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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보다 미천왕이 더 훌륭하다” - 김진명『고구려』 대구 강연회

“어떻게 성공하기보다는 어떻게 실패하는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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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을 가득 메운 150여 명의 독자는 김진명 씨가 입장하자 박수와 환호로 작가를 환영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는 자신과 대구에 얽힌 개인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지방에서는 작가 강연회가 서울만큼 자주 열리지 않는다. 지방의 독자는 작가가 그립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열리는 독자와의 만남은 서울보다 더 열성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지난 5월 26일 목요일 대구 롯데시네마 율하관에서 있었던 김진명 작가 강연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이날 강연회에 온 사람 중 일부는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행사 시작 2시간 전에 도착하여 기다리는 등, 연예인의 팬 사인회를 방불케 했다.

대구, 김진명을 있게 한 도시

상영관을 가득 메운 150여 명의 독자는 김진명 씨가 입장하자 박수와 환호로 작가를 환영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는 자신과 대구에 얽힌 개인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구는 오늘의 김진명이 있게 한 도시다. 부산도, 서울도 아니고 대구라고? 많은 사람이 의아해할 것이다. 김진명 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부산도, 서울도 아닌 대구가 오늘의 김진명을 있게 한 도시라니, 사연이 궁금하다.



때는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시절, 음악 시간이었다. 반별 합창대회를 위해 모든 학생이 합창 연습에 열심이었다. 소년 김진명 역시 입을 크게 벌리고 힘껏 노래를 불렀다. 그때, 음악 선생님이 반쪽만 노래 부를 것을 지시했다. 이제는 앞줄만, 그다음 줄, 그다음 줄. 이렇게 범위를 좁혀 가던 음악 선생님의 시선은 한 학생을 향했다. 마치 범인을 찾았다는 눈빛이었다. “너, 노래해 봐” 소년은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은 거센 경상도 억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니는 노래를 불러선 안 되겠다. 소리를 내지 말란 말이다. 대신 입은 크게 벌리라이.”

한 명의 발성도 아쉬운 합창대회에서 노래를 부르지 말란 의미는 그만큼 소년의 음악 실력이 형편없다는 뜻이었다. 그 음악 선생님은 대구 출신이었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그는 대구에 오면 늘 음악 선생님이 생각난다고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누군가가 자신의 다른 재능을 사정없이 짓밟아 줄 필요가 있다. 내게는 음악 선생님이 그런 존재였다. 음악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안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 음악 선생님은 대구 출신이다. 대구가 음악 선생님을 낳았다고 치면, 나는 대구가 낳은 것이다.”



현실에 쫓기지 말라

이날 행사는 신작 『고구려』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지만 강연회의 주된 화제는 김진명, 그 자신의 삶이었다. 그의 입을 빌리자면 김진명은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가 풀어놓은 에피소드 중 하나다.

요즘은 자유롭게 머리를 기르는 중고등학교도 있지만 1957년생인 그가 학교에 다녔던 1970년대에는 학생이 머리를 기를 수 없었다. 그 당시 학생은 영화 ‘친구’에 나온 유오성과 장동건처럼 머리를 빡빡 깎았다. 선생님이 머리를 깎으라고 명령하면 학생은 따라야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김진명은 깎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논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머리를 짧게 깎는 문화는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며 들고 온 것이고, 일본이 물러갔으면 이제는 짧은 머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김진명은 선생님의 명령을 거역했고 심지어 말대답까지 함으로써 엄청 맞았다.

맞는 순간, 당연히 아팠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때의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작가는 말한다. 김진명 씨는 “현실에 쫓기면 당장은 달콤하지만 남는 게 없다”며 현실에 쫓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당시 이런 행동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듯, 그 시절 학교는 작은 병영이었다. 그가 선생님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데에는 뛰어난 화술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김진명은 말을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밝혔다.



책을 많이 읽고 말을 못하는 연습을 해라

그런 그가 독자에게 주문한 것은 말을 못하는 연습이다. 말을 잘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어눌하게 하도록 강요한다, 김진명 씨의 심보가 고약한 걸까. 그의 설명은 이렇다. 말을 잘하게 되면 어느 순간 행동이 말을 못 따라간다. 특히 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화술이 느는데, 행동이 말을 좇아가지 못한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 때문에 말을 못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가 말을 못하는 연습을 한 또 다른 이유는 진짜 가치가 단순히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힘이 있다. 하나는 외면의 힘, 눈에 보이는 힘. 그리고 하나는 내면의 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다. 대법관, 장관, 정치인 등 외면의 힘이 센 사람이 있다. 외면의 힘이 진짜 힘일까. 한국 역사가 증명하듯, 군부독재 시절 이들의 역할은 아첨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가난한 대학생과 노동자는 독재에 저항했다. 김진명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무엇이 진짜인가?

지위를 높이고, 말을 잘하며, 지식을 늘리고, 돈을 모아서 권력을 가지는 삶. 이것이 외면의 힘에만 초점을 맞춘 우리의 일상이다. 하지만 외면의 힘만으로는 인생을 힘있게 걸어갈 수 없다. 절약, 효도, 사랑, 희생, 검소함 등 내면의 힘이 외면의 힘보다 더 중요하다. 김진명 씨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착함’이다. 이렇게 내면의 힘을 키울 때, 사람은 비굴해지지 않는다. 내면이 강하면 재력가, 정치인 등 이른바 성공했다는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김진명 씨는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이 자리에서 소개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책을 많이 읽었다. 그의 독서론은 어떤 책이든 무조건 읽으라는 것이다. 둘째, 돈 없이 사는 연습이다. 젊었을 때부터 훌륭한 직장인이나 사업가가 되긴 싫었다는 그는 굶는 연습과 허름한 옷을 입는 연습을 즐겨 했다고 한다. 13끼 연속으로 굶어 봤고 자신의 아버지가 입던 옷, 낡아서 헤진 옷을 입고 교정을 돌아다녔다.

작가는 독자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당부했다.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130세가 된다. 60세까지는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것과 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빌딩 부자들? 그게 진짜 삶일까? 성공?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리 속에 지진이 나려 한다. 인생은 꿈이다. 꿈은 깨지기 마련이다.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는 게 더 쉽다. 어떻게 성공하기보다는 어떻게 실패하는가가 중요하다. 공부 잘하는 인생이 공부 못하는 인생보다 우등한가? 돈 많이 번 인생이 돈 덜 본 인생보다 나은가? 진짜 인생은 책을 읽고 사색하는 인생이다. 초라해 보이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진짜 힘은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독자가 묻고 김진명이 답하다

나머지 시간은 독자의 질문에 김진명 작가가 대답하는 시간이었다. 다작으로 유명한 김진명 작가에게 한 독자는 자료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자료 조사는) 안 한다”“평소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따로 자료 조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젊었을 때 책을 많이 읽어라”고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신작 『고구려』에 관한 궁금증도 빠지지 않았다. 고구려의 왕은 보통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을 꼽는다. 이 두 왕을 빼놓고 미천왕을 처음으로 다룬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미천왕이 고구려왕 중 최고로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반인이 모를 뿐이지, 미천왕은 중국 세력을 몰아냈다는 점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

작가의 외교관과 정치관을 묻는 말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진명 씨는 한국은 미국 위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나라와 손잡는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맞다, 틀리다로 구분하면 너무 유치해진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자신을 작가 지망생으로 소개한 한 독자는 좋은 작가가 되는 방법을 물었다. 김진명 씨는 ‘작가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식이란 곧 비판적인 태도다. 세상에는 당연한 게 없다. 설사 당연하게 보이는 현상에서도 단점을 볼 수 있어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습작 한 번 해 보지 않고 소설을 쓸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작가의식이 있었던 덕택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식은 독서로써 가능하다. 실로, 책 속에는 엄청난 힘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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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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