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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드렁니도 그대로! 결점 감추지 않는 조선 선비들의 초상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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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달리 우리네 자화상은 독특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궁금한 화가가 자화상을 그린다고 했지요. 서양의 자화상도 이 점 마찬가집니다. 유별난 것은 형식입니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면 여러모로 속편한 점이 있다지요? 우선, 모델료를 안 줘도 되고 시간을 잘 지켜서 좋습니다. 말을 잘 알아듣고 못 그려도 불평하지 않는 이점도 있습니다. 우스개지만 그럴싸합니다. 남의 얼굴을 그리면 시비가 곧잘 일어납니다. 오죽하면 따지는 모델에게 “입 다물지 않으면 생긴 대로 그려버릴 거요”라고 고함친 화가가 있었을까요.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뭘까요. 반 고흐는 모델에게 줄 돈이 없어 그렸고, 렘브란트는 영욕의 일생을 기록하려고 그려댔지요. 사진이 없던 시절, 자화상은 제 모습을 알리는 방편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자화상은,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은 화가의 욕구에서 태어납니다. 하지만 자기를 아는 게 여간만 어려워야지요. ‘내가 누구인가’는 화가뿐 아니라 모두에게 곤혹스런 질문입니다. 리어왕의 저 유명한 독백이 하필 떠오르네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거, 참 가당찮은 소립니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물어봅니까. 내 안에 또 누가 있는지조차 모르잖아요. 내 안의 누구도 모르는 판에 내 밖의 누구를 찾아 나를 묻습니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알면 누구보다 내가 놀랄 노릇입니다.

서양과 달리 우리네 자화상은 독특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궁금한 화가가 자화상을 그린다고 했지요. 서양의 자화상도 이 점 마찬가집니다. 유별난 것은 형식입니다. 우리 옛 그림은 ‘자문자답’의 꼴을 지닌 사례가 유독 많습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좀 그럴듯한 표현으로 ‘내성(內省)의 본보기’가 우리 자화상이지요. 당장 그런 예를 들어볼까요.

표암 강세황은 18세기 예림의 총수로 이름 난 문인화가입니다. 이 분이 일흔 살의 자기 모습을 그렸는데, 패션이 자못 웃깁니다. 머리는 입궐시의 관모(冠帽)를 쓰고 옷은 평상시의 야복(野服)을 걸쳤지요. 표암은 그 까닭을 자화상에 자필로 적었어요. ‘저 사람이 누군가.’ 먼저, 자기를 남 보듯이 물었지요. 이어서 같잖은 옷차림을 한 이유를 이렇게 둘러댑니다. ‘이름은 조정에 올라가 있지만 마음은 산림에 내려가 있다네.’ 표암이 복장도착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과 동경을 오고간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자 언밸런스한 차림새로 그린 겁니다.

어디 표암만 그럴까요. 같은 시대에 판서 벼슬을 지낸 서예가 윤동섬도 자기 얼굴 옆에 묻고 답하는 글을 썼습니다. 윤동섬은 화가가 아니어서 남이 그려준 초상화를 받았지요. 감상만 해도 될 걸 제 모습이라서 굳이 자기 말로 거듭니다. 그의 호는 팔무당(八無堂)인데, 그림 속에서 호를 풀이하며 자문자답합니다. ‘재주가 없고(無才) 덕이 없으니(無德), 무슨 벼슬을 할까. 뜻이 없고(無慮) 생각이 없으니(無思), 어찌 오래 살까. 겨룰 마음이 없느니(無競), 기개가 강하지 못한가. 쟁여둔 것이 없으니(無宿物), 즐김을 잊었는가. 터득한 것이 없으니(無得), 힘이 부족한가. 이익을 못주니(無益), 산속에서 사는 게 맞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우리 옛 그림에서 자화상은 자문자답의 착실한 교범입니다. 왜 스스로 묻고 답하는가. 두 말할 필요 없습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정직하기 위해서 스스로 털어놓는 방식을 택한 것이죠.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자화상은 자신에게, ‘너는 누구인가’를 묻는 초상화는 화가에게, 가장 엄격한 정직성의 잣대가 됩니다. 우리 초상화는 서양화가 흔히 그렇듯이 장점을 과장하기 위해 덧칠하거나, 결점을 감추기 위해 분칠하지 않습니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자서전이자 참회록이 바로 초상화란 말이지요.

이제 초상화 하나를 놓고 살펴보지요. 초상 전문화가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 조선 후기 화원 이명기입니다. 그가 번암 채제공의 73세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명기, 「채제공 초상」, 비단에 채색, 1792년, 120x79.8cm, 수원화성박물관

영 정조 시대, 번암은 위로 신임을 얻고 아래로 존경을 받은 영의정입니다. 전신상인데요, 우뚝한 오사모와 핑크빛 홍단령 차림새에서 포스가 남다르지요. 바닥에는 값진 화문석, 손에는 노리개 달린 쥘부채, 무릎에는 향주머니, 신분을 증명하는 소도구들이 부럽습니다. 번암은 이 초상화에서 육필로 고백합니다. 그 역시 자기를 ‘너’라고 부르는군요.

‘너의 몸 너의 정신은 부모 은혜. 너의 이마 너의 발꿈치는 임금 은혜. 부채도 향도 임금 은혜. 꾸며놓은 한 몸, 어느 것이 은혜가 아니랴. 혼이 다한 뒤에도 갚을 도리가 없네.’

저는 아무 데도 없고 부모 임금의 은혜만 있다는 얘기입니다. 만인지상이되 스스로 다 감춘 겸손입니다. 그린 이는 어떻습니까. 더 멋지게 그려주려고 아양 떨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찌푸린 표정이지요? 그가 평소 저런 낯빛임을 화가는 숨기지 않습니다. 눈을 잘 보세요. 놀랍게도, 시선이 엇나가는 사시입니다. 결점이랄 수도 있는데 덮어주질 않았어요. 번암이 화가에게 몇 푼 쥐어줄 위인도 아니지만 뒷돈 받았다고 못난이를 잘난 이로 바꿔줄 이명기도 아니었겠지요. 한마디로, 찧고 까부는 붓질이 우리 초상화에는 없습니다.

초상(肖像)은 ‘모습을 닮게 하다’는 뜻이죠. 같은 옛말로 ‘사진(寫眞)’이 있습니다. ‘참됨을 베낀다’는 거죠. 이래서 초상화는 인간의 진실을 옮기는 작업입니다. 한 점을 더 보도록 하죠. 우암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이데올르그입니다.

작자미상, 「송시열 초상」, 비단에 채색, 17세기, 89.7x67.6cm, 국립중앙박물관

한 나라의 사상과 학문을 쥐락펴락한 거유(巨儒)라면 보나마나 이런 모습일 테지요. 얼굴 바깥으로 튀어나간 호랑이 눈썹에 아랫입술만 보이는 꽉 다문 입, 꿰뚫어 보는 목자(目子)가 가열찬 우암의 이력을 말해줍니다.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곳은 굵게 파인 주름과 불거진 광대뼈입니다. 꺾이지 않는 고집이 저 속에 있지요. 눈은 마음의 창이고, 광대뼈는 마음의 봉(峯), 주름은 마음의 곡(谷)이 아닐까요. 소동파도 광대뼈와 뺨을 정신의 매개체라고 한 바 있지요. 우암 고집이 어떤 고집입니까. 임금이 내린 사약을 “달고 달고나”하면서 ‘원샷’했다지 않습니까. 국보로 지정된 이 초상화에 정조가 직접 지은 글이 있습니다.

‘절의가 천추에 우뚝해 평생 나는 무겁게 우러렀노라.’

임금조차 납작 엎드린 판입니다. 침이 마르는 칭찬에도 그러나 우암은 흔들리지 않고 자백합니다. 그 곁에 자기가 쓴 글이 보입니다.

‘사슴 무리 속에서 쑥대 우거진 집에 사노니, 창문 밝고 인적 고요해 주린 배 견디며 책을 읽었지. 너의 모습 시들었고 너의 학문 비었는데, 하늘의 충정 너는 어기고 성인의 말씀 너는 업신여겼네. 내버려두노라, 너는 책 읽는 좀벌레에 지나지 않으리.’

자기를 그린 그림에 부친 자기를 경계하는 글이 가을서리 같습니다.

조선 초상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허접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검증해본 미술사가들이 자부하는 바입니다. 초상화가는 ‘한 올 한 가닥조차 다르면 결코 그 사람이라 할 수 없다’는 모토를 내세웁니다. 고관대작을 그린다고 붓이 주눅 들지도 않았지요. 초상화에 뻐드렁니 영의정, 마마자국 좌의정, 검버섯 당상관, 백반증 당하관, 죄다 나옵니다.

‘포토샵’이 전혀 없지요. 이 모든 치장하지 않은 묘사가 모델의 겉과 안을 고스란히 드러내려는 화가의 집념입니다. 그 가운데 정직과 진실이 똬리 틀고 있지요. 모델도 화가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내가 누구이고 네가 누구인지, 자화상과 초상화를 보면 짐작됩니다. 게다가 자문자답하는 성찰이 그 인물의 마음 밑바닥까지 훑어보게 합니다.

앞서 본 초상과는 결이 다른, ‘마음의 자화상’이라 할 만한 작품을 마지막으로 볼까요. 단원 김홍도가 그렸는데, 전문가들은 이 인물화가 초상화 기법을 빌리지 않은 단원의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김홍도, 「포의풍류도」, 종이에 수묵담채, 18세기, 28x37cm, 개인 소장

선비의 망중한입니다. 문인 집안의 인테리어가 보이는 그림이죠. 선비가 비파를 뜯는데, 볼 사람 들을 사람 없으니 버선을 벗어던진 맨발차림이 홀가분하지요. 단원이 선비의 심사를 써놓았습니다.

‘종이로 창을 내고 흙으로 벽을 발라 한평생 베옷 입어도 그 속에서 노래하고 읊조리리.’

가난이 가깝고 벼슬이 멀지만 시 짓고 노래하는 풍류야 오롯이 내 몫 아닙니까.
‘논어’도 맞장구치기를, ‘거친 밥 먹고 물마시며 팔 구부려 베게 삼아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지 아니한가’ 했지요.
맘 내키면 움막도 보금자리요, 흥 돋으면 바람 소리가 콧노래로 들립니다. 이것이 도(道)에 뜻을 두고 예(藝)에서 노니는 경지 아닐까요. 옛 선비는 이처럼 비싼 돈 안 들이고 잘 놀았습니다. 청풍명월은 값이 없고, 풍류는 돈으로 못 사며, 멋 부리기는 하기 나름이니 빈 주머니 탓할 게 아니지요. 단원이 글씨 오른쪽에 호리병 모양의 도장을 찍었는데, ‘빙심(氷心)’이라 새겨져있습니다.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 옥병에 들어있다네(一片氷心在玉壺)’라는 시구에서 따온 말인 즉, 세상이 어떻든 누가 뭐라 하든 단단하고 맑은 심지는 변치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이 선생은 어떠신가요. 저는 저러고 싶습니다. 단원 그림이 제 마음의 자화상이랍니다. 저의 자화상이 초라하고 한심한가요. 아니면, 꿈이 야무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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