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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와 시대를 넘어선 위대한 보컬리스트 - 김광석 <4집(김광석)>

김광석 <4집(김광석)> (1994) 30대 김광석의 진솔한 자아를 드러낸 회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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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6일은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김광석의 16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김광석의 음악적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오는 2월 11일 서울 올림픽홀에서 '김광석 다시...

지난 1월 6일은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김광석의 16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김광석의 음악적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오는 2월 11일 서울 올림픽홀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가 열린다고 합니다. 자전거 탄 풍경, 유리상자, 여행스케치, 동물원, 김조한 같은 중견 가수들과 함께 알리, 아이유, 장재인 같은 신세대 가수들이 나와 김광석의 노래들을 자신들의 색깔로 부른다고 합니다. 이번 주는 김광석의 4집 음반을 소개합니다.


김광석 < 4집(김광석) >(1994)

순수하고 열정적인 20대를 마감하고 30대에 들어서게 되면 누구나 청춘의 상실에 고민하게 된다. 양희은이 단적으로 말한 ‘썩은 30대’를 맞아서 1964년생 김광석이 1994년의 앨범 <네번째>의 앨범 라이너노트에 털어놓은 고백은 리얼하고도 진지하다.

“내 나이 서른 둘. 스펀지처럼 푸석푸석해진 나의 세상맞이. 날 인정함으로 또 한발 내딛어 본다. 내 나이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는 노래 「서른 즈음에」는 비록 강승원이 노랫말과 곡을 썼으나 30대가 된 김광석의 공허하고 불안한 가슴을 잘 담아낸 곡이다. ‘점점 더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하지만 그것은 좌절이나 삶에 수동적으로 젖어가는 타협이 아니라 현실 직시의 시작이다. “날 인정함으로써 또 한발 내딛어본다”는 스스로의 말대로 김광석은 하모니카로 전주로 시작되는 전형적인 포크송 「일어나」를 통해 흔들리지 않고 강직해야 할 서른을 선언한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창작집으로선 제목처럼 네 번째이지만 앞서 발표한 < 다시 부르기 >를 포함해 실은 다섯 번째가 되는 이 앨범은 실로 30대 김광석의 진솔한 자아를 드러낸 회심작이다. 그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앨범에서 코러스를 맡았다)과 ‘동물원’을 거쳐 홀로서기에 나선 시절에는 주로 남이 만들어준 노래를 불러왔다. 이 앨범의 수록 곡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도 동물원 시절의 동료 김창기가 써준 곡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는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자유롭게」 등 네 곡을 직접 만드는 농익은 작곡솜씨를 과시한다. 그리고 이 곡들은 선율의 호소력에 있어서나 전개에 있어서나 다른 사람들이 쓴 곡들과 비교해서도 질적, 감성적 우위를 드러낸다.

어쿠스틱 악기들의 조화가 돋보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는 김광석 보컬에 실린 바람 햇살 휘파람 등의 언어들과 곡조는 어울림이 최고이며, 류근이 가사를 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2003년 흥행에 성공한 손예진 조성우 조인성 주연의 영화 <클래식>의 지속적으로 주요 장면을 적시며 발군의 멜로디라는 것을 다시금 증명했다.

조동익의 빼어난 편곡은 김광석 감성의 독자적 세계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곡마다 아기자기한 맛을 부여하며 결과적으로는 김광석의 음악 면적을 넓혀주고 있다. 앨범의 쌍포는 김광석과 조동익인 셈이다. 세션도 베이스 조동익을 비롯해 기타 함춘호, 건반 박용준, 드럼 김영석, 트럼펫 이주환, 퍼커션 박영용 등이 가세해 안정된 사운드를 축조해냈다.

조동익의 도움으로 김광석의 음악 색깔은 전작들에 비해 제대로 그리고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일면 처연하다가도 곧바로 힘이 솟아오른다. 그런 강약조절을 해내는 김광석 노래의 통제력이야말로 앨범의 최고 미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탁월한 보컬리스트다.

대중들의 반응도 좋아서 「일어나」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서른 즈음에」가 잇달아 애창 애청되었다. 음악적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그는 생전에 이 앨범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이듬해 성숙의 절정인 리메이크 앨범 < 다시 부르기 2집 >을 내놓은 뒤 그는 갑작스레 세상과 작별했다. 따라서 창작 모음집으로는 이 음반이 마지막인 셈이다. 널리 알려진 곡들 말고 김지하 시에 황난주가 곡을 붙인 「회귀」, 이무하의 「끊어진 길」, 노영심의 「맑고 향기롭게」도 좋다.

어느덧 추억이 된 1990년대 중반의 향기로운 음악기록이다. 마지막 곡 「자유롭게」 노랫말 하나로도 남아 있는 우리들은 그의 메시지에 절대 공감하고, 실천을 자극받으며 그리고 끝없이 우리의 현실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본다. 메시아적 메시지라면 너무 거창할까. 그 어떤 과도한 수식도 우리는 주저함 없이 받아들인다.

‘…저마다 소중히 태어난 우리/ 우리는 모두 다 고귀한 존재… 쉽게 단정 지운 일들 나와 너를 구속하고/ 쉽게 규정 지운 일들 너와 나를 얽매이고/ 쉽게 인정했던 일들 너와 나를 부딪히고/ 서로가 아끼며 보듬을 우리/ 따뜻한 눈으로 마주할 우리/ 사랑으로 자유롭게 사랑으로 자유롭게…’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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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진모(대중문화평론가)

학력
고려대학교 사회학 학사

수상
2011년 제5회 다산대상 문화예술 부문 대상
2006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공로상

경력
2011.06~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영상물 등급위원회 공연심의위원
내외경제신문 기자

음악웹진 이즘(www.izm.co.kr)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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