였지. 기류가 불안정하니까 막 덜덜거리다가 툭툭 떨어지는 거야. 엄청 무섭더라구. 그래서 손잡이를 꽉 잡았지.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바닥에 피가 안 통하더라고.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난 비행기 안에 있고 어차피 비행기가 떨어지면 다 끝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사실 뭐가 있겠어. 기장한테 다 맡기는 수밖에 없지. 에라, 모르겠다 싶은 거야. 마음이 아주 편해지더라구. 그래서 손잡이를 놨지.
좀 있으니까 잠까지 오더라니까. 그래서 잤지 뭐. 나중에 승무원이 오더니 이런 거친 기류 속에서 잠자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더라구. 기절한 줄 알았대. 그때 깨달았지. 세상을 두려움에 떨면서 사나, 즐겁게 사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처음에는 선교사와 같이 간다고 해서 시시때때로 거룩한 말씀을 일삼으며 식사 기도는 빼먹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함께 버스를 타고 밥을 먹고 산에 올라가면서 하나씩 바뀌었다. 실없는 농담도 던지고 자신 있게 맥주도 시켰다. 이런 경치에서는 당연히 한잔해야 된다며 네팔산 고르카 맥주를 권했다. 러빙핸즈는 그리스도 정신으로 멘토링과 후원사업을 벌였다. 그 사람들과 함께 왔지만 난 선교하러 온 게 아니었다. 네팔 아이들과 벽화를 그리러 왔을 뿐이었다.

그림이란 재미다.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즐거움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아름답고 감동적인 일이라도 재미가 빠지고 명분만 앞서면 결국 지치기 마련이다. 자연산 도다리를 앞에 두고 광천수를 마시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감포에서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 캠프까지 맥주 네 병을 배낭에 담아 낑낑대며 올라갔다. 2000미터 고지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캠프는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눈 덮인 산을 보며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고 싶었다. 선교사는 백숙 시켜놨으니까 안주로 먹으면 그만이겠다며 한술 더 떴다.(물론 그는 마시지 않았지만.)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길은 테이프 되감기와 같았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또다시 열 시간을 달렸다.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선교사 집에 묵었다. 선교사의 아내가 삼겹살을 구워주어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녀는 오후에 지진 났을 때 다들 괜찮았냐고 물어보았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3층짜리 건물이 덜덜덜 흔들렸고 네팔 동쪽에서는 사람도 죽었다고 했다. 하도 버스가 덜컹거려서 지진이 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우린 역시 경비행기에 탄 인생이로구나.


‘폼 나게’ 살려고 그린다

이틀 동안 포카라에서 잘 놀았다. 고르카 맥주도 많이 마시고 이 사람 여기 왜 왔나 싶을 정도로 많이 먹고 마셨다. 선교사와 러빙핸즈 식구들 앞에서 이제 밥값을 할 차례였다.

카트만두 외곽에 자리 잡은 한솔국제학교에는 이백여 명의 학생들이 다녔다. 우리로 치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있었다. 카트만두의 모든 건물이 그렇듯 볼품은 없었지만 학생들은 어두컴컴한 교실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자주색 교복은 낡긴 했지만 깨끗했다.

학교를 둘러본 뒤 벽화를 어떻게 그릴지 결정했다. 강당 실내 벽은 학생들과 함께 그리고 2층 도서관 입구는 내가 그리기로 했다. 녹슨 정문은 러빙핸즈 식구들과 선교사가 새로 칠하기로 했다. 먼저 녹슨 정문부터 해결하기로 하고 굵은 사포와 철로 된 칫솔을 건네주며 녹을 꼼꼼하게 벗기라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도 하더니만 좀 지나니까 웃음기가 싹 빠진 채 어금니 꽉 깨물고 사포질을 했다.

나는 붓 한 자루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좋습니다” “여기 경첩에 녹슨 거 보이죠. 좀 더 빡빡 닦아주세요” 하며 입으로 일했다. 영화감독이 된 기분이었다. 녹을 다 벗긴 다음에는 산화방지제를 발랐다. 나만 빼고 선교사와 러빙핸즈 식구들은 온통 녹가루를 뒤집어썼다.

강당 벽은 15미터 정도, 시멘트 블록을 쌓아올린 다음 페인트로 칠했다. 바탕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다. 표면이 거칠면 물감이 잘 안 발린다. 가지고 온 아크릴 물감으로는 어림없었다. 다행히 근처에 페인트 가게가 있어서 바나나색과 옅은 연두색 수성 페인트를 골랐다. 강당에는 마흔 명이 넘는 학생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열 명씩 조를 나눠 차례대로 그림을 그렸다.


먼저 그리고 싶은 걸 바나나색으로 마음대로 그려보라고 했다. 두 조가 교대로 그렸다. 강당 벽은 금세 바나나색으로 채워졌고 다음 조가 바나나색 그림 위에다 옅은 연두로 새롭게 그렸다. 나는 학생들 뒤에서 바나나색과 연두색이 어울릴 때까지 기다리며 지켜보았다.
다음은 푸른색이었다. 현지 선생님들과 러빙핸즈 식구들이 그릴 차례, 아무래도 학생들보다 말이 잘 통했다. 푸른색 아크릴 물감과 붓을 건네주며 하트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네팔 여자 선생님들은 곧바로 호텔 파티에 가도 될 만큼 눈부시게 차려입었다. 이 차림에 빨간 고무가 발린 면장갑을 끼고 울퉁불퉁한 벽에 그림을 그렸다. 뒤에서 보니 무슨 초현실주의 작품 같았다.

선생님들이 벽화를 그리는 동안 2층 도서관으로 올라가 벽에다 왕관을 쓴 하트 친구들이 즐겁게 책 읽는 모습을 그렸다. 하트는 핑크로 칠하고 초록색 구름을 그려 배색했다. 그리고 다시 강당으로 내려가서 벽화를 마무리했다. 그림이 괜찮으냐고 선교사에게 슬쩍 물어보자 대답 대신 이런 말이 돌아왔다.

“학생들한테 물어봐야죠. 아이들이 소리치고 박수 치면 진짜 좋은 거예요. 박수는 치는데 왠지 성의만 보인다 싶으면 별로인 거죠, 뭐.”
“오늘 서울 가는 비행기 표 좀 알아봐주세요. 박수 없으면 먼저 갈게요.”


벽화를 보며 실없이 농담을 나눴다. 다행히 학생들은 신나게 박수를 쳐주었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학생들은 예쁘게 자세를 잡아주었다. 현지 선생님들도 함께 그림을 그려본 건 처음이라며 무척 좋아했다.
러빙핸즈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러빙핸즈에서 일하는 목사는 그림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다고 했다. 그는 하트 주위에 덩굴무늬까지 그렸다. 그림 그려본 사람은 안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입에서 침 떨어지는 줄도 모른다.


자꾸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네팔에 학교를 세우고 후원사업을 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20년을 살았다는 게 더 대단해 보였다. 어땠냐고 물어보면 그저 “뭐 좀 힘들었죠”라고 웃어넘기지만 말이다.

포카라에서부터 카트만두로 와서 벽화를 그릴 때까지 그는 내내 함께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박수 쳐주었다. 내가 하는 기부 활동이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이라며 존중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는 히말라야산産 토종꿀도 챙겨주었다. 내년에 꼭 다시 오겠다고 하니까 벽화 그릴 곳 많이 준비해놓겠다며 활짝 웃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카트만두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는 검색대 너머에서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내게 잠깐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하더니 꼭 안아주었다. 만약 그와 함께 포카라까지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카트만두에 있는 학교로 바로 가서 벽화만 그리고 돌아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네팔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은 못했을 것 같았다. 여행은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래서 화학작용도 훨씬 빨리 일어난다.

여행을 하면서 후원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국내외 아동을 돕는 기관에서는 주로 일대일 결연사업을 많이 한다. 유행이라고 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대일 결연은 후원받는 사람보다 후원하는 사람 위주로 돌아간다. 매달 내는 돈이 누구한테 가는지 알고 싶은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가슴으로 키운 내 아들딸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서적인 애착도 크다. 하지만 후원받는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르다. 생계를 해결해줘야 할 아동도 있고 공부를 도와줘야 할 아동도 있다. 현지에 와보니 열이면 열, 사정이 모두 달랐다. 이런 아이들에게 모두 똑같이 현금 3만 원씩 건네준다는 건 효율적이지 못했다. 또한 현금 대신 다른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NGO 활동에는 자선과 희생, 봉사가 따른다. 하지만 지역에 대한 이해, 언어, 후원 프로그램 개발, 운영 노하우 같은 전문성도 요구된다. 이런 전문가가 제대로 활동하려면 비용이 들고 이 비용 역시 후원으로 충당한다. 즉, 매월 3만 원을 후원하면 이 돈이 고스란히 후원 아동에게만 가는 게 아니라 전문가의 생계와 후원사업을 하기 위한 비용도 당연히 포함된다.

러빙핸즈에서는 후원금에 대해 7 대 3의 원칙을 적용한다고 명쾌하게 밝힌다. 후원금의 70퍼센트는 직접 사업비로 쓰고 나머지 30퍼센트는 운영비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후원자는 국내외의 어려운 이웃뿐만 아니라 후원 전문가도 돕는 셈이다. 그런데도 인건비에 대해서는 아직 인색한 게 사실이다. 마치 5만 원짜리 페인트 마커 영수증은 잘 처리해줘도, 작업비에 대해서는 인감증명부터 주민등록등본, 계약서, 세금계산서에 작업 전후 증명사진까지 한 무더기의 서류를 챙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네팔에 있는 학교를 돕는다고 하면 그 돈으로 국내의 어려운 아이들부터 도우라는 사람들도 있다. 노르웨이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국가가 나서서 후원한다. 아마존 벌목을 막기 위해 아마존 펀드에 가장 먼저 기부했고 아프리카 기아 해결을 위해 프랑스나 독일보다 더 많은 돈을 기부하였다. 그들에게 세계화된 세상에서 지리적으로 멀다는 건 의미가 없다. 세계 평화와 전 지구적인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곧 노르웨이의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그래서 북유럽의 작은 나라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언제나 최고로 대접받는다. 국내의 어려운 아이들도 도와야 하고 네팔 아이들도 도와야 한다. 그리고 네팔을 돕는 게 우리 자신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난 네팔에 다녀왔고 벽화도 남겼다. 내년에 또 오겠다고 약속도 해버렸다. 내년에는 ‘펜 하나로 떠나는 네팔 여행’을 해보려고 한다. 먼저 한솔국제학교에 필요한 벽화를 그려주고 선교사 집에서 먹고 잔다. ‘우리도 벽화 그려주세요’ 하는 곳이 있으면 얼른 짐을 싸고 가서 그림을 그려주고 거기서 먹고 잔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네팔 구석구석을 다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말은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언젠가 이루어진다. 결국 시간문제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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