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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만 봐도 한국인 국민성 알 수 있다 -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임석재

‘다르면서도 닮은 두 세계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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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서울의 대부분 건축물은 사람들의 심미안과 정서를 해치기 십상이다.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구조물이자 볼품없는 사각형으로 구획된 아파트와 주변 상가의 밋밋함은 우리의 심상을 대변한다.

대도시 서울의 대부분 건축물은 사람들의 심미안과 정서를 해치기 십상이다.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구조물이자 볼품없는 사각형으로 구획된 아파트와 주변 상가의 밋밋함은 우리의 심상을 대변한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기성품들이 브랜드만 달리해서 솟아있다. 똑같은 사각형틀에서 우리는 동질성을 강요당한다. 더불어 대칭성이 미덕처럼 각인된다. 정돈된 기표가 숨 막힐 듯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건축의 오래된 DNA일까.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의 임석재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서양 건축과의 비교를 통해 두 문명권의 차이를 앎은 물론, 우리 스스로에 대해 올바로 알자는 말을 건넨다. 건축은 문명과 시대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분야임을 상기시키며.

지난 6일, 서울 이화여대의 독특한 건축물인 ECC에서 예스24와 컬처그라퍼가 함께 하는 임석재 교수의 대중을 위한 건축 특강이 있었다. ‘우리 전통 건축 vs 서양 건축. 다르면서도 닮은 두 세계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의 특강, 비대칭(대칭)과 다질성(동질성)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됐다. 우리 건축과 서양 건축의 비교를 통해 알아보는 우리의 모습. 심미안과 정서를 해치는 건축물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야 할 때임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


비대칭의 한국적 전통


비대칭의 미학. 임 교수에 의하면, 한국 사람의 전통적인 국민성은 이것을 좋아했다. 요즘 급격히 변해가고 있으나, 이것은 서양 문물에 대한 선호 때문이다. 하긴 요즘은, 신라의 이름을 딴 한국 최고급 호텔에선 한복을 배척하는 등 말로만 ‘우리 것’을 내세우는 시대다. 어쨌든 적어도 건축을 통해 봤을 때, 서양은 대칭, 한국은 비대칭이었다.

한국의 대칭은 자연과도 연관을 맺는다. 자연은 비대칭이다. 나뭇잎만 봐도 그렇고, 사람을 봐도 비대칭이다. 좌우 똑같은 대칭은 인조물이 아닌 이상 없다. 즉 존재하는 모든 모든 것이 비대칭이다. 임 교수가 비대칭에 주목하는 이유이며, 그는 비대칭을 주제로 한 책도 준비하고 있다.

대칭구도를 유독 한국 전통 건축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주변의 자연 지세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구릉이 흐르고 계곡이 파이며 때로는 물길이 나 있는 자연 지세에 맞추다 보면 대칭 구도는 자연 피할 수밖에 없다. (p.268)

허나, 서양에서는 인공적인 손질을 가해 대칭적인 질서를 만들었다. 특히 고급 건축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반면 한국 건축은 의외로 대칭 건물이 적다.

한국 전통 건축은 비대칭 구성을 큰 특징으로 갖는다. 이는 사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궁궐, 서원, 향교, 한옥 모두 전체 배치를 놓고 보면 좌우 대칭인 경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비대칭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p.266)

그렇다면 서양에서는 왜 대칭을 선호했을까. 대칭의 궁극적인 목적은 조화로, 서양에 대칭 건물이 많은 이유는, 조화를 이루고, 질서를 통해 동일성에 도달하고자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이는 산업혁명이후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됐고, 정치권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한국은, 아니 과거의 한국은 달랐다. “한국의 전통적 국민성은, 건축을 통해 보면, 동일성은 용납이 힘들었고, 대칭도 용납이 안 됐다. 한국 사람들이 건축적인 비대칭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서양은 대칭적 질서를 만들어 인공적인 것을 얻어내려는데 반해, 한국은 비대칭을 만들어 함께 즐겼다. 이것이 한국과 서양의 큰 차이였다.”

건축이란 것이 어차피 땅 위에 인간 세계만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작업이라고 보았을 때, 대칭 구도는 가장 먼저 생각해 내기 쉬운 질서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건물을 대칭으로 짓는 것은 세계 각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특히 정형적 질서를 추구한 서양 고전 건축의 경우에는 대칭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심하게 나타난다. (p.268)

자연이나 인간 현실을 봐도, 도시의 모습은 비대칭이다. 다만 초기 조건에서 주어지는 당연한 비대칭과 의도적인 조형 의식이 개입된 비대칭은 다르다. 서양은 대칭이라는 질서를 원했으나, 과거의 한국은 인공적인 수고를 들이되, 비대칭의 미학을 만들었다.

비대칭에는 좌우 모습이 거울에 비치듯 똑같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큰 균형감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산만한 혼란으로 나타나는 무질서적 비대칭과 달리 나름대로 고도의 질서를 갖는 또 하나의 대칭이다. 이러한 비대칭은 비대칭적 대칭으로 부를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에 나타나는 비대칭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p.270)

건축학자인 임 교수에 의하면, 실제로 디자인을 해보면 대칭은 쉬운 반면, 비대칭으로 만드는 것은 고수의 영역이란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조형적인 질서로서 비대칭의 미학이 한 나라의 국민성을 대표하는 조형미로 굳어진 건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내가 파악하기로, 한국 사람들은 참 감각적이다. 잔 손재주도 있고, 사기도 잘 치고. (웃음) 그게 조형 환경에서 발산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 안 된 게 지금의 현실이다. 지금 보라. 서구식 대칭, 동일화된 건물이 참 많다.”

말인즉슨, 동일화의 폐해다. 산업 문명의 문제점이다.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동일화로 몰고 가서 하나의 질서 속에 편입하는 것. 제국주의가 가진 속성이다. 다른 것을 존중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자신과 똑같지 않으면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것.

임 교수는 비대칭의 미학이 잘 구현된 대표적 건물로, 퇴계 선생이 기초를 닦은 도산서원을 꼽았다. 그에 의하면, 퇴계 선생은 뛰어난 건축가였다. 조선시대에는 고급 예술가나 전문 직종으로서 건축가라는 직종이 없었는데, 많은 경우 집 주인이 건축에 크게 관여를 했다. “퇴계 선생의 사상에 비춰보면, 유형학적인 화이부동 개념이 도산서원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도산서원 제대로 보기


도산서원을 유형학적인 개념에서 어떻게 볼까.

“도산서원의 가장 큰 특징은 사각형들의 향연이다. 크고 작은 영역들이 각종 다양한 사각형의 조합으로 이뤄졌다. 유형학적으로 최소한의 공통분모(사각형)가 있음에도, 각 개별요소가 갖는 차이가 있다. 동질과 차이를 동시에 커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면서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도산서원이 사각형 공간의 전시장이라 함은,… 시설들이 각각 사각형 마당 속에 들어앉은 방식이 모두 달라서 사각형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유형이 이곳에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도산서원의 사각형 마당들이 이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만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가서 도산서원의 각 시설 사이를 걸어보면 참으로 변화무쌍한 사각형 공간 구성을 경험할 수 있다.… 도산서원의 참 멋은 다양한 사각형 마당들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려 더 크고 더 다양한 하나의 큰 공간을 만들어 내는 데에 있다. (p.292)

동질과 다질, 이항 대립 요소에 대한 설명이 잇따른다. 유형학은 19세기 초 학문으로 처음 생겼다. 장 니콜라스 루이 뒤랑이라는 건축가가 여러 역사적인 건물들을 정리하면서 유형학의 기초를 다졌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도 유형학의 개념이 약하게나마 나타나나 뒤랑만큼 유형학에 대한 인식을 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니콜라스 루이 뒤랑의 유형학 연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뒤랑의 유형학 분류법 역시 도산서원에 나타난 사각형 분할 방식과의 강한 유사성이 관찰된다. (p.299)

뒤랑은 그렇다면 왜 역사적인 건물을 유형학으로 정리했을까. 이는 산업혁명과도 관련을 맺는다. 산업혁명이후 표준화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그 요구가 커졌다. 건축방식도 산업화되면서 표준화는 생명처럼 인식됐고, 뒤랑은 이에 모눈종이를 놓고 역사적인 건축양식을 정사각형으로 정리했다.

“뒤랑은 동질성에 무게를 두고 유형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 목적은, 산업화를 통한 동일화, 표준화였다. 아도르노, 니체, 하이데거 등이 경고한 것이 동일화의 유형성이었는데, 동일화는 부품화로 가기 때문이었다. 인간에 대입시키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학생들을 봐라. 몇 점짜리, 몇 등급짜리 학생으로 매겨지고, 회사에 가면 볼트나 너트 같은 부품이 된다. 꿈, 적성, 희망은 상관없이. 조형 환경에선 그리 된지 오래다. 표준화, 단일화, 부품화 등 철학자들이 경고했던 내용인데, 뒤랑의 몇 장의 그림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시 돌아와서, 도산서원을 살펴보면, 사각형이나, 유형이 갖는 양면성, 즉 동질성과 다질성 중에 다질성에 방점을 둔다. 다질성은 서양 철학자 가운데 베르그송이 주장한 바 있는데, 19세기 산업화된 동일화에 기초를 둔 물질이상향이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 때, 그는 물질화에 대한 폐해를 경고했다.

임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를 유심히 관찰한 결과, 물질화에 의한 폐해가 심하고, 물질적 풍요에 의한 동일화가 이뤄질수록 다질성을 뺏긴다고 말했다.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즐길 수 있는 통로가 많을수록 정신적 건강을 확보할 수 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돈이나 물질, 성과(성적)에 의해서만 정체성을 정의하는 시대가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주변 조형 환경이 이렇게 삭막해져만 갈 경우 그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무슨 얘기가 필요하냐는 핏대 섞인 삿대질만 난무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돈에 눈이 멀어 콘크리트 상자를 일렬로 늘어놓은 채 계산기만 두드리며 좋아하고 있다. (p.285)

“그래서 다질성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유형이 갖는 동일화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응용을 하면 다질성을 얻어낼 수 있는데, 도산서원이 대표적인 예다. 도산서원의 농운정사를 보면 엄마 품처럼 아늑하다. 마치 매미가 새끼를 등에 업고 있는 것처럼 디자인이 돼 있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 특유의 조형감각이 돋보인다. 건물도 마당도 청아하다. 개방된 형태고. 그 다음, 상고직사를 보면 마당이 길다. 공간마다, 공간의 성격에 맞도록, 다질성이 충분히 잘 구현돼 있다.”

틈새의 미학을 찾아서


서양의 유형학은 사각형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다. 이는 르네상스 때부터 고민을 해온 문제로, 이때의 평면을 봐도 비례가 다 있다. 허나, 비례는 산업화를 거치면서 표준화로 둔갑한다. 각 방의 사용자가 있고, 사용자가 필요한 면적이나 창을 내고 싶은 위치가 각자 있음에도, 그것은 무시당한다. 창은 가지런히, 공간은 똑같이. 이유는 명확하다. 그래야 부가 축적되므로.

“동일한 요소를 가득 담는 것은 비례, 대칭을 거쳐, 서양문명을 관통하는 절대적인 가치다. 현대로 오면서 사각형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예술가들은 꽤 있었다. 이를테면 서양의 주류문명, 사각형 안에 많은 것을 꽉꽉 눌러 담는 경우도 있었고, 그걸 패러디한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부의 축적을 꾀하는 궤적과 함께 했다. 서양의 경우, 동일한 크기로 돌을 잘랐다. 그것을 가지런히 쌓으면 돈이 됐고, 산업이 됐으며, 서양문명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동했다.

과거의 한국은 어떠했을까? 돌을 놓고 보자면, 인간의 역할은 가급적 개별 요소들의 다질적인 특징을 유지하면서 그것들을 어울리게 하는 코디네이터였다. 코디네이터 이상의 역할을 인간에게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수고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서양식으로 가지런히 담을 쌓는 구조는 돌을 자르는 데 수고가 드나, 산업으로 정착하게 되면 훨씬 수월해지고 빨라진다. 반면 돌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은 돌을 자르는 단계에선 덜 수고스럽지만 쌓을 때는 훨씬 더 수고스러워진다. 우리는 후자였다.”

다시 돌을 예로 들면, 동양에서는 자신을 돌에게 감정이입해서, 내가 돌이 되는 물아일체의 개념이 돼 물질을 분리시켜 객체로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객체로 보면, 물질의 욕망의 덫에 걸린다는 이유였다.

“나를 물질과 동일화시키면 쓸데없는 욕심을 안 부릴 수 있다. 내가 돌이면 어땠을까. 내가 돌이면 인간을 위해 똑같은 크기의 구조로 잘리지 않고, 크고 작은 제멋대로의 돌을 모아놓고 니들이 알아서 쌓여봐라. 가능하면 자신의 형상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어울려서 같이 살 방도를 궁리했을 거란 얘기다. 거기까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공예다. 기술공예나 유형, 사각형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에서 다양한 개념이 나올 수 있다.”

모서리 문제를 봐도, 서양 건축과 한국 건축을 비교할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은 모서리를 꽉 닫지 않는다. 엉성하게 열려있거나 아귀가 맞지 않는다. 궁궐의 성벽도, 차츰 표준화되는 형태를 띠나 완전 동일성으로 가진 않는다. 일본 사람들이 요즘 한국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다질성에도 있다.

“19세기이후 산업자본, 제국주의를 거치면서 꼼꼼한 일본식 조형관이 대세였으나, 21세기가 되면서 바뀌고 있다. 인구 규모나 땅 크기에 비해 다양하고 다질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쇄국정책을 놓고도 여러 말이 있다. 대원군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서양 산업 문명이 우리에게 맞지 않았다. 국민적으로 거부감이 있었던 거다.”

과거의 한국 사람들은 모서리를 딱 맞추는 걸 싫어했다. 어쩔 수 없이 막아야 할 때에도 뭔가를 남겼다. 사찰, 향교, 서원 등을 보면 ‘ㅁ’자형인데, 모서리가 늘 열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임 교수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ㅁ’자형 공간에서 모서리를 막는 걸 한국 사람들이 기질이 싫어했다. 반면 서양건축은 모서리가 딱 맞아 떨어진다. 어디 하나 물샐 틈이 없다.

그런 서양건축도 현대에 와서는 틈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물샐 틈 없음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면서, 틈새(niche)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모서리는 조형적으로 봤을 때, 특수한 지점이다. 굉장히 조건이 특수하고, 조형적으로나 건축적으로 활용되고 응용될 소지가 많다. 모서리를 엉성하게 열었더니 굉장히 재밌는 공간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가 한때 근대화가 덜 되고 미개한 것으로 알고 있던 엉성한 모서리가 그게 아니라는 거지. 베스트라는 마트의 출입구의 예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마당 공간은 틈새를 천시하거나 잊지 않고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는 섬세한 매력이 있다.… 서양 현대 건축에서 모서리는 중요한 탐구 대상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모서리를 무시했던 전통 건축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최근에는 모서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p.305, 309)

한국의 건축과 서양 건축의 일부를 놓고 비교했던 임 교수의 결론이다. 건축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도 상당히 유효한 시각이 된다는 것.

“서양식 산업주의에 목을 맨 20세기, 우리 건축이 축출의 대상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21세기에는 논의의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지난 산업화 과정 100년을 통해 그것도 우리의 일부분이 된 마당에, 앞선 시기와 이분법으로 볼 시기는 지났다. 산업화 100년의 기억이 유전자에 축적이 된 현 시점에서 한국 사람은 누구이고, 국민성이 무엇인가를 찾는 발전된 방향에서 전통 논의는 유효하다. 그런 면에서 비교건축은 상당히 좋은 개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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