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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직전의 부부가 자살 여행을 떠난 이유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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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를 위해 뭘 할 수 있느냐고요? 집에 돌아가 당신의 가족이나 사랑하세요 - 테레사 수녀

5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인 동시에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신 어머님, 그 어머님에 묻어가는 아버지를 위한 어버이날이 있는 달이다. 바야흐로 가정의 달이다. 공동체가 특정한 시기에 의미부여를 했다면 구성원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당연지사. 5월을 맞아 가정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로 했다. 그렇다, 이 글의 주제는 ‘가족’이다.

가족은 원래 지지고 볶고 싸우는 거야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다. 극 중에서 최민수의 일가는 전통적인 가족상을 대변한다. 극 중에서 그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고 빈번하게 소리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희라의 일가는 서구 근대 가정으로 묘사된다. 서로 다른 두 집단의 만남은 갈등을 만든다. 드라마는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냈지만, 나의 머릿속에 남은 인상은 불쾌감이었다. 「사랑이 뭐길래」는 가족이란 공간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격돌하는 장이라는 잔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조금만 더 드라마 이야기를 해 보자. 최민수 일가와 하희라 일가의 충돌은 주로 전통과 근대의 가치 때문에 생긴다. 장자상속에 의한 가부장적 종법 질서와 서구 근대의 개인주의가 만나며 최민수와 하희라는 자주 싸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주위의 어른 중 몇몇은 이 드라마를 보며 최민수 일가에 감정이입하며 서구 핵가족 제도가 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구 핵가족 제도가 전통적인 대가족을 대체해서 가정의 안정을 파괴했다는 주장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주자학이 사회 전반에 퍼진 조선 후기에도 조부-부-자로 구성된 대가족은 사회의 일반적인 가족 형태가 아니었다. 이렇게 대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장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장자가 아닌 대부분 사람은 오늘날의 핵가족과 유사하게 어버이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꾸렸다. 이 뿐만 아니라 전통의 가족은 오늘날의 가족 못지않게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웠다. 조선 현종 때 서인과 남인 사이에 벌어진 예송논쟁도 따지고 가족 구성원의 정통성 때문에 생긴 가족 싸움이다. 이 외에도 맏며느리(총부)는 차남 또는 서얼과 상속 문제로 끊임없이 싸웠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가족은 원래 핵가족이었고 지지고 볶고 싸웠다.

이혼 직전의 부부가 자살 여행을 떠난 이유는 - 『폭주 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가족 간 벌어진 싸움은 살인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이럴 때 뉴스는 주로 ‘엽기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괴상한 일을 좇는다는 변태적인 성향을 뜻하는 단어로, 예전에는 드물게 썼지만, 이제는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사용한다. 사용 빈도가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표현의 강도는 약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비일상성을 강조하는 면에서 센 단어다. 일본소설인 『폭주 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 역시 엽기적이라 할 만큼 센 소설이다. 제목에서나 내용에서나 강하다.

어머니 치사토, 아버지 겐키, 누나 유비코 그리고 남동생 아유무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가족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이바라키 현에 있는 일본에서 제일 긴 미끄럼대. 겐키가 아끼는 랜드로버 디펜더에는 가족 외에도 한 명이 더 타고 있다. 바로 아유무의 과외 선생님, 한나.

아유무네 가족은 사이가 안 좋다. 난데없이 가족여행이라니, 모두가 의아해한다. 가족여행을 제안한 아버지 겐키의 사연은 이렇다. 최근에 사귄 여대생에게 차였으니 여행에서 가족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것. 여기서부터 사건의 냄새가 난다. 바람 핀 사실을 떳떳하게 아내에게 말하고 실연의 아픔을 가족 전원에게 함께 하자고 게 가장으로서 갖춰야 할 올바른 태도인가. 더 가관인 것은 다른 가족의 태도. 겐키의 제안에 가족 전원이 흔쾌히 승낙한다. 이상하게 보이지만 실은 모두가 다른 속마음을 갖고 있다. 특히 아버지인 겐키는 이 여행에서 인생의 허무함에 절망하며 자살하기로 했다.

‘다카쓰키의 테레사 수녀’라 불리는 치사토가 이 여행에 따라나선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평소 숱한 바람에도 묵묵히 참았던 그녀가 노리는 것은 겐키의 막대한 유산. 겐키 집안은 부동산으로 돈을 번 졸부다. 다만 돈은 겐키가 아닌 겐키의 아버지가 갖고 있다. 치사토는 겐키의 아버지가 죽자마자 이혼 소송을 걸 계획이다. 그녀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오면 위자료를 받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에 겐키의 주색잡기를 최대한 눈감아 줬다. 가족여행에 순순히 동참한 이유다.

큰 딸 유비코는 좀 더 적극적인 목적을 갖고 가족여행에 함께한다. 바로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다. 만날 술만 마시고 바람 피기 바쁜 아버지를 좋아할 딸이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세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그녀에게 아버지 겐키는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했다. 그럴 때마다 유비코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결심이 유비코를 랜드로버 디펜더 뒷좌석에 앉혔다.

아유무와 한나의 사정은 19세 관람 불가 급의 사연이라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이들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가족 여행에 동참한다. 이렇게 아유무의 가족을 태운 랜드로버 디펜더는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가족이 불량스러울 수 있다고? - 『불량 가족 레시피』

 

가족이 등장하는 막장 스토리라는 면에서 『불량 가족 레시피』『폭주 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에 뒤지지 않는다.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이 그리는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엄부자모, 상량한 어버이와 가족의 보물인 자식. 전통과 근대의 이상적인 가족상이 다르긴 하지만 둘은 공통점이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나타내듯, 다른 공동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끈끈하다는 점이다. 세계는 약육강식, 우승열패 원리가 지배하는 전쟁터지만 가정이란 울타리는 같은 피를 함께 했다는 점만으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가족이란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감동을 느낀다.

항상 보고 싶고, 생각만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가족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가족을 찾기 어렵다. 사실, 일부의 사람만 가족이란 단어에서 무한 감동을 떠올리지 대부분은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정전협정을 준비하며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게 인간이듯, 가족 역시 평화와 전쟁의 양극을 오가는 시계추다. 이 때문에 가족은 때론 불량스러울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폭주 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와 마찬가지로 『불량 가족 레시피』에서 문제의 발단은 가장인 아빠다. 손대는 사업마다 망하고 결혼에도 세 번이나 실패했으며 가족에게 사용하는 무기는 ‘폭력’이다. 능력은 없지만 성질은 더러운 가장이 지배하는 가정. 이 가정의 구성원은 간섭이 인생의 취미인 할머니, 주식에 실패한 삼촌, 뇌기능 이상으로 소변조절이 불가능한 오빠, 가출한 언니 그리고 여울이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집안을 생각한다면, 동시대에 어떻게 이런 극과 극이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며 세계체제론을 떠올리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칼 마르크스다. 가족 사회학에 기여한 바로 따지자면 마르크스보다는 엥겔스지만, 사적 유물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것은 마르크스니까. 마르크스는 하부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고 했다. 즉, 경제가 사상에 영향을 주고 몸이 정신을 지배하며 돈이 사람을 만든다는 뜻이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가장이 이끄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정신을 황폐화한다.

주인공 여울이는 자신의 계층을 자각하며, 도시빈민이라는 계급의식은 그녀의 행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용기 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꿈도 희망도 없다. 오로지 그녀는 코스프레 동호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코스프레는 충분히 생산적인 활동이다. 그렇지만 여울이는 의도적으로 공주 코스튬을 선택해 자신의 계층을 은폐하려 한다는 점에서 동호회 활동은 자기 극복이 아닌, 현실 도피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점 때문에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답게 청소년의 문제를 청소년의 언어생활을 사용하여 경쾌하게 풀어냈지만 『완득이』에서 느낄 수 없었던 어두운 분위기가 작품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가족을 사랑하세요

가족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5년 전에 김정현은 『아버지』라는 작품으로 부권의 추락을 이야기하며 가족의 균열을 묘사했다. 한 세기 전에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막장 가족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아버지와 큰 아들 드리트리의 관계는 지금 봐도 엽기적이다. 가족은 원래 때로는 불편할 수 있다는 존재다.

가족이 위기라고 한다. 위기 담론은 언제나 존재했다. 학문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신문의 위기, 언론의 위기, 출판의 위기. 물론 위기 담론에는 그럴듯한 근거가 있다. 가족의 위기를 구성하는 담론에는 이혼율 증가, 출산율 하락, 비이성애 커플이나 동거 커플 등 합법적인 이성애 결혼 제도에 저항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압축적 근대화를 겪은 한국에는 도시화와 근대화가 가족 해체 담론에 일조하기도 했다.

가족은 사라질까? 가족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가족제도의 억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앞서 다룬 두 작품 모두 자격 이하의 가장이 가정을 꾸리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때 가족은 충분히 억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몇 차례 강조했듯, 가족은 원래 지지고 볶고 싸운다. 부권을 가장과 등치시키는 편견에서 자유롭다면 좀 더 평화로운 가족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가족은 싸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곰 같은 아빠, 여우 같은 엄마, 토끼 같은 자식. 그렇다. 세 가지의 다른 종이 모였는데 어떻게 안 싸울 수 있는가.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사는 게 가족이다.

『폭주 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의 결말로 글을 끝맺으려 한다. 가족은 피가 맺어준 ‘사랑’이라는 힘으로, 미래를 기약한다. 물론 그 미래가 휘황찬란하지는 않다. 아유무 집은 폭삭 망했으니까. 그래도 험난한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인다. 특히 저자가 서장에서 인용한 한 성인의 말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뭔가 실마리를 준 것 같다.

세계평화를 위해 뭘 할 수 있느냐고요?
집에 돌아가 당신의 가족이나 사랑하세요
- 데레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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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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