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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반쪽을 찾는 여정은 짝이 맞는 퍼즐 조각을 찾는 것

<커플즈>를 중심으로 본 앙상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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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달콤한 위안 - 스무 명이 넘는 남녀가 얽히고설키면서도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흘러들어간 <러브 액츄얼리>는 사랑을 중심으로 엮인 개개인의 삶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인 영화였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여 만들어내는 앙상블 로맨스 영화는 <러브 액츄얼리> 이후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스무 명이 넘는 남녀가 얽히고설키면서도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흘러들어간 <러브 액츄얼리>는 사랑을 중심으로 엮인 개개인의 삶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인 영화였다. <러브 액츄얼리>의 형식을 딴 영화들은 이후에도 많이 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내 사랑>, <새드 무비>가 만들어졌다. 이후 오랜만에 <커플즈>가 개봉될 예정이다.


사랑의 나비효과, 그 다양한 보고서들


개봉을 앞둔 정용기 감독의 <커플즈>는 자신의 반쪽을 찾는 여정이 짝이 맞는 퍼즐 조각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커플즈>는 사라진 여자 친구 나리를 찾는 남자 유석(김주혁),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교통경찰 애연(이윤지), 돈 많은 남자가 최고라 믿는 꽃뱀 나리(이시영), 친구의 여자 친구인 나리를 사랑하는 흥신소 직원 복남(오정세), 어두운 세계에 몸담고 있지만 나리에게만은 따뜻한 병찬(공형진)이 한날한시 한 사건에 얽히면서 시작된다. 흡사 나비효과처럼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한 우연한 사건이 하나의 필연으로 엮어지면서, 그 덕에 서로를 알게 된 다섯 싱글 남녀는 진정 자신의 짝이 누구인지 발견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들 주변 인물들까지 사건과 연결되어 각자의 짝을 만나면서 영화는 사랑과 인연이라는 기적을 말한다.

<커플즈>는 영화 우치다 겐지 감독의 <운명이 아닌 사람>을 원안으로 하고 있다. 국내에는 2005년 광주국제영화제 폐막작 <내 마음의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바 있다. 하룻밤에 일어나는 사건이 다섯 명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반복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유사하지만, <커플즈>는 다소 어둡고 우울했던 원작의 주인공을 밝게 수정하면서, 원작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가벼운 영화가 되었다. 따라서 원작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과 달리, <커플즈>는 사랑의 인연과 우연이 반복되는 순간 운명이 된다고 밝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여주인공이 돈 가방의 정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운명이 아닌 사람>의 결말은 딱히 해피엔딩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열린 형태였다면, <커플즈>는 명쾌한 해피엔딩의 수순을 밟는다. 이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도 일맥하는 면이 있다.

정용기 감독은 이미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2편과 3편, <홍길동의 후예>,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을 통한 다양하고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 인물의 캐릭터의 충돌을 경쾌하게 그려낸 바 있다. <커플즈>는 나비효과처럼 얽힌 우연이 필연이고 운명이며, 그 결말은 사랑의 기적이라고 낯간지럽게 얘기하지만, 단순한 우연이 기적이 되는 과정을 믿어보고 싶은 관객의 허전한 마음을 충분히 감싸 안을 만하다. 소동극이 불편한 관객에게는 다소 힘겨운 부분이 있고, 잦은 유머에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지만, 이시영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 강한 배우들이 그 틈새를 유연하게 메워준다. <너는 펫>과 <티끌모아 로맨스>가 각각 연하남, 연상녀의 이야기라는 유사한 소재로 비교되는 것에 비해 <커플즈>의 장점은 뚜렷하다. 한번쯤은 나에게도 운명의 사랑이 찾아오리란 싱글들의 시선에서 보면 충분히 웃고 즐길만한 영화이지만, 긴 여운과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할 만한 보편성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좀 아쉽다.

<러브 액츄얼리>

2003년 전 세계를 로맨틱하게 만들었던 <러브 액츄얼리>는 앙상블 로맨스 영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의 시나리오를 통해 영국을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강국으로 만든 리처드 커티스의 첫 감독 데뷔작인 만큼 강한 욕심과 영국식 자부심으로 가득한 영화가 되었다. 20여명이 넘는 배우가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그는 마치 영화 한편에 세상의 모든 사랑을 녹여내겠다는 듯 열의를 보였고, 그 결과물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쉽게 이 영화를 옴니버스 영화라고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양한 사람, 각기 다른 사랑을 하나로 엮어낸 ‘앙상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얽혀, 포근한 감수성과 유쾌한 웃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사랑’에 앞서 인물 개인의 ‘진심’을 투명하게 담아내면서, 대체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딘가에 사랑이 있을 것 같다고 믿게 만든다.

<사랑해, 파리>

<뉴욕, 아이 러브 유>

<러브 액츄얼리> 이후에 우리는 많은 옴니버스 형태의 로맨스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20명의 세계적인 감독들이 ‘파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만들어낸 사랑 이야기 <사랑해, 파리>는 도시와 사랑이 어우러진 프로젝트 영화였다. 거장들과 명배우들이 어우러진 멋진 작품을 기대했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우울한 파리의 풍광 속에 열여덟 개의 에피소드를 담아내기에 다소 숨 가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랑해, 파리> 프로젝트를 잇는 <뉴욕, 아이 러브 유>는 다인종, 다문화의 상징인 뉴욕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등장인물들이 무심코 얽히면서 뉴욕이라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퀼트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영화의 시퀀스는 재미있지만, 그 이음새가 매끄럽지는 않았다.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사랑의 기적을 찬미하는 한국형 <러브 액츄얼리>로 불리는 작품이었다. 일곱 쌍의 남녀가 일주일 동안 만들어내는 일곱 가지 사랑이야기는 마냥 밝고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다. 영화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어딘지 비현실적이고 불안하다. 때로 사랑은 벅찬 행복이기도 하지만, 지독한 아픔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한국형 앙상블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외에도 <새드 무비>, <내 사랑>이 있었지만 지나친 순정 만화적 감수성으로 인해 전작들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삶을 이야기 하는 앙상블 영화들

<매그놀리아>

<미드나잇 인 파리>

<퀴즈왕>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러브 액츄얼리>의 기획의도를 밝히면서 우디 앨런과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를 언급한 바 있다. 두 감독은 도시, 지역, 상황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한 곳에 몰아놓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삶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감독이고, 두 감독의 스타일은 이후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두 감독은 진정한 앙상블 영화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데, 흩어진 멀티 캐릭터와 멀티 스토리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솜씨는 이후 여러 영화감독의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폴 토마스 앤더슨은 <매그놀리아>를 통해 로버트 알트만식 앙상블 영화의 후계자로 등극하였다. 우디 앨런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모아,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그의 작품에서 도시와 상황, 캐릭터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지속적인 사건을 만들어내지만, 그 균형을 잃어본 적이 없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었던 작품은 뮤지컬 형식으로 만들어낸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이었는데, 감독 특유의 장난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디 앨런의 이름만으로 모여든 최고의 배우들이 함께 한 최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의 영화적 감수성과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내쉬빌>, <플레이어>, <숏컷>, <패션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거장 로버트 알트먼이야 말로 멀티 캐스팅을 통해 심도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찬 세계 최고의 배우들이 그의 영화에서 단역을 자처했으며, 그 소소한 역할도 사소하게 지나치는 법이 없는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매그놀리아>를 통해서 죽어가는 아버지와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우디 앨런과 로버트 알트먼이 공통적으로 중산층 가정의 위선과 그 삶을 담아낸 것처럼 폴 토마스 앤더슨 역시 다양한 계층의 인간군상을 통해 관계 자체의 비극을 말한다. 하지만 선배들과 달리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시선은 조금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매그놀리아>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퀴즈 쇼’를 중심으로 얽힌 인물과 그 먹먹한 비극을 담아내지만, 로버트 알트먼이 관계의 비극 사이에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폴 토마스 앤더슨은 그 상처받은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주려 한다. 지나치게 긴 영화의 러닝 타임은 부담스럽지만 하늘에서 개구리 비가 쏟아지는 충격적인 결말은 이 세상의 단죄가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듯 태연하고 천연덕스럽다. 한국에서 앙상블 영화를 말하자면, 장진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기막힌 사내들>과 <킬러들의 수다>, <박수칠 때 떠나라>, 그리고 최근의 <퀴즈왕>을 통해서 장진 감독은 다양한 캐릭터의 뒤얽힘을 하나의 이야기에 녹여내는 자신만의 장점을 보여준다. 연극적이고 과장된 상황이 하나의 사건으로 얽으면서도 유기적인 결말로 이어가는 뚝심이야 말로 장진 감독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쉽게 사랑을 말하고, 늘 사랑에 관한 노래와 드라마와 영화를 접하고 함께 화내고 웃고 울고 가슴 아파 한다. 그만큼 사랑의 색깔은 다양하고, 사랑하는 순간이 반드시 장밋빛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에 관한 영화는 그것이 현실성을 담고 있건 아니건 늘 관심을 받는 장르이다. <러브 액츄얼리>가 세상 모든 사랑의 인류학적 보고서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는 동성 간의 사랑도 없고 인종간의 사랑을 다소 불편하게 다뤄지고, 중년의 사랑과 노년의 사랑에 대한 관찰도 없다. 즉 아무리 방대한 함의적 시선으로 바라봐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의 유형은 담아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답도 명쾌한 정의도 없이 수많은 로맨스 영화는 판타지 속에 일상을, 일상 속에 판타지를 녹여낸다. 개봉을 앞둔 <커플즈>는 사랑의 운명을 말한다. 사랑의 가장 짜릿한 순간에서 멈추는 해피엔딩이야 말로 사실 현실성이 없는 단편이다. 우리는 늘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순간을 공유하고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로 자신의 처지를 위안하는 법이다. 그래서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은 삶의 덧없음과 그 허무함을 말하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앙상블 영화는 사람 사이의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으라 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현실감 없이 부유하는 판타지임에도, 늘 절대적인 사랑을 믿어보라 한다. 다행히도 그 달콤한 주술은 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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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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