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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신인이 이렇게도 시니컬하다니!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버추얼 밴드 고릴라즈(Gorillaz), 야광토끼, 더 백신스(The Vacc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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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머독(Murdoc)은 3집 <Plastic Beach>를 발표하며 ‘최고의 밴드는 해체를 해야만 최고가 된다’라는 묘한 말을 던졌다.

고릴라즈(Gorillaz) <The Fall> (2011)

리더 머독(Murdoc)은 3집 <Plastic Beach>를 발표하며 ‘최고의 밴드는 해체를 해야만 최고가 된다’라는 묘한 말을 던졌다. 그 후 고릴라즈를 지지하는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로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끝으로 멈추느냐, 아니면 계속 가느냐. 물론 대다수는 이 역시 장난스런 ‘설정’이길 바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성 멤버 누들(Noodle)이 느닷없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지금 막 고릴라즈라는 밴드를 알게 된 사람들, 다시 말해 ‘고릴라즈 초심자들’은 이게 무슨 영화(혹은 만화) 같은 소리냐고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고릴라즈는 상상 속에서 튀어나와 만들어진 가상밴드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하자면 이 가상밴드가 올해로 데뷔 10년차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브릿팝의 핵심이었던 밴드 블러(Blur)의 ‘데이먼 알반’과 80년대 말부터 ‘Tank Girl’이라는 작품으로 영국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준 카투니스트 ‘제이미 휴렛’이 고릴라즈의 실체다. 데이먼 알반의 음악과 제이미 휴렛의 그림은 4명의 캐릭터(리더이자 베이시스트인 머독, 보컬과 키보드의 투디(2D), 드러머 러셀(Russel), 기타리스트 누들)로 구성된 밴드를 탄생시켰고 2001년 첫 앨범 <Gorillaz>를 내자마자 800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버추얼 밴드’로 기네스북에 오르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리믹스 & 미공개, 2장의 정규작을 포함한 다수의 앨범을 발표하며 세계 곳곳에 찬양자 수를 늘이고 있는 상태다. 자, 여기까지가 고릴라즈가 현실에 남겨둔 진짜 기록이다.

현실의 어떤 밴드보다 탄탄한 길을 다져 놓았다 싶었지만 소문의 대상엔 예외가 없는 법. 머독의 암시가 있기 이전부터 주축돌인 두 사람(데이먼 알반, 제이미 휴렛)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몇 년 동안 쉬쉬하며 흐르고 있었다. 허나 그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없이 2010년 12월 25일, 15곡의 음원이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팬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은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도록, 팬클럽이 아닌 이들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스트리밍으로 들어볼 수 있도록 활짝 열린 것이다.

팬 서비스라고는 해도 앨범에 대한 예우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데이먼 알반은 전했다. “제작에 돈이 전혀 들지 않은 데모앨범이므로 무료로 배포하는 것뿐이다”라고(물론 그가 들인 노력과 시간을 생각해보면 제작비 제로라는 말은 농담으로도 지나치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번 앨범은 제작비가 들지 않았을까? 답은 애플사의 히트상품인 iPad(아이패드)에 있다.

그는 2010년 <Plastic Beach>앨범의 북미 투어를 돌며 틈틈이 데모작업을 했고 몇 개의 악기소리를 제외한 모두를 손 안의 아이패드로 해결한 것이다. 아이패드와 프로 뮤지션의 만남의 첫 타자가 그였던 건 아니다. 발 빠른 몇몇 뮤지션이 공연에서 아이패드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The Fall> 앨범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이패드가 단발의 퍼포먼스용이 아닌 앨범 제작의 중심된 ‘악기’로 쓰였다는 것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 앨범의 속사정을 무료배포와 아이패드라는 두 가지 단어로만 추린다면 퀄리티에 대한 염려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참여 뮤지션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 든든했던 3집의 호화스런 게스트를 기억한다면 실망이라는 단어가 더욱 빠른 속도로 따라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정규작과의 차이점은 있다. 투어와 함께한 32일이라는 짧은 기간, 그리고 손가락으로 끌어당기고 붙이는 간단한 동작뿐인 애플리케이션 작업과정을 떠올려 봤을 때 당연한 결과다(특정 제품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데이먼 알반은 데모에 각별한 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음악을 만들고 있으며 데모로 불리는 작업물이 쌓여가는 상황에 따라 앨범을 발표해 왔다. 그 결과로, 2003년에 한정으로 발매한 데모 모음집 <Democrazy>와 고릴라즈의 이름으로 잇달아 발매한 리믹스와 미공개 넘버 등이 모인 사이드 앨범을 들 수 있다.

고릴라즈로 출발하면서 그의 음악적 제한선이 훨씬 옅어진 지금 그에게 데모와 Non-데모의 경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The Fall>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3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채색의 연기가 사방에 깔린 매우 고릴라즈스러운 맛이다. 반복적으로 삐걱대는 전자음이 대기를 감싸는 「Phoner To Arizona」가 첫 문을 연다. 이어 모든 옷을 벗어던진 듯 무심하게 읊조리는 보컬 곡 「Revolving doors」가 흐르는데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모든 이야기를 일각에 묵살해버리려는 듯 차분하고 냉소적이다.

「Hillbilly man」은 꿈속으로 미끄러지는 의식을 그린 양 몽환적 유희를 펼쳐 보이다가 급작스레 반전을 주며 거칠고 숨찬 현실이 숨 쉬는 바닥으로 (듣는 이를) 밀어 던진다. 「The Joplin Spider」에서는 한층 더 깊이감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뽑히고 늘어지며 내달려간다.

곡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단순한 리듬을 고수한다. 튀는 트랙은 지난 앨범에서도 피쳐링에 참여했던 있는 Bobby Womack의 목소리가 담긴 「Bobby in Phoenix」 정도다. 앨범 전체의 흐름만을 보자면 삐딱한 시선을 주어야겠지만 낭만적 정서가 흐르는 블루스는 그렇기에 더욱 진하게 귓가에 스며든다 할 수 있겠다.

앞서도 말했듯 고릴라즈는 가상밴드다. 하지만 그 존재는 이미 많은 이의 실생활 깊은 곳까지 침투해있다. 뮤지션에게 있어 소통의 기본뿌리는 음악이지만 소리뿐인 음악은 현대인에게서 멀어진지 오래다.

밴드 캐릭터를 홈페이지에서 만나고 그들의 작업환경을 둘러보고 함께 게임을 즐기고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들의 얼굴이 프린트된 물건을 사고 만지고 직접 소유할 수도 있다. 처음이라 어쩔 수 없이 갖춰야만 했던 요건들은 놀랍게도 고릴라즈가 세상에 나온 그 시점부터 차별화된 강점으로 펀치를 날리게 된 것이다.

그래픽과 음악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현실성 이상의 감촉을 만들어낸 밴드, 그 팀이 고릴라즈다. <The Fall>이 3.5집으로 남게 될지, 특별한 타이틀 없이 데모 모음으로 불리게 될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기록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는 현 시점에서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여전히 고릴라즈는 머독으로 누들로 투디로 혹은 러셀로 온 세상의 네트워크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숨을 나눠 쉬고 있을 뿐이다.

글 / 조아름(curtzzo@naver.com)

야광토끼 <Seoulight> (2011)

검정치마를 과감하게 벗었다. 키보디스트 임유진이 밴드 검정치마가 활동을 접은 지 1년여 만에 솔로앨범을 내놓았다. 비록 검정치마로 서문을 열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음악과 사랑의 기록이 「Seoulight」에서 발광한다.

갈지자(之字)로 춤추는 알딸딸한 전자음과 몽롱하고 달달한 멜로디가 앨범을 관통한다. 키보드, 신디사이저, 퍼커션의 한결같은 악기는 9곡의 제각각의 소리를 생산한다. 여기에 깡충깡충 뛰는 드럼 비트가 활력을 더하고, 조휴일의 친구라는 클리프 린의 편곡과 레코딩으로 범접하기 힘든 본토의 감각까지 장착했다.

뿅뿅 거리는 신디사이저와 단순명료한 멜로디는 1980년대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더구나 테크닉 없이 직선에 가까운 미성과 코러스는 당시 보컬 스타일에 근접하다.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에 비해 예쁜 척하지 않는 보컬은 산뜻함과 청량감을 안긴다. 「니가 내게 주는 것들」에서는 본연의 자연스러움과 진중함으로 감정선을 움직인다.

‘전개’와 ‘후크’로 단출해진 구성과 짧은 러닝타임으로 지루함을 덜었다. 전반적으로 평균 2, 3분이면 한 곡의 질주가 끝난다. 어른어른한 일렉트로니카 속에는 록과 팝의 성분이 그대로 녹아 한 장르에 갇히는 것을 저항한다. 「폴링(Falling)」은 시원하고 록킹한 기타 리프로 상쾌한 봄바람까지 소환한다.

단순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가사도 듣는 재미를 더한다. 이별과 사랑만 존재하는 이분법을 떠나 짝사랑 중일때 혹은 사랑이 식은 후 등 다양한 상황이 등장한다. 꾸밈말이 적은 일상용어는 거부감은 줄이고 동질감은 높인다.

신선함과 익숙함 사이, 저울의 눈금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낯익은 모습이지만 2%의 차별화. 이런 민첩한 전략이 그의 데뷔앨범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안착시키고 있다.

2011/05 김반야(10_ban@naver.com)

더 백신스(The Vaccines) <What Did You Expect From The Vaccines?> (2011)

음악과 축구를 사랑하는 한 지인은, 이들의 음악을 듣고 ‘백신스는 분명 축구를 좋아할 것이다’라는 (조금 뜬금없는) 촌평을 남겼다. 음악이 어딘가 축구 응원가의 분위기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단순하지만 흡인력 있는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는 말일 테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어딘가 열광하고 싶은 당신이라면 이들의 음악에 주저 없이 귀를 맡겨도 좋다. 다만 비범함까지 기대했다면, 아쉽게도 백신스의 첫 앨범은 당신을 만족시켜줄만한 대물은 아니다.

열 한 개의 트랙에 토털 러닝타임 33분. 단 세 곡을 제외하면 모두 3분 안쪽에서 끝이 난다. 여기까지는 21세기 판 라몬즈(Ramones)라 칭해도 좋을 정도. 그런데 앨범 제목까지 라몬즈의 양아치스러움을 꼭 빼닮았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묻는 첫 질문이 ‘우리한테 뭘 기대했니?’라니. 새파란 신인이 이렇게도 시니컬할 수가 있나.

당돌하기 그지없는 이 그룹은 현재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예 인디 밴드다. 신인으로서 비비씨(BBC)에서 선정한 2011년의 신인(Sound of 2011) 3위, 엠티브이(MTV) 올해의 신인(Brand new for 2011)부문 노미네이트,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참가의 영광까지, 더 백신스를 찾는 러브콜은 끊이질 않는다. 이들의 무엇이 평단과 대중을 열광케 하는 것일까.

생각건대 시기적절함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사실 백신스의 사운드에 새로울 것은 없다. 그렇다고 멜로디감각이 여타 밴드들을 밟고 오를 정도로 특출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좋은 멜로디를 뽑아내는 다른 밴드들은 다 무어란 말인가.) 다만 1990년대 펑크 리바이벌 이후 이만큼이나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전통적인 접근의’ 단순한 사운드와 당찬 애티튜드를 보인 밴드가 또 있던가 싶다. 그러면서도 곡 구조를 압축화해서 강요하는 느낌을 피했다는 것, 이것이 백신스가 비상한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앨범의 들뜬 분위기를 정리하는 느낌의 8분짜리 맺음곡 「Family friend」를 제하고는 모든 곡이 딱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빠진다. 기타는 정직한 다운 스트로크로 일관하고, 보컬은 영국식 영어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억양으로 (노래다운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무심하게 단어를 툭툭 뱉는다. 「Wreckin' bar」, 「If you wanna」, 「Post break-up sex」가 많이 사랑받고 있지만, 「A lack of understanding」과 「Blow it up」 또한 밴드의 멜로디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특이한 것은 앨범 전체에서 악기에도, 보컬에도 리버브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인데, 이것 때문에 전체적으로 붕 뜬 것 같은 독특한 연출이 있다. 소리로만 따지자면 과거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창안한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의 아날로그적 울림과 비슷하다. 이것은 분명 백신스가 인디 밴드이기에 택할 수 있는 전개다.

괜찮은 밴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비범함까지 감지되진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해외 매체들의 호들갑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선배들의 배턴을 이어받아 굵직한 맥을 이을 만큼 능력 있는 그룹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판가름 날듯.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앨범 제목으로 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너희들에게 뭘 기대하냐고? 우리는 당신들의 다음 앨범을 원해!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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