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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음식이 짜다고? 한국 음식이 더 짜요!” - 『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셰프와 함께 한 이탈리아 두 시간 여행

기억이 손을 뻗는 한, 이탈리아를 향한 내 첫 번째 매혹은 <시네마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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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셰프의 맛깔 나는 글요리는 늘 그렇듯, 이탈리아를 여기로 부른다. 『어쨌든, 잇태리』는 대놓고 이탈리아를 욕하는 척 하지만, 행간은 이탈리아를 막막 돋운다. 이래도 이탈리아에 안 가고 배겨? 한 번 당겨보지? 내 말 확인해 봐, 아님 말고. 기름기 줄줄 바람둥이를 만나든, 크리스티나(<미녀들의 수다>)식의 센 발음을 확인하든, 2011년 10월 이후의 이탈리아는 박찬일의 손끝에서 비롯된다, 고 말하면 물론 뻥이지만, 어쨌든, 잇태리는 맛있다.

기억이 손을 뻗는 한, 이탈리아를 향한 내 첫 번째 매혹은 <시네마천국>. 내 인생의 영화 0순위라는 이름표를 단 이 영화를 통해 이탈리아가 처음 내게로 왔다. 그때 본 이탈리아는 작고 소박했으며 아름다웠다. 토토와 알프레도가 우정을 쌓은 공간이 특히 그랬다. 빨라조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들어간다는 작은 마을의 풍광이 날 사로잡았다. 나는 토토이고 싶었다. 엘레나와 사랑하고 싶었다.

<시네마천국>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고향이 시칠리아란다. 그래서였을까. 고향사랑이 잔뜩 묻어난다. 시네마 파라디조. 난 꿈을 꾼다. 고요가 지배하는 극장 말고 시네마 파라디조처럼 관객이 마음껏 떠들고 설치는 극장. 그런 극장 하나쯤. 나도 키스신만 모아놓은 영사기를 틀고 훌쩍거리리라. 엔니오 모리꼬네의 선율에 몸을 맡긴 채. 99일째 되는 밤 떠난 병사의 마음을 만나리라. 그는 진짜 두려웠던 걸까. 공주가 나올지 안 올지. 아직 궁금해.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 갱들의 고향으로만 알았던 시칠리아는 영화의 천국이 됐다.

두 번째 이탈리아는 피자. 세상에 이런 맛이!, 였다. 오죽하면 내게 피자를 준다면, 먹을 때만큼은 영혼을 주겠단 헛소리도 지껄였다. 허나, 그것은 미국식 피자였음을. 이탈리아에서 맛본 길거리 네모 피자가 알려줬다. 이탈리아의 진짜 피자는 미국과 다르다! 화덕은 맛을 더 높였다. 덕분에 이젠, 피자 프랜차이즈들의 공산품은 살짝 사양한다. 대형마트의 크기만 키운 싼티 나는, 재료는 며느리도 몰라형 피자도. 화덕이나 피자이올로(pizzaiolo)의 손놀림이 중요한 이유를 알았다. 그것이 이탈리아의 맛. (내게, 파스타는 별책부록!)

베스파는 아마도 세 번째 매혹이었다. 물론 더 정확하게는 베스파보다 ‘베스파를 탄 오드리 헵번’이겠다. 맞다. <로마의 휴일>. 스쿠터라는 이름표가 베스파를 앞질러도, 모노코크에 2스트로크 엔진, 수동 변속시스템, 낮은 핸들과 높은 시트의 베스파는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 아아 뭣보다, 예쁜 여자와 합체한 베스파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 이탈리아의 선물.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입맛 까다롭고 미식 운운하는 이탈리아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되니, 이탈리아, 찐하게 다가왔다. 세 번째 이탈리아는 커피 혹은 에스프레소. 우리네 삶만큼 쓰디 쓴 에스프레소. 물론 달콤함도 빼놓을 순 없지. 논란의 여지가 다소 있지만, 1901년 베제라(Bezzera)는 증기압을 이용한 에스프레소 머신의 특허를 처음 받았다. 내 첫 에스프레소 머신이 베제라였다. 나는 그를 ‘배째라’로 불렀다. 그의 배를 째면, 검은 혈액이 졸졸 흘러나와 나와 손님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으니까.

좀 더 커피를 뽑으면, 이탈리아의 정치와 역사가 묻어나온다. 밀라노발 에스프레소의 진하고 쓴 달콤함이 이탈리아를 휘감을 때, 1933년 알폰소 비알레티는 가정에서도 쉽게 에스프레소를 먹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1920년대 파시스트들이 발굴한 이탈리아의 금속 ‘알루미늄’으로 만든, 모카 엑스프레소. 지금 모카 포트라고 불리는 팔각형의 커피메이커였다.

모카 포트는 당시 이탈리아 정신의 상징이자 동력이었다. 에스프레소와 알루미늄, 1900년대 이탈리아를 장악한 두 아이콘의 결합. 그래서일까. 최초의 모카 포트 애호가였던 파시스트들은 이런 주창을 했다. “모카의 몸을 이루는 알루미늄처럼 가볍고 빠르게, 그 입에서 토해져 나오는 카페인처럼 강렬한 각성으로 구 제국들을 따라잡자!” 각성도 때론 광기가 된다.

어쨌든,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맛보고자 했던 카페인 애호가(혹은 중독자)들의 노력은 아직도 최초의 디자인을 고수하는 이탈리아의 상징을 전 세계로 퍼트렸다. 커피(나무)가 자라지 않는 이탈리아가 커피 강국으로 자리? 이유다. 검은 혈액에 자본을 투여한 미국식 에스프레소가 한국에선 더 활개를 치고 있지만, 이탈리아는 여전히 젖과 커피가 흐르는 땅. 누가 뭐래도 거부할 수 없는 이탈리아의 향.

이탈리아는 커피의 나라다. 생두는 한 톨도 생상하지 않지만 커피 완제품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팻말을 달고 더 비싸게 팔린다.(p.142)



사모, 박찬일 셰프!

총리에서 실각하고 두 번째 음반을 낸 붕가붕가 대마왕 베를루스코니나 채무위기에 맞닥트린 이탈리아 재정상태는 그저 풍문에 실린 이탈리아의 파편일 뿐. 하나 더 보탠 이탈리아의 매혹, 즉 다섯 번째 이탈리아는 박찬일 셰프 되겠다. 그를 처음 만난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씨칠리아의 모디까에서 풀풀 날리는 이딸리아 맛 뵈기는 오우, 뿌오나(buona, 맛있다).

그의 스승 ‘파또리아 델레 또리’의 쥬제뻬 바로네 셰프가 심어준 ‘요리하는 영혼’. 그것이 커피를 만드는 내게도 무척 인상 깊었다. 커피 또한 요리의 사소한 하나라고 생각하던 내게, 그 가르침은, 케 벨 파노라마!(오메 멋있는 거!) 이탈리아 커피 장인만큼 커피를 뽑을 순 없겠지만, 나는 나대로의 온리 원 커피. 베스트는 애당초 생각이 없으니, 자연과 커피농부의 노고에 내 마음 한 움큼을 보탠 커피.

박 셰프의 맛깔 나는 글요리는 늘 그렇듯, 이탈리아를 여기로 부른다. 『어쨌든, 잇태리』는 대놓고 이탈리아를 욕하는 척 하지만, 행간은 이탈리아를 막막 돋운다. 이래도 이탈리아에 안 가고 배겨? 한 번 당겨보지? 내 말 확인해 봐, 아님 말고. 기름기 줄줄 바람둥이를 만나든, 크리스티나(<미녀들의 수다>)식의 센 발음을 확인하든, 2011년 10월 이후의 이탈리아는 박찬일의 손끝에서 비롯된다, 고 말하면 물론 뻥이지만, 어쨌든, 잇태리는 맛있다.

그렇다. 이탈리아는 맛의 천국이다. 아니, 이탈리아가 아예 맛 그 자체다. 북부 피에몬테에 있는 이탈리아 전통 식품 이벤트 매장의 이름은 아예 ‘잇태리 Eataly’다. 누가 지었는지 참 그럴듯하다.(p.34)



다섯 번째 이탈리아를 만난, 애니웨이 원 파인 데이, 어쨌든 어떤 멋진 날. 독자들이 서울 홍대부근에 위치한 라꼼마의 오너 셰프 박찬일을 만났다. 두 시간, 잇태리를 여행한 시간.

그래서 이탈리아는 가볼 만한 나라다. 혹시 이탈리아에 나쁜 감정이 있어서 “절대 가볼 만한 나라가 아니야”라고 반박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적어도 당신은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온 것이잖아”라고 말하겠다.(pp.29~30)




박 셰프, 이탈리아를 말하다

박 셰프의 맛깔난 글 솜씨에 반한 찬빠들의 회동 같다. 창원에서 온 독자부터 새 책의 기사스크랩은 기본이요, <트루맛쇼>에 나온 박 셰프를 보고 친숙함을 느낀 독자, 인생의 전환점을 다룬 기사에서 박 셰프의 모험담이 가장 반짝반짝 빛났다는 독자, 책을 보고 다시 이탈리아를 가고 싶은 독자 등이 각자의 이탈리아를 품고 왔다. 연극 <키친>을 선보이며 박 셰프에게 기고 받은 국립극단의 한 연구원은 글맛에 반해 음식맛은 어떨지 기대하고 왔단다.

박 셰프의 이실직고(?)가 흘러나온다. 책의 말미, 그는 “이걸 안 하고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면 재미없지”라며 ‘진짜 이태리를 만나는 박찬일의 버킷리스트’ 30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도 못해본 게 많단다. 우선 운전을 못하니 차를 몰고 뭔가를 해보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남북 24시간 넘게 달리는 길고 넓은 땅. 그만큼 이탈리아를 자세히 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조금 살고 여행한 걸로 책 한 권 쓰고 오버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있다. 이탈리아는 내게 애증의 관계다. 잘 모르면 오해도 많고, 권태도 오고, 분노도 하고, 이태리가 내 삶에서 그랬다. 문화 차이에서 빚어진 오해도 있었다. 이태리 사람은 한국 사람과 비슷하다. 참일 수도 거짓일수도 있다. 약속 안 지키는 건 똑같다. 이 사람들, 5분 후에 탄로 날 거짓말을 한다. 우리도 많이 하잖나. 다음에 소주 한 잔 하자. 다음에 안 하거든. (웃음)”

이탈리아를 ‘이탈리아’라는 범주에서만 보는 건 충분하지 않다. 이탈리아는, 1860년 통합됐다. 남북 간 위화감도 크고, 국가의식도 약하다. 월드컵에서나 뭉칠 뿐, 올림픽도 자기지역 출신이 아니면 관심이 많지 않단다. 박 셰프 설명에 의하면, 지역주의가 대단하다.

“한국으로 치면, 군산은 전북사람으로 카테고리가 묶이는 게 아니라 군산시 오명동 이런 것까지 따진다. 도시끼리 전쟁을 했던 역사 때문일 거다. 150년 전엔 다 원수였거든. 도시끼리 극렬한 라이벌 관계도 있다. 피렌체와 시에나는 죽이고 죽였고, 제노바와 베네치아는 해상상권을 두고 싸웠다. 로마와 로마 외곽도 심하게 안 좋다. 한 번은 토리노에 가서, 축구팀 유벤투스 칭찬을 했는데, 알고 보니 축구팀이 2개(유벤투스, 토리노 F.C.)였던 거다. 그전까지 지성인의 대화를 나누다가 얼굴이 붉게 변하더니, 화분을 던지더라. (웃음)”

박 셰프가 피렌체를 언급할 땐, 두오모가 떠올랐다.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 10년의 약속이 있던 곳. 아오이와 준셰이의 해후. 냉정과 열정 사이. The Whole Nine Yards. 다음에 이탈리아를 간다면, 5월25일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리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

음식, 등장한다. 농어 타르타르 혹은 오리 빠떼를 곁들인 치즈와 무화과 오븐구이. 농어가 찰지다. 쫀득쫀득. 식감 좋고, 재료의 본디 맛이 살아 있다. 음식을 음미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물을 먹어야 사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반한. 요리를 해준 사람의 노고와 마음에 대한 고마움도 담아.

음식을 앞에 놓고 사람들은 대화를 나눈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있는 것이다. 박 셰프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셰프를 향한, 자신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호 신뢰. 건배를 하는 전통은 서양에서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태도라지 않나. 비록 한 끼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평생의 잊지 못할 순간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기자를 했는지 몰랐는데, 요즘 알았다. 기자할 때도 요리를 담당했나?

잡지 기자 7년을 했는데, 요리와 관련 없는 피처기자였다. 인물 만나고 사건을 취재하는. 요리는 대개 여자들이 맡았었다.
주방이라는 공간, 우리가 아는 것과 너무 다르다. 일반인들은 접근하기엔 너무 많은 단계가 필요하고 어색하다. 도시의 식당 주방은 살벌하다. 도시사람은 대체로 성질이 급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익명이니까. 익명은 사람을 날카롭게 만든다. 도시는 그런 사람들만 있으니 도시의 주방은 살벌하다.

나는 시골 주방에 있었는데, 오는 사람들이 다 친한 거다. 그러니 싸울 일이 뭐 있겠나. 어디를 가든 시골에 가서 먹을 때 만족도가 더 높다. 로마는 수많은 인종이 있으니 식당도 융합이 안 되고, ?님은 날카로워져 있고, 나쁜 놈들도 있다. 시골 식당은 등쳐먹어야지 하는 마인드가 없다. 시골에선 골목으로 딱 두 블록만 들어갈수록 맛있는 식당들이 있다. 음식이란 사람 사이의 교감이다. 선한 상태에선 음식을 맛있게 하고, 그 음식은 맛있게 느껴진다.

이탈리아는 왜 갔나? 프랑스도 있는데…

국수(파스타)나 두어 달 배워 오려고 했다. 프랑스(요리)는 깊고 원대한 세계라고 생각했다. 막상 가서 보니 요리에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고, 그걸 두고 못 오겠더라. 재미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 하게 됐다.

와인은 어렵지 않았나?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다. 얼마 전, 십 몇 년 만에 이탈리아 학교를 갔더니 선생이 알아보더라. 나 혼자 열심히 수업을 했다며. (웃음) 최근 이탈리아도 많이 바뀌었다. 가을인데도 아스파라거스가 있더라. 제철 아니면 안 먹었고, 지구 반대편에서 수입하거나 하우스 재배를 안 했는데. 이탈리아도 어쩔 수 없이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스파게티의 경우,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먹은 지 얼마 안 됐다. 그들에겐 남부 사람들을 경멸하는 뉘앙스가 있다. 의식적으로 스파게티를 안 먹고 생면을 많이 먹는다.

신발이 인상적이다. 뉴욕의 유명 셰프, 마리오 바탈리는 주황색 크록스 신발만 신는다는데…

이 신발, 싸다. 신발 회사가 망했다는 소리가 있다. 안 닳아서. 주방엔 미세한 요철이 있어서 신발이 잘 닳는데, 이건 안 그렇다. 몇 년을 신어도 그대로다. 뭘로 만들었는지.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이 사람, 어떻게 연임을 하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데, 대안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되게 인기 있다. 말도 잘 하고 돈 많고 세련되고 여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남자다. 여자의 로망 비슷한. 있는 사람을 대변하나, 남부에서도 표가 많이 나왔다.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인들도 세계가 자신들을 조롱하고, 창피한 일이라는 것도 안다. 베를루스코니도 이번에 쫓겨난 게 아니고 사표 낸 거잖나. 형식적으로는. 그는 중요한 미디어를 다 갖고 있고 여론도 조작한다.

이탈리아 음식이 우리 음식과 비슷하나?

이탈리아 음식은 좀 짜다. 짜야 좀 맛이 난다고도 생각하는데, 서양식은 좀 싱겁다. 있는 사람들은 저염 식사를 한다. 대세가 그렇다. 짜게 간을 못한다. 짠 건 독극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 음식은 짜도, 소금 총 섭취량은 우리보다 많지 않다. 국물 안 먹고 김치가 없으니까. 몸에 들어가는 소금양은 우리가 많다. 국이나 찌개 끓여봐라. 어지간히 넣어선 간이 안 나온다. 우리나라 음식은 전체적으로 심심해야 결과적으로 맞는 거지.

일본이나 중국음식도 그렇고, 영국, 독일도 짜다. 헌데 우리가 실제론 더 짜게 먹는다. 찌개를 먹으면 뜨거워서 염도를 못 느낀다. 식으면 짜서 못 먹는데도. 김치찌개나 짬뽕에 들어가는 소금은 WHO(세계보건기구) 권장량의 두 배다. 그런 음식이 건강을 상하게 한다.

어쨌든 이탈리아 음식의 짠맛은 상당하다. 주방장마다 간이 달라 간혹 무난한 음식을 먹게 되면 횡재한 기분이다. 식당에서 덜 짜게 먹으려면 따로 주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기억해 두시라. “쌀레 뽀꼬!(소금은 조금)(p.38)




요리를 한다는 것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갖고 만드는 것이 요리의 본령이다. 우리는 양식을 만들면, 서양재료를 수입해서 써야한다고 으레 생각한다. 근래 조금씩 바뀌곤 있지만.” 박 셰프가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귀를 쫑긋했다. 여담이지만, 그가 <트루맛쇼>에 출연한 건 나가려고 나간 것이 아니란다. 수십 명의 셰프가 출연을 거절했고, 그 사정을 아는 당사자로서 안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대부분 요리사는 찍히면 먹고사는데 ?장 지장이 생기는 딜레마가 있으나, 자신은 글 써서 먹고살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단다.

그는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라꼼마의 요리를 먹어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그도 대중적인 음식을 다뤘다면 아마 넣었을 거란다. 대중음식점과 소구가 다를 뿐이라고 설명한다.

“화학조미료를 넣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나도 자신 없다. 조미료에 중독된 사람에게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충족시킬 수가 없다. 또 음식 준비시간이 길어지고 재료비도 많이 든다. 이탈리아도 화학조미료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맥도날드도 여행자만 먹었지, 걔네들은 안 먹을 정도로 자신의 음식에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런데 중국음식은 먹는다. 화학조미료를 넣어 아이들을 공략했다. 중국음식을 먹자고 조르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조미료에 절여진 거지. 춘권스캔들이다. 그게 사회문제가 됐다.”

재료의 본디 맛을 느끼고픈 사람에게 외식이 씁쓸한 건, 대부분 식당이 미원을 쏟아 붓기 때문이다. 어쩜 이리 맛이 평등하신지. 미원의 혁혁한 공이라면 맛의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것? 차이라면 미원을 얼마나 썼느냐의 정도? 미원을 쓰지 않는 식당을 만날라치면 그리 반가울 데가. 주인 얼굴, 주방장 얼굴 한 번 더 쳐다봐 주신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맛이 없다고, 미원에 길들여진 입맛은 재방문을 꺼린다. 자극과 맛의 평등이 혀를 마비시킨 탓이다. 박 셰프는 조미료 문제는 터놓고 토론해야한다는 주의다. 그런 칼럼도 쓴 바 있는데, 조미료를 넣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속이는 게 문제라는 입장이다.

거대 식품복합체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MSG(글루탐산나트륨)무첨가, 무설탕 등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우리가 얼마나 그런 것에 민감하면 그럴까. 오죽하면, 10월16일이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세계소비자연맹)일까. 바꿔 말하면, 식품복합체들이 그동안 나쁜 걸 팔았다는 고백이다. 거대 커피회사에서 ‘아라비카OOO’라는 걸 내놓는 걸 보면, 커피를 만드는 나는 살짝 웃음이 나온다. 꼭 그렇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질 나쁜 로부스타 종의 커피를 썼음을 고백한 거니까.


고마운 것은, 박 셰프가 알려주는 먹을거리를 다루는 사람의 태도. 커피를 만드는 나도 요리사다. 아무렴, 나는 그의 생각에 적극 동의하고 동참한다. “요리사란 결국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고, 자신이 만드는 요리 재료가 산지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고기라면 어떤 나라에서 뭘 먹고 자랐는지, 항생제 주사 따위는 맞지 않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걸 ??들은 알고 싶어하고 알 의무가 있다.(p.130)



박 셰프, 독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눈 것, 처음이란다. 낯가림이 있는데도 재밌고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독자들도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먹는다는 것은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 다섯 번째 이탈리아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잇태리, 강력 권한다. “한국에서 젤라토라고 파는 ‘아이스크림’에 실망한 분들이라면, 이태리를 가야한다. 젤라토 맛의 비결은 별 게 없다. 남들은 다 넣는 걸 자꾸 빼는 거다. 첨가물도 빼고 욕망도 빼는 거다. 젤라토는 그런 맛이다.”(p.173) 더불어, 잇태리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만고불변 진리, 이날 박 셰프는 거듭 언급했다. “역 근처에선 먹으면 안 됩니다잉~” 내겐 다섯 번째 이탈리아, 잇태리 애정남의 권고다. 잇태리를 여행하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약속이다. 물론 먹는다고 경찰 출동, 안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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