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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주체가 사라진 시대… GNP가 2만 불이면 뭐합니까?” - 한창훈 『꽃의 나라』

자신만의 생생한 바다 내음 짙은 사투리를 통해 자신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한창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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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섬의 작가’로 대표되는 한창훈의 신작 장편『꽃의 나라』가 출간되었다. 이번 장편은 인터넷 독자 커뮤니티 문학동네에서 열렬한 호응 속에 일일연재(원제:남쪽 역으로 가다)되었으며, 전작『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이후 팔 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광주시민 여러분, 저희를 기억해 주세요!”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서 이요원(극중 박신애) 씨가 차량을 타고 심야의 텅 빈 광주거리에서 외쳤던 말이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세월은 그날의 기억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곳엔 또 한 명의 작가가 있었다. 긴 세월을 침묵하며 섬과 바다를 노래한 작가. 그 작가가 왜 그날 그곳에 있었던 걸까? 그 작가는 무엇을 보고 겪었는가?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한창훈 - 『꽃의 나라』

‘바다와 섬의 작가’로 대표되는 한창훈의 신작 장편 『꽃의 나라』가 출간되었다. 이번 장편은 인터넷 독자 커뮤니티 문학동네(사이트가기)에서 열렬한 호응 속에 일일연재(원제:남쪽 역으로 가다)되었으며, 전작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이후 팔 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작가약력>
1963년 전남 여수 거문도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열여섯의 섬』 ,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어린이 책 『검은 섬의 전설』 『제주선비 구사일생 표류기』 , 기행문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 (공저)가 있다. 한겨레문학상, 요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받았다.


“물고기한테 미안해서 이제 낚시 많이 안 해요”


한창훈은 줄곧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소시민의 핍진한 삶을 진솔한 이야기로 묶어, 자신만의 생생한 바다 내음 짙은 사투리를 통해 소설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런 그가 『꽃의 나라』에서는 바다와 섬을 뒤로하고, 고등학생 시절 직접 겪은 국가폭력(광주항쟁)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과 함께 폭력 앞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을 꿈 많고 우정 짙은 고교생 소년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 편의 우수 어린 성장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낚시를 예전만큼 안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취미가 생기셨는지요?
제가 낚시를 많이 다녔죠. 그리고 생선과 자산어보와 낚시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엮어서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라는 책을 냈어요. 그런데 책을 내고 나니까 제가 물고기를 너무 많이 죽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고기한테 미안하더라고요. 저도 물고기를 먹을 만큼 먹었는지 탐도 안 나고 해서 요즘은 낚시를 잘 안 다녀요. 그렇다고 다른 취미가 생기지는 않았어요.

평생을 섬에서 사셨는데, 바다가 안 지겨우세요?
바다와 관련해서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에요.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당신에게 바다란 무엇인가?’죠. 물론 지겨운 면도 있죠. 바다 자체가 지겹다는 건 아니고요. 그건 마치 ‘지구란 별이 지겹다’와 같은 것일 테니까요. 섬은 환경이 아주 혹독해요. 특히 매서운 북서 계절풍이 부는 겨울이 가장 힘들죠. 저도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까 육체적으로 힘든 점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약간 지겨운 기분이 들기도 해요.

도시 사람들이 모르는 섬 생활의 낭만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런 거 말 안 하고 싶어요. 제가 이런 말 하면 다들 섬으로 놀러 오고 싶어 해요(웃음). 물론 섬만의 낭만이란 게 있죠. 육지에서 버거운 삶에 힘들어하다 파란 바닷속에 있는 작은 섬에 놀러 오면 가슴이 탁 트이고 살 거 같고 그렇거든요. 하지만, 섬에 놀러 오시는 분들의 공통적인 변화가 있어요. 그분들이 섬에 처음 와서 다들 하는 말이 “섬에 살고 싶다!”에요. 첫날에 반응이 가장 세죠. 호들갑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해요. 그러다 둘째 날이 되면 아주 사색적이 돼요. 바닷가를 천천히 거닐면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죠. 그러다 삼일째 정도 되면 슬슬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해요. 그렇게 지겨워하던 육지가 궁금하고 뭔가 불안해지죠. 결국, 사일째에는 다시 육지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그래서 제가 그런 말을 해요. 섬에서 사는 것도 좋은 건 아니고, 섬에 친구가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거다(웃음).

섬의 매력은 다 알고 계시거나 짐작하고 계신 거죠. 육지와는 전혀 다른 그림. 색깔, 수평선, 적막.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런 정취는 산골이나 사막에 가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죠. 결국 섬이 가지는 의미라는 건 도시가 괴로워서 떠나온 사람에게 다시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시원하게 풀어진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하죠. 섬이란 결국 그런 곳이죠.

남들은 피서를 섬이나 바다로 가는데, 작가님께서는 이번 여름에 피서를 어디로 다녀오셨나요?
(웃음) 제주도에 친한 선배분들이 몇 분 계세요. 그분들은 피서철이 되면 팀을 짜서 육지로 여행을 오거나 중국 같은 데로 외국여행을 가버리세요. 그게 비용이 더 적게 든대요.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육지에서 이래저래 아는 사람들이 피서철에 놀러 와서는 전화를 하는 거죠. “온 김에 전화해봤어” 이런 식으로요. 그러면 손님 접대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성수기라 횟값 비싸고, 좋은 숙소에서 재워야 하고. 그분들이 그런 걸 평생 겪다 보니까 질려서 도망을 가시는 거죠(웃음). 그게 피서지에 사는 사람들의 고충 같은 거예요. 그런데 저는 피서철에 주로 집에 있었어요. 제가 사는 섬이 한여름에 또 굉장히 불편해요. 무척 덥죠. 물놀이나 해야 조금 시원한 정도죠. 제주도에는 현대식으로 된 좋은 건물들이 많지만, 제가 사는 거문도에는 집들도 오래되고 바람 때문에 지붕이 낮아서 집안이 아주 더워요. 그래서 이번 여름에 난생처음으로 벽걸이 에어컨을 샀어요. 달고 보니 ‘왜 이걸 여태껏 안 달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올여름엔 에어컨과 함께 섬에 있었습니다(웃음).

혹시 서울에서 사실 생각은 없으세요? 작가의 말에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고 하셨는데요.
(웃음)그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요. 소설에 등장한 존재들에게 바치는 말이에요. 잠시 등장했다 사라져간 사람들. 또는, 살아남아서 트라우마를 평생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단 하나의 선물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을 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다르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처럼 좋은 선물이 없겠더라고요. 역시 그들도 그 선물을 가장 바라지 않을까요?

소설가가 안 되셨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26살에서 27살로 넘어가는 겨울에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바로 소설가가 되나요? 오래 걸리죠. 그래서 몸 쓰는 일을 많이 했었죠. 공사현장도 다니고 배도 탔죠. 아마 작가가 안 되었다면 배를 타고 있을 거 같아요. 항해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작가님께서 꾸준히 지속하고 계시는 작품세계를 표현하자면?
저한테 붙어 있는 주된 수식어가 ‘섬과 바다의 작가’죠. 그리고 제 정서를 대표할 수 있는 좀 더 정확한 말은 ‘변방에서 사는 소외층’이에요. 제가 그곳 출신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뇌나 심장과 같은 신체기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발톱 하나 빠져도 잠을 못 자죠. 저라도 우리가 잊고 사는 외곽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자꾸 확인시켜서 중심만을 위한 삶이 아닌,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말이 빠져나가기를 30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꽃의 나라』는 폭력의 3단계를 다루고 있다. 우선, 주인공은 가부장적인 체제 안에서 가정의 폭력을 경험한다. 그러다 가정의 폭력을 벗어나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학교라는 조직의 새로운 폭력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하위단계의 폭력들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겪게 되는 국가의 폭력에 비하면 차라리 소박하다. 작가는 각각의 폭력이 가지는 잔혹성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날카롭게 조명한다. 또한, 이 책에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소나 시간이 나와 있지 않다. 이는 이러한 폭력이 시대를 초월해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바다와 섬의 작가’로 대표되는 작가님께서 내륙의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전작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가 항구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써오다 보니, ‘바다와 섬의 작가’는 제게 붙어 있는 꼬리표 같은 거죠. 그에 반해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제 가슴에 숨겨놓았던 이야기를 쓴 거예요. 18살에 겪었던 걸 49살에 썼으니 만 30년이 걸린 거죠. 항상 ‘언젠가는 써야지. 언젠가는 써야만 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바다와 섬’하고는 무관하게 언젠가는 써야만 할 소설이니까, 이번에 쓰게 되었어요.

광주에서의 강렬한 경험을 30년이 지나서야 소설로 쓰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즉자적인 고소?고발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이미 되어 있는 것이고요. 제가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 작가의 말에 써놓은 표현을 빌리자면, 말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린 것이죠. 30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 나서는 20년을 기다린 셈입니다. 저는 풍장(風葬)을 겪었다는 표현을 하는데, 정말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생각하고 묘사를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화도 누그러뜨려야 했고, 글을 쓰면서 느껴지는 감정의 기복들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서야 ‘이제 그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사용하신 이유는?
제가 직접 보고 겪었기 때문이죠. 사실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이 있잖아요. 영화나 다른 장르로도 충분히 만들어졌고, 사실적인 면도 다 정리가 돼서 언제라도 찾아볼 수가 있죠. 저는 그보다는 한 존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폭력의 단계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정과 사회의 폭력에 힘겹게 버티던 존재가 거대한 국가폭력을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그리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최상위 단계의 폭력으로 표현하신 국가 폭력은 어떤 특성이 있나요?
가족과 사회폭력을 겪으면서도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요. 우정이나 사랑 그리고 연대의식 같은 인간관계의 미덕들을 통해서 그 방법을 찾아가는 거죠. 하지만 총?칼을 앞세운 국가 폭력 앞에서는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교류마저도 참혹하게 망가져 버리죠. 그러한 것을 저는 좀 담담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스무 대가 넘자 영기 엉덩이가 앞으로 휘어졌다. 서른 대가 넘어갔다. (……) 오십대가 되자 영기의 아랫배가 벽에 닿을 것처럼 휘어졌다. 자세 똑바로 잡아, 새끼야. 사회교사는 자존심이 상해갔다 ( 『꽃의 나라』 p. 26 )

주인공처럼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아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네, 많이 맞았어요. 저희 때 안 맞고 큰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희 때는 얻어맞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맞으면서도 의연하게 잘 참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죠.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거예요. 그리고 이건 소설 내용 중에도 나온 건데, 제가 진짜로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어요. 그때 눈앞에서 반짝하고 별이 보였는데, 정말 노란 오각형별을 봤어요. 우리가 별을 그리면 으레 오각형별을 그리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별은 그게 아니거든요. 그냥 밝은 점이 아르르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맨 처음 별을 그린 사람은 뒤통수를 맞아봤을 거로 생각해요. 저도 놀랐어요. 어떻게 그렇게 뚜렷한 오각형별이 그려질까? 또 강도에 따라 별 크기도 다른 거 같아요. 제가 본 것은 굉장히 컸고, 색깔도 황금빛 비슷했죠. 아무튼 그랬어요(웃음).

반대로 누군가를 때려보신 경험은?
맞은 사람은 누군가를 때립니다. 폭력의 가해자는 전 단계 폭력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아주 많아요. 예를 들면, 폭력적인 가부장들은 어릴 때 똑같은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죠. 저도 맞은 경험이 있으니 당연히 때린 경험이 있죠.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죠.

흔히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발 뻗고 못 잔다’고 하는데.
네, 그런 면이 있어요. 예전에는 양심 때문에 그랬지요. 지금은 치러야 하는 비용 때문에 그럴 거예요(웃음). 가해자는 당연히 자책감과 두려움이 있어야죠. 그리고 누구나 실수는 하잖아요. 그럼 그 실수로 인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이 소설을 쓴 이유 중에는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점도 있어요.

작가님만의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 같은 게 있으신가요?
요즘 세상은 확실히 분노조절 능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큰일에 분노하고 화를 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정작 큰일에는 침묵하고 아주 사소한 것들에 쉽게 분노하죠. 저도 항상 숙제처럼 가지고 있어요. 화를 내기 전에 내가 왜 화를 내야 하는가에 대한 이성적인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죠.

학교 폭력을 다루셨는데, 학교문제를 어떻게 보세요?
저는 학교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 사회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학교지요. 10대들은 정서를 만들어야 하는 나이에요.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그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때죠. 헌데 이러한 사회성과 건전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뒤로하고 일률적인 입시에만 매달리고 있어요. 이때에 사회성과 정서를 키워주지 못하면 성인이 돼서도 행복한 삶을 찾아가기가 어려워집니다.


“전차병이 저에게 총을 쐈고, 전 쓰러졌습니다”


『꽃의 나라』는 작가 자신의 체험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느낌의 장편소설이다. 그만큼 실감 나는 대목이 많기도 하지만 주인공 ‘나’와 한창훈 작가가 여러 가지 점에서 닮아있다. 우선 둘은 나이가 같다. 한창훈 작가는 주인공처럼 79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남해안의 바다마을 출신인 점도 한창훈 작가와 같다.

소설 속에 나오는 ‘박정화’라는 캐릭터가 혹시 작가님의 첫 사랑이 투영된 존재가 아닌지요?
제가 『꽃의 나라』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단편을 딱 한 편 쓴 적이 있어요. 성장이란 주제로 청탁을 받아서 ‘변태’라는 단편을 썼지요. 그 단편에 하숙집 주인 딸이 나와요. 제가 실제 하숙을 일 년 반 정도 했는데, 그중에 6개월 정도를 그 여학생이 있는 하숙집에서 지냈죠. 하지만 늘 새침데기처럼 절 피하더군요.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자기도 좋아했다고 고백했어요. 이미 뒤늦은 후에요. 참, 세상은 왜 늘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지(웃음). 아무튼 ‘박정화’라는 인물은 소설에서 굉장히 불량한 여학생으로 나오는데, 제가 당시에 보았던 여러 여학생의 이미지가 뒤죽박죽 섞인 인물이에요.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말씀이죠?
그렇죠. 그런데 작가가 이런 말 하면 재미없는데(웃음).


그때 전차 위의 군인이 내게 총을 겨눴다. 누군가가 나에게 총을 겨눈 것은 처음이었다. 불빛을 받아 총구가 번뜩였다. 순간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고 총소리가 연달아 났다. 나는 쓰러졌다. 맞았구나. 생각했다. 쓰러지는 몇 초간은 설명하기 쉽지 않다. (……) 그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인생을 담아놓은 파노라마필름 같았다. ( 『꽃의 나라』 p. 209 )

소설에 보면 주인공이 죽는 순간을 경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건지요?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건 말 그대로 소설이에요. 픽션이죠. 작가가 이런 고백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요, 실제 제 이야기가 상당 부분 들어 있어요. 특히 죽음에 관련된 건 제가 그대로 겪은 겁니다. 소설에 보면 주인공이 탱크와 너무 가까이 만나서 전차병에게 저격을 당하죠. 당시 그 현장에서 전차병이 맨 처음 총을 겨눈 사람이 저였어요. 당시는 밤중이었고, 온통 그을림과 최루탄 가스로 앞이 잘 안 보여서 너무 앞으로 달려가 버린 거죠.

그때 전차병이 저에게 쏜 총이 실은 공포탄이었어요. 물론 공포탄의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나를 겨눈 총에 공포탄이 들어 있겠지?’라는 생각은 못하잖아요. 혼비백산하는 아수라장 가운데서 전차병이 저에게 총을 쐈고, 저는 ‘맞았구나!’ 하면서 쓰러졌어요. 그런데 그 순간, 제가 태어나서 18살 지금까지의 생애가 한 번에 싹 지나갔어요. 어떻게 설명하기가 참 애매한데요. 이것도 지나가고, 저것도 지나가고 했다는 것으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내가 다섯 살 때 어떤 일이 있었는데’ 하면 그것도 지나갔던 것의 일부였다는 걸 깨닫는 식이었어요.

또한, 소설 속에 보면 주인공이 어떤 아이랑 서 있다가 옆에 아이가 총에 맞아서 주인공이 그 아이를 병원으로 후송시키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것도 제가 겪었던 그대로를 소설에 옮겨놓은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아주 깊게 맛보았어요. 집에 오는데 총알이 따라오는 거 같았어요. 방에 들어왔는데, 총알이 마치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거 같은 거예요. 무서워서 덜덜 떨었습니다.

작가님의 책엔 유머가 풍부한데요. 『꽃의 나라』같이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시더라고요.
저는 유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장 좋은 말은 새로운 의미가 있는 말이죠. 우리가 몰랐던 것을 깨우쳐주는 말이요. 하지만 그런 말은 드물죠. 그다음에 좋은 말이 사람을 웃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나서 뻔한 지루한 말을 늘어놓느니, 유행하는 유머로 서로 웃는 편이 좋죠. 그러면 서로의 유대관계도 돈독해지고요. 저는 소설에서도 슬픔과 웃음을 동격으로 봅니다. 힘들게 일하는 현장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일은 흔하죠. 그들은 별것도 아닌 것에 과하게 깔깔거리며 웃어요. 그에 반해 편한 직장에서는 오히려 유머와 위트가 없죠. 유머는 삶과 삶이 부딪히는 접점에서 본능적으로 나오는 거 같아요. 저는 힘든 노동을 하며 웃음을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웃음이 저런 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우리는 대한민국에 취직한 게 아니에요. 이곳의 국민이죠”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누렇게 삭아버린, 한 번도 지키지 않았던 생활 계획표 같은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은 미움이다. 미움의 힘이다. 우리가 이렇게 앓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때문이다. (……) 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 『꽃의 나라』 작가의 말 中 )

현대 사회에도 『꽃의 나라』에 나오는 폭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폭력의 형태가 좀 바뀌었지요. 예전에는 물리적인 폭력이 주였어요. 야만적이고 무식한 폭력이죠. 그에 반해 지금은 폭력의 형태가 더욱 교묘해졌죠. 회사를 경영하듯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조련해가는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는 약자에 대한 멸시가 어느 때보다도 심하지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라짐과 동시에 문화?예술에 대한 경시 그리고 행정적인 압력 등이 커졌어요. 예를 들면, 4대강 사업 같은 것도 그런 것이라고 봐요. 이제는 국가가 한 나라의 거대한 기본 틀을 마음대로 판단해서 결정해버리죠. 그게 바로 국가폭력이에요.

GNP가 2만 불이면 뭐합니까? 우리는 여가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GNP가 올라가서 차들은 더 좋아졌어요. 하지만 더 비싼 차를 가지고도 자신에게 맞는 여행코스를 못 정하죠. 기껏해야 1박 2일에 나오는 데 찾아가는 게 다에요. 욕망의 주체가 사라진 거죠. 그러고 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충성해야 해요.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에요. 이대로 끊임없는 생산의 시스템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시스템을 모색할 것인가?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죠.

저는 국가가 나서서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하는 순간, 거대한 국가의 폭력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대한민국에 취직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여기에 태어난 국민이죠. 그게 차이에요. 그런데 국민을 국가라는 회사에 취직한 사원으로 생각하는 거 자체가 문제지요. 그거 자체가 폭력이에요.

『꽃의 나라』에 시공간을 표기하지 않으신 이유도 말씀하신 맥락과 같습니까?
네, 의도적으로 그랬어요. 아까도 이야기가 했지만, 월권에 대한 고발소설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역사에 대한 기록도 아니고요. 형태만 바뀌었지 국가의 폭력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다면 앞으로 더 큰 국가폭력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국가란 것 역시 어떤 특정 개인의 이익으로 대변되기에 그 폭력의 형태가 더욱 잔혹해지는 거죠. 우리는 항상 이러한 폭력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총으로 죽이는 것과 도시빈민으로 몰아가서 죽이는 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힘들게 노동만 하다가 결국은 국가의 혜택도 못 받고 죽어가는 존재가 실제 존재하잖아요. 그게 바로 폭력의 희생자들이죠. 위정자들의 폭력은 언제라도 나올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이 소설은 80년 5월에 대한 기록이 아닌 겁니다.

작가님께서는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공포의 많은 부분도 권력계층이 만들어낸 허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십니까?
공포의 태반은 우선 거짓이죠. 역대 독재자들이 사용한 최고의 무기가 공포였어요.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거. 그게 실제로 나한테 일어날 확률이 높다 낮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 책 본문에도 알래스카 썰매견들 이야기가 나오죠. 제가 본 자료에 의하면, 젊은 썰매견들 사이에 일부로 늙고 병든 개를 끼워 넣고 그 개만 채찍질한다고 해요. 튼튼하고 젊은 개는 안 때리겠죠. 젊은 개가 다치면 노동량이 적어질 테니까요. 그런데 젊은 개들은 자신을 안 때린다는 것을 모르고, 맞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만으로 더 열심히 썰매를 끌게 되죠. 공포심을 이용한 역대 독재자들을 보면 자신도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정통성이 없고 능력이 안 되는 상태에서 욕망을 채우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죠. 어찌 보면 참 슬픈 역사지요.

현대인들을 짓누르는 공포는 무엇이 있을까요?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도태되는 것에 대한 공포죠. 주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류가 무엇인가요? 사실은 허상일 뿐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내요. 그리고 ‘이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너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다’라며 스트레스를 이용한 경쟁을 시키죠. 그것도 과도한 경쟁을요. 그리곤 그 사람의 능력을 소모하는 형태로 끝나고 마는 충성을 요구하죠. 역으로면 보면 가장 좋은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이 공포심을 안 가지는 사회겠지요.


담임이 가리키는 곳은 저번에 제출한 학생생활보고서의 장래희망 칸이었다. 나는 거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썼다. (……)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행복한 사람’에 줄 두 개를 긋고 나서 ‘판사’라고 썼다. 나는 판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 되었다. 내 희망이 판사로 바뀐 게 공적인 것일까, 사적인 것일까를 잠깐 동안 생각했다 ( 『꽃의 나라』 p. 74~75)

작가의 말에서 희망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 사회에 만연하는 희망이란, 대부분 위정자나 이익집단들이 말하는 자기들의 희망 같은 거예요. 무엇보다 희망이라는 말이 너무 남발되어 왔고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보자기처럼 쓰여 왔죠. 그래서 희망이란 말을 많이 할수록 절망스런 사회죠. 살기 좋은 사회에서 굳이 희망이 필요할까요? 희망을 말한다는 건, 현재가 힘들다는 표현밖에 안 되죠.

우리에게 희망은 늘 미래잖아요. 10대에게는 좋은 대학에 가서 20대에 행복해져라. 20대에게는 취직해서 30대에 행복해져라. 30대에게는 부지런히 돈 벌어서 40대에 행복해져라. 그렇게 우리가 말하는 희망은 늘 그다음 세대죠. 그러면 행복은 언제 누려요?

희망이라는 말이 필요할 때는 식민지 시대 정도죠. ‘우리 함께 힘을 모읍시다!’라는 정도의 뜻에서 사용되는 희망이 진짜 희망이 아닐까요?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는 희망이라는 말은 우리가 겪는 결핍을 인정하라는 뜻의 희망밖에 안된다고 읽히는 거예요. ‘왜 내가 결핍 속에 있어야 하나?’, ‘왜 내가 여가를 뺏기고 인간관계를 끊어가면서까지 일을 더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만드는 희망이죠. 저는 그래서 희망이라는 말을 안 믿는 거예요.

주인공은 장래희망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적지만, 타인의 의지로 ‘판사’로 바뀌고 맙니다. 이 장면에서 말씀하고 싶으셨던 게 있을 거 같은데요.
그건 실제로 제가 고등학교 때 겪은 거예요. 우리 사회에는 지나친 성공신화가 자리 잡고 있어요. 지배계급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죠. 그와 동시에 ‘리더십’이라는 말이 정말 많이 나와요. 어떻게 전 국민이 다 리더가 됩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파트너십이지요. 동시대의 사람들과 연대해서 서로 안 다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지요. 우리 학생들에게도 리더십 이전에 파트너십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서는 제일 행복할 때를 “날씨가 좋을 때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그 말은 녹색평론 발행인이신 김종철 선생이 하신 말씀이에요. 그리고 저 역시 그 말에 동감해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세요. 어느 시험에 합격했을 때, 막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뭐 이런 거 같은 거지요? 그런데 그 이후를 또 생각해보세요. 그런 것들이 항상 똑같은 감정으로 지속되지는 않아요. 늘 반대급부가 있죠. 원하는 학교에 합격한 순간 또 다른 고난이 찾아와요. 그렇게 차곡차곡 인생의 문제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사랑해서 결혼했으면 다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실제 그런가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행복한 시간들이란 참 짧구나!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사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만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그러한 순간들은 행복이라기보다는 기분 좋았던 순간 같은 것에 가깝죠. 행복이란 좀 더 보편적이고 일정한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행복이란 뭘까? 내가 화가 안 나고, 마음이 안정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저절로 생겨나고, 서로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있는 것. 또한, 내가 당장 어디에 안 쫓기고, 안 불편하고, 두렵지 않은 거. 그게 행복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런데 그런 상황을 만들기란 쉽지가 안잖아요.

그러다 김종철 선생의 책을 읽고는 많은 걸 느꼈어요. 이를테면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는 ‘날씨가 좋을 때구나!’라는 거지요. 자연에서 주는 아주 단순한 거 가지고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잊어버리고 다른 것에서 자꾸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죠. 우리가 행복하려면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담임교사처럼 판사가 되어야 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는 거예요.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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