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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제 많이 안 죽여요… 사실, 죽이는 것도 힘들어요”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작가의 욕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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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는 바빴다. 최근에 작가들과 함께 몽골에 다녀왔다. 인터뷰 일정을 조정하는 중에는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올라오자 마자 2학기가 개강했다. 백가흠 작가는 현재 다섯 개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맡고 있다.

『힌트는 도련님』 힌트는 백가흠


백가흠 작가는 바빴다. 최근에 작가들과 함께 몽골에 다녀왔다. 인터뷰 일정을 조정하는 중에는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올라오자 마자 2학기가 개강했다. 백가흠 작가는 현재 다섯 개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맡고 있다.

홍대 카페로 들어온 백가흠 작가는 “방학 동안 조금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얘기인즉, 방학 동안 부지런히 장편 연재, 단편과 산문을 쓰느라 쉬지 못했고, 개강 직전 일주일 동안 작정하고 놀았다며 웃었다. 별로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주 좋아요. 마음이 편안해요. 글쓰기가 잘 되고 있어서, 지금의 생활 패턴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이번에 『힌트는 도련님』이 나왔을 때, 처음으로 제 손으로 직접 책을 부쳤어요. 항상 바쁘다는 얘기만 하고 살았는데, 뭔가 많이 놓친 기분이 들었거든요. 책을 내는 일도, 책을 받는 일에도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소원했던 부분들을 직접 챙기고 싶었어요.”

이런 심경의 변화 때문일까? 백가흠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은 자못 이전 두 권의 소설집과 분위기가 다르다. 독자와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는 소설적 재미와 더불어 충격적인 소재로 독자를 압도했다. 영아 매매 사건, 살인, 강도, 기형화된 가족 판타지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백가흠 = 극서사’라는 모종의 공식을 만들어버렸다.


그간 사회 시스템과 권력에 감춰진 불쾌한 진실을 응시해오던 그의 시선이 이번 소설집에서는 조금 더 보편적이고, 내면적으로 옮겨간 듯 하다. 물론 날카롭고, 섬뜩한 이야기들은 여전하다.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그와 별다를 것 없이 참혹한 결과를 낳는 소문의 문제, 작가의 자의식과 소설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8편의 단편으로 실려있다.


백가흠 작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단편 소설은 그간 문학 계간지에 발표했던 것을 모은 것이므로, 어떤 특정한 시기로 그의 소설이 달라졌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소설에 대한 그의 심경과 마음은 사뭇 변화가 생긴 듯 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단편집을 내기 전에 장편을 쓰다 엎었어요. 다 쓰고 보니까, 도무지 왜 이 소설을 썼는지 저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소설 속에 작가의 욕망이 너무 많고, 남의 소설처럼 읽는 내내 숨이 막혔어요. 불교, 힌두교 등 종교에 대해 공부하며 원죄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결과물은 그저 내 욕심 같이 느껴졌어요.

한밤 중에 편집자에게 전화해서 얘기했어요. 책은 내가 죽고 나서도 자기 생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이건 정말 자신감이 없다고요. 소설은 독자에게 온전히 가는 건데, 어쩐지 이 작품은 자꾸 설명해야 될 것 같았어요. 그럼 벌써 끝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책의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오랜 시간 준비해서 쓴, 첫 장편 소설을 엎었을 때 주변 사람들도 안타까웠겠지만, 작가 본인의 심경이야 오죽했을까. 그는 편집자에게 전화를 끊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술 마시고 자고 일어났는데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런 마음은 처음이었어요. 항상 불안에 떨거나, 원하는 게 갖춰지지 않을 땐 화도 많이 났었거든요. 그 이후에 쓴 소설이 『통』과 『낙타』예요.”


작가 일상을 회복하다


이 두 단편은 그에게 소설 쓰는 즐거움을 회복시켜준 소설이었다. “강박증이 없어졌어요. 소설은 이래야 한다. 백가흠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 이런 상념들이 사라졌어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도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 동안은 제가 갖고 있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심했거든요. 지금은 즐거워요. 지금 새로 연재하는 작품을 쓸 때는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 동안 백가흠 작가의 마음을 괴롭혔던 것은 욕망이었다. “내 소설로 잘되고 싶은 욕망. 그런데 잘 되는 게 뭐지? 상 하나 받는 건가? 그런 질문이 들더군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사라졌어요. 그런 결과는 실제 소설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들이잖아요. 작가의 포즈나 ‘후까시’에 관련된 거지.”

욕망을 발견하고, 그가 구해낸 것은 ‘생활’이었다. “일상과 일이 분리되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게 일상과 일 양쪽에 악영향을 준다는 걸 알았어요. 예전에는 강의도 두 개 이상 맡지 않고, 술 약속을 갖거나, 사람들을 만나곤 했어요. 일상에 대한 욕망과 문학적 욕망이 뒤엉키니까 서로를 돌보지 못하고 엉망진창이 되어갔어요. 작가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활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일상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어요.”

그때부터 그는 도서관이나 집 근처 카페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규칙적으로 글 쓰는 시간을 확보했다. 지인과의 잦은 만남을 줄이고, 일상에서 생활 근육을 키워갔다. “문학, 소설이라고 하면, 존재감이 엄청 크죠. 어떤 소설을 써야겠다. 이런 소설책 한 두 권은 인류 역사에 남겨야겠다는 야망이 생겨요. 하지만 그런 열망만으로는 소설이 써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이제 큰 욕심은 없어요.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일상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어요.”


“요즘도 많이 죽여?”


“요즘도 많이 죽여?”

정과리 문학평론가가 백가흠 작가를 만날 때면 던지는 농담이다. “저 이제 많이 안 죽여요. 사람을 죽이려고 죽이는 건 아니고요. 사실, 죽이는 것도 힘들어요.” 작가의 대답이 아니라면, 섬찟했을 법한 대답이다. 실로, 가상의 서사 속에서 인물들을 죽여야 하는 고충이 만만치 않단다.

“제가 그린 인물이지만, 저도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요. 꿈에 나타나서 절 괴롭혀요. 정확히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는데, 얼핏 어느 소설에서인가 마주친 느낌이 강렬하게 있어요. 꿈속에서도 그들이 행복하지가 않아요. 잠에서 깰 때면 고통스럽죠.”

하지만 그의 소설이 사회적 폭력을 응시하고 있기에, 그 속에 등장하는 죽음은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소설이 낭만을 주는 것에 반대해요. 본질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기본적으로 낭만이 아니라, 불화나 갈등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을 죽음, 끝으로 몰고 가는 사회 시스템, 권력의 균형을 깨뜨리는 남성 판타지를 그려낸 소설 속에서, 선정적인 소재만을 언급하는 데에 반감을 갖기도 했다고.

“이런 생각도 했죠. 그래? 그렇다면, 내가 (직접) 안 죽이고도 니들을 다 죽여버리겠어.(웃음) 직접적인 폭력보다도 무서운 게 많거든요. 소문, 제도 같은 게 그렇죠. 하지만 그것마저도 생각이 바뀌었어요. 머리로 계산하다 보면 진심은 사라지고 테크닉만 남거든요. 그런 계산과 강박을 버리고 소설을 ‘진심’으로 써보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소설들이 진심 없는 소설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처음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어요. 마음이 가난하고 낮은 자를 위한 소설을 쓰고자 했거든요.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은 성경에 나오는 얘기고, ‘낮은 자’는 계급을 말하는 거죠.” 그가 이전 두 권의 소설집에서 보여준 어두운 세계는 “철저하게 마음 먹은 주제 안에서 끌어낸 이야기”였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기독교 적인 사고가 있는데, 교회 밖을 내다 보면, 사회가 너무도 건강하지도 건전하지도 않은 거예요. 왜 그럴까 많이 생각했어요. 작가 데뷔하고 나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의문이 커졌어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꾸 괴롭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봤더니 그런 소재가 끝도 없이 나왔어요.

이제껏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이야기 못한 소재가 더 많아요. 자본까지 가지도 못했거요. 여전히 제도나 시스템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느끼거든요. 아동, 노인, 가난한 자, 장애인, 군인. 정말 많죠. 이런 주제 의식을 놓고 철저한 계획 하에 글을 써왔어요. ”


이번 소설집이 나왔을 때 누구보다 아버지가 기뻐하셨다고. “첫 책 냈을 때도 아버지는 기뻐하셨어요. ‘너 대단하다. 이런 재주가 있는지 몰랐다’며 지인에게 책을 돌리셨어요. 그런데 돌리고 나니까 이상한 거예요.(웃음) 첫 책을 읽고 난 사람들이 ‘가흠이 요즘 별일 없어요?’ 이런 얘기를 물으니까, 아버지는 상처를 받으신 거죠.(웃음) 이번 책은, 무척 기뻐하셨어요.”

“이제 개그도 많이 할 거예요. 코메디도 쓰고요.(웃음) 우리 삶에 그런 위트가 존재하거든요. 심지어 상가 집에서도 거기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잖아요. 이제 그런 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좋은 작가 되려면? 시를 읽어라


막 시작되었을 새 학기 강의에도 이런 ‘변화’가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까? 백가흠 작가는 서른 한 살 때부터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어떤 교수님이었을까? “시니컬한 교수님이었어요. 애들이 싫었어요.(웃음) 의도적으로 성질을 내고 무시했어요.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휴강 잘하고. 그러다 어느 날 제 스무 살을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어처구니 없는 거예요.

지금 애들이 그때 저보다 훨씬 글도 잘 쓰고, 문학의 열정도 큰데, 내가 무슨 근거로 애들을 무시했었나. 그때부터 애틋한 마음이 생겼어요. 술을 사주는 한이 있어도, 너희들 돈을 공으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수업도 달라졌죠. 지금은 친절해졌어요.(웃음) 솔직하게 대화하고요.”


안쓰럽고, 이제는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는 학생들에게 그가 가장 자주 해주는 말은 이거다. “시를 읽어라.”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어요. 시를 모르고서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문학의 근간은 시예요. 장담컨대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거의 모든 시를 읽고 있어요. 이번 방학 때도 도서관에 윤대녕 선배와 있었는데, 그때 읽었던 허수경, 박형준 시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어요. 꼭 표현력을 흡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학을 하기 위해 채워 넣어야 하는 기름 같은 거예요.”

“젊은 친구들은 빨리 데뷔해서 잘 되고 싶겠지만, 그 이후에 더 힘들다는 걸 이미 알 거예요. 그런 본질적이지 않은 욕망을 품고 있으면, 결국 포즈 밖에 남지 않아요. 딴짓하게 되요.” 이건 그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해주는 조언이다. 앞에서 그가 들려준 얘기를 떠올려보니 이 말이 얼마나 진심 어린 조언인지 새삼 느낀다. ‘진심’을 다해 썼을, 그의 다음 소설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번 더 ‘진리’를 강조했다.

“평생 좋은 작가가 되려면? 지금부터 시를 읽어두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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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가을, 백가흠이 권하는 좋은 시

박정대 『삶이라는 직업』
장석남『뺨에 서쪽을 빛내다』
이홍섭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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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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