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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때문에 열심히 안 살면 나만 손해야” - ‘자연주의 살림꾼’ 이효재 <효재처럼 풀꽃처럼> 출판 강연회

장지 대신 보자기를 이용해 선물을 포장하는 자연주의 살림법, 채소 본연의 맛을 오롯히 살려낸 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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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따라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TV <인간극장>을 통해 본 선생의 하루,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예뻐야 해, 무조건. 예쁜 게 좋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 문장을 발화해도 조금도 위화감이 없는) 배우 이영애의 입을 빌어 나온 말. 머리와 옷차림에 공을 들이는 것을 넘어, 권총 한 자루까지도 그 모양새와 디테일을 따졌던 금자 씨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여성은 자신과 그 주변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깡뚱하게 틀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며, 방은 색채의 조화와 방주인의 개성을 고려해 정성껏 단장하기 보다는, 무조건 찾기 편한 위치에 물건이 놓여져 있으면 되는데다가, 요리에 어울리는 접시 컬러를 고르거나 가니쉬를 오밀조밀 곁들이는데 시간을 쓰기 보다는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휘리릭!’ 익혀 간만 딱 맞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이야기다. (미래의 남편에게는 결혼 전 “식사 때 식판을 사용해도 될는지” 조심스레 물어 볼 계획.) 당연하게도, 취재를 나가는 등 뒤에 대고 어머니는 소리치셨다.

“이효재 선생님 강연 보러 간다며? 각성 좀 하고 오너라!”


포장지 대신 보자기를 이용해 선물을 포장하는 자연주의 살림법, 채소 본연의 맛을 오롯이 살려낸 요리법. ‘한번 따라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TV <인간극장>을 통해 본 선생의 하루,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그녀는 신발 밑창이 닳을 정도로 늘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도 찰떡을 놓은 접시를 바라보다 “잠깐!”하고 곁에 놓을 감잎을 따러 뒤란으로 향하는가 하면,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휘돌아치고 한숨 돌릴 만한 밤엔 좀 쉬는가 싶었더니 이내 제자들을 불러 모아 굴을 구워 먹인다.

요즘은 집 꾸미기 고수라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살림이나 요리를 주제로 책을 내는 사람도 흔해졌지만, 그래서 그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따라할 수 있겠다’는 심산이 생기는데 효재 살림법은 따라했다간 반나절 만에 몸져누울 것도 같다. 어릴 적부터 “미운 건 못 참고, 어떻게 해서든 예쁘게 바꾸려고 했었어요”라는 선생의 말. 살림전문가이기 이전에 ‘아름다움 추구자’가 본연인 것 같다.


강연을 들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생의 살림법이 무리라면) ‘삶법’은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설렘은 ‘내가 내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방식이 개인 뿐 아니라 지구를 살리는 방식이므로 그런 방식을 추구하는 나는 가치롭다’는 기분 좋은 것이었다.

이따금, 그것도 불시에 찾아오는 남편과 산 속 외딴 집에 사는 것도, 컴퓨터나 텔레비전 없이 사는 것도, 삼청동에 위치한 ‘효재’에 당도하기 위해 두 시간을 걷는 것도 미처 따라할 수는 없으리라. 『효재처럼 풀꽃처럼』 에서 엿본 ‘자연을 품은 삶의 방식’은 닮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강연을 통해 느낀 화통하고 털털한 품성도.




우리 여자들 사는 수다 한 판 떨고 가자고요

다음은 강연장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의외의 씩씩한 목소리로 “우리, 테이블 좀 앞으로 당겨서 눈 보고 얘기해. 거창하게 강연 같은 것 할 생각으로 온 것 아니에요. 그냥 우리 여자들 사는 수다 한 판 떨고 가자고요.” 한 후, 모든 방청객이 ‘끼익, 끼이익’ 의자를 그러모아 강연대 앞으로 모여들게 한 후 단숨에 소탈하면서도 쫀쫀한 말솜씨에 매료되게 만든 한 시간 반의 기록이다.

“저 여자는 정성이야, 극성이야?” “별난 남편하고는 어떻게 그리 잘 산대? 집에 붙어있지 않는 남편이 참아져?” “진짜 그렇게 살림해? 책에서만 그런 것 아니야?” 라는 의문을 가졌을 분들은 효재 선생의 일상에 귀 기울여 보시길. “아유, 당신도 나같이 속이 터져도 참고 사는구나.” 하실지 “아이구, 대단하다. 난 여자네.” 하실지, 감상은 여러 갈래일 것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하고는 일하기 참 편하죠? 척하면 척, 쑥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실수로 ‘어’라고 말해도 ‘아’라고 잘 알아듣는 빠릿빠릿한 그런 사람이요. 요즘같이 바빠서 옷매무새도 못 가다듬고 일할 때 내 말귀 잘 알아듣는 제자랑 일하면 바쁘고 고되도 흥이 처지지 않고 유지되죠. 살다보니, 말귀 잘 알아듣는 성격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합디다.
어느 날 임동창씨가 “각시~”하며 이~렇게 소눈처럼 큰 눈을 들이대며 쳐다봐요. 게다가 국악을 오래 해서 목소리가 파열음이 끼이익 나잖아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깜짝 놀라요. 놀란 표정 감추지도 못하고 정직하게 티 다 내며 “네.”
그러니 진지한 말투로 나직나직 이러지요. “각시 원하는 대로 내 살 수는 있어. 그런데 말야, 그러면 내 음악이 영영 사라져. 음악이.” 아이고, 거기다 대고 뭐라고 그래요. 그 뜻을 너무 다 알아듣는데. 그냥 또 “네.” 했죠.


흑발의 긴 머리가 가끔 저도 무서워요. 임동창 씨가 떠나면서 걱정하길래 무던한 저는 “걱정 마세요 과부도 다 잘 살아요.” 이랬죠, 씩씩한 목소리로! 그런데 고라니가 자주 내려오고 하니 정말 집이 무섭거든요. 것도 모르고 “내가 각시는 잘 만났지!” 하며 아이처럼 웃어요. 보내고 나면 너무 무서워 덜덜 떨려요. 시골집 창에 것도 야밤에 일하다가 휙 하고 보면 가슴이 덜컹 해요. 이렇게 긴 머리가 시커매가지고 칼 들고 있잖아요. 그러면 “에라~” 하고 머리를 홱 풀러요. “인간이 보든, 유령이 보든 혼비백산해 달아나라!”


한겨울에 보일러 기름통 들고 뛰어보신 적 있으세요? 저희 신랑이 불시에 오고 가고 하잖아요. 예전에 한번은 추워서 입도 못 떼는 날씨에 와서는 “아이고, 춥다. 각시,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졌나 봐.”해요. “여기 좀 앉아 있어요” 하는 순간 욱해서 이혼해 버릴 것 같아서 “여기 좀 앉아 계.셔.요” 일부러 공손하게 말하고 기름통 들고 눈길을 걸어갔어요. 걷다 보면 손이 곱고 발이 곱고 그러다 눈길에 넘어진 거예요. 왜 주부님들 그럴 때 울컥 눈물이 나잖아요? 꾹꾹 눌러 참다가, 물건이 고장 났을 때나 음식 태웠을 때 그 김에 화내잖아요. 저는 그때 “그래, 일어서는 순간 당장에 내 이혼하러 간다” 했어요. 일어서고 보니 제 치마에 제 발 걸려 넘어진 거였어요. 어찌나 우습던지. 그 길로 그 5단짜리 치렁치렁 치마 싹둑 잘라서 이렇게 항아리 치마 만들어 입고 이혼 않고 잘 삽니다.

네가 16시간이면 나는 17시간 일한다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기찻길 같은 부부예요. 나란히, 나란히 각자 갈길 가죠. 우리 남편이 너무 열심히 살아서 내가 열심히 안 살면 나만 손해야. (웃음) 임동창이 16시간 피아노 쳐? 난 그럼 1시간 더 일해야지, 그거 아니면 맞짱 뜰게 있나. 그렇게 걸어 다니며 일하고 어떤 날은 하루 스물 두 시간 일만 하고, 그러다 보니 차만 타면 입을 벌리고 자요.


음악가의 아내로 사는 것, 어떨 것 같으세요? 저도 평범한 남편 만나 잘 길들여서 알콩달콩 살고 싶었죠. 야시시한 잠옷도 입어보고. 웬걸, 사시사철 두꺼운 타올지 바지 잠옷 입고 살았죠. (웃음) 제자들 열 명이 함께 살고 언제 휙 들어올지 모르거든. 그래도 음악가 아내는 환상의 선율 들으며 살 것 같죠? 띵동 땡동 반복음만 내동 들어요. 밤새 ‘띠릭’ 치고 허리 구부려 그리고, 또 ‘띠리릭’ 치고 그리고.

여자 이름을 작품에 새겨서 망했대요. ‘효재’라고 새기면 “왜 밥그릇이나 이불에 여자 이름을 새기냐”는 분들, 우리나라에 아직 많아요. 샤넬, 에르메스 모두 사람 이름인데 왜 내 이름은 안 되나 싶어 밀고 나갔더니 홀랑 망했어요. 그래도 전 제 이름이 좋아요. ‘본받는 집’, 효재입니다.


창조하며 사는 사람은 스물 네 시간 활력이 넘쳐요. 낡은 커튼을 보면 뜯어서 방석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렇게 항상 손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요. 이토록 재밌는 일이 있나 싶을 거예요. 남들 사는 거 하나도 부럽지 않아져요. 내 손끝에서 아름다움이, 향기가 피어나는데! 그 순간 가장 행복한 게 바로 ‘나’거든요. 몰입의 힘이란 말도 되고요. 저는 호텔 가면 모두 다 같은 모양의 방에 잔다는 게 참 징그럽더라고요. 그 밤에 침대 들어 위치 바꾸고, 러너를 바닥에 촤락 깔고 향초 켜서 무드 만들고 다른 방에 들어간 스텝들 죄 불러서 “우리 티파티 해요” 하죠. 그런 것을 남편에게 해 주면 것도 창조예요.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가 무엇인가를 바꿔본다는 것은 창조의 첫걸음이니까.

지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단번에 큰 것을 행할 수는 없어요. 저희 책 살 때 드렸던 색 보자기를 한 장 들고 왔어요. 이 보자기에 책을 싸고, 노란 고무줄 집에 다 굴러다니죠? 묶어서 꽃을 한 송이 끼워요. 없으면 화장실 가서 조화 한 송이 잘라오고. 음반도 같은 방식으로 싸는데, 내용물이 작을수록 포장이 크고 탐스럽게 나오니 더욱 멋지죠. 카드? 전 종이도 아깝고, 그 값도 너무 아깝더라고요. 카드 값만 아껴도 난민들 구호 하겠다 싶고. 편지는 책을 펼쳐 그 안에 쓰고, 음반은 속지에 쓰면 어때요? 지구 환경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있죠.


내 책 접은 부분 몽땅 펴다 준 너!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너, 전생에 오랑캐가 아니었으면 이럴 수는 없다”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죠. 돈 빌려가 안 갚는 사람은 괜찮아요. 제가 나 죽은 뒤에 누가 보고 에구 무서워라 할까 봐 빨간 줄은 그으려다 안 긋고, 위가 감동이면 위를 아래가 감동이면 아래를 접어놔요. 그런데 그걸 빳빳하게 죄다 펴서 돌려 준 거야. 바빠 죽겠는데 나이 많은 사람이 또 어느 세월에 책 읽고 감동을 또 받고 접나 싶어요. 지나면 기억이 안 나잖아요, 우리 나이? (좌중 웃음)
연말이잖아요, 백화점 가지 말고 서점 가서 책 한 권 사서 미리 읽고 좋은 부분 접어서 친구에게 선물해요. 안에 펜으로 간단히 편지 써 주면 좋고요. “읽어보니 참 좋더라, 너에게 지금 가장 긴요한 글일 듯 하구나, 친구야.” “주름 생기니 작은 글 볼 때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펴고 읽으렴”


탈무드만 읽고 살아서 오십이 되도록 세상 사람들이 다 정직하고 바른 줄만 알았어요. 책이 독이 된 거죠. 거짓말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사에 실망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즐거운 이야기만 전해주는 전화 누가 발명 안 하나” 했고, “내가 즐거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면 되지. 내가 나가서 세상을 바꾸면 된다” 깨달았어요. 그게 책 쓴 이유고. 하지만 많이 안 팔릴 거예요. 요즘 화두가 정치고, 내년 대선 때문에 정치에만 관심 있지 풀이랑 꽃 얘기 하는 제 책에는 관심 없을 것 같아요. 대선 열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 허한 마음들이 남았을 때 펼쳐지면 좋겠어요. 나는 새끼가 없어서 돈이 중요하지는 않아.(웃음) 하지만 책이 잘 되길 간절히 빌어요. 나를 알아봐 준 편집자들이 너무도 고마워서, 그들에게 꼭 보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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