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이 서민을 짓누르는 현실, 우화로 풀어냈죠”

『지금은 없는 이야기』 최규석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 사람을 짓누르는 현실을 우화로 풀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지난달 21일, 서울 홍대부근 한 카페,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배우 김남길을 닮은 만화돌, 최규석 작가와 독자들이 만났다.

3년 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면서 갈 곳을 묻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라면,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가당찮게도 국가는 이들에게 폭력으로 답을 했다. 참사가 벌어졌다.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불길이 솟았고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다. 우리는 그때서야 알았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는 없구나!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는 반가움도 잠시, 1월20일이 다가올라치면 국가권력의 비열함과 엄혹함을 되새기게 된다. 용산은 시대의 트라우마이자 씻지 못할 상처가 됐다. 우리는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들은 곧 우리였는데 말이다. 살인철거가 이뤄진 그곳은 허허벌판이다. 철거를 강행한 재개발 사업은 중단됐다. 뭐가 급해서 불구덩이로 그들을 몰아넣었는지, 토건정부와 업자들은 법을 들먹일 것이 아니라, 답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더러운 세상이다. 국가나 정부는 뒷짐을 진다. 사회구조는 이미 법이요, 규칙이니 바꿀 수 없다면서, 개인이 죽도록 노력하란다.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최규석 작가가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을 내놨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 지금은 없는, 우화 형식으로 거듭 묻는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지난달 21일, 서울 홍대부근 한 카페,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배우 김남길을 닮은 만화돌, 최규석 작가와 독자들이 만났다.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분노를 사그라지게 할 때가 아니다. 용산을 기억해야 할 때다. 희생당한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할 때다. 최규석은 우화를 통해 그것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지금, 책을 사고 싶다면, 『지금은 없는 이야기』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책을 낸 과정이나 계기, 왜 이 작업을 하게 됐나?

군대 가기 전엔 원하는 책만 읽었는데, 군대에 가니 읽을 수 있는 책이 별로 없었다. 진중문고라고, 내무반에 서른 권정도 있었다. 그런데 무서운 내용들이 많았다. 인상 깊은 책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내용이 공포였다. 돈 없고 공무원인 아빠와 사업해서 돈 많은 아빠를 비교하면서 돈을 열심히 버는 인생관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한다. 공무원 아빠는 회색처럼 느껴지는 성격이다. 돈을 못 번다고 그런 유형일 이유는 없는데. 부자아빠는 굉장히 밝고 소통도 잘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유형이고. 참 우화적인 방식이지.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게 굉장히 무서웠다. 섬찟했다. 이렇게 살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이런 얘기가 넘쳐나다니. 현 상황이 힘겨운데, 자기 삶을 긍정하는 건 좋은데, 개인적인 해결책 외에 다른 이야길 안 꺼내더라. 그게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이었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수집해서 대학생들에게 작업하게 한 뒤 TV에 방영하는 시스템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굉장히 끔찍한 이야기였다. 가장 인상적인 스토리가 있었다. 한 가정주부가 물가는 오르고 돈 들어갈 데는 많고 인상을 찡그리고 불평불만을 털어놓으며 살고 있다. 이때 남편이 말없이 손을 잡고 결혼해서 처음 살던 산동네 단칸방을 보여준다. 주부가 잘못을 한방에 뉘우치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잘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대부분 그런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안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나쁘진 않은데, 주부의 상황은 사회적인 문제가 있는데도, 그런 이야기는 없고 못 살 때를 생각해봐 하고, 한 방에 해결하고. 그걸 초등학교에서 보여준다는 거다. 그런 교육의 결과를 얼마 전 접했다. 전작 『울기엔 좀 애매한』내용 중, 친구들 작품을 포트폴리오로 대학에 가는 끔찍한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생 리뷰로 추정되는데, 노력을 했을 테니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쓴 거다. 위법을 해도 노력을 했으면 괜찮다. 나머지 친구들이 밝게 살면 괜찮을 거다. 이게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본 폐해가 아닐까 생각했다. (웃음)

그런 종류의 책들이 많이 팔렸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회사 잘리면 다음 회사에 이력서 빨리 쓰라는 걸 꽤 길게 적어놨지. (웃음) 완벽한 우화 형식이었고. 『시크릿』. 잘 팔렸는데, 엄청 짜증나더라. 짜증나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처럼 사기 치는 건 잘못된 거다. 개인이 고난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게 잘못은 아니다. 다만 긍정적인 사고로 뭘 할 거냐가 문제지.

그런 책에 대한 비판은, 비난의 형식이거나, 그렇지 않다는 정제된 연구서들이었다. 그런 분노 방식이 에너지 소모가 크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인생관을 갖는 건 좋게 들리는데, 우리가 까는 것은 긍정적인 인생관 자체를 까는 게 아니다. 긍정적 인생관으로 덮는 사회의 구조를 까는 거다. 그런데, 대중들에겐 긍정적인 인생관을 까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


그럼 해결책이 뭐냐. 회의주의자들의 지난한 작업이 있다.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우화의 방식이다. 잘 먹히는 건 쉽기 때문이다. 그냥 쉬운 게 아니고 익숙한 구조 위에 메시지를 심는다. 복잡한 논리, 필요 없다. 그 사람들이 우화 형식에 메시지를 얹었으니 나도 우화로 반론을 제기하면 좋지 않을까. 그 책들만큼 팔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웃음)

짧고 비유가 명확한 우화의 장점이 있다. 구전을 통해 전달이 될 거라는 믿음. 몇 작품은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블로그에서 떠도는 이야기도 있다. 쉽게 자기 관점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어서 우화라는 형식은 유통이 빠르고 오래간다. 내 나름의 실험이었다.

이것 말고 생각한 다른 방식은 김어준 씨가 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구체적인 사안을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이야기들이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경우가 있다. 쉬운 예로 인권영화제나 여성영화제. 훌륭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이 많은데, 인권운동이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만 온다. 오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지. (웃음) 찍을 때 가진 목적의식은 빛을 못 보는 거지. 우화는 많은 사태를 일반화시켜 공통점을 찾아 엑기스를 뽑아내는데, 구체적인 관점을 주기엔 힘이 든다. 태도를 줄 순 있지만.

그래서 나머지 하나는 아직 안 나왔다. 『100도씨』가 비슷한 형식일 테고, 다음 작품은 그런 형식으로 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부탁이 있다면, 학교 선생님이 계시면 시험 예문으로, 다른 독자들은 라디오 사연용으로 써 줘서 유통이 많이 되게끔 해주시면 고맙겠다.

책 사이즈가 줄었다. 이렇게 다양한 그림체를 갖고 있는지 몰랐다. 어떤 노력을 했나?

핸드백에 들어가도록 사이즈를 줄였다. 20~30대 여성들이 지하철에서 펴서 볼 수 있도록. (웃음) 메일 보내는 독자 중에, 아저씨들이 많다. 소주잔 기울이자고. (웃음) 나는 소주 못 마신다. 그래서 이전 판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여성스러운 판형으로 가야한다고 봤다.

다양한 그림체는 끈기의 문제다.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내용이 달라지면 그림체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다른 이야기를 똑같은 형식으로 담아내는 게 실력 같다. 이미지 메이킹에도 좋고. 이 그림, 하면 이 작가하고 떠올라야지. 최규석이라고 하면 모르고, 작품을 말하면 안다. 한 가지 스타일을 밀고 나가야 대가의 아우라가 생기는 것 같다. (웃음) 앞으로 대가가 되기 위해 한 가지 그림체로? 그러다 지칠 거 같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와 같은 연작을 혹시 기획하고 있나?

주변에서 권유를 많이 한다. 『달려라 하니』를 둘리처럼 하라고. (웃음) 상상만 해도 끔찍하더라. 둘리는 짐승이라서 괜찮은데, 하니를 망가트리려면 어떡해야 하지? 다리를 부러뜨려서? (웃음) 오마주라고 붙어있지만, 출판사에서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한 거다. 내 생각에 오마주는 아니다. 오마주적인 면이 있으나, 그건 김수정 선생님보다 이희재 선생님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패러디다. 패러디에 대한 욕구는 언제든 있다. 재밌는 작업이라서. 그런데 한 번 시기가 지나면 작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 같진 않다.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책에 「개와 돼지」라는 우화가 있다. 내용이 떠돌던 내용인지, 생각한 것인지?

화자가 내가 아니다. <돼지의 왕>시나리오 초창기 때 주인공 3명이 믿고 따르는 교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연상호 감독과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교리로 만든 이야기다. 원래 시나리오엔 철이가 썼다고 알려져 있다가 종석이가 쓴 것으로 된 반전도 있었는데, 다 털려 나갔다. (웃음) 철이가 우화를 쓴다면 어떤 걸 쓸까, 생각하면서 만들어서 거친 느낌이 있다. 넣을까 고민하다가, <돼지의 왕>이 떠서 책 판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고 넣었다. (웃음)

<사랑은 단백질>을 충격적으로 봤다. 그런 아이디어나 스토리를 어떻게?

닭집 스티커나 간판을 보고 떠올렸다. 간판을 보면 다 닭인데, 닭다리를 들고는 최고에요, 하잖나. 재밌다고 생각했다. 닭이 종족의 다리를 들고 요리사 모자를 쓰고. 어찌 보면 끔찍한 건데. 연작이 몇 개 있었다. 만화는 아니었고, 스티커가 하나의 카툰 같은 작품이었다. 닭이 애기를 주워 모으는 작품도 있었고. 그게 극화가 된 게 <사랑은 단백질>이었다. 아빠 닭이 새끼를 죽여 들고 온다는 스토리는 쉬웠다. 그 다음이 어려웠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맞닥뜨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의 문제로 다음을 끌고 갔다. 두 아이디어가 섞였다.


‘노골리즘’ 선언을 했다. 어떤 좋은 점이 있고, 애로사항이 있다면?

노골리즘을 주창했는데, 거기에 맞춰 작품을 해보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을 그리 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있고, 나는 고민하고 있다. 주창한지 3~4년 됐는데, 그에 맞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 이전에 사회적인 이야기를 던질 때, 사회가 소재로만 쓰였다.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내보일 때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이 없었다. 『도가니』도 (노골리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악인에 대한 분노나 가족애, 우정, 사랑 등 공감할 수 있는 감정에 기반해 복잡한 사회 이야기를 풀어내자는 게 노골리즘의 창작 방식이다.

다만 내가 하고자하는 작품에선 힘들 긴 하다. 나는 노동운동 이야길 하고 싶은데, 통속적인 감정을 끌어내기가 힘들다. 노동운동을 오래 한 분들은 위인에 가깝다. 그걸 지속적으로 하는 동력은 통속적인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왜 저 고생을 계속 하지, 대중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또 한국의 르포장르가 약하다는 게 아쉽다. 한국에선 사회에서 이야길 뽑아내려면 작가가 직접 가야 하는데, 나도 훈련이 안 돼 있고, 취재의 어려움도 있다. 『도가니』는 부러운 게 있다. 강력한 사건이었고, 공간이 좁다. 그러나 노동문제는 어렵고 복잡하다. 어쩔 수 없이 정파, 정당 등이 꼬리를 물고. 그래서 힘겨워하고 있다. 어떻게 될지 지금은 모르겠다.

<돼지의 왕>처럼,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겪는 <돼지의 여왕>같은 걸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그렇겐 못할 거 같다. 연상호 감독이 안 좋아할 것 같고. (웃음) 그건 여고를 졸업한 분이 해 주는 게 낫다. 나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잘 못 그린다. 나는 지옥 속에도 즐거움이 있고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온 학교도 지옥에 가까웠지만, 그 속에서도 웃고 기쁠 일이 있었다. 나는 연상호처럼 지옥으로 점철된 학교를 그리긴 어려울 것 같다.

갓 데뷔한 친구들이 학교생활을 그리면서 자살 등을 많이 다룬다. 정말 지옥인 거지. 생각이 달랐던 사람이 보면 재밌는데, 나는 천국도 보여주고, 다 보고나니 ‘지옥 맞잖아’, 그런 답을 끌어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돼지의 왕>은 싫어하는 방식이지만, 재밌게 잘 만들었다.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도 공감하게끔. 그래서 <돼지의 여왕>은 힘들 거 같다. (웃음)

『울기엔 좀 애매한』엔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나?

개인 성격에 달린 거라고 생각한다. 답을 낼 수는 없어서, 책에서도 답을 안 했다. 누가 더 불행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지. 불행하지 않은 삶은 불가능하다. 생의 어느 한 순간은 불행하다. 『울기엔 좀 애매한』에서 하고픈 이야기는 불행의 원인이 뭘까, 생각을 같이 해 보자는 것이었다. 누가 더 불행하고 덜 불행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도 답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똑같은 상황을 겪고도 전혀 다른 어른이 되는 경우가 많잖나.

보고 끔찍한 이야기만 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실험대상이어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 같다. 어릴 때 충격적인 걸 겪었는데,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반듯하다. 네가 불행하다 얘기해줘도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불행의 원인을 찾아서 고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프리카 아이들과 비교해서 불행한지 아닌지 따지지 않잖나. 그 친구들 불행을 고칠 수 있는, 우리 불행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특별히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크릿』을 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웃음) 그럼 잘 팔리겠지? 그런 책을 본 사람들은 그런 책을 계속 본다. 그걸 반복하는 건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섞어서 보는 게 좋다. 이 책은 세계관이 한쪽으로 쏠린 분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랄까. 책을 안사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라는 제목에 대해 듣고 싶다.

큰 의미는 없다. 우화라는 장르는 굉장히 오래됐다. 문학의 원조라고 볼 수도 있고. 그리스 시대, 연설을 위한 보조 장치로 우화가 생겼다고 알고 있다. 우화를 섞어 상황이 어떻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었다. 오랫동안 그 전통이 이어져왔다. 한국에서도 10~15년 전만 해도 우화가 창작됐다. 우화는 작가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장르다. 그런데 지금 없어졌다. 최근엔 자기계발서 외에 우화 장르를 찾기 힘들다.

내 생각에,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작가 의식이 한 번에 드러나면 유치한 걸로 인식하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그리 배우거든. 숨은 뜻만 찾는다. 님은 국가요, 민족이라면서. 알 수 있는 기호를 쓰는 건 고급스럽지 않고 아무도 창작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유효하니까 자기계발서엔 사용되겠지. 사라진 우화를 다시 쓴다는 의미에서 그리 지었다.

이번 우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현상들은 어떤 사건이 있나?

특정한 사건도 있고, 떠돌아다니는 이데올로기도 있다. 용산참사를 담은 게, 「가위바위보」와 「새」다. 용산뿐 아니라 장기파업 현장도 마찬가지인데, 이분들이 가진 감정이 새의 감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새로 받아들여지다가 또 어떤 때는 새가 아닌 것으로 내쳐지고. 장사하면서 평범한 시민으로 세금내고 살 때는 경찰들이 순찰을 돌면서 지켰을 텐데, 상황이 바뀌고선 경찰이 자신을 때리는 사람이 됐다. 시민이었다가 폭도로 변한 거지. 이 사람들, 잘못이 없다. 세상에 의해, 시민이 갑자기 폭도가 되는 갑갑한 상황이 된 거다.

세상에 의해 폭도가 된 이후, 세상에게서 법을 지키라는 압박을 받는 거지. 합법적인 틀 안에서는 해결이 안 된다. 법이 목적을 잃은 거지. 법은 사회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데, 사람을 짓누르는 수단이 됐다. 분노에 차서 그 2개를 후다닥 그렸다.

화가 나는 시절이었다. 그때 정부가 내놓은 말은 결국, “당신들 여기서 세상에서 살아봐야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거거든. 그러면서 법을 지키라고 하는 거다. 말이 안 된다. 그건 법을 지킬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비유하자면, 들고 일어나서 부자들 배를 쑤신다고 해도 살인이라고 할 수 없다. 법을 지켜봐야 인생에서 더 나아질 것이 없는 세상이라면, 그런 상황에 처한 비정규직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어릴 때 동네 형, 누나들은 희망에 가득 찼었다. 지금 잘 산다. 공장에서 천, 모직을 만들던 누님들 잘 산다. 월급이 셌거든. 공고 나온 형님들도 10년 일하면 자가용 타고 아파트 사서 오순도순 잘 살았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은 세상이다. 룰 속에서만 움직이라는 건, 들고 일어나봐야 우리는 밟을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걸 법을 지키라는 말로 포장한 거다.

어느 블로그에서 천사를 죽이는 「불행한 소년」에 대해 썩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가?

굉장히 뭉뚱그려진 헭야기다. 책의 머리말과 같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는 이야기다. 우화의 위험한 점이라면, 다양한 것을 일반화시켜서 비판을 가하기 때문에 비판을 하지 않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책에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다. 좋은 답을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고, 좋은 질문이어야 한다. 그럼, 좋은 질문이 아닌데, 왜 넣었냐고 묻는다면, 그 단계에 맞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다. 안에 있는 이야기를 묶어서 맞는 쪽으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

고래만 잡는 그물은 그물코가 엄청 클 텐데, 아무 것도 못 잡는 그물이다. 그 우화에서 비판한 대상은 너무 추상적이고 커서, 고래 잡는 그물처럼 의미 없는 그물이라고 생각했다. 우화에 처음 매력을 느낀 건 그 수준이었다. 그런 우화를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거든. 카프카도 우화를 썼다. 그런 걸 봐도 지금 시점에서 보면, 코가 너무 넓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그때 당시는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썩 훌륭하지 않다. 블로그에서 논쟁을 할 만큼의 디테일이 없는 작품인데, 나는 불만이 많았다. 내가 훌륭한 만화가도 아니고. (웃음)


만화가로서 먹고 살만한가? 『대한민국 원주민』에 보면 가족 이야기도 나오는데.

생활은 되고 있다. (웃음) 썩은 아니겠지만. 작품 성향의 문제보다 게으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데뷔 10년 다 되가는데, 5편은 적당하지 않지. 평균적으로 2년에 한 권을 내고 있는 셈이다. 크게 힘들진 않은데,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사는 건 좀 싫고. (웃음)

가족들이 안쓰러워하는 부분도 있다. 언론에 노출될 때는 자랑스럽다가도, 그림을 빡세게 그리는 작가들은 노동량이 많다. 가족들이 그걸 보면, 만화가를 그만두길 바란다. 부모님들이 보면 진짜 운다. 내가 집에서 작업할 때도 부모님들이 울었고. 30시간 동안 안 일어난다. 만화가들이 하루 종일 일만 했다고 하면, 진짜 일만 한 거다. 옆에서 보면 진짜 불쌍하다. 나도 어릴 때는 안 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겐 안쓰러운 막내지. 한 번 그리면 수십만 부 풀어서 잘 나가든가, 아니면 교수하지, 잘 나가지도 않는 책으로 왜 10년이나, 이런 얘기를 아직 하신다. 빨리 떠야 한다. 가족들 부담감을 없애려면. (웃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9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