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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유럽에서 듣는 트로트 한 가락

오늘은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에서 시작이다. 그런데 오전부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창빈이는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 차리면 떼돈 벌겠군"이란다. 야, 여름에만 사람 많은 거야, 하려다가 꿈을 깨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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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격: 고씨 부자의 유럽 42일 생존기
고형욱,고창빈 공저 | 사월의책
아빠와 아들, 절친이 되다!
대책불가 사춘기 아들을 변하게 한 아빠의 고군분투기

요즘 아빠는 돈 버느라, 아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얼굴 보는 게 전부이고, 가족 간의 대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대로 괜찮을까? 아빠는 결심한다. 사춘기 아들을 위해 선물을 해주기로! 바로 아빠와 함께하는 유럽 여행이었다. 그것도 42일간의 긴 서유럽 일주. 1,000시간 동안 아들과 단둘이 지내다 보면 아들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다본 리스본.

미친 듯이 찐다. 민박집 주인장도 이렇게 더운 날씨는 근래에 없었다고 한다. 빨래를 널면 순식간에 바짝바짝 마른다. 한여름에 돌아다니니 빨래가 빨리 마른다는 것 하나는 좋다. 하나라도 좋게 생각하자.

오늘은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에서 시작이다. 그런데 오전부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창빈이는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 차리면 떼돈 벌겠군”이란다. 야, 여름에만 사람 많은 거야, 하려다가 꿈을 깨지 않기로 했다.

온도계는 무려 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40분 정도 기다리고 겨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10명 정도 태우고 차장이 요금 받고 잔돈을 거슬러준다.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겪다 와서 그런지 무지 갑갑하다. 그래도 정상에 올라가니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행에서 시간은 돈인데 내려가려니 정말 본전 생각이 난다.

로시우 광장으로 갔다. 종점에서 28번 트램 타고 한 바퀴 둘러보려고 했다. 어머나! 줄이 자그마치 100미터는 된다. 엘리베이터 하나, 트램 한 대 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리스본, 웃긴다. 대중교통을 이토록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광 코스라니!

“어이, 고창빈! 이거 기다렸다 탈래?”
“아니! 딴 거 해도 돼.”
“그치? 어제 탔으니까 또 탈 필요 없겠지?”


자기합리화는 시켰는데 그럼 뭘 하나…. 다행히 로시우 광장은 여러 코스로 가는 트램들의 종점이다. 표지판을 뒤져보니 벨렘 타워로 가는 트램이 있다. 줄도 짧다. 들어오는 트램을 보니 차량도 신형이다.

휴가철 리스본은 끔찍하다. 어딜 가도 사람, 사람, 사람이다. 여름철 유럽의 다른 대도시들은 오히려 조금 한산한 편인데 리스본은 관광객들로 넘친다. 쉬러 온다면 모를까 여름철 관광하러 리스본에 오지 말기를 바란다.

리스본의 명물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어제는 시내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광을 했는데, 오늘은 서쪽 끝인 벨렘 타워에서 다시 시내를 관통해서 동쪽에 있는 아줄레우 박물관으로 갔다. 어느 집이나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된 타일의 나라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타일 박물관이다.

타일이 예쁘다. 모두 수공으로 만든 개성 넘치는 타일들이 한마디로 예술이다. 화장실에 썰렁하게 붙여놓은 타일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에어컨이 없어서 땀이 줄줄 흐르고 온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가 버린 것 같다. 쉬엄쉬엄 봤는데도 더위를 먹을 정도다. 리스본 패스로 교통수단을 맘껏 이용할 수 있는 게 오히려 함정이다. 본전 뽑으려고 더 돌아다니게 된다. 창빈이도 무척 지쳐 보인다. 이럴 때 원기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타일로 리스본 풍경을 만들어놓았다. 코메르시우 광장이 보인다.

“어제 갔던 식당 오늘도 또 가자!”
“진짜?”


창빈이의 눈이 말똥말똥 빛난다.

식사를 마치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가파른 언덕에 놓인 테이블들과 자그마한 가게들이 보인다. 저녁이 내리고 가게에 불이 켜진다. 어두운 하늘 위에는 별빛이 빛난다. 리스본의 밤 풍경. 리스본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옛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파두를 보러 나갔다. 파두는 리스본 사람들의 삶을 노래한 민요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생전에 종종 공연을 했을 정도로 유명한 루수라는 곳에 갔다. 일종의 극장식당이기도 해서 식사를 겸한 저녁 첫 공연은 끝났다. 그때는 일인당 30유로 이상 내야 되는데 10시부터는 음료만 주문하면 되니 저렴하다. 일인당 15유로 정도다.

아들과 극장식당에는 처음 앉아본다. 시끄럽고 빠른 노래만 듣던 창빈이가 이런 노래를 들으려 할까. 사실 나도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말고는 아는 파두 가수가 없다. 한의 정서가 배어 있는 게 우리나라 노래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와인 한 병, 샹그리아 한 버킷이 나왔다. 목청껏 외쳐 부르는 절절한 노래가 들린다. 듣고 있으니 아픔이 전해지는 듯하다. 슬픈 트로트랑 느낌이 비슷하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도 공연했다는 루소는 리스본의 명물이다.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열창하는 파두 가수.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짠하다.

노래 때문인지 분위기가 그윽하다. 창빈이에게 샹그리아를 한 잔 따라줬다. 한 모금 맛을 보더니,

“이건 주스네…? 맛없다.”
“야, 그래도 마시고 싶으면 ? 그거 마셔. 와인 마실 생각 말고. 그래도 이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는 제일 유명한 칵테일이란 말이야.”


양동이로 하나는 만들어놓은 것 같은데 아들놈마저 거부해버리니 샹그리아는 찬밥신세 받다가 남게 생겼다. 약간 먼발치에서 공연을 바라본다. 창빈이도 진지하게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다. MP3로 들으라고 했다면 지겨워서 듣지 못할 음악이지만 현장감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담배를 한 대 피우러 나갔더니 금방 공연을 마친 남자 가수 한 명이 나와서 담배를 태우고 있다. 인사를 하고 잠시 얘기를 나눴다. 누가 누군지 몰라서 음반을 살 수가 없다고 했더니 가게에서 자기 CD를 판다고 한다. 음, 20유로라. 바가지인 것 같지만 에이 모르겠다. 기념인데….

비싸긴 해도 처음으로 직접 들은 파두 가수의 노래를 언젠가 다시 들어야지 기약하면서 CD 한 장을 샀다. 열심히 자기 홍보도 하고 사인까지 해준다. 이름이 페드루 무티누다. 애절한 음악을 콧노래로 따라 부르면서 숙소까지 걸어갔다. 다른 도시라면 불빛이 휘황찬란했을 것이다. 나라가 가난하니까 시내에 조명도 제대로 못 밝힌다. 아주 작은 불빛들만이 하나둘 보인다. 그런데도 도시는 예쁘다. 노래는 슬프지만 리스본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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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격

<고형욱>,<고창빈> 공저13,320원(10% + 5%)

아빠는 한탄한다. "도대체 요새 애들은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이 소중한 시기를 왜 저렇게 보낼까?" 주말에 외식하고 영화 구경이나 가는 것으로 아빠의 소임을 다했다고 믿는 주제에! 비단 이 책의 저자 고형욱, 고창빈 부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빠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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