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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의 나의 철학수업]중학생이 칸트를 읽었다고?

내가 처음 만난 철학자,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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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철학’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난 뒤였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으레 그 또래들이 그렇듯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철학’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난 뒤였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으레 그 또래들이 그렇듯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미술반 활동이었다. 거기에서 만난 한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빌려본 책이 바로 『데미안』이었다. 물론 그 친구의 책은 아니었고, 대학생 누나의 책꽂이에 있던 책 하나를 슬쩍 빼들었는데 『데미안』이었다. 이 책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고, 참으로 오랫동안 빠져나올 수 없는 달콤한 독서의 구속을 제공했다.

정확히 말하면, 『데미안』은 철학을 가르쳐줬다기보다, 재미로 책을 읽는 것과 다른 차원을 열어줬다고 말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따뜻한 구들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수없이 반복해서 읽던 『삼국지』『몰타의 매』 같은 ‘읽을거리’와 다른 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준 것이 이 책이었다. 그 뒤로 나는 진지한 책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는데, 헌책들을 파는 보수동도 그 중 한곳이었다. 참고서나 만화책을 구하기 위해 갔던 곳에 한자 섞인 어려운 책들도 판다는 사실을 안 뒤 ‘대어’를 낚기 위한 탐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다. 당시 구한 책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로 판형이었는데, 세계사상전집에 속하는 낱권 중 하나였다. 초록빛 양장에 제목 부분만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던 이 책을 빼어든 내가 칸트라는 철학자를 알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나는 ‘사상’이라는 말에 꽂혔고, 이 책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앎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득달 같이 펼쳐본 그 책은 절반은 한자였고, 절반은 한글이었다. 다행히 집안 분위기 덕분에 한문을 좀 아는 편이어서 그럭저럭 옥편을 찾아가며 그 한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글자를 읽는 것이었지,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칸트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시에 나는 어리긴 했지만 충분히 자각할 수 있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그 책을 더 보란 듯이 끼고 다녔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한 마디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나에게 부적 같은 책이었다. 아마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렸다면 이런 허세는 칸트고 뭐고 한때 겉멋 든 중2병 환자의 겉치레로 철학이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진 해프닝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첫 담임선생님이 철학전공자 윤리선생님이셨다. 요즘 말로, 정말 ‘쩌는’ 분이었다. 아침 조례시간이면 흡사 강단에 오른 예나시절의 헤겔 같은 포스를 풍기며 쏟아내는 담임선생님의 철학 강론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은 여하튼 의욕에 넘치셨고, 불편하게 여기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 자의식 과잉의 철학 강론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자율학습시간이면 『성문종합영어』『수학의 정석』 따위를 펼쳐들고 있는 학생들 뒤에 앉아서 담임선생님은 책을 읽으셨다. 처음에 무슨 책인지 궁금했는데, 하루는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담임선생님이 화장실을 가신 틈을 타 내용을 훑어보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독일의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에 대한 책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야스퍼스라는 철학자의 이름이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방과 후에 학교 앞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담임선생님이 보시던 책을 찾아봤으나 구할 길이 없었다. 당연히 그런 책을 일반 서점에서 팔 리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럴수록 담임선생님이 공부하시던 그 철학에 대한 갈증이 드세졌다. 책 좀 읽는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기 위해서라도 철학책을 읽어야했다. 당연히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한번은 담임선생님이 예의 아침 조례시간에 “칸트를 읽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일갈을 하셨는데, 그때까지 칸트를 중학교 때 읽었다고 으스댔던 내 꼴이 우습게 보여서 의기소침해져버렸다. 중학생이 뭘 안다고 깝죽댔는가 싶기도 하고, 얼굴 들기 창피했다. 그러나 이때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철학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도 못하고 읽은 칸트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성의 계발에 대한 목마름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후일 칸트는 끊임없이 나의 삶으로 귀환했다. 헤겔과 마르크스에 홀려 있었던 대학시절을 지나 대학원에 갔을 때, 들뢰즈가 쓴 칸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찾아왔던 칸트의 흔적을 반추하며 혼자 웃기도 했다. 중 2병을 다스리기 위해 칸트를 읽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 칸트를 읽고 있을 십대들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일 테니 말이다.

내 사춘기를 뒤흔들어놓았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어떤 책일까. 이 책은 1781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철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분류할 만하다. 보통 ‘비판’ 3부작 중 첫째 권으로 알려져 있는데, 칸트가 이 책을 쓰기 전에도 다양한 철학적 작업들을 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책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논의를 시도했기에 칸트를 대표하는 저작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책을 펼치면 범상하지 않은 내용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주는 헌정사를 단번에 뛰어넘어서 머리말로 가보면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첫 문장에서 너끈히 감지할 수가 있다. 모든 책이 으레 그렇듯, 이 책도 첫 문장에서 칸트의 의도를 함축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는 특수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자연본성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그의 전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1)

일단 칸트는 ‘괴롭힘을 당하는 이성’이라는 이미지를 독자에게 던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무 잘못 없는 인간 이성이 “아무런 과실이 없음에도” 곤경에 처해 있다고 개탄하는 것이다. 도대체 칸트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칸트의 철학이 계몽주의의 정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의문의 실마리를 풀 수가 있을 것 같다.

계몽주의라는 것은 신의 이성이라는 범주로 설명되던 사물의 이치들을 인간의 이성을 통해 재규정해야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 사상운동이었다. 인식론의 기준이 전혀 달라지는 시대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썼던 것이다. 그런데 왜 칸트는 ‘순수이성’이라는 것을 ‘비판’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것을 알면, 칸트가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질 수 있겠다. 인간의 이성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칸트가 말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성은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사용’하면서 뜻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생각을 여기에서 읽어낼 수 있다.

말하자면,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신뢰한 계몽주의의 원칙을 폐기하지 않으면서, 또한 그 계몽주의를 통해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인간 이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쓴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은 모든 진리 판단의 기준이긴 하지만, 비판을 통해 한계를 끊임없이 자각해야한다는 주장을 칸트는 제기하는 것이다. 이성은 진리를 판단할 수 있지만, 그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비판 없는 ‘순수한 상태’에 머물면 독단과 교조에 빠진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다. 칸트의 철학은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 자체를 거부하면서 출발하는 것이다. 칸트 철학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의지가 없다. 칸트는 다음과 같이 멋있게 말한다.

인간의 자연본성이 무관심할 수 없는 대상의 연구와 관련해서 아무리 무관심한 척하려 해도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저 자칭 무차별주의자들이 학술 용어를 대중적인 말로 바꿈으로써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꾀해 본다 해도, 그들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한, 그들은 이내 그들이 그렇게나 멸시했던 형이상학적 주장에 다시금 빠지고 만다. 그러나 모든 학문들이 번성하는 한가운데서, 그것도 사람들이 모든 지식 중에서도 그것을 갖는 것을 되도록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바로 그 지식과 관련해 일어난 이 무관심은 각별히 주목하고 숙고할 만한 현상이다.

이 무관심은 분명히 경솔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사이비 지식에 자신을 내맡기지는 않으려는 시대의 성숙한 판단력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시대는 또한 이성에 대해, 이성이 하는 업무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인 자기 인식의 일에 새로이 착수하고, 하나의 법정을 설치하여, 정당한 주장을 펴는 이성은 보호하고, 반면에 근거 없는 모든 월권에 대해서는 강권적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성의 영구불변적인 법칙에 의거해 거절할 수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 법정이 다름 아닌 순수 이성 비판 바로 그것이다.
2)

여기에서 칸트가 공격하는 대상은 경험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주의자들이 독단적 교조주의를 훌륭하게 논파해서 “형이상학의 모든 싸움거리들”에 대한 ‘종결자’ 노릇을 하긴 했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형이상학이라는 여왕을 “일상 경험이라는 천민의 출생”으로 만들어버려서, 형이상학을 더 이상 학문의 여왕으로 부르는 것 자체를 민망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주의는 이렇게 형이상학을 대중의 품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교조주의의 결론을 되풀이해서 주장함으로써 ‘벌레 먹은 꼴’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칸트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이다. 경험주의자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니까 연기가 나더라는 경험을 토대로 이를 되풀이해도 계속 그렇다면 불과 연기의 관계는 인과율을 가진 것이므로 ‘법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는데, 칸트는 이렇게 이성보다 경험을 우위에 두는 발상 자체가 교조주의적 결론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보았다. 결국 주관적 필연성을 기준으로 놓는다는 점에서 교조주의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경험주의에 내재한 주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경험 이전 내지는 경험 밖의 영역인 순수 이성이라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내세워야할 것인데, 문제는 이렇게 이성의 요소 이외에 다른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성이 독단과 교조에 빠지는 딜레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칸트의 대안이 바로 ‘비판’인 것이다. 순수 이성의 원천과 한계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일, 바로 이것이 이성의 자기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성의 자기 인식을 토대로 형이상학을 재점검한다는 취지로 쓴 책이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사실에서 철학의 사유를 통해 당대의 문제에 개입하려고 했던 칸트의 의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철학은 시대와 철학자가 함께 엮어간 역사의 기록물이기도 하다.

나에게 칸트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변화에 철학의 이름으로 개입했던 철학자였다. 그리고 이 철학자는 내 삶에서 철학의 의미를 묻는 숱한 자기 질문들을 통해 확신의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주 |

1)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역. 서울: 아카넷, 2006. p. 165.
2) 같은 책, p.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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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택광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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