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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이 불러온 일가족 살인극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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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인간의 생존 상태를 본격적으로 개선했다고 단언하려면 값을 올리지 않고도 더 좋은 주택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 문명에서 집은 언제나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었다. 안락한 공간에서 사는 데 필요한 목적인 동시에, 자신이 직접 거주하지는 않지만 부의 창출 도구로 훌륭한 가치를 지닌 수단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화폐라는 척도로 계산 가능하게 만든 자본주의는 집의 원래 용도를 거주에서 투기로 바꾸어 놓았다. 투기판에서는 언제나 얻은 사람과 잃은 사람으로 양분된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경제 대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미국과 일본의 버블 붕괴를 다룬 각각의 소설을 소개한다.

부동산 대출을 갚으려고 마리화나를 팔다 -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를 공포로 몰아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경쾌하게 꼬집은 작품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의 부동산 담보 대출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금융 위기다. 부동산에서 왜 금융 위기가 발생하지? 월급을 몽땅 정기적금으로 붓는 사람에겐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대는 흘러 바야흐로 21세기, 상황은 달라졌다. 바보야, 문제는 금융이라고.

블랙먼데이, 1997년 아시아 위기, 닷컴 버블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는 책인 『패닉 이후』에서 마이클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서브프라임을 일으킨 건 돈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라고. 버블이 꺼지기 직전,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무한한 번영을 그린다. 2009년에 작고한 세계체제론자 지오반니 아리기는 이 때를 가리켜 벨에포크(Belle Epoque)라고 표현했다. 금융경제에서의 수익이 실물경제에서의 그것보다 높은 벨에포크에는 너도나도 빚을 내서라도 묻지마 투자에 가담한다. 거품은 언젠가 빠지기 마련.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더는 가난해지지 말아야지 하는 절망으로 바뀌고, 남은 건 빚더미다.

중산층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이용한 다소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버블 붕괴의 혼란에 휩쓸렸다. 부동산을 매개로 한 각종 금융 파생 상품이 동시에 몰락했다. 치솟았던 부동산 가격이 거품이라고 밝혀지자 부동산 가격도 급락했다. 서브프라임보다 좋은 조건으로 대출받았던 중산층 역시 부동산의 몰락에 썩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의 주인공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주인공 맷은 주택가격이 급등하자 자신도 빚을 내 집을 산다. 다소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주택 가격은 어차피 오를 것이고 당시만 해도 든든한 월급 명세서가 있었다. 여기서 행복 끝, 불행 시작. 다니던 언론사에서 잘리고 한동안 신이 나게 오르던 집값도 점점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은행이 사정을 봐줄 리 없다.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으라는 압박이 그를 조여온다. 주인공은 어떤 결단을 내릴까.

맷은 마약을 팔기로 한다. 철창 안에 갇힐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지만 마약상은 고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는 대출원금과 이자를 갚기 힘든 상황에서 그가 마약상이 된 사연은 우발성과 필연성 그리고 자발성과 강제성이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다. 마리화나를 팔아서라도 대출금을 갚고자 하는 맷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무너진 미국 중산층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내 집 마련이 불러온 일가족 살인극 - 『이유』

서브프라임의 광풍이 미국을 휩쓸기 전, 일본은 이미 1990년대에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겪었다.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은 수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한때 90% 이상이 중류층이라고 자신하던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이후 하류사회로 전락했다. 실업률은 올라갔고 빈부 격차도 심해졌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은 앞서 언급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았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많은 사람이 투기 광풍에 합세한다. 버블이 붕괴하며 부동산과 주가가 동반 폭락한다. 이때 대출을 끼고 카지노 자본주의에 뛰어든 사람은 원금에 대한 이자도 갚지 못해 절망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이유』는 버블 붕괴에서 시작한 일가족 살인극을 그린 소설이다.

『모방범』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미미 여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사회 구조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으로도 유명하다.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버블 경제가 평범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묘사한 이 소설은 르포식 구성으로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상황은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와 비슷하다. 사면 오르는 기형적인 버블 경제, 많은 사람이 무리해서 집을 산다. 고이토 노부야스가 그 중 하나다. 그렇지만 버블이 꺼지고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집은 압류되어 경매에 부친다. 이대로 집을 잃기 싫었던 고이토는 경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경매 진행을 방해하기로 한다. 일가족 4인 살인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600쪽이 넘는 장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소설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개성이 풍부하다. 연령, 성별, 학력, 성격도 다 다르다. 그렇지만 살인극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인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안락한 생활을 바라는 희망이다. 희망이 향하는 대상은 인물에 따라 주택이거나 가족이거나, 각자 다르다. 중요한 점은 이 희망이 버블 경제에서 욕망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여러 개의 희망은 투기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단 하나의 욕망으로 수렴한다. 이 욕망의 끝에는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토건황국의 미래, 한국에는 어떤 소설이 탄생할까

2편의 소설이 보여주듯, 제1의 경제대국 미국과 제2의 경제대국 일본에서도 버블 붕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호황과 불황을 앉혀놓은 시소게임이다. 발전한 금융기법과 IMF, IBRD 로 상징되는 초국가적 관리 주체가 불황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자본주의 역사는 경기변동을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보기 좋게 비웃었다. 어떤 사회든 버블붕괴에 대비를 해야 한다.

특히, 한국사회는 원조 토건국가 일본보다 토건에 대한 의존이 더 높다. 그만큼 거품도 많이 끼었다. 2편의 소설을 읽으며 곧 한국에서도 이러한 소설이 나오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의 압축적인 근대화는 대규모 토건사업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소유한 땅과 주택 덕분에 비약적인 자산가치의 상승을 목격했다. 나머지 사람도 일단 사 놓으면 오른다는 ‘강남 불패설’을 믿고 대출과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

이 때문에 지금의 부동산 가치는 버블이고 거품은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김광수 경제연구소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한국의 총인구가 감소하고 서울에 대한 인구집중 현상이 둔화한다는 점, 노령층이 많아지는 대신 생산연령층이 없어짐에 따라 주택 실수요자가 줄어든다는 점 등이 집값의 완만한 하락을 주장하는 이유다. 이미 중대형 아파트를 시작으로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미국과 일본이 걸었던 길을 똑같이 따를까.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다. 『욕망을 파는 사람들』의 저자, 윌리엄 A. 서든도 주장하듯, 현실세계와 같은 복잡계에서 미래 예측은 단순한 의견 이상의 의미는 없는 법이다. 실제로 한국의 부동산에는 미국과 일본과 다른 요소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아파트 공화국이다. 거주 형태로 유독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 국민의 취향은 높은 집값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 발레리 줄레조가 지적했듯, 정부와 건축회사 그리고 중산층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한 집값은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도 땅값이 폭락하여 많은 사람을 파산으로 몰고 가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집값이 조금씩, 점진적으로 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어쨌든 폭등이든 폭락이든 ‘폭’이 들어가서 좋은 경우는 거의 못 봤으니까 말이다.

끝으로 『월든』의 저자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문명이 인간의 생존 상태를 본격적으로 개선했다고 단언하려면 값을 올리지 않고도 더 좋은 주택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월든』,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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