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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미인」의 모델은 어떤 여성일까? - 『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옛 그림이 문학에 취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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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보면, 시문이 적혀 있다. 그림과 시가 조응하는 관계. 문학작품이 곧 그림으로 형상화되거나 시의 정취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옛 그림을 보면, 시문이 적혀 있다. 그림과 시가 조응하는 관계. 문학작품이 곧 그림으로 형상화되거나 시의 정취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또 다른 회화 작품으로 꼬리를 잇는다. 옛 그림들 속에 알게 모르게 다양한 문학적 의취(意趣)가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학자가 있다. 옛 그림이 문학에 취한 듯 보인다며, ‘그림, 문학에 취하다’라고 말한다.

옛 그림과 문학의 관계를 다룬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고연희 저자다. 지난달 31일, 서울 신촌의 한 모임 공간에서 YES24의 예술특강 릴레이 두 번째 시간이 열렸다. 고연희 저자가 독자들과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눴다. 문학작품을 통해 옛 그림을 감상하고 시문을 풀이하면서 그림의 속내를 이해하는 시간. 독자들은 그림에 취하고 문학에 취하면서, 봄밤을 맞이했다.

그림 속의 시문을 탐색하면서 시문의 탄생 배경과 인용구의 원천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흥미로운 시간.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림과 시문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당대의 역학관계를 보여줌으로써, 한 장의 그림이 품은 깊고 넓은 세계를 펼쳐보였다. 그 세계에 살짝 발을 디디기에 앞서, 옛 그림에 시문이 담겼던 배경에 대한 고연희 저자의 설명.

“현대 그림에는 글을 안 쓴다. 옛날 그림에는 글씨가 많이 올라와 있다. 그림에 글씨를 써 놓은 것을 그림으로 볼 것이냐, 다른 장르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그림에 글씨를 쓰는 건 원나라 이전엔 없었다. 원나라 시절에 문인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문화가 생겼다. 문인이라는 문화지배계층이 그림을 지배하면서 그림에 침범했다고 볼 수 있다.”

산수화 한 점에 담긴 이야기


조선 18세기 전반의 작품, 겸재 정선(鄭敾)의 「만폭동(萬瀑洞)」. 이 그림이 나온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당시 김창협, 김창흡 형제 주축의 문인집단을 중심으로 금강산 유람 열풍이 불었다. 그 덕에, 금강산 시(詩), 금강산 기(記), 금강산 그림(畵)이 쏟아졌다. 이 때, 만폭동은 중요한 유람코스 중의 하나였다.

조선후기의 화가 정선은 만폭동을 유난히 잘 그렸다. 만폭동 그림에서 정선의 능란하고 힘찬 필력은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p.295)


여기서 시 한 수.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제는 우레러니, 보니난 눈이로다.
-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

“정철의 시와 정선의 그림이 연관성을 갖게 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당시, 시에선 이병연이 최고요, 그림에는 정선이 독보적이었다. 이병연도 만폭동을 읊었다.”

정철의 금강산 가사는 매우 귀한 작품이었다. 또한 금강산 시를 지어 이름을 떨친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조선후기 김창흡과 이병연이 그들이다. 이들은 정선과 함께 금강산을 올랐던 문인들이며, 이들의 시문은 다시금 정선의 그림과 짝지어져 감상자들의 흥겨움을 돋우어 주었다. 이병연의 시는 더욱 뛰어나 그의 스승 김창흡에게 높이 칭송을 들었다. (p.295)


삐죽삐죽 기운 봉우리 빈 땅을 다투고
푸릇푸릇 빗긴 고개가 높은 가을에 닿네.
골짝 열려 골짝 속으로 드는 길 끝이 없고
못물 떨어져 못물 속으로 흐름에 쉼 없네
- 이병연 「만폭동」-


“반복적인 단어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다. 이 시는 만폭동의 흥겨움을 전달했다. 정선의 그림도 어떤 흥겨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정선은 리드미컬하게 그림을 그렸다. 문인들이 산에 간 이유는 수명 연장이 아니었다. 맑은 기운을 마시면서, 이 전의 성리학과 달리 감각을 통한 흥취의 가치를 인정했다.”

시인 이병연과 화가 정선은 함께 금강산을 찾아갔다.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금강산에서 취한 그들의 흥겨운 정취를 시화로 제작하며 어울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병연이 시로 표현한 산수의 정취를 정선의 그림에서 비교하며 찾아볼 수 있다. (pp.296~297)


한편으로 만폭동 바위에 글자를 쓴 것을 볼 수 있다. 15세기 기록에는 바위에 먹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18세기 문인들 여행 기록에 의하면, 만폭동 벽하담 벽에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천암경수 만학쟁류(千巖競秀 万壑爭流).

이 말은 중국의 고개지가 4세기에 지은 시에서 비롯됐다.

천 개의 바위가 솟아나길 겨루고
만 개의 골짝은 흐르기를 다투더라.
풀 나무 그 위로 올라 몽롱한 것이
구름 크게 일고 노을 가득 낀 양하더라.


“고개지가 산수여행을 갔다 왔는데, 사람들이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답한 시다. 워낙 좋은 시라 좋은 산수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 됐다. 그렇다면 만폭동 바위에 천암경수 만학쟁류를 써 놓은 사람은 누굴까? 김수증(1624~1701)이라고 문헌에 있는데, 김창협, 김창흡의 숙부다.”

만폭동을 둘러본 문사들은 만폭동 바위에 적힌 문자들 중에 ‘천암경수 만학쟁류’라는 여덟 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이 여덟 자를 누가 적었는지 동행한 스님에게 묻기도 하였다. 금강산 기행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여덟 자를 적은 사람은 종국에 김수증으로 인정되어간 사실을 볼 수 있다.(p.299)


「만폭동」과 「혈망봉」에는 주자의 글이 적혀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산벼락에 글 쓰는 것을 멋으로 삼았다. 헌데, 이것이 문화적인 행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고연희의 주장이다. 당대의 정치권력이나 시스템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

“송시열이 쓴 책에 의하면, 정치권력과 결탁이 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우리 문화재를 보고, 아름답다, 혹은 선조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 정치권력이나 사회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면, 문화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반성의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

조선시대, 중국의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조선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보고, 숭명배청(崇明拜淸)을 폈다. 그러면서 명나라 문명은 오랑캐가 삼켜서 중화는 사라졌으므로, 조선이 곧 중화인 조선중화사상이 발현한다.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학설인데, 18세기 우리나라의 산수를 그렸을까. 18세기 글을 보니, 중화사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더라. 내 조사로는 관계가 없다. 학계의 업적을 깨트리면 생명부지 할 수 있겠느냐는 염려도 받았는데, (웃음) 학계에서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 중국의 산수유람 유행의 문화는 동아시아의 국제적 문화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주성도 좋지만, 너무 몰두하면 열등의식이 표출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심사정 (1707~1769)의 작품, 「사나운 매가 토끼를 잡네」(豪鷲搏兎). 화조를 가장 잘 그리? 작가로 인정받았던 심사정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매가 토끼를 잡는 것이 주제다. 재밌는 것은, 옛 문헌을 보면 토끼를 교활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토끼가 매에게 당하는 것을 불쌍하기보단 잘 됐다고 여긴다. 이 시를 보자.

숲 속에 사는 교활한 토끼 깊은 굴만 믿더니,
가을 풀 무성해도 몸은 훨씬 뚱뚱해졌건만.
한가롭게 엎드려 머리통 깨질 방책을 생각 않더니.
피 쏟고 털 날리며 삽시간에 화를 당했네.
- 성현, 「하사받은 세화에 가을 매가 토끼 잡는 것이 그려져 있네」-


15세기의 문인 성현이 「추응박토도(가을 매가 토끼 잡네)」를 세화로 받았다. ‘세화’란 새해 아침 임금이 선물로 내리는 그림이다.… 성현은 미인도를 세화로 받고 벗들의 놀림을 받은 일도 있는데, 이와 같이 토끼 살육 장면의 그림도 받게 된 것이다. 성현은 유학자답게 「미인도」는 미인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추응박토도」는 용맹스러워지라는 뜻으로 받들고 성은에 감사하며 늙도록 감상하겠다고 다짐하였다.(p.240)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매 위에 두 마리의 새가 있다. 조선 전반기의 시를 보자.

가을토끼 풀숲에서 깡총 뛰니
배고픈 수리가 즉시 내리 덮쳤네.
피 아롱진 것은 보이지만
발톱이 눈알 뚫은 걸 누가 알리.
산새들 깜짝 놀라 날아올라,
찍찍 깍깍 공중에서 곡을 하네.
- 나식, 「두성공자의 매 그림에 부치다」-


6세기 나식이 종실화가 두성령 이암의 그림에 부친 제화시이다. 토끼가 잡혀 죽는 장면 뿐 아니라 주변 새들의 행위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시에서 읊고 있는 내용도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와 부합한다. (p.242)


다시 그림을 보면, 바위 밑에 꿩이 있다. 꿩은 바위 속에 숨어 있는데, 이런 시를 보자.

바위 아래 꿩이란 놈, 사람들이 모두 웃네.
머리 쑤셔 넣고 나무 아래 숨었는데 제대로 숨지 못했다고.
-이기지, 「여기의 한 쌍의 매 그림」 중에서 -


“책에는 이걸 더 재밌게 표현하려고, 장기전의 이야길 집어넣었다. 양반의 모습을 풍자한 거지. 그렇다고 꿩이 항상 그렇게만 표현된 건 아니다. 꿩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더라. 어쨌든 이런 그림이 왜 그려졌을까,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은 매이다.”

조선시대 문사들이 제화시를 남기며 가장 많이 감상한 새 그림이 매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사나운 매의 박력은 조선의 학자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p.244)


천지 중에 기특한 재주 영웅의 기운을 품고,
구름 뚫고 번개 당겨 푸른 하늘 놀라게 하네.
결국 때를 만나 쓰이게 되리니
토끼 잡고 여우 잡아 그 공을 보여주리.
- 서거정, 「매그림」 중에서 -


조서초기의 서거정은 매 그림의 뜻을 읊었다. 서거정이 무슨 그림을 보았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예전에 매는 주로 사냥에 쓰였기에 그는 토끼와 여우를 놓치지 않고 잡아오는 수렵용 매의 능력을 들어 매의 공력으로 예시한 것이다. (p.244)


심사정이 역시 매와 토끼를 그린 다른 작품, 「사나운 매가 토끼를 잡다」에는, 꿩이 없다. 매만 부각된다. 18세기, 강재향의 「매 기르는 사람의 이야기」 중에 매에 대한 묘사가 잘 나와 있다.

“매잡이 사냥은 고구려 벽화 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동양 뿐 아니라 중세에도 각광받는 귀족 레포츠 중의 하나였다. 명대의 박물학적인 서적인데, 「삼재도회」라는 책에 해동청이 들어 있다.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서 온다고 해동청이라 부르고,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하얀 매를 중국 황제들이 좋아했는데, 우리나라 전국에서 매를 잡아 올리면 중국 황제에게 갖다 바치는 풍습도 있었다더라.”

매는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동물이었다. 조선 태종이 신하인 이천우에게 하사한, 「푸른 매(蒼鷹)」과 「흰매(白鷹)」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매 그림이 신통력이 있다고 믿어지기도 했다. 이규경은, “요즘 재앙을 물리치고자 으레 매를 그려 붙여 액막이를 한다”는 글을 적기도 했다.

신윤복 「미인」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


현재 간송미술관에 있는 신윤복의 「미인」. 많은 사람들이 조선 미인의 전형처럼 얘기하고, 당시 여성상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삼강행실도를 다른 책을 보면, 남편을 물어간 호랑이를 때려잡은 열녀의 이야기가 있다. 그 열녀는 신체 건강하고 아름답다. 「미인」의 여성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미인」은 어떤 여성이기에?

“그림 속 여자는 아무 여성이 아니다. 기생이다. 예쁘기도 하지만, 첨단의 패션을 자랑한다. 여인의 저고리는 타이트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이 그림을 간송미술관에서 복제해서 파는데, 어느 아저씨가 ‘야, 이 여자 예쁘다, 딸 줘야겠다’고 사려고 했다. 기생을 그린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부인이 다른 그림 산다고 결국 안 샀다. 그림에서 옷고름이 풀어져 있다는 것은 정숙한 여인상은 아니라는 거다. 일본에선 미인도를 땅바닥에 깔고 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더라. 미인도의 잘못 사용한 예라고 할까? (웃음) 해석이 제각각인 혜원의 이 시를 보자.”

盤胸中 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가슴 속 만 가지 춘심을 펼쳐내노라.
붓 끝으로 대상의 정신까지 그려보았노라.


조선 17세기, 어몽룡의 「달과 문화」(월매)에 대한 이야기.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그림을 꼽으라면 나는 이 그림을 꼽겠다. 구도가 특이하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그림은 없다. 붉은 가지가 중간에 곧게 올라 있는데, 중국인은 이런 식의 매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이런 이미지를 좋아했다더라. 가늘고 꼿꼿하게 서 있는 이미지를 애호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가장 사랑한 것이 매화였다. 중국과 아주 다르다. 꽃은 적게 그려져 있는데, 19세기 오면 꽃을 크게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도 화려한 매화가 유행했다.”

이 그림과 어울리는,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안민영의 ‘매화사’의 일부다. 매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유가 아닐까.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아녔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조차 부동(浮動)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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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저19,000원(5% + 2%)

쉽고 애정 넘치는 해설로 옛그림의 감상을 돕는 책이다. 접하기 어려운 옛그림의 감상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한시문을 자세히 풀이하면서 옛 그림의 숨은 뜻을 밝혀주고, 오늘의 시각까지 곁들여 풍성한 옛 그림 읽기를 제시한다. 사실 알고보면 옛 그림은 인문학의 덩어리다. 시서화가 일체를 이룬 옛 그림은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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