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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이 만난 사람들]“프레임이 적당하면 셔터가 눌러진다!” 철학박사 강신주

동서양을 횡단하는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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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는 동양철학 전공자이면서 서양철학의 흐름도 꿰뚫고 있는, 그러면서도 저술과 강연 등 소통에도 능한 철학자다. 철학과 문학, 예술을 동시에 논하고, 내밀한 사적 고민을 철학의 영역으로 옮겨와 해부하고 답을 찾는 진정한 인문학자이다.

강신주 박사는 동양철학 전공자이면서 서양철학의 흐름도 꿰뚫고 있는, 그러면서도 저술과 강연 등 소통에도 능한 철학자다. 철학과 문학, 예술을 동시에 논하고, 내밀한 사적 고민을 철학의 영역으로 옮겨와 해부하고 답을 찾는 진정한 인문학자이다. 2011년 2월 그가 신작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발표하자, 그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철학이 필요한 때’이니까.


정 : 선생님도 트위터를 하시나요? 트위터를 바라보는 철학자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강 : “위험하다고 봐요. 문맥을 생략하기 때문인데요. SNS는 세상의 입,출구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직접적인 대면을 만들어내진 못해요. 그게 한계죠. 저는 오히려, 트위터 때문에 인간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고 봐요.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만나서 접촉해야 관계가 형성됩니다. 트위터는 중개만 하고 빠져야 하는데, 만남은 없고, 온라인에서만 교류를 만들죠. 그 안에서 때론 폐쇄적인 방을 만들고 들어가죠.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 있어요. 아주 위험하죠.”

정 : 만남을 주선해주는 도구가 되진 못할까요? 느슨한 관계도 삶의 유용성이 있을텐데.

강 : “저는 부정적으로 봐요. 몸을 움직여 만나는 게 진짜 만남이거든요. 온라인에서 모임을 만들고, 관계를 맺는 건 관념적 공간입니다. 감각이 협소해지고, 삶조차 약해질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만날 기회가 줄어들 거예요. 왜냐? 익숙해지는 거죠. 만날 필요가 없거든요.”

정 : 철학자의 시선은 역시 다르네요. 어떻게 철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강 : “고 1때였어요. 친구들하고 지리산에 갔는데, 별을 본 거예요. 그것도 은하수를요. 아, 정말 아득하더라구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란 게 참 작은 거구나!’ 시위가 일어나던 80년대 역시, 그런 프레임으로 보니 점점 생각이 깊어졌어요. 지금 상황 역시 10억년의 프레임으로 보면, 결국 ‘시간의 마디’ 같은 순간이 아닐까. 인문학과 철학은 결국 프레임의 문제입니다.

시인 김수영씨의 일화를 들려 드릴게요. 어느 날 아내가 흘린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그는 화가 났대요. 도대체 왜 맨날 저런 걸 흘리나! 하고. 너무 화가 났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래요. ‘곧 죽을 사람인데 뭐!’ 그랬더니 못해줄 게 없더라는 거죠. 물론, 진심은 아니었을거에요. 하지만 세상을 다양한 프레임으로 보면 다른 이면들이 보여요.”


정 : 철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두는 무엇인가요.

강 : “비트겐슈타인이 그런 말을 했죠. “철학적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해소다.” 맞아요, 결국 영원한 해결은 없어요. 순간적으로 해소될 뿐이죠. 그리고 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단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고유명사의 학문이에요. 누구나 자기 제스츄어로 살아가니까요. 자기 삶, 자기 색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언어, 자기 글을 쓰게 되잖아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그래야겠죠. 강의 하다 보면, 가끔 독백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 대답이 없고 반응이 없을 때요. 답답해요. 배를 몰고 가는데, 바람이 불지 않는 느낌이죠. 저항하는 느낌이 훨씬 좋아요. 그게 소통의 시작이니까요. 인문학은 자기 이야기를 갖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구도, 자기 프레임을 갖게 됐다면 제대로 셔터를 누를 수 있죠. ‘너만의 프레임으로 셔터를 눌러라!’”


정 : 그래도, 아직 해소하지 못하신 게 있겠죠.

강 : “그럼요. 저 같은 경우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까이 가면 잘 안 보여요. 너무 가까워지면 대상이 안 보이는 거죠. 프레임이 안 보여요. 인문학은 고독합니다.”

정 : 그 외로움과 불안이 필요하기도 하면서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강 : “있죠. 요즘 사람들을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어요. 카이스트 학생들이 죽는 것, 바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동성이 없어서 그래요. 그게 없으면 자살하는 겁니다. 도는 팽이를 멈추지 않게 하려면 계속 채찍질을 해야 해요. 그걸 누가 합니까? 스스로 해야 합니다. 못 한다면, 옆에서 ‘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어떤가요. 자신만의 팽이가 뭔지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치는 법을 모릅니다. 그걸 알려주는 게 바로 인문학이에요. ‘인문학적으로 건강하다’는 말은 자기 삶을 스스로 채찍질 한다는 뜻이에요. 카프카를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 부모가 시키는 대로 보험업을 했으면 자살했을 거에요. 스스로 글을 썼기 때문에 살 수 있었죠. 무엇을 하든, 스스로 팽이를 돌려야 합니다.”

정 : 사회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고 지금까지 팽이를 돌려온 학생도 많을 거에요.

강 : “정확한 지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욕망이 아닌 다른 이의 욕망으로 살아가요. 그런 사람은 정말 누구도 못 도와주죠. 순수한 자신의 욕망이 뭔지 못 찾는 겁니다. 이런 아이들에겐 뭐든 빨리 빨리 부딪혀서 자기 욕망을 찾으라고 말해줍니다.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고 ‘아, 연애란 이런 거구나! 할 필요 없겠다!’ 마음먹고 연애를 접는 건 불행한 삶이죠. 차라리 이성복 시를 몰르더라도 몸으로 부딪혀 연애를 하는 삶이 행복한 겁니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자기 욕망’이에요.”

정 : 책에서 언급하신 ‘집어등(集魚燈)’처럼,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 모두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들입니다.

강 : “그렇습니다. 문제는 프레임이 너무 넓다는 데 있어요. “부부 관계가 다 비슷하지 않겠어?” 이런 식의 프레임이죠. 고치려는 아무 의지가 없잖아요. 대신 우리 집 거실에 있는 냉장고나 TV를 없애자! 이런 식의 좁은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 집어등
강신주의 책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 등장하는 표현.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 비밀을 ‘욕망의 집어등(集魚燈)’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한다. 심해의 오징어는 오징어잡이 배에 매달린 집어등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화려한 불빛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달하고 싶은 치명적 유혹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정 : 한국사회의 집어등에서 우린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강 : “교육부터 바뀌어야 해요. 지금 교육은 어른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죠. 아이 스스로 팽이를 돌리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신 돌려주려고 하잖아요. 아이가 돌리는 방향이 비록 잘못됐고 넘어지더라도, 일단 혼자 돌리게 해야 합니다. 그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지금 교육은 아무 희망이 없어요.”


정 : 지금의 제도권 교육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강 : “사실 없습니다. 지금 현실로는 불가능해요. 지금 교육은 아이들을 공장 노동자처럼 돌리고 있어요. 모두 같은 생산품을 찍어내게 하잖아요. 거기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없죠. 제게 대안을 말하라고 한다면, 일단 학생 수를 줄여달라고 하겠습니다. 교사 혼자 감당해야 할 학생 수가 너무 많아요.”

정 : 선생님만의 스타일을 찾는데 도움을 준 철학자가 있겠죠

강 :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김수영이에요. 저와 감수성이 비슷해요. 또 꼽자면 불교의 나가르주나,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려웠지만 어렵다는 데 매력이 있었어요. 철학은 별을 따는 행위와 같아요. 철학은 미래에 읽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하면서, 조금씩 읽히죠. 누가 그랬죠. ‘카프카를 이해한다면 우리 시대를 모두 넘어간 것이다’ 그만큼 어려웠다는 겁니다. ‘나중에 이해되는 책’을 읽으라고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 : 철학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주제를 정할 때, 사적 영역에서 정하세요? 아니면 사회에서 다뤄지는 담론을 보세요.

강 : “숙제에요. 혼자 할 수 없는 게 철학이거든요. 고독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생기는 것 같아요. 홀로 있는 사람은 의미가 없어요. 이런 사람들에게 과연 필요한 게 뭔가 고민하는 게 바로 철학자의 몫이죠.”

정 :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겐 어떤 화두가 필요할까요

강 : “카뮈가 그런 말을 했죠. ‘나는 저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내가 우리가 되어야 해결되는 문제가 많아요. 지금 시대는 그러니까,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는 과도기 같습니다. 이게 해결되면 자살하는 아이들이 줄어들 꺼에요. 아! 나만 아픈 게 아니라 모두가 아프구나!”

정 : 우리 시대 인문학,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강 : “사실, 인문학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 안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고 몸을 쓰면서 관계를 맺어야죠. 사람 안에 있을 때 그게 인문학이죠. 강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개개인의 아픔, 상처가 보여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문학이 이렇게 재미있었나요?” 그런 말을 들으면 사실 미안하죠. 타인의 고통을 읽어나가는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강신주 박사는?


196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상상마당 등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출판기마사 문사철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강단철학에서 벗어나 대중 아카데미 강연들과 책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소통과 사유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한다. 우리 삶의 핵심적인 사건과 철학적 주제를 연결시켜 포괄적으로 풀어간 『철학, 삶을 만나다』, 장자의 철학을 ‘소통’과 ‘연대’의 사유로 새롭게 해석한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원치 않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자본주의 비판을 시도한 『상처받지 않을 권리』,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을 담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기존의 연대기적 서술을 지양하고 56개의 주제에 대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철학자들을 대비시킨 철학사 『철학 VS 철학』 등을 펴냈다.

정재승 교수는?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다. KAIST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의대 정신과 연구원, 콜롬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 다보스 포럼 ‘차세대 글로벌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 『과학콘서트』, 『크로스』(진중권 공저), 『쿨하게 사과하라』(김호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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