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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검은 옷 여성의 정체는? - 『매혹하는 사진』박평종

한국 현대사진의 새로운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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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한 작가가 세계에 대해 취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태도를 취하는 작가들은 우선 한국 사회 고유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시작한 YES24 예술 릴레이 특강. 그 세 번째는『매혹하는 사진』의 저자 박평종 사진평론가가 소개하는 한국현대사진이다. 저자는 수많은 사진작가 중 3, 40대 초반의 젊은 작가 22인을 선택했다. 기준은 이렇다.


“이제 막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터져 나오는 이들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작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한 작가가 얼마나 한결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느냐를 보여 주는 척도이기도 하죠. 문제의식이 약할 때 작업의 지속성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각각의 작업에 연속성이 약해 보이는 경우라 하더라도 문제의식에 일관성이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 실험적인 작업도 주목했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은 바로 그 지점에서 솟아난다고 믿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한 작가가 세계에 대해 취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태도를 취하는 작가들은 우선 한국 사회 고유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가깝게는 우리의 현재, 멀리는 한국의 근현대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들이다. 이들이 제기하는 질문들은 사회적 실천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 탈역사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작가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문제들에 천착하고 있다. 묵직한 철학적 개념이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적인 질문을 다루는 경우도 있고, 시각 예술의 근본 문제나 미학의 주요 화두를 다루는 경우도 있다. (p. 5)


난다 작가. 「여우털 군단」, 245x110cm, 2008

저자는 먼저 주목한 작가는 ‘난다’였다. 그녀는 지속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업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젊은 여성작가 중 한 명이다. “서양 문화의 유입이 시작된 근대의 모습을 가공하여 보여 주면서 오늘의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수단”으로 삼는 작가의 작업은 근대의 모습을 재현해 내고 모던 걸을 그 한복판에 위치시켰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검은 옷의 여성은 모두 작가 자신이자 그녀의 복제이다.

“우리의 근대는 과거와 결별하고 서양을 모범으로 삼아 제도와 문화 등 많은 것을 모방하고 배워 온 역사라고 할 수 있죠. 오늘의 한국 사회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서양 문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근대 초기의 모습과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는 퇴화한 근대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죠. 작가가 근대의 모습을 재현하여 풍자하고 있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던 걸’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서 등장한 근대적 주체라 할 만합니다.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미래의 가능성을 준비하고자 했던 이 근대인의 화신은 점차 근대의 부정성에도 익숙해져 가는 모순적인 인물이죠.”

다음으로 살펴 본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지점을 포착하고 그 폭력이 작동하여 우리 사회를 끝없이 동물성과 야만의 상태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노순택 작가이다.

“「분단의 향기」, 「얄읏한 공」,「붉은 틀」 등의 작업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각종 사회 문제들을 들추어내는 데 힘써 왔습니다. 또한 작가는 일상의 곳곳에 스며있는 사소한 폭력의 장치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소하더라도 그것이 폭력의 씨앗이라면 언젠가는 피어나 삶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죠.”

노순택 작가. 「조류도감 시리즈」, 140x100cm, 2008, 서울

「조류도감」은 현장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유형의 사진 촬영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쓰임새에 따라 억압과 감시 등의 장치로 기능하는 사진의 권력에 대해 성찰해 보는 작업이다. 저자는 “사진은 근원적으로 폭력으로부터 비켜 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진이 “모든 개체를 타자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작업의 제목을 사진기자, 혹은 사진작가를 가리키는 비속어 ‘찍새’에서 가지고 왔다는 점도 이채롭다. 작가의 네이밍 센스는 「국기사용법」 연작에서도 이어진다. ‘술집장식용’, ‘경영대학원 체육대회용’, ‘북한규탄용’, ‘빨갱이 내려다보기용’ 그리고 ‘한미혈맹지속용’.

“「국기사용법」에서도 힘과 권력, 폭력에 대한 성찰은 계속됩니다. 태극기가 지닌 상징적 권력이 얼마나 미시적으로 우리의 일상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죠. 국기의 지배력은 강제석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상징적 권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기가 지닌 권력, 혹은 국기에 부여한 권력은 어떠한 물리적 권력보다 강하죠.”

타인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사진사


1970년대에 유행했던 외국 드라마의 주인공 ‘지니’는 눈을 깜빡거려 마법을 부리는 여인이다. 정연두 작가는 「내 사랑 지니」라는 제목의 연작에서 꿈을 실현시켜주는 지니가 된다. 사진사가 된다. 꿈, 즉 가상의 세계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을 뿐이며, “사진은 앞으로 다가올 현실을 미리 앞당겨 보여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쌍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의 첫 번째 사진은 그들의 현재, 곧 현실화될 미래에 의해 대체될 현재이므로 끝없이 뒤로 밀려나는 과거에 속하죠.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비하면 계속해서 실재성의 농도가 약해지는 현실이 됩니다. 반대로 두 번째 사진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실재성의 농도가 진해지는 현실, 어쩌면 이미 현실화되어 있을지도 모를 가상 실재가 되는 셈입니다.”

작가는 개인의 현실과 꿈을 한 쌍으로 묶어 내면서 자연과 가상의 경계를 지워 나간다. 세계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현재 모습과,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연출하여 촬영한 후 두 장면을 병치시켜 보여 주는 이 작업에서 작가는 카메라를 마법의 지팡이로 활용한다.

윤정미 작가. 「핑크 프로젝트 1-서우와 서우의 핑크색 물건들」, 122x122cm, 2006

이 밖에도 저자는 「Being a Queen」이란 제목의 작업을 통해 “타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 결국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로 귀착하는 과정”을 설치와 퍼포먼스, 비디오와 사진을 오가며 구현한 천경우 작가. 「The PinK & Blue Project」에서 “생물학적 성에 따른 취향의 차이를 보여 주면서 점차 성장 과정에서 이 차이가 희석되어 가는 모습을 통해 형질과 아비투스는 서로 길항하는 것”임을 보여 준 윤정미 작가에 주목했다.

또한, 사진 속의 여성을 주제로 삼으며 엄마와 딸 그리고 성묘와 명절 등의 모습을 렌즈에 담으며 “여성의 주체적 삶의 가능성을 탐구”해온 이선민 작가.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여성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커플들 그리고 익숙하여 편안한 땅에 안주하지 않고 이방을 꿈꾸며 체험의 폭을 넓혀 나가는 외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살아가는 모험심에 찬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김옥선 작가의 작업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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