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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랑제 전문 번역가, 이세욱이 밝히는 번역의 비법?!

『미세레레』이세욱 번역가가 번역한 책들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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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사랑받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트 에코, 미셸 투르니에, 르 끌레지오, 마르셀 에메, 장 자끄 상뻬,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까지. 세계적인 작가들의 책이다.

발로 뛰는 번역가 이세욱

이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트 에코, 미셸 투르니에, 르 끌레지오, 마르셀 에메, 장 자끄 상뻬,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까지. 세계적인 작가들의 책이다. 이세욱 번역가가 번역한 책들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그의 이름이 좀 더 친숙할지 모르겠다. 국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이세욱 번역가가 거의 번역했고, 세계적인 작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작품 역시 그의 손에 의해 국내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최고의 번역가”라는 소개와 함께 등장한 이세욱 번역가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최고의 번역가’라는 건 말도 안 된단다. “미셸 투르니에 선생님을 뵌 적이 있어요. 일부 평자들이 당신을 살아 있는 프랑스의 최고의 작가’라고 하더라고 말했더니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다른 작가들이 얼마나 서운하겠어. 하시더라고요. 문학에 ‘최고’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세욱 번역가가 받고 싶은 수식어는 무엇일까? “발로 뛰는 번역가라든지, 작가를 닮기 위해,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하는 번역가” 이런 수식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며 이세욱 번역가는 웃었다.


‘번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세욱 번역가의 특강이 열렸다. 쌀쌀한 날씨의 저녁이었지만, 신촌 토즈의 강의실에 많은 독자가 모여 앉았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통번역학과나 국문과 등에서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몇 번 한 적 있어요. 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자칫 공허한 얘기가 되기 쉽더라고요. 만약 저에게 장 크리스토프를 자랑하라고, 예찬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이세욱 번역가의 눈이 번쩍번쩍 빛나는 듯 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이날의 자리를 통해, 이세욱 번역가의 작업의 원동력은 작가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번역을 해왔다. 보통 번역가는 작가 뒤에 숨겨진다. 일반 독자들에게 번역가의 이름이 도드라지거나, 운운 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그저 ‘하고 싶다’는 의지로 뛰어들어, 푼돈 받으면서도 일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 길이구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내가 갖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출판사를 두드리고, 작품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번역한 책이 한 권 한 권 쌓였고, 그의 이름에도 무게가 생겨 지금 이렇게 독자 앞에 서게 된 셈.

“그 와중에 여러 스승을 만났어요. 제가 지금의 번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승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 10년, 20년쯤 더 번역을 하고 나야, 번역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고, 어떻게 가야 할까 고민될 때도 많아요. 다만, 그런 순간마다 어떤 스승들이 나를 도와줬고, 어떻게 이끌어줬는지 들려드리고 싶어요. 제가 그분들을 어떻게 닮으려고 노력했는지, 그런 얘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세욱 번역가의 스승 F4. 어두울 때 길을 밝혀준 네 명의 스승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보들레르, 움베르트 에코, 쟝 크리스토프 그랑제, 사제 요한 최민순이 그들이다.


보들레르, “대체할 수 없는 번역가”


스물 아홉 살, 이세욱 번역가는 무작정 프랑스로 날아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개미』를 읽고 감탄하고, 이런 작가를 소개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찾아간 것이다. 그가 베르나르의 작품에 특별히 더 감동했던 까닭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다.

“나 역시 한때 신춘문예에 「개미와 하느님」이라는 소설을 투고한 적이 있었다. 베르베르와 나는 같은 시기에 비슷한 아이디어로 글을 쓴 셈인데, 한 사람은 친구들의 조롱 앞에서도 끝까지 완성해서 장편소설을 냈고, 또 한 사람은 조롱에 묻혀, 10년이나 그 소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출판사에는 “이 작가의 모든 것을 가지고 오겠다”라고 큰소리를 치고 출발한 길이었다. “신인이고 출판사에 뭔가 보여줘야 했으니까.” 첫 프랑스행이었고, 불어를 할 줄 알지만, 문학 대담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그가 베르나르를 찾아가기 전 향한 곳은 보들레르의 무덤이었다. 그 앞에서 기도했다. 도와달라고.

스크린 위로 보이는 묘지가 보들레르의 묘다

보들레르는 1848년 처음 번역을 시작했다. 에드거 앨런 포를 번역할 때 그는 “완전히 포에게 미쳐 있었어요. 거의 빙의가 된 상태로 번역한 거죠.” 책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보들레르 번역판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작가는 훌리오 코르타사르다. “스페인의 에드거 앨런 포 번역가가 서문을 쓴 거죠. 이 책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몇 부분 틀렸다고 책을 새로 내지 않아요. 몇몇 사람들이 주석을 달죠. 그렇게 보전하는 거예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사례죠. 번역은 창작보다 빨리 늙고, 금방 사라지는, 대체 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창작자는 대체 가능하지 않죠.”

그가 꿈꿨던 것은 이렇게, 대체 불가능한 번역, 대체 불가능한 번역가다. “이건 정말 내가 번역해야 해. 내가 정말 잘할 거야. 이런 확신을 스스로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출판사에게 어떻게 확신을 줄 수 있을까요?” 이세욱 번역가가 생각해낸 답은 이렇다.

“일단 나부터 이 작품에 빠져들고 열광하는 것,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이 작가의 머릿속으로 다가가서, 독자나 출판사가 보기에도 인정할 만큼 이 소설의, 소설가의 전문가가 되는 것. 이런 방식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보들레르라는 스승을 통해 얻게 됐다.


움베르트 에코, 머리로만 글 쓰지 않는 작가


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런 원칙에 확신과 믿음을 더해주었다. 움베르트 에코는 그에게 “번역가로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움베르트 에코의 책을 그가 번역하게 되었을 때, 영광스러우면서도 난처했단다. “빙의가 안 돼요. 그 깊고 넓은 지적 경지에 다가갈 수가 없는 거예요. 어떻게 따라가겠어요. 움베르트 에코가 다른 사람의 책을 번역할 때처럼, 저 역시 이분의 모든 책을 다 봐야 하는데, 만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의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봤어요. 그 공간을 소설화하기 위해서 움베르트 에코는 녹음기를 들고 일곱 번을 돌았대요. 이쯤에 서점이 있고, 저기에는 장미 십자가가 걸려 있고, 이런 식으로 치밀하게 공간을 상상했어요. 결코 머리로만 쓰는 작가가 아니에요. 작은 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함이 있었어요.”
움베르트 에코에게는 그 점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광활한 공간을 다루는 스릴러 소설의 황제, 그랑제

화면속에 보이는 작가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다

움베르트 에코가 한정된 공간을 치밀하게 활용하는 작가라면,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전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의 황제로 꼽히는 프랑스 작가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크림슨 리버』 『검은 선』 『황새』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그의 작품이다.

최근 이세욱 번역가가 번역한 『미세레레』는 음악과 건축, 종교 등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라틴어 제목 『미세레레』는 그랑제 특유의 치밀한 묘사와 저널리즘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장편 소설이다.

“그랑제가 다루는 공간은 정말 무시무시하죠. 처음부터 다 따라가 봤어요. 파리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으로 갔다가 스위스로 갔다가 밀라노, 시칠리아, 폴란드…… 정말 대장정이죠. 이 공간을 다루는 치밀함도 놀랍습니다. 머리도 뜨겁고 발도 부지런한 작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우리나라 독자들은 잔인하다, 무섭다는 얘기도 많이 하는데, 제 생각에는 스릴러는 착한 사람들이 많이 읽는 것 같아요.(웃음)”


정확하고 읽기 좋은 번역, 사제 요한 최민순


마지막으로 이세욱 작가가 소개해준 번역가는 사제 요한 최민순이다. 천주교 신부이자 교수였던 최민순은 1960년 마드리드 대학에 2년간 유학하며, 신비신학과 고전문학을 연구했다. 한국에 돌아와 부천의 소명여자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다. 수필집과 시집을 남겼고, 그가 번역한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등은 정확한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세욱 번역가는 이날, 직접 최민순의 번역을 현대의 번역과 비교해주며 설명했다. “어릴 적 세계 문학을 읽었을 때 가장 제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번역이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이었어요. 지금은 도서관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책이 됐죠.” 그의 번역은 무엇보다 한눈에 읽히고, 문장의 리듬이 좋아 소리 내어 읽기 쉬운 문장이었다. 한 문단만으로도 그가 말하는 ‘좋은 번역’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비교할 수 있었다.


그가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다섯 가지 책 읽기


이세욱 번역가는 자신의 번역 작업도 소개해주었다. 작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빙의 과정을 공개해준 셈.

1. 속독

“제일 먼저 책이 제 손에 도착하면, 속독합니다. 리뷰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고, 번역 여부를 결정합니다.”

2. 정독

“예전에는 주제별로 노트를 만들었어요. 이 책을 보면서 공부가 필요한 것들을 메모하는 거죠. 이런 음식, 이런 책을 언급한다는 식으로 메모하고, 중요한 것은 별표도 칩니다.”

3. 낭독

“일부는 낭독이 필요합니다. 문체가 중요한 작품일수록 더 그렇죠. 작가가 어떤 리듬으로 글을 썼나 알아보기 위해서, 문장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소리 내 읽습니다. 관련된 영화, 책을 찾아보면서 관련 자료를 다 검토합니다.

이런 과정이 마무리되면, 보통 번역 여행을 떠납니다. 단순히 작품의 무대를 보는 여행이 아닙니다. 작가가 이곳에서 어떤 생각과 기분으로 글을 썼는지 엿보기 위한 여행입니다.”


4. 분독

『미세레레』의 번역 여행 중에는 성당에 많이 들렀어요. 성당 바로 앞에 앉아 소설 속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분위기를 느껴보는 거죠.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번역하는 거예요. 번역가의 장점이 이겁니다.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웃음) 그리고 번역 여행의 마지막에는 꼭 그 작품의 작가를 만납니다. 여행을 다녀온 얘기도 나누고, 작품 속에 있는 문화적 장벽을 어떻게 돌파할지 이야기를 나눠요.”

5. 심독

“마지막으로 심독을 합니다. 작가의 마음을 읽는 거죠. 행간이 보여요. 아, 이 작가가 이런 말을 하려고 그랬구나. 이 작업까지 하고 나면, 이 작품에 관해 나만큼 아는 사람은 작가 외에 없겠다. 하는 오만한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 오만이 그 순간에는 필요합니다. 이 작품을 하는 절절한 이유가 되는 거죠. 그 순간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아요. 그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의 작업 이야기는 여느 소설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그가 작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과정, 마지막 심독까지 마치고 느끼는 희열이 이날 자리에 모인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문학에는 ‘최고’라는 말이 “야만적”이라고 그가 말했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세욱 번역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큼은 그야말로 ‘최고’라고.

“그 마지막 희열을 느끼려면 준비가 철저해야 합니다. 그 순간을 위해 지루하고,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을 버텨내는 거죠. 이게 번역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희열입니다.” 그가 강의 서두에서 말했던 ‘발로 뛰는 번역가’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려고 온갖 애를 쓰는 번역가’라는 상(像)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신도 그랬다면, 이제는 그가 번역한 글을 읽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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