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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한 우물만 파려고 김혜수 남편 역할도 거절했지요”

“‘진정성’이 없으면 죽은 노래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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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는 인터뷰 중간에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의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의 발라드가 지니고 있던 순정, 열망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까.

이상우는 인터뷰 중간에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의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의 발라드가 지니고 있던 순정, 열망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까. 청자와의 소통을 중시했고, 감정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작은 순간을 목말라했다. 어찌 보면 ‘진정성’에 대한 추구가 자신이 현란한 연주나 화려한 안무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목소리 하나만으로 이름 석 자를 알렸던 과거에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가수 이상우보다 사업가와 DJ라는 직함으로서 자주 호칭되는 모양새다. 가수 못지않게 여러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는 직업이다. 인터뷰 동안에도 능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당한 위트도 가미할 줄 알았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관계를 중요시하는지라 가요계의 장외에서도 바삐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똥오줌도 못 가리고 있는 것이 근황이다. (웃음) 지금 하는 일이 실용 음악 학원, 온라인 사업 준비, 라디오 디제이다. 보통 사람 같은 경우에는 한 가지만 하는데, 세 가지를 같이 하려니까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웃음) 요즘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새벽 1시까지 일을 하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노래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 학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려는 마음이야 목적이 가수가 되고 싶어 하고 실용 음악과가 있는 학교를 가려고 하는 마음이 크다. 그러다보니 레슨에 대한 것은 2년 반이나 할애했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준비했다. 보컬 레슨이라는 것이 그만큼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레슨을 할 때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가.

노래는 인간이 몸속에 가지고 있는 모든 근육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횡격막하며, 연구개, 경구개 같은 해부학적인 단어가 나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발성을 할 때 근육의 움직임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스포츠 운동 같은 경우에는 바깥에 있는 근육을 보여주면서 설명할 수 있지만 노래는 몸 안에 있는 근육을 써야하니까 어떻게 보여줄 수가 없지 않나. 그러므로 실제로 그 소리를 배우는 사람에게 굉장한 노하우와 테크닉을 수차례의 훈련을 통해서 전수해야한다. 배우는 사람도 근육을 쓰는 법을 배우고 나서 반복 숙달해야 실력이 는다. 근육의 움직임을 뇌가 기억할 정도로.

그런 신체적인 훈련도 중요하지만 감성적인 표현도 중요하지 않나.

중요하다. 노래는 한 마디로 하면 표현이다. 그 표현력 안에 발성, 리듬, 호흡, 셈여림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흔히들 가수를 평가할 때 가창력과 표현력, 두 가지를 많이 잣대로 생각하는데 가창력보다 표현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임재범이 < 나는 가수다 >에서 감동을 주었던 것도 표현력이 좋았기 때문 아닌가. 방송을 통해서 임재범의 히스토리를 듣고 나서 「여러분」을 들었을 때 감동이 배가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의 표현력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가창력이 없어도 언제라도 노래를 불러서 앨범을 발표할 수 있다. 유재하가 뛰어난 가창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산울림이 가창력이 있나.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앨범을 좋아하고 팬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성이 담긴 표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으면 죽은 노래다. 그것을 말로 설명해서 기술적으로 배운다면 절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 나는 가수다 >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너무 겉으로 보여주는 면을 강조한다는 비판도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각적인 효과와 청각적인 효과는 다르다. 단순히 오디오로서만 평가를 한다면 과연 지금 같은 결과가 나왔겠는가. 비주얼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 또 텔레비전의 특성이고. 또한 현장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자꾸 그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좀 더 화려하고 자극적으로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 그 예로 조규찬 같은 친구가 탈락한 것이다. 상당히 노래 잘하고 음악성도 장난 아닌 친구인데 예상 외로 일찍 하차하지 않았나. 아마도 그런 외적인 면모에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강변가요제 이야기를 해보자. 마지막에 「담다디」를 불렀던 이상은과 남았을 때 자신이 대상을 탈 줄 알았다고 하던데.

처음에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3차 예선까지 올라가다보니 사람들이 전부다 나보고 대상 후보라고 하더라. 당시 상황을 보면 강변가요제에서 빠른 곡이 대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거의 다 발라드였고 솔로 가수의 곡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내 곡 스타일이 대상 감이었지. 실제로 3차까지 내가 대상이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현장이 뒤집은 것이다. 얼마나 대단했냐면 당시 최고 가수였던 이선희가 남이섬 현장에서 노래를 끝내고 내려오는데 이선희한테 사인 받으러 가는 사람보다 이상은한테 사인 받으러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게 이상은이 현장의 분위기를 쓸어버렸던 애다.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나. (웃음)

당시 강변가요제는 몇 주간 합숙을 해서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가요제 이야기를 굳이 하자면 지금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끝까지 경합을 붙여서 떨어뜨리는 시스템이었다. 가수들의 등용문이었고. 지금과 비교해서 뭐가 다르냐면 현재 오디션 프로그램은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의 히스토리를 유지하며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고, 그 때는 별다른 스토리 없이 경합 붙여서 떨어뜨리며 끝이었다. 그런 차이다.

그 후에 데뷔를 하고 인기 가수가 되었는데, 당시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

가요 톱 텐에서 대상을 다섯 번 이상하면 골든컵을 준다. 내가 3개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 대한민국에서 골든 컵 3개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 얼마 안 될 거다. 그 때는 제대로 길을 못 다녔던 정도였을 정도로 애들이 달려들었다. 어떤 떼는 양복의 두 팔을 양쪽에서 잡아 당겨서 떨어져 나가 몸통만 남은 적도 있었다. 또 한 번은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할 때는 학교 앞에 지나가다가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밖으로 나오는 초등학교 1,2학년생들한테 사로잡힌 적이 있어서 혼이 났다. 걔네는 말도 안 들어.(웃음) 차 뒤에 안테나 다 부러지고 무전기 같은 휴대폰 들고 다닐 때인데 차 안에서 112 전화해서 경찰을 불렀다.


최진실과 같이 드라마에 출연을 했던 기억도 있다.

사실 CF를 먼저 찍었다. 옛날 삼성에서 나오던 카파 시계 광고였는데 못 생긴 가수에게 최고 예쁜 여배우를 붙인 거다. 광고 찍고 나서 실제로 매출이 15%정도 올랐다고 할 정도여서 네 편을 시리즈로 이어서 찍었다. 반응이 좋아서 같이 드라마도 하게 된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가수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외도라는 표현을 썼다. 자기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을 때라. 그래서 여러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사한 적도 있다. MBC 드라마 < 한 지붕 세 가족 >도 김혜수 남편 역할 들어온 것을 안 하겠다고 했었고. 그러다 최진실 매니저가 우리를 설득한 거다. 또 당시에는 내가 매니저 이야기를 거의 다 따라줬을 때니까 “그럼 합시다.” 했고. 그리고 단발성인 베스트셀러 극장이라고 해서 부담도 적었다. 말은 단막극인데 러닝타임이 90분-100분을 오가 사실상 영화라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영화 필름으로 찍어서 촬영도 했고 톱스타들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출연진이 최진실, 최불암, 그리고 내가 삼각관계로 나오는 이상한 (웃음) 작품이었다.

최진실과 연결시킨 것도 그렇고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이후에 너무 코믹스러운 이미지로 각인 된 것이 아닌가.

평론가들도 많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음악 시장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보면 그 곡은 완성도가 내가 불렀던 노래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곡이다. 생각해보라. 리듬이 가요에서 거의 안 쓰던 폴카 리듬에다가 편곡도 클래식에서나 쓰는 관악 5중주였다. 그러한 완성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편곡가가 사랑과 평화의 건반을 맡았던 김명곤 씨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본다. 원래는 이남우라는 친구가 데뷔 앨범 때 불렀던 타이틀곡을 리메이크한 사례였다. 원곡은 컨트리풍으로 만들었지만 멜로디가 정말 예뻐서 별다른 아이디어 없이 그냥 편곡을 부탁했는데 그러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었다. 김명곤은 이호준과 함께 당시 편곡가의 양대 산맥이었을 정도였으니까. 음악적인 완성도가 대단한 곡인데 듣는 사람의 수준이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가사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좋은 노래였는데 음악적인 완성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노래하면 그렇게 가볍다고 생각하고. 발라드하고 나서 그 이후에 가수가 가볍게 보였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그런가? 음악적으로 완전히 수준이 떨어지고 동요 같은 곡이었다면 그런 의견에 개의치 않을 텐데. 내가 이러한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면 취입을 안 했을 지도 모른다.

단순히 웃기기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그 노래가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상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노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 안한다. 그 이후에 완성도 있는 노래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실제로 「비창」같은 노래도 나왔고. 나는 그 곡을 통해서 또 한 번 변신을 한 것이다. 「비창」은 내가 이전까지 썼던 창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녹음실가서 사실 너무 힘들고 나랑 안 맞아서 녹음을 못했다. 다시 보름동안 연습을 하고 녹음을 한 것이 지금 나온 ‘비창’이다.

「비창」이라는 곡을 받고 나서 대박날 줄 알았나.

신곡이 나오면 모니터를 해보는데 가수를 오래하다 보면 히트할 것인지에 대한 감이 온다. 모니터 과정에서 보통 같은 경우에는 “아 좋다, 진짜 좋다” 그러기는 한다. 그 때 빠지는 착각이 100명 중에 90 명이 그런 반응을 보이면 90명이 음반을 살 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 그렇지. 진짜 좋아하면 그 노래를 카피 떠달라고 그런다. “노래가 좋아서 그러는데 앨범 발매할 때까지 내가 좀 들을게” 하면서. 그 정도가 되어야 대박이 터진다.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과 「비창」이 그랬다. 경우가 그랬다. 뜰 줄은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삽입되었던 SBS 드라마 < 결혼 >이 떴다. 어느 정도 드라마가 뜨고 있는 상황에서 오종록 감독이 나에게 부탁했던 거였다. 중간에 삽입곡으로 들어간 곡인데 이미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는데 거기서 땅하고 쳐주니까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드라마가 11시쯤에 끝나면 밤늦게 CD사러 나가는 아줌마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좋은 앨범을 더 낼 수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줄어들어서 팬 입장에서는 아쉬웠다.

사실 「비창」을 하고 더 이상 좋은 노래를 만들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음악적인 밑천도 별로 없었던 놈이었다. 무명 생활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 음악을 위해서 칼을 갈지도 않았고 대학생 때 느닷없이 가요제를 통해서 가수가 된 케이스였다. 그러다 보니 가수생활을 하면서 힘이 들었던 케이스였다. 활동 하면서 악보 보는 법을 배웠고 팝송도 많이 들으며 음악을 알아가고 프로듀서 공부도 하고 이러니까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러던 흐름 속에서 4집하고 나서 뒤돌아보니 잘 못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방송에 희생되는 가수가 있고, 음악성을 지닌 아티스트가 그 것이다. 전자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후자가 생명력을 지니지 않겠나. 나는 전형적인 방송용 가수였다. 나는 아티스트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멀리 대중적으로 간 케이스였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사업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즈음에 가수와 사업이라는 갈래에서 1~2년 정도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결국에는 사업의 길을 선택했다.

사업가적 기질이 엿보인다.

학원은 노래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터전이니까 남들 하듯이 하고 있다. 나중에 취미를 위한 사람 따로, 초등학생만 대상으로 따로, 아니면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만 따로 해서 특화된 형태로 운영할 구상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작년 5월에 문을 열었으니 시작단계인데 잘 되고 있으니까 2호점, 3호점까지 생각중이다.

온라인 사업은 무슨 방향인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컬 레슨이다. 거의 완성 단계라고 봐도 되고 2월 정도면 완료 된다. 인터넷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한 곡 레슨이 아이템이다. 팝, 트로트, 가요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창곡을 500곡 뽑아서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다. 노래도 상황별로 구분을 해서 회식 때 ‘상사에게 점수 딸 수 있는 노래’, ‘부장님이 소화할 수 있는 젊은 노래’ 이런 식으로 골라서 배울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한다.


가수가 되기까지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었나.

나는 솔직히 가수가 되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가요제 나와서 상 받고 나서도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을 정도다. 그런데 갑자기 기획사에서 전화가 와서 500만원을 계약금으로 들면서 가수 제의를 하더라. 처음에는 할 엄두가 안 나서 거절했었다 그런데 2주가 지나고 나니 천만 원을 준다고 하더라. (웃음). 그 때 당시 대기업 사원 초봉이 30만원 할 때다. 일단은 그 돈은 받아야 되겠더라고. (웃음). 그래서 덜컥 이 길을 가게 되었는데, 음악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가수야 많다. 하지만 나는 가수보다는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을 작곡한 박정원(겨울 연가 O.S.T 제작, 민해경의 「보고 싶은 얼굴」편곡)이 첫 번째 음악적인 스승이고, 보컬리스트의 스승은 안진우다. 안진우는 앨범 8개를 하면서 한 번도 송 디렉팅을 안 한 적이 없고 같이 늘 연습을 해왔다. 두 사람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발라드를 부르면서 비트가 빠른 곡들도 번갈아 했다. 보컬은 어느 쪽이 더 맞는 것 같나.

사실은 나한테 제일 어울리는 스타일은 펑키나 소울 쪽이다. 아니면 아예 가요스러운 어른 들 곡. 예를 들면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나 「상처」나, 박강성 쪽의 음악들 말이다. 대비되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두 쪽 다 어울리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두 쪽 다 어정쩡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고. 가수로서 그 중에서 확실히 방향성을 잡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약간 흑인음악 쪽으로 포커스를 잡았더라면 방향성이 좀 더 확실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오 사라」의 특이한 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가 만들어줬다고 하는데.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과 「오, 사라」 둘 다 춤을 도와줬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주노가 노래를 배우고 싶어 했고, 나는 춤을 배우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이주노의 본명도 이상우다. (웃음) 나 때문에 이름을 바꾼 거다. 그래서 나는 이주노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반대로 이주노는 나에게 춤을 가르쳐줬다. 이주노는 하루에 연습실에 들어가면 여덟 시간 동안 안 나올 정도로 노래를 배웠다. 그런데 실력이 안 늘더라. (웃음) 그냥 춤만 추면 안 되겠냐고, 포기했다. (웃음)

개인적으로 자신의 곡 중에 제일 잘 부른 것 같다는 노래가 있다면.

「비창」이라는 노래가 내가 늘 해왔던 스타일의 노래가 아니었고 변신하면서 성공한 노래라 의미가 깊다. 내가 고음에서 힘을 죽이는 스킬이 안 되는데 사실 그러한 기술이 고급 테크닉이다. 그래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이 좋았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노래인데 6집에 있는 「부르면 눈물 먼저 나는 이름」이라는 곡이 있다. 「비창」 이후에 내가 맨 마지막에 만든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보컬적인 역량이 정점을 찍었을 때 불렀던 노래다. 안진우가 1년 만에 어떻게 노래가 이리 늘 수 있는지 묻더라. 그 앨범은 노래가 전부 괜찮다. 가창력으로 굳이 따지자면 「용서」와 「부르면 눈물 먼저 나는 이름」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6집을 현재 들을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음원 사이트에서도 제공이 되지 않는다.

서비스하는 사람들이야 사업 논리다. 시장의 논리로 움직이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많이 찾지 않으니까 서비스를 안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7080세대의 음악들이 다시 조명 받는 것이 한 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다. 그리고 음원을 가진 보유자가 일부러 안 푸는 경우도 있다. 제작자가 가지고 있는데 음원을 쥐고 있으려고 하면 서비스가 안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후자 쪽이다.

다른 보컬과 비교했을 때 이상우 보컬의 장점이나 개성은 무엇인가.

목소리의 톤과 감성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 같다.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음색이다. 표현은 누구나 다 다를 수 있다. 음색에 따라 표현력에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내가 개성 있는 음색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라디오에서 DJ를 맡고 있다. DJ를 계속 이어서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일단은 라디오가 주는 매력이 다른 방송과는 다르다. 결국에는 소통이다. 청취자들과의 소통이 잘 이뤄질 때 그리고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내고 그것이 듣는 사람의 마음과 잘 맞아떨어지면 그 쾌감이 짜릿하다. 어떻게 보면 그걸 하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다 푸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과 수다 떨고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다 보니 그 시간이 나에게 위로를 주는 시간이다. 라디오는 이종환씨가 원래 하던 프로그램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팝 프로다 보니까 시간을 많이 잡아먹긴 하지만 그 매력 때문에 하면서도 기분이 매우 좋다.

발라드 인기의 최고 정점을 찍은 1980~1990년대에 맹활약했던 가수로서 지금의 발라드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이런 점이 제일 아쉽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중에 나이 들어서 20~30년 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그들이 찾아서 듣고 ‘아, 좋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7080세대들은 어릴 때 자신들이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 듣고 있지 않나. 그 때 당시의 음악들이 뭔가 남는 느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느낌. 그 이유는 작사가, 작곡가, 보컬리스트의 궁합이 딱 떨어지면서 진정성을 진심으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작품들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측면에서는 옛날만큼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요즘 작곡하는 친구들을 보면 작법 자체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작곡가들이 작품을 쓸 때 어떻게 했나. 속상한 일을 당하거나 안 좋은 일을 겪게 되었을 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건반 하나 들고 속초로 가거나 해서 곡 쓰고 그랬다. 지금은 컴퓨터가 다 해주지 않나. 심지어는 편곡도 파트별로 다 나눠져 있다. 어떻게 보면 기계적이지. 겉으로 딱 보면 세련되게는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사실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도 있을 수 있다. 좋은 멜로디는 예전에 이미 다 써버렸다. 7개의 음에서 판결이 나기 때문에 좋은 멜로디 조합은 예전에 다 썼잖아.(웃음) 그걸 비켜가면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겠나.

보컬을 배우는 입장에서 롤 모델이 될 만한 가수가 있을까.

노래를 어떤 특정한 사람을 두고 이 사람 스타일로 따라 부르겠다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우선 자기한테 맞는지 아닌지가 먼저다. 자기 목소리와 잘 맞는 가수의 곡을 카피하면서 연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쪽의 음악을 먼저 하던가. 하다보면 그 쪽 음색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 가수를 따라하려고 하지 마라. 자기의 컬러를 찾으라고 주문하지 않나.

이상우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 하는 팬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내 나이 연령층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다.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담을 수 있는 곡을 하고 싶다. 결국 음악은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그걸 담아내면 당장 잘 되지는 않더라도 후에 대중들이 평가해 준다. 실제로 역사로도 그렇다. 가수로서 그런 곡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다면 가수로서는 영광이지 않겠나.


인터뷰 : 홍혁의, 황선업
사진 : 홍혁의
정리 : 홍혁의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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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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