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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랑으로 당신을 덮어 주겠어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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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문학계의 큰 이름을 떨칠 젊은이, 플로베르를 소개하겠네. 어쩌면 자네가 작품에 이용될지도 몰라.” 조각가였던 한 지인이 플로베르에게 콜렛을 소개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루이제 콜렛에게

1846년 8월 9일
크로이셋, 프랑스


나는 당신을 껴안고, 키스를 해요. 나는 야성을 느껴요.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물어 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하기를 애타게 바래요. 나는 여자들을 비웃고, 여자들은 나의 차가움을 비웃지요. 나는 자비롭게도, 섹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것에 탐닉할 수 있는 건 정말 조금 밖에 없어요.
그러나 지금 내 안에서 야수의 식욕이 느껴집니다. 사랑의 본능은 육식성이고, 살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수 있는 겁니다. 이게 사랑이 맞나요?
아마도 반대겠지요. 아마도 내 경우에는 성불능인 것은 마음인가 봅니다.

1846년 8월 15일

다음에 당신을 만나면 애무와 황홀감으로 가득찬 사랑으로 당신을 덮어 주겠어요. 나는 육체의 모든 환희를 느끼며 당신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당신이 기절하고 죽게 말입니다. 당신이 나로 인해 깜짝 놀라, 그런 황홀은 꿈꿔 본 적도 없다고 자신에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늙게 되면 그 몇 시간을 회상했으면 좋겠어요. 그 시간들을 생각할 때 당신의 마른 뼈가 기쁨으로 떨렸으면 좋겠습니다.

1846년 8월

아듀, 내 편지를 봉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잠든 가운데 혼자 있는 시간입니다. 나는 서랍을 열어 내 보물을 움켜쥡니다. 나는 당신의 슬리퍼를 봅니다, 당신의 손수건, 머리카락, 초상화… 당신의 편지를 또 다시 읽고, 편지에서 나오는 사향 향수의 냄새를 들이마십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걸 당신이 알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심장은 밤에 부풀어 올라 사랑의 이슬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소설 『보바리 부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의 중요한 작가 중의 한명이다. 보바리 부인은 삶의 초상을 충격적일 정도로 정직하게 묘사해서 사실주의의 정점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플로베르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 지역 창부들과 관계를 갖기도 했지만, 그 결과로 병을 얻어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유일한 진지하고 로맨틱한 관계는 8년간의 열정적으로 지속된 이미 결혼을 한 시인 루이스 콜렛과의 연애였다. 그 관계가 시작된 것은 그녀가 서른다섯 살이 되던 1846년이다.


서진의 번역 후기

“여기 문학계의 큰 이름을 떨칠 젊은이, 플로베르를 소개하겠네. 어쩌면 자네가 작품에 이용될지도 몰라.”

조각가였던 한 지인이 플로베르에게 콜렛을 소개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콜렛은 열 살이나 연상의 이미 결혼을 한 유명 시인이고, 플로베르는 풋내기 작가였다. 어쩌면 그 말은 앞으로 플로베르가 명작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의 모습을 콜렛에게서 찾을 거라는 예언이었을 지도 모른다. 보바리 부인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함께 에로틱한 고전 소설로 오해 받지만, 실은 현대 소설의 시발점이 되는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간주된다. 남편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연인을 전전하다 자살하게 되는 비극의 여주인공 엠마의 행적을 끝까지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해가면서 철저히 묘사했다. 이는 이후에 카뮈등의 현대작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에게 헌신하는 소박한 의사 남편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영에 들떠 외도와 사치를 일삼는 보바리 부인의 말로는 애처롭다. 외도는 낭만적인 사랑의 허상으로 포장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기만일 뿐이다. 하지만 바보같은 줄 알면서도 스스로의 함정을 계속 파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콜렛은 플로베르 이전에도 결혼한 상태에서 빅터 커즌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 철학자였던 빅터 커즌은 콜렛을 만나기 전까지 굉장히 도덕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플로베르는 외도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오히려 혐오스러운 브르주아 계급에 반대하는 행위라고 여겼다. 콜렛은 외도라는 개념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자신은 예외로 두었다고 한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콜렛은 플로베르가 좀더 자주 파리를 방문해서 그녀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내 주길 바랬지만,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좀 더 작품에 전념하길 원했다. 1851년 7월에 그가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당신이 좀 더 평온한 상태에 있길 바래요. 당신이 안정을 찾았을 때 친구가 되는 것은 좋지만 당신이 즐기는 폭풍같은 감정상태는 어른의 관점으로 봤을 때엔 피곤한 것이지요. 난 늙어가고 있어요. 당신에게서 받는 모든 충격은 날 화나게 만들어요.”

사랑의 방식의 차이일까 아니면 천성의 차이 일까? 콜렛은 더 이상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플로베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851년 마침내 그녀의 남편이 죽자 그와 결혼을 하길 바랬으나 플로베르는 결혼을 거절했다. 둘의 연애는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콜렛이 시인 알프레드 드 뮤제트와 연애를 함으로써 둘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이후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출간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콜렛도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소설을 내지만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플로베르는 이성적이었던 것일까, 이기적이었던 것일까? 연애편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열정은 소설 창작의 열정을 뛰어넘지는 못했나 보다. 편지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그는 육체적인 성불구였다기 보다는 정신적인 성불구였는지도 모른다.


“남자란 모든 것에 뛰어나고 격렬한 정열이라든가 세련된 생활이라든가 모든 신비한 세계로 안내해주는 안내자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남자는 무엇 하나 가르쳐주지 못하고,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 『보바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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