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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좋은 평론가는 비밀 찾아내는 사람” - 『느낌의 공동체』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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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평론가는 ‘스타평론가’라고 불린다. 2005년에 평론이 당선되어 <문학동네>로 등단했고, 2007년 최연소 문학동네 편집위원이 되었다. ‘제2의 김현’으로 불리며 활동했으니, 동네 사람들에게는 일찌감치 인정받은 셈. 독자들도 그를 놓치지 않았다.


비평가의 윤리학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다.” 서문의 이 마지막 문장을 읽는데 깊은 애틋함이 느껴졌다. 사랑이다. 운명에 순응하는 듯 비장하기까지 한 저 말에는, 불꽃 튀는 사랑의 요란함이나 화려함은 없지만, 지고지순한 연인의 믿음직함이 느껴진다.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출간을 빌미로 만난 신형철 평론가의 얘기다.

신형철 평론가는 ‘스타평론가’라고 불린다. 2005년에 평론이 당선되어 <문학동네>로 등단했고, 2007년 최연소 문학동네 편집위원이 되었다. ‘제2의 김현’으로 불리며 활동했으니, 동네 사람들에게는 일찌감치 인정받은 셈. 독자들도 그를 놓치지 않았다. 한 손에 쥐기에도 묵직한 700페이지짜리 평론집은 8쇄를 찍었다. 지난 5월에 출간된 『느낌의 공동체』도 재판을 찍었다. 편집자는“이 책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들이 있어, 출간 직전부터 책이 언제 나오느냐고 전화를 받았다.”고도 했다. 과연 스타급의 인기다.

아마 이런 말을 건넨다면, 그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쑥스러워할 것이다. 스타라는 표현은 뭔가 빈곤하다. 반짝거리는 빛으로 대상의 경계를 뭉뚱그리는 별보다, 그는 섬세한 결을 지닌 직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좋은 것이 어떻게 좋은지 말할 때 가장 빛이 나는데, 그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들이 어떻게 좋은지 말해내는 데 능하다. 그의 표현을 보자면, 대상이 그에게 어떤 좋은 느낌을 주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읽는 이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만큼 정확하고 설득력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런 나의 심정까지도 이미 글로 표현한 바 있다.

좋은 문장에도 등급이 있다. 좀 좋은 문장을 읽으면 뭔가를 도둑맞은 것 같아 허탈해진다. '아이쿠, 내가 하려던 말이 이거였는데.' 더 좋은 문장을 읽으면 뿌연 안갯속이던 무언가가 돌연 선명해진다. '세상을 보는 창 하나가 새로 열린 것 같아요.' 더 더 좋은 문장을 읽으면 멍해진다. 그런 문장을 읽고 나면 동일한 대상을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그 문장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이런 문장. (P.292)

탄력 있는 문장들은 눈 넘김이 좋았다. 쓱쓱 읽는 게 아까울 만큼 좋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매끄러움 때문에 금세 읽어내려 갔다. 신중하게 골랐을 단어들은 마음 속에 비어있던 퍼즐의 한 홈이 맞듯 딱딱 들이 맞는 명쾌함이 있었다. 그로써 완성되는 한편의 글은 가끔은 머리를, 때로는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시적으로 대충 뭉개지 않고, 명석하게 단도직입적인 글을 써내는 이가 프로”(P.165)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프로다. 프로는 어떻게 이런 글을 써내는가?

“늘 컴퓨터에 워드를 켜놓고 괴로워하죠. 마감은 글을 못써내면 먹고 죽어야 하는 독이에요. 안 죽으려면 써야 해서 간신히 써요. 게을러서일까요? 아무리 게으르기로서니, 제가 이 분야에서 가장 게으른 건 아닐 텐데 말이죠.(웃음)” 대충 뭉개지 않으려고, 캐물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오래 문장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이만큼 다른 질감의, 다른 온도의 문장을 써내는지 어리석은 질문을 계속 했다.

신형철 평론가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평가의 에티카쯤 되겠다. 그것은 문장의 정확함이자, 쓰는 이의 솔직함이었다. 이야기 내내 논리의 힘에 대해 강조했다. 미문이라는 상찬 앞에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가려질까 경계했다. 종종 “더 솔직히 말하면”이라고 덧붙였다. 말하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비평이 이뤄지고 있는 듯 했다.


“이 시가 슬픕니다. 느껴지세요?”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 『몰락의 에티카』에서 뽑아 다듬어 옮기다

『느낌의 공동체』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쓴 산문을 묶어 낸 책이다. '느낌의 공동체'라는 제목은 지난번 김행숙의 시를 평론한 글 서두에서 따왔다.

“산문은 제가 살아온 이력과 별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고 쓰는 삶이니까, 이 책 한 권이 내 지난 몇 년 동안의 전부인 셈이죠. 앞으로도 연도를 붙여 차례대로 내려고요. 김행숙의 시를 읽으면서 문학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일을 명쾌하게 깨달았어요. 그것을 느낌의 공동체라고 표현했는데, 딱히 김행숙 시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문학 일반적인 맥락에서도 말이 되는 것 같았어요.”

이 산문집으로 “희미한 사태를 문장으로 옮겨보려 했고, 이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다.“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 (P.12)교감을 이뤄내기 위해서 솔직하게 쓰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솔직함이란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이다.

“글을 쓸 때 흔히 받는 유혹 중에 하나가, 나를 자꾸 정의롭고 아름다운 존재의 자리에 놓는 일이에요. 그런 위치에서 발언하는 것에 저는 거부감이 있어요. 제가 그런 존재도 아니고요. 내가 정의롭거나 아름다운 발언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계속 의심하면서 글을 쓴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평론을 문학으로 만드는 것은 ‘내면’과 ‘문장’이라고 했다.“객관성에 대한 욕심도 중요하지만, 불완전할지언정 주관성의 영역을 없는 척하지 않는 거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아요. ‘이 글이 정말 옳다, 논리적으로 정확하다’라는 것과 ‘이 글이 아름답거나 정의롭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있구나’라는 느낌의 좋은 글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후자 쪽에 끌리고, 저도 결국 그렇게 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고요.”

사람들은 비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판단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 냉안(冷眼)이라든가 하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그와 동시에 애정이라든가 감동을 비평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평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고바야시 히데오, 「비평에 대해서」. 『몰락의 에티카』 P.7)



정확한 논리가 주는 쾌감이 비평의 힘

‘느낌의 공동체’ 작가와의 만남 강연회 중


학창시절, 그는 작품의 해설이 읽고 싶어서 작품을 빨리 읽어 치우던 고등학생이었다. 일찌감치 평론에 매료되었다. “논리에 대한 욕심이 늘 한쪽에 있었어요. 그냥 아름다운 것과 이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논리의 아름다움은 구별이 되잖아요. 예술가로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그것을 논리화하고 명제화하고 설명해내는 사람이 주는 힘이 있잖아요. 그것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함이 그의 대화 속에서도 느껴졌다. 독자는 그가 아름다움에 전율하는 대목을 따라 읽으며 새삼 진동을 느끼기도 한다. 권혁웅은 그의 평론집을 두고 “깨우치는 게 아니라 울고 웃게 하는 비평”이라고 말했다. 신형철은 자신의 글에 쏟아지는 ‘아름답다’라는 상찬에도 예민했다. 그것이 논리를 가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울고 웃을 수 있으면 좋죠. 다만, 그게 주가 되면 안 되겠죠. 비평의 아름다움, 힘은 거의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논리가 주는 쾌감이 비평의 힘이에요.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고 봐요. 내가 글을 쓸 때 정확하게 얘기하면 족한 것이지, 그 과정에서 글이 아름다워지거나 공감이 커지면 그것대로 고마운 일이지, 논리가 허술하거나 치밀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부분들로 허술한 논리를 덮어버리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늘 경계하죠.”

“정확한 해석, 문학을 사회 안에서 읽어내면서,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태도, 문학사적인 안목을 현장에서 키워주는 일을 충족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었어요.” 다시 정확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확한 칭찬을 했을 때는, 그 표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유종호 선생이 김승옥 소설을 ‘감수성의 혁명이다.’라고 표현하며 칭찬했는데, 그건 아직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표현이잖아요. 말 자체가 멋있어서 유행하는 게 아니죠.”



하나 더 읽어낸다는 것은, 하나 더 변변치 않기 때문

‘느낌의 공동체’ 작가와의 만남 강연회 중

신형철 평론가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어떤 사명감도 없이, 내가 즐겁기 위해 쓰는 글, 온전히 나의 행복을 위해 쓰는 글이라고 했다. 단점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부족한 점에 말을 보태는 일 같이 “행복하지 않은 글은 쓸 힘도 여유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 게 비평이라면 저는 꼭 비평가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그런 의미의 비평은 안 할래요. 제가 아는 좋은 비평은 절대 그런 비평이 아니에요. 좋은 비평가는 비밀을 찾아내는 사람이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눈이 깊은 사람이죠. 말을 크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들리게 하는 사람이에요.”

아름다움에 예민한 것은 타고난 감수성 때문일까?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잇는다. “다른 사람보다 하나 더 읽어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하나 더 변변치 않기 때문이겠죠. 아주 훌륭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은 타인의 나약함, 어설픔, 찌질함에 공감을 잘할 수 있을까요? 한심해 보이겠죠. 저는 답답하고 찌질하고 한심하고 나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쓰는 건 모르겠지만 읽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읽어내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의 말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그 역시 남의 글을 흉내 내며 훈련했다. “평론가라고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거리를 두기보다는, 시인과 소설가에게 더 많이 영향을 받고 흉내를 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게 글에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평론 못지않게 좋은 작품들도 질투심을 불러일으키죠. 작품과 경쟁하지 않으면 평론이 어느 한계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태준의 시를 평론 할 땐, 문태준의 말투를 따라 하듯 써보기도 했다.

그는 좋은 문장의 모델로 마르크스와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꼽았다.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죠. 정확성이기도 하고 열정이기도 한데 마르크스 초창기 글을 읽어보면 이게 진짜 수사학의 힘이구나 느껴져요. 그가 불 같은 문장을 쓴다면, 마루야마 겐지는 물 같죠. 두 사람의 문장이 너무 좋고, 두 가지를 다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 같이 바뀌어 봅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신형철 평론가 역시 이런 고민 속에 읽고 쓰고 있다. “좀 더 잘 살 수 없을까? 이런 고민이죠. 문학작품을 통해서 얼마나 답을 찾을 수 있을지 회의하면서도, 이 문제를 붙들고 있는 거죠.” 왜 문학을 합니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요. 이런 대답을 하는 분도 있겠죠. 저에게는…… 그 대답은 너무 커요. 1차적으로는 제가 더 괜찮은 사람이 돼서 잘살고 싶은 거고,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그럼 자연스럽게 사회도 바뀌겠죠.

문학은 사회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사회를 바꿀지도 모르는 인간을 조금 바꾸는 거니까, 우리 같이 바뀌어 보자는 취지이고요. 좀 더 솔직하게 얘길 하면, 글 쓰는 사람들의 일차적인 동력은 그 글로 인해서 자신이 실제로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방식으로 그렇게 보이니까. 그것에 대한 경계가 있지만 기대도 있지 않겠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까. 내가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순간이 언제일까? 필자로서일 때가 아닐까 싶어요.”


자신보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부족함과 싸운다’고 표현했다. 한 권으로 묶인 빼곡한 글들은 그런 싸움 끝에 굳어진 것들이다. “글의 밀도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오래 쓰고 싶어요. 점점 에너지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위로 상승하면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에 진정한 친구들이 있어야겠죠. 그렇게 쓸 거면, 너 그만 써라. 그런 얘기를 해줄 수 있는(웃음)”

그는 이 책이 독자들과 만나 하나의 ‘결과’를 이루길 바란다. “시와 소설을 직접 찾아서 읽게 되는 결과죠. 이 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고요. ‘몇 년 만에 시집을 샀다.’ 이런 얘기 들을 때 가장 반가워요. 생각보다 한국에 좋은 작가가 많다는 게 잘 전해지면 좋겠어요.”

두 번째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다음 번 책에 대해 물었다. “제 진짜 입장과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평론집은 3, 4년쯤 후에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 위해, 신형철 평론가는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읽고 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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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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