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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개’와 ‘연예인’이 많은 도시는 처음 봤어요!

일산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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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내게 ‘일산’이란 동네는 꽤 흥미로운 텍스트였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곳은 동서남북이 전부 오피스텔로 둘러싸여 있어서 가히 ‘오피스텔의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복잡한 일을 겪은 후, 일산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꽤 복잡한 소설 연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작업실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일산에 오자 작업실에서 글을 쓴 건 불과 며칠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작업실 앞 카페에 하루 대 여섯 시간씩 죽치고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거푸 마셔가며 원고를 썼다. 이쯤 되면 “카페라면 너네 집 앞에도 있는 거 아니었어? 굳이 작업실 구하겠다고 그 난리를 친 건 왜 그런 건데?”라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동네 백수처럼 보이는데 “작업실 없으면 작가로 안 보일까봐”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신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내게 ‘일산’이란 동네는 꽤 흥미로운 텍스트였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곳은 동서남북이 전부 오피스텔로 둘러싸여 있어서 가히 ‘오피스텔의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언젠가 일산에 오니 좋으냐는 선배의 말에 이곳이 ‘독신자들의 도시’ 같단 얘길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오피스텔 밖을 나서면 반경 몇 미터 안에 일인용 반찬을 파는 반찬가게와 24시간 운영하는 식당, 카페, 네일숍, 대형마트 등이 군집해 있어 어디에 가든 불편함이 없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오피스텔마다 빠지지 않고 위치한 ‘동물병원’이었다. 과연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고독을 다루는 방식의 정점엔 개가 있는 것인가. 덕분에 개를 키우는 독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 동네의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기 힘든 문구가 붙어 있다. 가령 ‘개를 키우지 맙시다’가 아니라 ‘개 짖는 소리에 놀라지 맙시다’라는 문구 같은 것들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개와 함께 사는 일산주민’이란 캐치프레이즈가 어울릴법한 황당하고 사랑스런 동네. ‘개털을 창문으로 버리지 맙시다’ 같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문구는 내가 사는 오피스텔 곳곳에 지금도 붙어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개’를 본 것 역시 처음이었다.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가히 ‘개 전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나는 말을 안 듣는다고 주인에게 파리채로 펑퍼짐한 궁둥이를 맞는 리트리버나 홀랑 등을 밀어 버린 악마견 비글, 멀리서 보면 꼭 털 뭉치가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활발한 푸들과 식욕이 왕성한 나머지 내 다리에 묻은 아이스크림까지 핥아대던 시추 등등을 보았다. 저녁 9시쯤 산책을 나가면 이 개들은 어김없이 동네 마실을 나온 주민들처럼 오종종하게 공원에 모여 놀고 있었다. 가끔 큰 맘 먹고 호수공원에 가도 마찬가지. 고양시는 분명 일산을 ‘꽃의 도시’라 홍보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는 듯 했지만, 몇 달 이곳에 있어본 결과, 개 없는 일산의 모습이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내게 이곳은 애완견 친화적인 도시이다.

개를 키우지 않는 나는 딱히 긴 연재소설을 준비하는 기간의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 동네를 자주 돌아다녔다. 사실 처음 한 달 동안은 새로운 장소 탐색을 한다는 명목으로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작정하고 동네를 훌쩍 벗어나 쇼핑가가 밀집해 있는 ‘웨스턴 돔’이나 ‘라페스타’까지 걸어가기도 했고, ‘나는 가수다’의 녹화가 있는 MBC드림 센터 앞에 얼쩡대기도 했다. 혹시 아는가! 운이 좋아서 ‘박정현’의 얼굴을 볼 수도 있을지.(그곳에서 ‘최고의 사랑’에 출연한 공효진과 윤계상을 본 후 생긴 증세였다) 아무 카페나 들어가 ‘사람들 관찰하기’가 취미가 된 데에는 직업적인 원인도 있지만 개인적인 성향도 컸다.

재밌는 건 한남동 집 근처의 카페에서도 쉽게 보던 연예인을 이곳 일산의 카페에서도 자주 본다는 사실이었다.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채 커피를 마시는 김지운 감독이나 아이들을 줄줄이 끌고 산책하는 ‘션’을 본 일만큼이나 자주 말이다. 일산 작업실 앞 카페에서 나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과 두 번 마주쳤다. (그는 멋진 선글라스를 낀 채,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재밌는 건 이름을 기억하기 힘든 훌륭한 단역 배우들을 정말 자주도 본다는 사실인데 그래서 일산은 내게 점점 더 흥미로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작업실에 들어가 폭풍 클릭으로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그뿐인가. 갑자기 모 드라마 촬영을 내가 일하던 카페에서 하는 바람에 졸지에 카페에 앉아 일하는 사람으로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여사님! 얼굴이 나올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묻는 감독의 말귀를 못 알아들어 기어이 “저기 선글라스 쓰신 여사님!”이란 얘기까지 들어야 했지만 어쨌든. (이제 내 얼굴도 ‘여사’로 불릴 만큼 중후한 주름살을 갖기 시작한 셈) 내 옆에서 명랑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두상이 너무나 예뻤던 그 남자가 배우 ‘온주완’이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곳을 좋아하게 된 건, 내키면 언제든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 때문이다. 내가 살던 한남동엔 도서관이 딱 두 개 밖에 없는데, 그나마 용산도서관과 너무 오래된 나머지 군데군데 책들이 삭기 시작한 ‘남산도서관’까지 포함해서다. 그것에 비하면 도시 하나에 도서관이 대여섯 개는 되는 이곳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즐거운 장소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보이는 도서관에 들어가서 서가에 꽂힌 책을 계통 없이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작가로서 꽤나 체통 없는 짓을 하기도 했는데, 막 출간된 『아주 보통의 연애』(그렇다. 내 책이다!)를 ‘도서 구입란’에 조용히 적어 넣고 책이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을 재봤는데, 과연! 일산은 작가들의 도시라 책을 구매하는 속도도 빠르고 적절하다. 하하하.

대부분의 작가들은 소설을 쓰는 동안 다른 사람의 책을 잘 읽지 않는 모양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아무래도 그쪽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더 타당하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경우, 소설이라면 몰라도 가벼운 에세이 정도는 많이 읽게 된다. 생각해보니 바로 이때가 집중적으로 에세이를 읽는 기간 같다. 사실 연재를 얼마 남기지 않고 소설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소설을 읽다보면 가뜩이나 불안한 감정에 “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이미 써버렸다니!”라고 뒤통수 맞듯 절망하기 딱이라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도서관에서 그렇게 읽기 시작한 에세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크랩』이었다. 어쩌다보니 시드니 올림픽을 취재한 ‘승리보다 소중한 것’과 함께 읽기 시작했지만, ‘그리운 80년대의 추억’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쪽에 훨씬 더 관심이 가서 먼저 읽기 시작했다. 얇은 두께의 책이라 서가에 걸터앉아 낄낄대며 다 읽고 말았다.

"무척 재미있었던 것은 ‘에스콰이어’를 창간한 아놀드 깅리치가 쓴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네스트 헤밍웨이에 대한 회고담이다. 이런 기사가 예전에 ‘에스콰이어’에 실렸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시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피츠제럴드에 대한 깅리치의 따뜻한 마음이 구구절절이 느껴지는 매우 훌륭한 글이다.

깅리치는 이 글에서 스콧 피츠제럴드의 페니스가 유난히 작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으며, 그렇게 된 데는 헤밍웨이의 유고작 『이동축제일』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며 분노를 터뜨린다. 깅리치는 1935년 봄, 우연한 기회에 피츠제럴드의 페니스를 언뜻 본 적이 있는데 결코 작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롤스로이스 사이에서 자동차의 마력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단 한마디로 대답했듯이 그것은 adequate(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서는 비평가들로부터 호되게 혹평을 받고, 사후에는 페니스의 크기에 대해서까지 이러쿵저러쿵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작가라는 직업도 쉬운 게 아니다.

내가 다니던 잡지사와 같은 사무실을 쓰던 잡지사가 ‘에스콰이어’였다. 한 사무실을 쓰다보면 오고가며 보게 되고,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겹치고 서로 친해지게 마련인데 남성지에서 일하면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 자동차에 이어 섹스 기사다. 편집장이 기자들을 향해 험악한 얼굴로 “섹스 했니? 아직도 안 했니?”라고 묻는 건 다름 아닌 섹스 기사 마감했냐는 말인 셈이다. 하지만 ‘에스콰이어 50주년 판’에 실린 이 기사엔 페니스가 등장하긴 하나 보통의 섹스 기사가 아니었다. 이것은 가히 문학적인 페니스가 아닌가. 음란하다기 보단 시사적인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의 성기 이야기가 이렇게 버젓이 잡지에 실릴 수 있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낀다. 만약 한국이라면? 말을 말자. 상상도 안 된다.

이 책은 하루키가 <넘버>라는 일본 잡지에 연재한 칼럼들로 ‘에스콰이어’나 ‘뉴요커’ ‘라이프’나 ‘피플’ 같은 잡지와 ‘뉴욕 타임즈’를 번역해 흥미로운 기사를 소개하고 그것에 대한 짧은 글을 모은 것이다. 덕분에 1980년대 미국 문화의 자질구레한 스캔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가령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과 우리와는 전혀 다른 특징들, 가령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터프함 같은 것 말이다.

특이한 모임의 예를 들어보자. 이를테면 ‘짐 스미스 클럽’이라는 것이 있다. 전국의 짐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으로, 일본으로 말하자면 ‘야마다 이치로 협회’쯤 될 것이다. 회원수는 현재 1,218명이며 클럽의 목적은 짐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회장 제임스 H 스미스 주니어는 “짐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전국의 모든 짐 스미스들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짐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겪게 되는 커다란 문제점의 하나는 가명을 쓰는 것으로 오해를 받는 일이다. 이 협회 회장인 짐 스미스씨처럼 부인의 이름이 제인인 경우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우리로 말하면 ‘김철수’나 ‘이영자 협회’정도가 될까. 요즘에 태어나는 아이들 중 최고의 인기 이름이 ‘이민준’이나 ‘김수빈’이라고 하니 한국식으로 말하면 ‘김민준 협회’정도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늘 이름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 부분을 유심히 읽었다. 사실 광주 김수빈, 대구 김수빈, 서울 김수빈과 제주 김수빈들이 한데 모여 ‘전국 김수빈 단축 마라톤대회’같은 걸 열면 꽤 재밌지 않을까. 나라면 나와 이름이 똑같은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쌍둥이 동생을 보는 것 같은 친근함을 느낄 것 같다. (내 경우 1960년대 풍의 어감 때문에 내 또래의 백영옥 씨를 만나는 건 드물다. 하지만 희끗한 머리의 60대 백영옥 씨가 ‘스타일’을 들고 찾아와 사인해달라고 했을 때, 정말 너무 반가웠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어느새 긴장이 풀어진다. 소설은 마치 논문을 읽듯 동업자의 작품을 샅샅이 파헤친단 느낌이라면 에세이 쪽은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 앨범을 넘겨보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다. “그래, 이 작가는 달리고 나서 마시는 맥주와 두부를 좋아했구나. 아! 이 작가는 그레이프프루트와 몰스킨 노트를 좋아하는구나!”따위를 아는 게 소설 쓰기엔 별 도움이 되진 않아도 도대체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우울한 날 오후엔 참 많은 도움이 된다.

 

은희경의 『생각의 일요일들』을 읽는 일요일 저녁엔 달력을 두 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참 소설을 연재할 때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의 스케쥴을 기록한 달력과 자신의 개인 스케쥴을 담은 달력을 함께 쓴다고 한다. 아! 정말 좋은 생각이다. 두 개의 달력을 사용하면 주인공이 그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지 않을 것이다. 일단 소설이 1500매쯤을 넘어가기 제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 해도 앞에 썼던 내용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법이니까.

생각해보니 나는 꽤나 열심히 누군가를 따라했다. 하루키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의 책을 읽고 나서 파스타와 함께 맥주를 훨씬 더 많이 마시게 되었고, 아멜리 노통브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녀 때문에 소설을 쓰기 전에 더 진한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됐다. 당연히 폴 오스터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1920년대 브루클린 다리’에 대한 두툼한 논문을 찾아 읽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언제나 좀 막막하다고 말했었죠? 그때는 랩탑에서 글자 크기를 11포인트로 설정해 놓아요. 그런데 어느 정도 소설이 풀리면 10포인트로 다시 바꿉니다. 소설이 막막할 때는 글자조차 흐릿하게 보이다가 자리를 잡아가면 그제야 글자가 또렷하게 보인다는 것. 간사하게도 그 단계가 되면 11포인트이기 때문에 화면이 벌어지는 느낌이고 내용까지 산만해지는 것 같다니까요. 의기양양하게 기준 크기로 환원!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저녁, 책장을 넘기다가 이 문장을 발견했다. 내겐 글자크기 ‘11포인트’만큼이나 낯선 일산에 와서 새로 쓸 소설의 첫 문장을 썼다.“오전 일곱 시부터 주름 없이 다린 수트에 넥타이를 매고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라고 시작되는 문장이었다. 언제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쓰게 될까 늘 막막하고 아득했는데, 같은 고민을 하는 선배의 에세이를 읽으니 마구 위로가 됐다. 그렇게 도서관을 나와 다시 호수 공원을 산책했다. 장항동쯤에 왔을 때, 어디선가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따라 걷다가 가수 인순이가 ‘거위의 꿈’을 열창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와! 이거, 정말 대단한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손담비가 나와 ‘토요일 밤에’를 부르며 멋진 춤을 추고 있었다. ‘태권도의 날 평화문화 축제’라고 쓴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무대 위의 피날레는 크라잉 넛이 장식하고 있었다.

은희경과 하루키를 읽던 날, 손담비를 보았다라고 말하면 누가 믿어줄 것인가. 그것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를 본 날, 김지운 감독의 콧수염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일 만큼이나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다. 일산은 이상한 나라의 원더랜드 임에 틀림없다. 소설가들의 작업실이 유독 많은 도시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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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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