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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러브스토리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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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평생 불구가 된 여인, 그녀의‘시’에 반해 비밀결혼까지! 내가 말한 대로 당신의 책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 역시 사랑합니다. 내가 한번 당신을 봤다는 걸 아나요?


엘리자베스 모울턴 바렛에게


1845
서레이, 영국

친애하는 미스 바렛, 진심으로 당신의 시를 사랑합니다. 이건 아무렇게나 하는 칭찬 편지가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든, 당신의 천부적인 재능은 즉각적이고 당연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결론을 맺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내가 처음으로 당신의 시를 읽은 이후로, 당신의 시가 끼친 영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계속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 웃음이 납니다. 기쁨에 넘쳤던 초기에는, 내가 정말로 즐기고 있을 때 순전히 수동적으로 즐기는 버릇을 버리고 이걸 한 번 해 볼 거라고 생각했고, 당신의 시에 대한 나의 동경을 완전히 정당화 시켜버렸습니다.

어쩌면 심지어, 충실한 동료 장인으로서 결점을 찾아 봐야 하는데, 결국 그래봤자 당신은 자랑스러워해야 할 만큼 결점이 작겠지요. 당신의 시에서 부터는 전혀 결점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시는 나의 내부로 들어가 사라져 버리고,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살아있는 시는 단지 꽃 한 송이가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생명입니다. 꽃이 말려지기 위해 누워 있다가, 평평하게 눌려져서, 값이 높게 매겨져 책 안에 적절한 설명과 함께 넣어지고, 덮인 뒤에 사라지는 것과는 얼마나 다른 건지요. 물론 그 책은 ‘식물도감’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말입니다.

결국에는 나는 조만간 그것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지요. 왜냐 하면 지금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당신의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내 신뢰에 대한 이유를 이런 저런 것들로 말할 수 있어요. 탁월하고, 신선하며 낯선 음율, 풍부한 언어, 절묘한 비애감, 진실하고 신선하고 과감한 사고등 이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당신, 당신 자신에게만 말을 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감성이 다 함께 피어나는 군요.

내가 말한 대로 당신의 책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 역시 사랑합니다. 내가 한번 당신을 봤다는 걸 아나요? 케년씨가 어느 날 아침에 말했지요. “미스 바렛을 만나고 싶나요?” 다음에 그는 나를 소개하러 갔고 다시 돌아왔지요. 당신은 굉장히 몸이 좋지 않았어요. 수년전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나는 여행길에 아주 곤란한 여정에 이른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마치 내가 성당의 지하에서 세계의 불가사이에 가까이, 아주 가까이 간 것처럼 말입니다. 칸막이만 밀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아주 작은, 그래서 지금은 작게 보이는, 들어가기에 딱 맞는 빗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쯤 열려진 문이 닫혔고 나는 수천마일 떨어진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요. 그곳은 영원이 찾을 수 없지요.

음, 이 시들은 내가 느끼기에 진정으로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즐거움이자 만족이었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충실한 로버트 브라우닝.


로버트 브라우닝(1812-1889)은 빅토리아 시대의 뛰어난 낭만파 시인으로 시집 『남과 여(Men and Wemen)』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집은 그의 부인이자 시인 엘리자베스 바렛에 영감을 받았고 그녀에게 헌정되었다. 그의 절묘하게 다듬어진 드라마틱한 독백형식의 시는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로버트가 엘리자베스와 서신을 교환하게 된 것은 엘리자베스가 서른 아홉 때였다. 당시그녀는 유명하고 촉망받았던 시인이었지만 장애가 있는 데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서신교?으로 둘은 깊고, 낭만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고, 그 다음해에 이태리로 비밀스럽게 도망갔다. 그들은 아들 로버트 “펜(Pen)” 브라우닝 을 1849년에 낳았고 엘리자베스가 1861년 불의의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지속되었다.


번역 후기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라.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이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인생이 너무도 짧기 때문이다.

- 로버트 브라우닝


어쩌면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바렛의 러브스토리는 문학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게 아닐까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낙마사고로 척추를 크게 다쳐 평생을 쇼파에서 보내야만 했고, 그녀가 출판한 시집에 감동을 받은 연하의 로버트 브라우닝은 이 편지를 보냅니다. 앞으로 전개될 고난과 사랑의 행로를 그 때엔 짐작도 하지 못했겠지요. 권위적인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태리로 도망을 가서 비밀스럽게 결혼을 하지요. 물론 아버지는 결혼을 승낙하지 않고 손자가 태어나도 재산을 전혀 물려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네 번의 유산 끝에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펜’ 이라고 지을 정도로 문학을 사랑하는 부부였던 것 같습니다.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의 모든 것 - 불구의 연상 여자, 연하남자, 결혼반대, 아내의 죽음 등등- 이 담긴 그들의 인생이 이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되었으니 과연 러브레터는 한 사람, 아니 두 사람과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에도 사람들은 러브레터를 쓰겠지요? (저는 비밀입니다) 그게 이메일이든, 문자든, 과감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이런 편지에도 엘리자베스는 그의 구애를 거절하다 결국 사랑을 받아드리게 되었으니까요. 그것도 서른 아홉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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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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