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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느 별에서 왔니?” - 배명훈 『신의 궤도』

무경계적 상상력으로 인간존재와 신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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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팬덤 안에서는 가장 많이 읽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곤 해요. 저는 SF독자가 아닌 상태에서 SF작가로 그 장르에 쓱 들어간 케이스에요.


< 작가이력 >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Smart D〉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부문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엔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에스콰이어> 2007년 1월호 “The Newest: 2007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중문화 예술의 첨병 14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 Story >
『신의 궤도』는 십오만 년 후의 휴양행성 나니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십오만 년이란 시간을 통해 배달된 이 휴양행성의 유일한 고객 은경, 이 휴양행성을 창조한 우주재벌 아버지, 은경의 배다른 언니인 경라의 무시무시한 미움과 질투가 소설의 주요설정이다. 그 배경 속에서 나니예의 관리를 맡고있는 ‘관리사무소’, 나니예를 창조한 ‘신’을 탐구하는 신비스러운 종교집단 ‘천문교’, 관리사무소의 통제에 반기를 들고 세력을 이루고 있는 남반구의 ‘지난’과 유목민들이 또 다른 등장인물이다. 이들의 대립 속에 주인공 은경을 ‘신’과 연결시켜주는 천문교 수사 ‘나물’이 있다. 제한된 문명 속에서 소설의 인물들은 여전히 ‘신’의 존재에 물음을 던지고 신의 실체를 확인하려 한다.



안녕, SF!

 

SF문학 초보독자입니다. 『신의 궤도』를 읽으며 스키마의 부족을 절감하곤 했는데요. 혹시 해설서를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독자에게 답을 주면 안 되겠죠. 그런데 제 글이 어려운가요? SF작가들 중 제 글은 비교적 쉬운 편일 거예요. 원래 SF마니아가 아니었으니까요. 어느 날부터 글을 쓰게 됐는데 ‘이건 SF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SF라서 어렵다기보다는 독법상 읽히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한국문학의 주류독법은 인물을 따라가며 읽는 거죠. 그런데 제 소설은 인물이 아니라 세계가 주인공이 되는 글이에요. 이 경우, 기존의 인물 중심 소설에 익숙한 독자 분들이 낯설어하실 수는 있을 거예요.

“SF인 줄 모르고 썼는데 쓰고 보니 SF더라”라는 말씀이 인상 깊어요.
국제정치학 전공이라 소설에 인공위성 무기라든가, 그것을 요격하기 위한 무기 등의 소재를 넣게 됐는데, ‘대학 문학상’에 냈더니 ‘SF적인 기법이 돋보인다’는 평을 해 주시더라고요. 실제 존재하는 것들이어서 제겐 자연스러운 소재들이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주류문학보다 SF문학 쪽에서 제 글이 먼저 발견됐고, ‘SF작가’가 됐죠.

SF장르 속에 불현듯 들어가게 되신 거네요.
장르문학 팬덤 안에서는 가장 많이 읽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곤 해요. 저는 SF독자가 아닌 상태에서 SF작가로 그 장르에 쓱 들어간 케이스에요. 초기에는 장르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예컨대 SF번역, 기획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엄청난 SF마니아고 당연히 한국 작품을 넘어 글로벌한 속도에 따라가시죠.
그분들이 작품들 얘기하실 때 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니 가만히 있었어요. 요즘은 “저 그 작품 안 읽었어요.”하고 미리 말해버리니 오히려 편하죠.


로봇과 외계인이 나오면 무조건 SF로 인정해주는 해를 정해두면 어떨까요?


방금 전 트위터에서 한 독자가 『신의 궤도』를 읽고 쓴 매우 정교한 리뷰를 봤어요.
제가 리트윗했어요! (웃음) 작품에 대한 반응은 항상 재미있는데요. “혜성같이 나타난 작가다”라는 표현도 재밌고요. 어떤 분은 ‘행성같이 나타났다’고도 하시던데. (웃음)

‘혜성’이라는 표현은 전에 없었다는 말일 텐데, 사실 (순문학과 달리) SF장르에서 보면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일 수 있어요. SF는 굉장히 역사가 길어서 어떤 발상을 해도 이미 다 쓰여 있거든요. 그러니, 이 소재는 ‘예전 어떤 작품에 있던 거다’식으로 비교해주시곤 하는데. 순문학 쪽의 ‘새롭다’는 반응이나 SF장르 쪽의 기존 작품과의 비교나, 양쪽 다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영화 <아바타>가 나왔을 때 각 장면이 이전 영화의 장면들과 연결 지어졌어요. 그런데 비교점이 서른 개가 넘어가면 그 작품은 그대로 ‘창작’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제 글과 함께 언급되는 소설을 사실 거의 안 읽었어요. 예컨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과 연관 짓는 리뷰도 있던데, 저는 『신』을 안 읽었거든요. 그렇게 따지고 나가면 대개의 소설은 그리스 신화와 닿아 있겠죠?

국내 SF들이 대부분 오락적이라기 보단 사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영화판에서는 상위에는 예술적인 영화도 있지만 오락적인 영화도 많아서 판이 돌아가야 건강한 구조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SF는 그렇진 않아요. 미국의 경우 SF를 어느 정도 읽은 팬이 스스로 창작을 하기 시작하죠. 반면 우리나라는 창작할 능력이 있는 분들이 번역을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이때 아무래도 대중적인 작품보다는 필독서나 고전, ‘이것만은 꼭 읽어야 한다’는 작품을 번역하게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게 신인작가들에게 상당히 높은 진입장벽이 생기는 이유가 돼요. SF로 인정을 받으려면 경이감이 있으면서, 스토리와 갈등구조가 과학 원리와 잘 맞아 들어가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초심자보다는 대가들이 하는 것이잖아요. ‘로봇이 나오고 외계인이 나오면 SF라고 인정해주는 특정 기간을 정해 두자고 농담삼아 제안했던 적도 있어요.


독자와 대화하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세계관을 아우르는 단편이 있나요?
(발표된 작품 중에선) 『안녕, 인공존재!』요. SF독자들은 이 소설이 ‘좀 덜 갔다’고 생각하시고 그 ‘덜 간 부분’이 『신의 궤도』에서 구현됐다고 보시거든요. 『신의 궤도』에서는 세계를 설명하니까요. 그런데 기존의 한국문학에 익숙한 독자 분들 보기에는 『신의 궤도』가 ‘너무 갔다’고 보시는 거죠. 주류 문학과 SF문학 양측의 독자를 다 만족시킬 순 없어요. 두 쪽의 독자들이 가장 많이 만나는 하나의 접점을 찾기란 정말 어려워요.

‘모든 독자를 두고 쓰면 힘들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최근에는 어떤 독자를 상상하고 쓰셨나요?
『안녕, 인공존재!』는 앞쪽을 좋아하는 독자군과 뒤쪽을 좋아하는 독자군이 나뉘었어요. 작가에게 꽤 골치가 아픈 일이죠. 고민을 좀 하다가 예전처럼 열 명 이내의 지인을 두고 쓸 때의 마음으로 썼어요. <폭격>을 쓰며 깨달은 것이 ‘많은 독자를 하나하나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이다’라는 거였어요.

독자를 만족시키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하시나요?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독자와. 작가마다 다르지만, 전 제가 쓰고 싶은 것에만 맞춰져 있는 것보다 독자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려고 해요. 단, 너무 신경 쓰면 글이 막혀요. 쓸 수가 없어요. 그 때가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겠죠.

초기에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연재하고 지인들에게만 보여줬다는 소설이 있다고 들었어요.
단편들이 쭉 모여 긴 이야기를 이루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몇 년간 습작을 했어요. 독자는 열 명 남짓의 친구들이었고요. 오랜 기간 딱히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이 썼었죠. 그게 시리즈가 되어 분량이 많아지다 보니 읽기가 너무 어려워졌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단편을 쓰자”고 생각한 게 2004년이에요.

습작 시설의 단편 중 발표된 것이 있나요?
단편의 모티브나 인물들을 평소 집필 시에 인용하곤 해요. 지금은 궁극적으로 쓰려는 이야기를 위해 연습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하고요. 소설을 더 잘 쓰게 되면 예전에 쓴 그 이야기를 다시 쓸 거예요. 한, 십오 년 후?


『타워』를 읽고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를, 이집트에서는 카이로 시위를 떠올릴 거예요. 정치현상은 보편적이니까요.


다시 태어나 소설을 쓴다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으신지요?
음, 나라요? (한숨) 영어권이든 스페인어권이든 지금보다 독자층이 넓은 곳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독자층이 작다는 게 핸디캡이 돼요. 그 벽을 넘으려면 번역을 거쳐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타워』는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독자도 분명히 재미있게 읽을 거예요.

보통 『타워』의 내용을 한국의 상황으로 보지만요, 실은 정치적 현상은 굉장히 보편적이거든요. 독재 방식, 시위 방식, 그 시위를 진압하는 사람의 레토릭이 보편적이에요. 『타워』를 읽고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를, 이집트에서는 카이로 시위를 떠올리고 소설의 디테일을 공유할 수 있을 거예요.

보편이요.
체코의 사복체포조가 시위대를 잡아가는 영상을 봤어요. 그런데 사복체포조가 입은 청바지, 청자켓 패션이 우리나라 백골단이랑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정치적 상황은 반대거든요. 상황은 반대지만, 현상은 비슷비슷하게 닮아있어요. 전혀 다른 정치상황의 독자들이 같은 디테일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죠.

…바르셀로나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그런 곳에는 절대 놓여있을 것 같지 않은 빨간 장난감 비행기 모형 하나를 발견했다. 짐이 될 것 같아 한참을 망설였지만, 나는 끝내 그 모형을 놓쳐 버리지 않고 집에까지 싸들고 온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그 낡은 비행기 모형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 책 1권의 부제인 ‘빨간 비행기’가 되었다. (작가의 말)

작가가 실생활에서 관심을 둔 작은 물건이 픽션 속 거대한 세계를 상상하게 되는 촉매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사물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성벽이 좋아요. 우리나라였다면 국보로 관리했을 법한 성벽들이 터키에는 그저 널려있는 걸 봤어요. ‘장벽’의 이미지라기보다, 벽 밑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붓한 느낌, 성벽을 끼고 카페가 있다거나. 예컨대 이스탄불에는 방어를 위해 쌓았던 성벽이 있어요. 거기에 거대한 ‘해자’가 (물을 채워서 사람이 지나지 못하게 하는 방어시설) 있는데, 그곳에 흙을 쌓아서 농지로 쓰고 있어요.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는 말도 안 되는 거지만요, 그 속에서 사람들이 생활해가는 모습이 참 아늑한 분위기였죠. 그런 면에서 ‘벽’이 좋아졌어요.

우리나라에도 마음에 드는 ‘벽’이 있나요?
동대문에서 낙산으로 올라가는 쪽에 서울 성곽을 복원해 놓았어요. 벽 바깥은 삭막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안쪽보다 바깥쪽에 모여 있는 마을이 서울같지 않게 안락한 모습이에요.

세계가 만들어지자 곧바로 은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해 전, 쓰고 싶은 글은 잠시 미뤄두고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글부터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 주인공이 되어준 단골 주인공 은경이는, 첫 장면에서부터 자기 리듬을 가지고 이야기를 쓸고 갔다. 한 번에 끝까지 써내지 못하고 중간에 흐름이 끊어졌을 때 그 흐름을 다시 이어준 것도 은경이었다. (작가의 말)

간판 여주인공 은경이 탄생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매번 여자친구의 이름이 아니냐는 질문도 받으셨는데요.
첫 단편의 주인공이 은경이었어요. 소설 쓸 때 주인공 이름 짓는 건 꽤 까다로운 문제에요. 그 안에 캐릭터가 들어가야 하니까. 이름을 결정 못 해서 집필이 지체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를 없애려고 다음 소설에서 은경이라는 이름을 다시 선택한 거예요. 그래서 초기 작품들에는 각각의 은경이 전혀 다른 캐릭터인 경우도 있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은경’이라는 이름 안에 캐릭터가 잡혔지요.

캐릭터가 제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은 작가에게 매우 황홀한 경험일 것 같습니다.
은경이라는 인물에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생겼으니 이제 제게 은경 캐릭터는 자산이나 생산수단일지 모르겠어요. 은경이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가 짜 맞춰지고 흩어져있던 소재들이 착착 연결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거든요.


“방심하면 안돼요, 제도에 순응하게 되니까. 항상 긴장해야 하죠.”


중고등학교때 어떤 학생이셨나요.
모범생이었어요, 20년 간. 지각도 결석도 절대 하지 않는.

즐거우셨나요?
즐거웠나? (웃음) 음, 약간 고민 많고 우울하고 말수도 적고 비관적인 소년이었어요. ‘작가’의 이미지에 가까운 건 오히려 그때인 것 같네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편안해지고 행복해졌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요?
똑같이 생활할 것 같아요. ‘시간을 돌리면 언제로 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No No라고 해요. 그냥, 잘 왔어요, 지금 잘 살고 있으니까.

지금이 행복하신가요?
네. 예전보다 행복해요. 일년 반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나서는 ‘아, 행복하구나’ 느끼는 순간이 자주 있어요. 어찌 보면 20년 동안 ‘누군가가 원하는 잘 사는 삶’을 모범적으로 준비해 온 거잖아요. 그걸 버리기까지는 힘들었는데 막상 버리고 나니까 아무 미련도 없고 너무 좋아요.

은희경 작가님 인터뷰를 거칠게 인용하자면, “오랫동안 모범생으로 살아와서 삶에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없었고, 그러니 쓸 것이 없었다.”는 부분이 있었어요. 삶과 사회의 불합리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다면 소설을 쓰기 어렵겠죠.
저는 워낙 모범생 체질이라 조금만 방심하면 제도에 딱 맞추게 되거든요. 둘째로서 느끼는 감정 때문에, 기존 제도에 대한 불만은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도 누가 제도를 주면 너무 잘 따라한다니까요. 마음과 몸이 다른 곳에 있으니, 항상 스트레스였죠. 회사에서도 투덜투덜 하는 와중에 제일 먼저 일을 마치고, 군대를 너무 싫어했는데도 꽤 잘해냈어요.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으면 어떤 제도도 잘 따라가곤 했으니, 나쁜 제도도 잘 적응했을 것 같아요. 독재 체제의 앞잡이를 시켜도 잘할 것 같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잖아요.

황문찬은 삼 년 전부터 행성관리사무소장이라는 중책을 맞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복무규정에 따르면 행성 나니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의 소관업무영역에 들어갔다. 고객관리, 시설보수, 치안유지, 질병예방처럼 사람에 관련된 일뿐 아니라 태풍이나 가뭄, 홍수나 기상이변 같은 자연재해까지도 모두 그의 책임범위 안에 들었다. 그 대신 관리사무소장에게는 무소불위의 권한이 주어졌다.(『신의 궤도』 중에서)

나니예 행성의 공용어가 영어나 기타 언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냉전 상황이 배경인 외국 소설이 있다고 쳐요.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은 특이한 상태인 ‘냉전’과 관련한 그 나라의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을 한국 독자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사회와 텍스트 사이의 맥락이 참 재미있는 요소인데, 그걸 누락시키고 읽게 되는 거죠. 『신의 궤도』에서 ‘관리사무소’ 설정이 있어요. 한국독자들은 이 사회적 맥락과 텍스트의 관계를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한국적 설정을 사용하는 이유죠. 그렇지만 아직도 SF에서 한국인 주인공이 한국말을 쓰며 등장하면 어색해요. 예컨대 외계인을 국정원이 추적하면 어색하죠? FBI가 추적하면 자연스럽고요. 그것도 미국의 국정원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해야 해요. 언젠가 한국인이 달에 기지를 세우는 이야기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올 거예요. 멀지 않다고 봐요.

“그게 뭔데요?”
“신이요, 이건 신이 될 겁니다.”
“신을 만들겠다는 겁니까?”
“물론 아무나 만질 수 있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올려둘 거거든요. 쉽게 올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간절히 원한다면 결국은 닿을 수 있게 해야겠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신은 늘 가까이에서 행성 주위를 공전하시지만, 그 크기가 너무나 작으셔서 세상 어떤 성전에 설치된 망원경으로도 감히 그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중략) 신앙이 신앙으로 남아있는 것은 신께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기 때문이었다. 신은 그렇게 언제나 모습을 감추고 계셨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목표는 언제나 신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었다.
(『신의 궤도』 중에서)

신이 인격체가 아닌 물리적, 기계적 존재로 상정되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제 관점은 인물보다는 세계에 있어요. 『신의 궤도』에서 지도자 ‘지난’이 저격당하고 난 후 유목민들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거든요. 질문은 지난이 가져야 하는 게 아니라 남반구라는 세계 전체로 끌어올려야 하는 건데 말이죠. 마찬가지로 ‘신’도 한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는 거예요.

독재 사회를 다루는 영화나 소설을 보세요. 마지막 장면에 독재자가 나오죠? 그 순간 영화가 굉장히 유치해져요. 독재는 그 한 명 때문에 유지되는 게 아니고 그 사회 곳곳에서 여러 제도에 의해서 작용하는데, 픽션에서는 아무래도 독재자 한 명이 제거되고 세계가 평화로워지는 방식을 택하곤 하죠. 아주 단순하죠. 이건 사실 말이 안 되는 건데.

한창 이 이야기를 글로 채워가는 일에 몰두해 있던 2009년에는 대만 화가 천치콴의 그림들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화가는 서예를 하듯 간단한 선 몇 개로 정물이나 인물을 그려내는 데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에 와닿은 것은 세계 하나를 겨우 키만한 화폭에 몽땅 담아내는 대가다운 통찰력과 표현방법들이었다.(작가의 말)

『신의 궤도』에서는 시점이 몇 차례 바뀝니다. ‘헷갈린다’고 반응하시는 독자분도 있어요.
소설의 시점이란 게 그림을 그릴 때의 시점과 그 탄생 맥락과 비슷하다고 해요. 어느 한 지점에 서 있고 그 위치에서 바라본 것을 그리는 것이죠. 그런데 커다란 동양화 중에는 여러 시점에서 보고 그린 게 있어요. 가까이서 보면 아주 작게 나귀타고 가는 사람도 보이고, 이 쪽 저 쪽에서 바라본 세계가 한 그림 안에 들어있죠.

소설도 마찬가지로 한 시점에서 보기란 어렵다고 생각해요.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봐야죠. 물론 헷갈리실 독자분들을 고려해 서문에 ‘사고조사 보고서’를 삽입하면서 “사고조사위원회의 시점을 택하셔도 좋다”고 했죠. 그 보고서를 넣었다가 빼 봤다가 하며 고민을 좀 했었어요.


안테나를 펼쳐두고 살기만 하면 소설이 돼요


『신의 궤도』에서는 항공전이 여러 차례 펼쳐집니다. 공부를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사전 작업은 어떻게 하시나요?
<콜롬비아 사고조사보고서>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서 이 책을 쓰게 됐지만 바로 집필을 한 건 아니에요. ‘안테나’를 뻗어놓으면 요즘은 컨텐츠가 하도 많아서 잘 걸려들어와요. 따로 책을 쌓아놓고 읽지 않고도 인터넷 기사에서, TV 다큐멘터리에서 관련 내용이 둥둥 떠요. 이런 카페에 와서도 이 탁자에 포스터가 놓여있는데 소설과 관련된 지도가 발견될 수도 있고요. “이 이야기를 써야지.”라고 마음먹고 사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에요, 삶 자체가 소재가 되니까 살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렇게 쓰는 게 독자들이 읽기에도 더 쉽겠죠? 그들도 살면서 본 소재일테니까요. 물론 SF작법에는 공부해서 쓰라고 돼 있어요. 직접 공부하고 참여해서 쓰는 게 핵심이긴 해요. 화성탐사계획에 직접 참여했던 작가가 쓴 작품도 있듯이요. 하지만 그런 소설도 있고 아닌 소설도 있는 거죠.

작업하실 때 모습이 어떠신가요? ‘집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긴장감이 사라져서 가끔은 화장을 곱게 하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는 모 작가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어요.
백수랑 똑같죠, 뭐. 도서관에도 종종 가는데, 서가를 돌아다니며 책등을 주르륵 살펴보고 넣어서 펼쳐보고 다시 넣고 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다만 도서관의 에너지 중에 싫은 에너지가 있긴 해요. 특히 방학 때 가면 느낄 수 있는 열람실의 ‘열공모드’는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술이 뭔지 탐색할 충분한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해요


주로 어느 코너에 머무르시나요?
여기저기 어슬렁거려요. 주로 과학, 역사에 자주 있긴 하지만,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좋아한달까요. 아, 논문 쓸 때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355 서가」가 있어요. 355번이 ‘군사’ 쪽이에요. 몇 년간 그 코너의 책들은 아마 저만 봤을걸요? 십년 전 한번 빌려가고 그 다음이 바로 저인 경우도 있고. 그 경험이 되게 좋았어요.

책을 읽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나요?
공부를 오래 했잖아요, 제가. 그래선지 필독서 목록처럼 남이 추천해 준 책은 잘 못 읽어요.
항상 ‘읽어야할 책 목록’이 있었던 삶이니까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스스로 고른 책이 가장 재미있어요. 가장 재미있는 상상은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솟아나요.

아이들에게도 읽을 책 목록을 주지 말고 스스로 고르게 했으면 좋겠어요. 책등을 보고 맘에 들면 꺼내서 훑어보고 아니면 다시 집어넣고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향과 독서취향을 발견할 수 있게 돼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아가요. 좋아하는 맥주,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책이 뭔지 알아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다그치지 말자고요.

즉, 꼭 책을 끝까지 읽어야 ‘독서’인 것은 아니에요. 일례로 저는 서점에 가서 책등만 보다가 나오기도 해요. 그 시간에 좋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그 아이디어에 내가 어떻게 끼어들지 생각해요. 상상력이 증폭되는 순간이죠.

그리고 역기가 정점에 머무는 순간은 기껏해야 이 초도 안돼요. 그 다음은 그냥 바닥에 툭 던져 놓는 거예요.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요, 그 사람이 정말 얼마나 훌륭해 보이는지 몰라요. 그걸 들어올리는 데 성공해서가 아니라 한계점 근처에 서 있었다는 것 때문에요. 진짜로 위대해지는 지점은 한계선을 넘어선 이후가 아니라 그 한계선 근처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거든요. 사실은 거기가 더 높은 지점인 거죠. 저 위쪽 어딘가 한계를 넘어선 존재들이 유유히 떠다니는 곳보다 더.
우주 왕복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간다는 건 그런 거예요. 다시 바닥에 내려놓을 역기를 들어올리는 것. 절대로 쉽게 올라가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한테는 그게 바로 탈출이에요. 행선지는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 자리에 서는 순간 이미 탈출한 게 되니까요.
(『신의 궤도』중 은경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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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포노 사피엔스』로 새로운 인류에 대해 논했던 최재붕 교수가 더 심도 있는 내용으로 돌아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한 포노 사피엔스 문명,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메타인지, 회복탄력성, 팬덤 등 포노들의 기준을 이해하고 '생존에 유리한' 것을 택해야 한다.

마주한 슬픔의 끝에 희망이 맺힌다

안희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길 위에 선 우리, 뜨거운 땀이 흐르고 숨은 거칠어져도 그 뒤에는 분명 반가운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의 시를 읽으면 믿게 된다. 힘겹게 오르는 언덕길에서 기꺼이 손을 맞잡을 친구가 될, 무거운 걸음 쉬어갈 그늘이 될 책이다.

만화로 보는 일제 강점기

현장 답사와 꼼꼼한 자료 수집을 거쳐 마침내 완간된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만화 『35년』. 세계사적 맥락에서 일제 강점기의 의미를 짚어보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만든 영웅을 만난다. 항일투쟁의 역사와 함께, 식민지 시기의 어두운 면모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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