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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많은 한국을 떠나 도착한 곳 ‘오로빌’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김선우

정수된 물에 음악 틀어주니, 죽은 물이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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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았다. ‘오로빌’에서 온 편지다. 오로빌? 오롯이 빌리지? 오로빌은, 이런 곳이다.“우리는 왜 사는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묻게 되는 곳이다.


편지를 받았다. ‘오로빌’에서 온 편지다. 오로빌? 오롯이 빌리지? 오로빌은, 이런 곳이다.“우리는 왜 사는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묻게 되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묻게 되는 곳이다. 여기는.”(p.289)

발신인을 보니, 김선우 시인, 누군가에겐 여신. 편지에 잔뜩 묻은 행복,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고, 열었다. 행간마다 펄펄 떨어지는 행복하곤. 편지에 묻은 행복의 이유도 분명했다. 꿈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진짜 삶이 있었다. 자본에 휘둘릴 일도, 타인의 욕망에 조정당할 일도, 권력에 짓눌릴 일도 없는, 오롯이 자신만의 흥과 리듬에 의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마을(공동체)이 있었다.

편지는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 삶에 몇 개의 새로운 창문이 더 생기고 열려서 기존의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삶과 행복도 가능하다는 것을. 꼭 오로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도, 다른 삶, 다른 공간이 있을 수 있음을 꾹꾹 확인해준 편지. 편지는 또 이렇게 묻고 있었다. 어디 아픈 데 없니? 우리, 잘 살고 있는 것 맞니?

그래서 편지의 제목은,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김선우 지음|청림출판 펴냄). 편지 냄새를 맡고 독자들이 모였다. 오로빌의 향을 오롯이 간직한 김선우 시인을 만나기 위한 발걸음. 지난 4일의 여름밤이었다. 서울 홍대 부근 상상마당에서 펼쳐진 향긋한 북살롱. ‘오르빌에서 꿈꾸기 : 우리, 지금, 조금 더 행복해지자’라는 주제로, 1인밴드 하이미스터메모리(‘ㄱ’)와 함께 하는 ‘이야기와 음악이 있는 밤’.

그 여름밤, 독자들이 행복 편지의 부록으로 건네받은 또 하나의 행복을 전한다. 당신도 그 편지를 받아 읽었으면 좋겠다. 이 행복을 나만의 것으로 하긴 아까웠으니까. 특히,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필요한 사람에겐, 어쩌면 더욱 필수. 그런 당신에겐, 이 편지는 특효약! 이번만큼은 에세이스트로 변신한 김선우 시인을 만나는 시간.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오로빌 행복편지

노래가 문을 연다. 아무렴, 행복편지를 열 땐,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 제격이다. 하이미스터메모리의 노래다. <조제, 물고기, 그리고 강아지들>. “작은 것들은 위대해”라고 노래한다. “네가 맞고 내가 틀렸다”고 노래한다. 아마도, 작은 것에 행복해할 줄 알던 연인에게, 그는 면박이라도 주었나보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자의 반성과 회한이 담긴 노래 같다.

김선우 에세이스트의 등장이다. 행복편지를 보낸 소감을 물었다. “에세이 쓰는 일은 시와 소설을 쓰는 일과 다른 느낌의 즐거운 작업이다. 극점 혹은 우주를 향해 나아갈 때 시를 쓴다면, 소설은 엉덩이를 붙이고 써야 하는 장르인데, 둘은 다르면서도 압박감이 심하다. 에세이는 시나 소설과 달리 자유로워지고, 에너지가 보충되는 듯한 매력이 있다. 좋아하는 곳에 가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작업이고, 행복한 여정에 매듭을 짓는 차원에서 내놨다. 이 책이 내게도, 우리에게도 좋은 방식의 선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특히, 이날처럼 직접 독자들과 만난다는 건, 독자들의 숨결 같은 걸 받는 일 같아서, 더없이 기쁘다고 했다. 그녀는 사실, 아팠다. 물론 갑자기 덜컥 아팠던 것이 아니다. 몸보다 마음이었다. 그녀에게 문학을 한다는 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사랑을 나누는 행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서로 숨결을 나누는 일이다.


알다시피, 이 땅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아프고 아팠다. 그녀도 아팠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스트레스 많은 사회는, 내가 아파서라기보다 내가 함께 손 잡아줘야 하고 사랑하는 존재들이 아파서 작가는 아플 수밖에 없는 조건들? 그러다보니, 때가 되면, 견디다 견디다가, 누적이 되다보면 숨 좀 쉬어야겠다는 때가 오더라. 그런 때가 오면 떠날 수밖에 없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나는 싫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살다가는 주어진 현실만큼 타락하기도 일쑤이니.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혁명해야 하는 시점에 대해 열렬히 깨어 있는 자세와 함께 요구되어야 할 일이다.”(pp.288~289)

충전이 필요한 시간. 사회적 관계성을 일정하게 차단하고 나를 보살펴야 하는 공간에 나를 내버려 둬야할 때, 떠났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곳, 오로빌이었다. 힘을 받고, 이곳에서 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떠난 그곳. 헌데, 좋은 걸 참 많이 받았다.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눴으면 했다. 책은 그렇게 태어났다. 오로빌에서 오롯이 행복을 담은 김선우의 나눔.

이어진 낭독. “세 번째 장편소설의 초고를 마쳐놓고 여행 가방을 쌌다.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장 그르니에의 문장들이 벽장 속에서 떠오르는 날, 여행을 준비한다. 나는 키득거리며 빨강 여행 가방과 남색 여행 가방 중 어느 걸 가져갈까, 이런 사소한 생각을 하며 커피콩을 간다. 나 자신에게 쪽지를 남기듯 다시,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남.(…)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은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pp.4~6)?

궁금하지 않나? 오로빌이? 과연, 어떤 곳이기에, 그녀가 떠났고, 좋아할까? 살짝 엿보자.

“꿈 없이, 안전한 길로만 골라 디디며 지루하게 살고 싶은가. 정말로? 라고 이곳에 오는 게스트들에게 오로빌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사는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묻게 되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묻게 되는 곳이다. 여기는.”(p.289)

김선우, 오로빌을 읊다!


김선우 에세이스트의 오로빌 이야기. 그녀는 굉장히 많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그 가운데, 문학적인 메시지를 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꽃으로 거름을 만드는 일을 하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칠십이 넘은 여인. 유기농업을 지향하는 오로빌에선 유기농 거름을 만드는 파트가 따로 있으나, 이 여인은 그와 별도로 꽃을 이용해 거름을 만드는 사람. 오로컬쳐였다.

“오로컬쳐는 오로빌의 중심인 마트리만디르 가든의 한쪽에 자신의 일터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일은 마트리만디르 주변 여기저기서 꽃을 주워 거름을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장은 우물처럼 보인다. 한 사람이 두 팔을 활짝 벌린 품의 두 배쯤 되는 둘레의 우물 속은 꽃잎으로 가득 차 있다.”(pp.59~60)

여인은, 꽃의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어머니 대지에 입 맞추고 싶은 꽃들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꽃이 꽃으로서 임무를 완수한 다음에야, 자신의 일이 생긴다는 여인.

“ ‘꽃들은 어머니 대지에 입 맞추고 싶어 한답니다. 내 일은 바로 그 후의 것이고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꽃의 마음을 생각하며 사는 여인의 마음의 꽃잎 위로 ‘미소’라 불러야 좋을 바람이 한차례 지나간다.”(p.64)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다 높은 효율과 보다 높은 성과를 내고자하는 실용주의적 사유로는 상상이 안 되는 일. 헌데, 오로빌에서는, 오로컬쳐가 하는 일이 일로서 존중받는다.

“오전 내내 꽃을 주워 모아야 우물의 한 켜를 겨우 장식할 수 있다. 부피감 없는 여리여리한 꽃들이 변해 흙이 되는 것이니 아주 소량의 흙이 생산될 뿐이다.… 그러니 효율성과 실용성을 따지자면 이것은 상식적으로 ‘일’이 도리 수 없는 ‘일’이지만, 오로빌은 오로컬쳐의 일을 귀하게 여긴다. 일이라는 게 무언가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녀가 생산, 유지하는 가치는 아름다움과 헌신의 자세와 고요와 기다림이라고 할까.”(p.61)

오로빌의 김선우도 오로컬쳐의 ‘일’에 가닿았다. 꽃이 거름으로 승화하는 우물을 안았다. 아, 이 열기, 꽃이 흙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 나와 연결돼 있구나. 사람과 사람도 그냥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아니듯, 모든 것이 지구상에선 연결된 존재라는 느낌. 그렇게 따듯한 우물을 껴안고 행복을 느꼈다. 꽃과 거름, 그리고 시인의 만남.

“꽃우물 가에서 두 팔을 벌리고 꽃이 켜켜이 쌓인 우물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 이것은 기도다. 꽃의 존재에 집중하고, 꽃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의 존재에 집중하고,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거름의 존재에 집중한다.”(p.66)

그리고 거름을 받았다. 향기를 맡았다. 아, 꽃이다. 그냥 보면, 바구니에 담긴 흙인데, 코로 들어온 것은 꽃이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은 꽃이라고 말하고, 우주요,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진짜잖아. 인위적으로 잇기 이전에 어떤 존재가 그냥 오는 순간들. 그런 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충만해지고 행복함을 느낄 거다. 그걸 느끼지 못할 때는 불행하다 느끼고, 실제로도 불행하게 사는 거다.”

오로빌은, 행복한 느낌을 자주 만들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맞다. 행복은 변화무쌍하다. 태어날 때 행복이 얼마 만큼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변화무쌍함 속에서 쟁취하고 만들어내는 것. 그냥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녀의 팁이다. “행복과 충만함의 느낌을 쟁취하기 위해, 세계와 존재, 사람을 향해 늘 열어놓아야 한다. 그걸 잘 못해서 우리는 시들시들한 것이다. 그런 순간이 많지 않아서. 오로빌에서 만난 순간들이 알려줬다. 나는 그런 순간을 많이 만들기 위해 시를, 소설을 쓰는 지도 모른다. 행복함으로 충만할 수 있는 순간을 많이 만드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오로빌은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맞을 수 있을까를 경험하게 해줬다.”

오로빌의 경제윤리, ‘모두의 소유’


오로빌에는 130개가 넘는 조그만 커뮤니티들이 있단다. 커뮤니티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 어떤 강요나 타인의 욕망을 따르는 법이 없다. 자기가 잘 하는 것으로 그룹을 만들고, 오로빌은 그것을 동력으로 굴러간다.

오로빌은 또한 물자를 아껴 써야 하는 곳이다. 우리 관점에선 재정이 빈약한데, 그런 것을 보완하기 위한 상업적 커뮤니티가 있다. 즉, 다양한 사업체가 있고, 사업을 펼친다. 헌데, 사업을 하는 이유는, 우리네 지배적인 상식과 다르다. 즉, 돈을 버는 이유는 오로빌이 더 좋아지길 바라기 때문이란다.

“사업체는 오로빌과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 돈을 번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이윤을 ‘모두의 소유’로 환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오로빌의 경제윤리.”(p.208)

“우리식으로 하면 사업체 대표가 있는데, 사업을 잘해서 돈을 버려는 이유는, 오로빌에 기여금을 많이 내고 싶은 거다. 유럽에서도 유명한 몇 개의 유닛 사업체가 있다. 그 중 ‘마로마’는 유기농 화장품 등을 만드는데, 버는 돈의 60% 이상을 오로빌로 환원한다. 나머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주고, 복지를 위해 쓴다. 대부분 사업체 마인드가 그렇다. 한국처럼 자본을 많이 투여했다는 이유로 사장이 돈을 많이 갖는 구조가 아니다.”

“오로빌 경제가 굴러가는 것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절충을 통해서다.… 함께 생산하고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누는 이상적 경제시스템 공산주의의 꿈에 상업 유닛을 만들어 자본주의적 방식을 접목하고 있는 것이다.… 개개인은 돈을 벌어서 (자신을 위해서도 쓰지만) 궁극적으로는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p.211)

물을 정수하는 업체의 경우도 예로 든다. 인도는 물이 귀하다. 허나, 오로빌은 인도의 그런 물 사정으로부터 자유롭다. 정수시스템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업체가 있고, 공공시설에 그 정수시스템을 도입한 덕분이다. ‘솔라키친’이라는 회사 덕이다.

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자면?


재밌는 것은, 그 물이 음악을 듣고 생명을 가졌다는 점이다. “물이 정말 신기한 게 분노를 담아 욕을 하면 물의 성질이 변한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웃음) 『물은 알고 있다』라는 책에 보면, 물의 결정이 변한다. 나도 처음엔 이방인의 의심 때문에 (물 마시는 것을) 망설이다가 솔라키친의 물을 마시는 순간, 안전한 물이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음이 있는 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인 척 한다고 어떤 분은 그러는데, (웃음) 있는 내내 솔라키친 물을 먹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솔라키친’은 바닷물도 완벽하게 당장 먹어도 될 물로 바꾸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보급하는 일까지 하고 있는 정수기업체였다.”

오로빌의 김선우는 이 물이 궁금했고, 물어봤다. 정수하는 단계가 어떻게 돼요? 다른 정수단계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었다. 음악이 필요하다는 것. 더러운 물도 여러 단계를 통과해서 정수가 된다. 문제는 여러 단계를 거치다보니 죽은 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필요했고, 오랜 연구 끝, 물에 음악을 주입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정수된 물에 빛으로 음악을 주입해 죽은 물을 되살리는 거다. 유럽에 나가는 정수기에는 클래식 음악을 주입해 들려주고, 오로빌에 사용되는 것은 마더의 음악을 주입해 들려준다. 물에게 음악을 들려주어 살아 있는 물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이라니!”(p.207)

처음엔 의아해 했단다. 그랬더니, 시스템을 보여줬다. 음악을 비처럼 전환시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빛처럼 변화된 음악이 물에 들어가는 있었다.

“이 사람들의 사유체계가 빛이 음악이고, 음악이 빛인 거다. 소리 입자를 빛의 입자로 전환해서 물에게 들려주고, 물을 살리는 작업을 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물이 부족한 곳에 이 물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행복 편지와 답장 나누기


한국에서 각자 실천할 수 있는 ‘오로빌 이루기’는 뭐가 있겠니?

“고민이 많네. (웃음) 나도 늘 고민하는 문제야. 너무 광범위하지만, 이렇게만 말할게. 각자 있는 자리에서, 내가 행복하다고 자주 느낄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꿈꾸고 즐기고 누렸으면 좋겠어. 개인이 행복해져야, 사회의 기운이 좋아져.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탄력감이 너무 떨어진 상태에서, 그러려니 하고 견디려는 게 암묵적으로 팽배해있어. 남들 다 사는데, 나도 살아보지 뭐, 하는데 그러지 말아! 내가 뭐할 때 행복한지 적극적으로 찾아서 즐기는 개인이 많아지면 좋겠어. 그런 개인이 많아지면 사회도 좋아지고, 그런 일이 많아져야 개개인이 연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겨.

지금, 불우한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잘 노는 방법을 만들고 누리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어. 옆 사람들과 재밌게 노는 방법이 많았으면 좋겠어. 그런 즐김에서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이 생길 거야. 분노한 현안들에 대해서도 놀아보겠다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대의명분에 억압되지 않고 행복하고 재밌는 일을 찾다보니, 억눌린 문제가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고, 해결되지 않아도 탈출구가 보이는 거야. 꿈꾸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아.”


시집을 읽다보면 어려워. 이렇게 시를 어렵게 써야 되는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어때?

“시, 가능한 어렵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 발표하기 전에 지인들에게 읽혀보고, 나름 필터링을 해봐. 그런데, 시 장르 자체가 갖는 애매모호함의 미학이 있어. 시는, 1 1은? 하면. 별도 있고, 달도 있고, 꽃잎 몇 개 이런 식으로 얘길 하지. 왜 이리 얘길 하느냐면, 시는 머뭇거려주세요, 라는 장르야. 지금 이 순간에서 느리게 걸어달라는 장르야.

산문은 이야기를 쭉 하고 따라오면 된다고 하지만, 시는 순간에 몰입하는 장르거든. 지금 이 순간, 우리 사이의 의미는 뭘까, 순간성에 집중하길 원하는 장르야. 시인인 내 입장에서는 이 엄청난 속도에서 정지하고 충만한 순간이 필요한데,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게 시야.

그 어려움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겐 필요해. 문명은 발달하고 속도는 빨라지는데, 퇴보하고 타락하는 과정이라, 더 긴급하게 마지막까지 중요한 장르가 시라고 생각해. 그 애매모호함을 즐겼으면 해. 평자들 이야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건 평론가의 일이고, 그들 몫이야. 뭔가 갸우뚱하는 순간들을 준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시야.”


15살 꽃순이 소녀가 어느 문에 들어가 할머니가 됐다는 이야기를 담은 하이미스터메모리의 노래, <꽃순이 이야기>를 끝으로 오로빌의 편지 낭독은 일단락됐다. 오로빌을 아주 잠시 여행하자니, 오로빌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곳. 나는 ‘국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디의 국민이 아닌, 나와 너, 우리가 만드는 그런 공간.

그러니, 이런 아나키즘 선언에 사실, 심장이 두근두근. “이 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합니다. 선한 의지와 진지한 열망을 지닌 모든 인간이 세계의 시민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지고의 진리라는 유일한 권위에만 복종하여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합니다.”(p.9)

물론 완성체도 아니요, 그곳이라고 완벽할리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그럼에도, “세상의 아름다운 곳들이 그렇듯, 오로빌의 시작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열렬하게 꿈꿀 수 있음으로 인해, 오로빌은 빛나는 것이 아닐까. 매일 커피콩을 볶고 갈고 내리는,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내가 커피 향을 맡으로 꿈꾸는 세상. 커피 향에 행복이 배인 하루하루.

“우리는 꿈꾸지 않아도 살 수 없다. 꿈 없이 현실을 견디기만 한다는 것은 끔찍하지 않은가. 꿈조차 없이 지금 인류의 이 구태를 가지고는 지구의 안녕을 위협하는 암종처럼 우리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 것이니까. 그러니 다행이지 않은가. 실험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 더 나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실험들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더 많은 자발성의 꿈들이 동시다발로 피어났으면!”(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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