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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잔이 저절로 생각나네! 포구 앞 어부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다

포항_모리국수(까꾸네 모리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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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에는 어부들이 먹던 소박한 국수가 있다. ‘모리국수’다. 커다란 양은냄비에 갓 잡은 생선과 콩나물,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푸짐하게 끓여낸 모리국수는 어민들의 뱃속을 채워주는 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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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저 | 브레인스토어
우리나라 전국 팔도를 여행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여행은 두 배로 즐거워진다. 특히 간단하고, 부담 없이 그 지역의 별미 국수를 먹을 수 있다면? 1석 2조, 환상적인 여행이다. 이 여행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국수의 대동여지도를 따라가면 된다. 바로 이 책이 정답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미영 기자는 잔치국수, 칼국수, 냉면 등 서울에서 흔히 맛보던 국수의 맛에 취해 전국 팔도를 돌았다.

대학생 때 처음 갔던 경북 포항은 신기한 도시였다. 평일 출근길, 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제철소 직원들이 한 방향을 향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마치 사람을 태운 컨베이어벨트가 있는 듯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도시, 영화 속에서나 봤던 사람도 기계화된 도시의 첫인상은 ‘차가움’이었다.

포항에 대한 인상이 달라진 건 구룡포항을 찾았을 때다. 지금은 어획량이 줄어 한산하지만 한때 수산물 어획이 번성한 곳이었다. 특히 구룡포 앞바다에선 대게가 많이 잡혔다. 지금은 어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나 여전히 즐비한 대게 전문식당들이 그 시절을 짐작케 한다. 구룡포에는 어부들이 먹던 소박한 국수가 있다. ‘모리국수’다. 커다란 양은냄비에 갓 잡은 생선과 콩나물,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푸짐하게 끓여낸 모리국수는 어민들의 뱃속을 채워주는 별미였다. 배를 타고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은 이 모리국수로 속을 따뜻하게 풀었다.

모리국수에 사용하는 풍국면.
얇고 납작한 칼국수면이다.
구룡포 읍내에서 ‘까꾸네 모리국수’를 운영하는 이옥순 할머니는 연탄불을 피워 국수를 끓이던 시절부터 43년간 장사를 했다. 할머니는 모리국수가 처음엔 이름도 없던 음식이라고 말했다.

“어부들이 어판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을 판잣집으로 가져와 국수 넣고 끓여달라고 해서 만들어준 게 모리국수지.”

“그런데 왜 이름이 ‘모리’예요?”

“몰라, 언제부터들 그렇게 부르니 그냥 부르는 거지. 생선을 ‘모디’(‘모아’의 사투리) 넣고 여러 사람이 ‘모디가 먹는다’고 해서 ‘모디국수’라고도 하고, 양이 푸짐하다고 해서 일본어로 ‘많다’는 뜻의 ‘모디’라고도 하고…….”

모리국수는 온갖 생선과 국수를 넣어 매콤하게 끓이는 음식이다. 옛날엔 명태?대구?삼식이?낙지 등 다양한 해산물을 넣고 끓였다. 지금은 예전처럼 많이 넣지 못한다. 어종이 고갈되고 값이 비싸져서다. 그래도 아귀?물메기?미더덕?대게 등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종종 방송에서 잘못된 정보를 듣고 와 따지는 손님도 있다.

“전복, 소라도 넣고 끓인다고 했다는데 거짓깔(거짓말)이지. 방송 때문에 아주 귀찮아.”

면은 공장에서 주문해 싱겁게 만든 풍국면을 넣어 삶는다. 생선의 소금기 때문에 국수는 소금이 덜 들어간 것을 사용한다. 얇고 납작한 칼국수면이다. 모리국수를 먹을 수 있는 까꾸네는 메뉴판이 없다. 아니 메뉴판이 필요 없다. 메뉴가 한 종류라 몇 인분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식당에 들어서면 할머니가 “뭐 먹을래?”하지 않고 “몇 명이요?”라고 묻는다.

모리국수는 대게와 다시마 우린 물을 기본육수로 쓴다. 여기에 해산물, 콩나물, 국수를 순서대로 넣고 끓인다. 육수에 국수의 전분이 녹으면 국물이 걸쭉해진다. 고춧가루 양념을 진하게 풀어낸 국물은 보이는 것처럼 맛도 화끈하다. 먹는 내내 땀이 뻘뻘 난다. 혀가 알알한 맛은 아닌데 입천장이 데일만큼 뜨거운 매운맛이 있다. 얼큰하고 시원해 해장을 위해 먹는 이들도 많다. 맛도 맛이지만 푸짐한 양도 반할 만하다. 2인분을 시키면 3인분이, 3인분을 시키면 4인분만큼 나온다. “옛날에 하도 배고프게 살아서 양은 푸짐하게” 내놓는다는 할머니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모리국수 국물에 생각나는 것은 바로 막걸리다.
까꾸네는 지역술인 ‘집집이 동동주’를 판다(위).
생선, 콩나물,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푸짐하게 끓여낸 모리국수(아래).
칼칼하고 걸쭉한 국물을 마시다보면 막걸리 한 잔이 저절로 생각난다. 기본반찬으로 나오는 마른 미역, 오이, 멸치가 딱 술안주다. 까꾸네는 지역 술인 ‘집집이 동동주’를 판다. 공군대위 출신 민속연구가가 만든 술인데 맛이 좋아 들여놓았다고 했다. 물을 넣지 않고 빚은 술은 색이 누르스름하니 맑다. 한 모금 마시니 시큼한 맛과 향이 코를 찌르며 입으로 꼴딱꼴딱 잘 넘어간다.

모리국수는 통통한 생선살을 씹는 맛이 있다. 아귀와 물메기를 건져 먹다보면 국수를 먹는 건지 매운탕을 먹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도 국수와 잘 어울린다. 할머니는 “모리국수 때문에 포항 식당에선 매운탕을 먹고 나면 국수를 넣어 끓여주는 음식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까꾸네는 모리국수 이름만큼 식당이름도 별나다. 할머니에게 왜 까꾸네인지 물었더니 “막내딸의 어릴 때 별명”이란 얘기가 돌아온다. 아이가 예쁘다고 동네 사람들이 “까꿍, 까꿍”하다 보니 아이 별명이 됐고, 식당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 그 막내딸이 벌써 39살로 통역관 일을 하고 있다며 할머니의 자랑이 이어진다.

까꾸네는 할머니가 혼자 운영하는 포구의 작은 식당이다 보니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된다. 할머니는 그게 또 손님들에게 미안해 재료값이 올라도 국수 값을 더 받지 않고 있다. 모리국수 한 그릇이 7년째 5,000원이다. “부담없이 먹는 음식이 국수인데 가격 올리기도 그렇지” 한다.


주소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957-3
전화 054-276-2298
메뉴 모리국수 5,000원
영업 09:00~18:00(연중무휴)
주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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