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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이토록 새로운 삶]위악(僞惡)이란 비범한 의지

아무튼 이제는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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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으로 나는 전체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런지 일체의 망설임이 없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미소를 띠면서 나는 어느 학생을 지목해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어머니나 선생님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뿐인데, 자신이 공부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貪食)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패러독스와 …….

-이상, 「날개」

1.
요사이 강연이 많아, 무척 피곤합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강연 요청을 하면 매번 거절할 줄 몰라 큰일입니다. 특히 지방에 있는 학교나 도서관 선생님들의 전화는 내게 치명적이기까지 합니다.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 인문 저자들이 지방에 잘 내려가지 않으려고 하나 봅니다. 하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기도 하지요. 2,3시간 강연하러 지방에 가면, 그날 하루는 다른 일을 할 틈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방에서 걸려오는 강의 요청 전화는 애달픈 데가 있습니다. 미리 거절을 예감하는 듯한 강의 요청 전화는 강연을 강요하는 것보다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마치 당신이 강연을 거부하면 나와 우리 아이들 모두는 좌절할 겁니다. 뭐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꿈꾸는 인문학자로서 이건 마실 수밖에 없는 독배입니다.

나는 강연하러 가겠다고 승낙하고 맙니다. 그 순간 전화기에는 무엇인가 횡재를 한 것 같은 흥분된 목소리, 연신 고맙다는 치하가 이어지지요. 너무 행복해하는 목소리에 나도 일순간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사실 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신성한 의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희망을 심는 보람찬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강연의 효과 면에서도 50대에게 인문학을 강의하는 것보다 10대에게 하는 것이 더 파괴력이 있습니다. 부채를 생각해보세요. 부채 손잡이 부분에서의 1cm의 차이는 부챗살을 따라 올라가다 부채 끝에 이르면 20cm 정도 차이를 낳게 만듭니다. 반면 부채 끝에 못 미치는 부분에서의 1cm의 변화는 부채 끝에서는 단지 3cm 정도의 차이만 생길 뿐이지요. 아무리 피곤해도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강연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학생들이 가진 이 무한한 가능성 때문입니다.

얼마 전 다시 지방에 강연을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귀엽고 풋풋한 여고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같이 동반한 것으로 보아, 그들 대부분은 나름 자신의 학교에서 촉망받는(?) 학생들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들에게 철학과 인문학의 정신을 전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특강 형식으로 진행된 강연이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어쩌면 그들과의 만남도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더 강한 지적인 자극을 주어 인문정신의 씨앗을 심어둘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또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쳐서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며 희망을 품고 있는지를 느끼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시간의 제약은 있지만 가급적 많은 아이들과 속내를 털어놓는 대화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제일 처음으로 나는 전체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런지 일체의 망설임이 없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미소를 띠면서 나는 어느 학생을 지목해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어머니나 선생님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뿐인데, 자신이 공부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 아이는 어머니나 선생님과 무관한 일이라고 공부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성취감 때문이라고 정색합니다. 이 순간 나의 뇌리에는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의 주저 『에끄리(Ecrits)』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오늘은 라캉의 테마로 강연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인지를 점검해보는 것은 지금 아이들로서는 무척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천천히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2.
어린아이를 자폐증에 빠지게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아주 쉽습니다. 라캉의 말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미숙아’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혼자 힘으로 밥을 먹거나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생각해보세요. 바로 이런 생물학적 사실 때문에 인간은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어머니는 어린아이에게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 놀이방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다고 해보지요. 아이는 공부를 잘해서인지 상장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상장을 어머니에게 내놓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상장으로 어머니가 자신을 더 사랑해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바로 이 경우 어머니가 아이를 자폐증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상장을 받아오면 따뜻하게 포옹을 해주던 어머니가 돌변하여 아이에게 싸늘히 냉소를 지으며 말하는 겁니다. “너, 참 실망했다. 네가 상장을 받으면, 다른 아이는 못 받는 것 아니니. 너는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니.” 자 생각해보세요. 앞으로 상장을 받아올 때, 지금처럼 아이는 상장을 어머니에게 보여줄까요. 아마 힘들 겁니다. 아이는 상장을 자기의 방에 숨겨놓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겁니다. 방에 숨겨진 상장처럼, 아이는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내면에 들어가 문을 잠그게 될 겁니다. 자폐증이 시작된 셈입니다. 도대체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헛갈리는 겁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머니는 상장을 받아왔을 때 어느 경우에는 칭찬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야단을 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나의 욕망은 항상 타자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신분석학의 교훈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타자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바라고 있는 타자를 말합니다.

어머니가 일등을 원하기에 아이는 일등을 원하는 법입니다. 단지 성적만이 그럴까요. 아이가 원하는 대부분의 것은 모두 이런 식으로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내면화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물론 아이가 스스로 주체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 우리에게는 한 가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의무가 생깁니다. 그것은 타자의 욕망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자신의 욕망에서 타자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캉도 말했던 겁니다. 주체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론적으로 라캉의 말은 백번 들어도 옳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떻게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실로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자의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상(李箱, 1910-1937)의 비범함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위악(僞惡)의 방법론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타자가 선(善)이라고 원하는 것을 그대로 자신도 선이라고 욕망한다면, 이 경우 선(善)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 위선(僞善)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나 자신이 악(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직접 실천해보는 겁니다. 힘들지만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 악을 실천해보는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 그것이 행복을 준다면, 우리는 나 자신이 소망하는 진정한 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貪食)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아야 한다”고 이상이 말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식성이 어머니의 식성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마치 그것이 자신만의 진정한 식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진정한 식성을 찾기 위해 우리는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러니를 실천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요?

3.
자신만의 선을 찾기 위해 당분간 위악의 제스처가 불가피한 것 아닐까요?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마세요.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해보세요. 슬플 때 웃으려 하고 웃길 때는 울려고 노력해보세요. 이런 노력을 반복하다보면, 우리는 점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당연히 그만큼 당당한 주체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위악적인 행동을 했을 때, 여러분들은 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게 될 겁니다. 당연하지요. 사실 어머니의 욕망이란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통념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어머니들은 말하지요. “내 이야기를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내 것이 아닌 모든 욕망과는 이상의 말대로 “굿바이”하는 겁니다. 어머니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고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겁니다. 혹은 국가나 자본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고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겁니다.

이제야 이해되시나요? 우리에게 절절한 가르침을 주는 문인이나 철학자들 중 왜 그렇게 괴짜가 많았는지, 혹은 이단이 많았는지 말입니다. 그들은 괴이한 것을 좋아해서 혹은 남의 눈에 띠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들 자신으로서 욕망하고 자신으로서 사랑하고 자신으로서 살고 싶었던 겁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스스로 욕망하는 주체로 살고 싶었던 겁니다. 위악의 방법론은 임제(臨濟, ?-867) 스님에 이르면 그 극에 달하게 됩니다.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임제어록(臨濟語錄)』에 나오는 말입니다. 물론 진짜 살인을 하라는 것은 아닐 겁니다. 위악(僞惡)은 위악일 뿐, 진정한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 스스로를 주인으로 서는 데 방해되는 일체의 권위를 마음 속에서 제거하자는 겁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선사(禪師)들 중에는 관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위악을 제대로 실현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종용록(從容錄)』은 잔혹한 에피소드를 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지 스님은 누가 물어올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이곤 했다. 낯선 사람이 스승의 가르침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를 모시던 시동(侍童)도 스승처럼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구지 스님은 칼로 시동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시동은 너무 아파 통곡하며 방을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구지 스님은 시동을 불렀고, 시동은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구지 스님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시동은 갑자기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제자의 손가락을 칼로 무자비하게 자른 스승이나, 그런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제자나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자가 자신의 제스처가 아니라 스승의 제스처를 흉내 낸 것은 위선입니다. 스승은 바로 이 위선이야말로 제자가 주체로 서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한 겁니다. 위선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위악이 마침내 제자로 하여금 위선의 길이 아닌 진정한 선의 길을 가도록 하는 약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가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를 성 주네(Saint Genet)라고 중시했는지 이해되시나요? 주네는 어린 시절부터 소년원과 형무소를 제 집 드나들던 위악적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도둑일기(Journal du voleur)』라는 작품을 썼을 정도로 위악적인 문학을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위악의 길은 위선을 폭로하고, 진정한 주체의 욕망을 되찾아주는 길이 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위선에서 벗어나서 위악을 행할 때가 아닌가요?

강의를 마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다음 시험에 확실히 답이 아닌 것만을 정답으로 체크해보세요. 때로는 이상이 말했던 것처럼 아이러니, 위트, 그리고 패러독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입니다. 자신이 원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굿바이!’나 시니컬하게 ‘됐거든!’이라고 외칠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찾는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날 어리둥절해하는 학생들 중 몇 명이나 구지 스님의 시동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혹은 나의 위악적 강연에 애꿎은 손가락만 잘린 학생은 없었던 것일까요?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이제는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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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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