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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밖에 안 된 아이와 도대체 여행이 가능할까?

일본 대지진 전, 짧은 추억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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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행보단 여행기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막 세살이 된 아들 중빈이와 터키를 여행하며 쓴 여행기였다. 세 살 밖에 안 된 아이와 도대체 여행이 가능할까?

이 글을 보내기 전에 고백 하나 하자면, 사실 이 글은 작년 도쿄의 한 호텔에 처박혀 아사히 맥주를 마시며 정신없이 쓰다 만 글이었다. (1년 5개월이 지나서야 마무리 지었다) 아마도 당시의 나는 마감을 꽤나 잘 지켰던 모범적인 작가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 보니 내 원고는 2011년 2월 18일을 끝으로 장장 6개월 넘게 업데이트 되지 않고 멈춰서 있다.

작가 입장이라면 “아! 정말 대단하군. 잘리지 않고 용케도 버텼어!”라고 말할 수 있고, 인터넷 서점 입장이라면 “이런 망할 작가를 어떻게 자르지?” 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기묘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작가에게 원고를 독촉하지 않은 지구에서 가장 유순하고 부드러우며 희귀한 내 원고 담당자 때문이며 내 잘못은 아니다(라고 박박 우기고 싶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성실한 작가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작년, 소설에 필요한 이런 저런 자료를 모으기 위해 취재차 일본에 갔었다. 후쿠시마 원전 문제로 일본이 발칵 뒤집히기 훨씬 전의 일이다. 그때, 내 가방 속엔 몇 권의 소설이 들어 있었는데 (그때 읽은 건 임성순의 『컨설턴트』였다) 나는 너무 재밌어서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 없는 이 소설을 밤새 읽느라 (배가 고파서 컵라면 폭풍흡입!) 퉁퉁 부은 괴기스런 내 얼굴을 감추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 참극을 맞이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가 뮤지션이라 부르는 사람들 대부분은(부활의 리더 김태원을 상상해보시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선글라스 사랑 덕분에 문단에서라면 “비가 오는데도 선글라스를 쓰는 걸 보면, 분명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본인이 연예인인 줄 아는가!”라는 퉁박을 듣고도 남을 내 잠자리 선글라스는 다행히 어떤 사람의 질문도 없이 파묻혀 버릴 수 있었다.


도쿄 72시간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에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72시간 동안 특정 장소나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취재하며 그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로 부산 자갈치 시장이나, 북촌의 한옥마을 사람들, 섬과 섬을 잇는 거대한 연결도로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고 있는 다양한 기술자 등 잊고 있었던 특별한 공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다.

중요한 건, 이것이 딱 72시간 동안의 일만 기록한다는 것이다. 사실 72시간이란 이 짤막한 프레임은 늘 반복되고 밋밋해 보이던 사람들의 삶을 느닷없이 오목렌즈처럼 볼록 솟게 만들어 햇빛 아래 뒹구는 몽돌처럼 반짝거리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마치 72년쯤의 시간을 72시간으로 압축시켜놓은 것처럼 말이다.

작년, 벚꽃이 필 즈음 나는 일본으로 투어를 가는 어느 아티스트와 그의 밴드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작가가 아니라면 분명 경험하기 힘든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투어 팀의 숫자는 대략 100여명으로 그곳 사람들을 모두 소개할 순 없지만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을 몇몇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왼쪽 팔목에 뜻 모를 바코드를 새겨 넣은 기타리스트 (문득 아이폰을 대고, 일련번호들이 가리키는 작은 비밀들을 알아내고 싶을 정도였다), 미국 버클리에서 뮤직 비즈니스를 공부한 잘 생긴 현장스텝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를 ‘아이큐 84’로 착각했다고 우겨대는 영화 제작자(나는 1Q84를 자주 1Q48이라고 바꿔 부르곤 했다. 그래서 그와 나는 ‘덤앤더머’처럼 쉽게 친구가 되었다), 전직 레코드점 직원으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거대 엔터테이먼트 회사에서 역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걸 그룹의 매니저였던 남자, 강팍한 무릎을 가진 슬픈 얼굴의 여자 댄서와 일본에서 파는 ‘신라면’ 건더기가 한국 것보다 40퍼센트 이상이 많다고 광분하던 ‘컵라면 애호가’인 로드매니저 (‘현대’에 이어 ‘농심’도 각성하라!) 그리고 4월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두께의 가죽 재킷과 한 눈에도 더워 보이는 검정색 가죽워커를 신은 록가수 느낌의 리허설 사진작가까지……딱히 소설가적인 상상력을 가미하지 않아도 이들은 충분히 ‘음악적’이었다.

염색이나 피어싱은 기본, 구멍이 숭숭 뚫리거나 속이 다 보이는 티셔츠는 옵션, 13센티 힐을 신고도 흐트러짐 없이 춤을 추는 사람들 속에선 오히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더 눈에 띌 법 했다. 어쨌든 내가 갖지 못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행보단 여행기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한국과 일본인 스텝들이 쉴새없이 오고가는 요요기 경기장의 지하 대기실.
이미 리허설을 보고 온 후라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그곳의 날긋한 감색 소파에 앉아,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를 읽었다. 막 세살이 된 아들 중빈이와 터키를 여행하며 쓴 여행기였다. 세 살 밖에 안 된 아이와 도대체 여행이 가능할까? 처음 들었던 의문은 책을 읽어가면서 점차 해소되었다. 말하자면 ‘불가능한 것’과 ‘꽤 많이 어려운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일인 셈이었다.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세 살짜리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1미터 60센티쯤 되는 어른이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고, 아마도 그 차이는 딱 60센티미터만큼은 아닐 거다.

조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애의 손을 잡고 잠수교에서 한남대교까지 종종 걸어 다녔다. 웬만해선 안아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 유달리 걷기를 좋아하는 희귀한 아이였지만 매점에선 아이스크림을 사 먹느라 얼굴과 손을 진창으로 만들어댄 그 애와의 산책은 험난했다. 나는 아이 엄마의 세계에 대해서라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무 것도 몰랐다. 대형마트에서 엄마들이 왜 유난을 떨며 저렇게 큰 물티슈 묶음을 사 가는지, 산더미처럼 많은 물티슈를 대체 어디에 사용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끈적대는 손과 얼굴을 닦느라 물티슈를 들고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느라 나는 이미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뿐인가. 한강 공원을 날아드는 비둘기에 정신을 빼앗겨 이리저리 날뛰고(뛰어다닌다보단 날뛴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세발자전거 타는 형아를 쫓아가느라 넘어지고, 자빠지고, 산책 중인 고동색 푸들의 꼬리를 붙잡으려 또 넘어지고, 하늘거리는 강아지풀을 뜯어 제 코끝에 비벼대느라 수도 없이 재채기를 하다 콧물을 질질 흘리던 내 조카는 다리가 아프다며 여러 번 흙바닥에 주저앉기를 반복했었다. 잠수교에서 한남대교. 아줌마들이 즐겨하는 파워워킹으로 30분이면 가능한 거리를 나는 세 시간이 모자라 네 시간 동안 걸어갔다. ‘육아란 이런 것’이라고 절감하던 순간이었고, 끝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던 내 동생이 진짜 어른으로 보였었다.

너도 다 아는구나. 아니, 너는 엄마보다 더 잘 아는구나. 엄마가 파리를 더럽고 귀찮게 여길 때, 너는 그것들에게서 공존의 기쁨을 보지. 새와 나무가 있는 곳엔 파리도 있어야 하고, 북슬북슬한 개가 있는 곳엔 개벼룩도 있어야 하지. 그런데 엄마는 자꾸 좋은 것만 보려고 하는구나. 편한 것만 찾으려 하는구나.

대기실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현장 스텝 한 명이 들어왔다. 그녀는 세 개의 핸드폰을 동시에 들고 끝도 없이 비행기 시간표를 변경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스텝들 중에는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어머니가 위중하거나,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거나, 촬영 일정이 급하게 바뀌어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촬영이 펑크 나거나!)비행기 표를 바꾸는 스텝들이 투어 중 최소 네 명 이상은 생긴다는 것이다. 일어와 영어와 한국어를 바꿔가며 핸드폰을 손에 쥔 그녀의 손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핸드폰 대신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엄청난 양의 음료수와 생수들이 들려 있었다.

“스텝들이 룸서비스를 사용하면 돈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제일 먼저 하는 게 호텔 측에 냉장고를 전부 비워달라고 요청해요. 돈을 아끼려면 스텝들이 전부 편의점에서 사다 냉장고를 채워 넣는 수밖에 없거든요.”

자신이 제작해 망한 영화의 빚을 아직도 갚고 있다는 한 남자는 애니메이션을 하던 후배가 느닷없이 형사가 된 사연을 내게 말해주었다.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살 돈이 없어서, 까치담배 150원, 잔술 400원을 투자해 하루하루를 버티던 후배의 이야기였다.

“옛날 옥천 장에 가면 미나리 한 단에 삼천 원 씩 했어요. 근데 바로 옆에 이렇게 써 있다는 거 아닙니까. 미나리 석 단, 만원! 석 단 사면 더 싼 줄 알고 그걸 사는 할마씨들도 엄청 많았다니까요.”

나만 빼고 모든 공연 스텝들이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아침 여섯 시부터 움직였으니 다들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던 나는 마치 어느 한가한 ‘바’의 마담처럼 소파에 잠시 쉬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다. 그렇게 디자이너 하상백이 만든 스키니진을 입지 못할까봐 1년 365일 다이어트 중인 아이돌 가수의 이야길 들었고, 소주 한 병 살 돈이 없어 아파트 굴뚝에 올라가 뛰어내릴 생각을 하다가 굴뚝의 시꺼먼 연기에 눈이 매워 운 전직 경찰의 얘기도 들었다. 세 명의 여자친구가 모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며 자신을 떠나갔다고 얘기하던 전직 가수출신 남자는 내게 끝장 난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나는 잠시, 헤어진 여자친구의 before, after 성형사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잊고 싶어도 거대 포털 사이트에 이름만 치면 이미 헤어진 연인의 사진이 뜨고, 줄줄이 기사가 업데이트 되어 있는 놀라운 인생 말이다. 그건 몹시도 잔인한 일이라, 익명 속에 숨어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보통 사람으로선 견디기 힘든 일이란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는 주눅 들고 상처 받은 얼굴이었다. 어쩐지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연애란 그런 것이고, 사람은 어쩌면 그런 고통의 축적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사심 없이, 표정 없이, 웃으면서 말하고 싶었다. 주제넘게 그보다 몇 년 더 살았다는 얄팍한 이유로 말이다.

로라는 모르고 있었다. 관계의 많은 부분이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얻을 수 없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얻을 수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오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그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희생하지도 않는 것이다.

요요기 경기장, 저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도 알고 있을 거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이, 사소하게는 자신의 잠을 줄이고, 애인에게 차이고, 목이 쉬도록 움직인 대가로 이토록 멋진 무대가 만들어진다는 걸 말이다. 줄을 선 관객들 사이에서 몇 명의 스텝들이 공연 포스터와 앨범을 팔고 있었다.

일본 프로모터인 여자의 일본어가 공연장 복도를 쩡쩡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꿈이 가수였다고 했다. 가수를 반대하던 아버지 때문에 휴게소를 평정했던 만둣집 딸에서 일본에 홀로 상경했던 그녀의 일화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대의 음향을 담당하고 있다는 나이 지긋한 한 남자는 지방으로 공연을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아이의 키가 부쩍 커 있어 놀랐다고 했다.
“글쎄, 독일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까 딸아이가 수능을 보고 있더라구.”

여행이란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일이다. 나는 터키 여행을 통해 아이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보았다. 샴쌍둥이처럼 붙어 지내던 시기를 마감하고, 둘 사이의 적정한 간격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 생에서의 현재 위치를 보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더 잘 보였다.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고 싶은 것만이 분명해졌다. 나는 더 떠돌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동안, 도쿄에서의 짧은 시간들도 끝나가고 있었다.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공연 뒷풀이를 위해 몰려간 도쿄의 한 삼겹살집에서 누군가는 삼겹살을 뒤집고, 노래를 부르고,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얘기했다. 벚꽃은 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은 이미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는 아주 여러 장의 명함이, 춤을 추는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무대를 고치거나 무대의 조명을 다루는 기술자들, 한 번도 본 적 없는 팬들을 위해 선물을 정리하는 사람들의 명함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실장, 팀장, 과장, 국장, 대표, 이사, 상무, 전무………라는 이름의 명함들이. 그 명함들을 차례로 올려놓으면 마치 책 한 권이 완성돼 내게 끝도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 같았다. 내가 3일 동안 읽은 사람 책들만큼이나 긴 이야기였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내게 자꾸 후일담 형식으로 읽혀지는 까닭은, 이토록 강렬했던 3일이 지나고 1년 후 쯤 일본에 믿을 수 없는 대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6.8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후쿠시마에선 제 1원자로가 녹기 시작해 대규모 방사능 피해로 히로시마 사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피폭되었고, 가장 피해가 컸던 미야기현에선 지진과 쓰나미로 사망자가 만 명을 넘어섰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소설보다 훨씬 더 소설이었다. 한동안 나는 뉴스의 재난 장면을 반복해 보거나 신문 기사를 읽으며 놀라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도저히! 한 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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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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