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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한국인 경제학자 장하준, 서울대는 세 번이나 임용 탈락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거는 비주류 인기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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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박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엘리트, 비주류 그리고 서울대 임용 탈락

장하준이 화제다. 손이 데일 만큼 뜨겁다. 출생부터 하나하나 풀어가본다.
장하준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박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집안은 소위 ‘엘리트 명문가’다. 아버지 장재식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3선 의원을 지냈으며 김대중정부 시절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어머니 최우숙은 경기여고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바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장하성과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진은 그와 사촌지간이다.

동생 장하석 역시 수재다. 장하석은 열여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이론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런던대 교수로 임용됐다. 2007년엔 과학철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라카토슈 상’을 수상했다. 2010년 9월부터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데, 한국인으로 이 대학 석좌교수’가 된 이는 장하석이 처음이며, 한국인으로 두 형제가 나란히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된 것도 처음이다.

장하준은 영국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에 교수로 임용됐다. 박사 학위를 받기 전인 스물일곱의 나이였다. 이에 대해 그는 “경제발전론을 전공한 교수가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기회가 왔다”“운이 좋았다”고 말한다.1) 2002년에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출간했는데, 이 책으로 2003년 ‘뮈르달 상’을 수상하게 된다. 뮈르달 상은 유럽정치진보학회에서 지난 1년간 출간된 제도경제학 서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책에 주는 상이자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2004년에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책 제목인 ‘사다리 걷어차기’는 유치산업 보호론의 시조로 알려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1789∼1846)가 고안해낸 개념이다.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이 다른 사람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걷어찬다는 뜻으로, ‘보호무역’을 통해 발전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위선적 행태에 대한 비유다.

장하준은 2005년에는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는데, 이 상은 미국 터프츠대에서 1973년 노벨경제학 상을 탄 바실리 레온티예프를 추모하기 위해 2000년에 제정됐다. 장하준은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개발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한 것이다.

케임브리지대에 재직하면서도 장하준은 모교인 서울대 교수직에 세 번이나 지원했는데 매번 탈락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서울대 경제학부가 미국 유학파를 우선시한다는 점과 주류 경제학자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제도경제학을 전공한 장하준은 비주류 경제학자이면서 유럽 박사 출신이라 서울대에서 달갑지 않게 볼 것임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인 정태인이 쓴 칼럼을 보자.

“연전에 뮈르달 상(학자에 따라서는 노벨상보다도 권위를 더 쳐준다)을 받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서울대에 교수 신청을 했다. 그는 당시에 <케임브리지 경제학 논집(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의 편집자(editor)였다. 유럽에서 유명 잡지의 편집자란 상상을 불허하는 권위이다. 한 서울대 교수가 한 마디 하셨다. ‘3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미국 것이 아니면 3류라는 이런 사고는 미국에서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사고 탓에 장하준 교수는 쓸쓸히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2)

<케임브리지 경제학 논집>은 사회과학논문인용지수(SSCI) 3위 안에 들 만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경제학술지인데, ‘3류 잡지 에디터’라고 표현한 건 지나친 오만이다. 2007년 <경향신문>의 취재에 의하면 그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34명 가운데 31명이 미국 박사, 2명이 기타 박사, 1명이 국내 박사 출신이었다.3) 국내 대학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서울대에서는 특히 미국 박사 출신을 선호한다. 중요한 건 서울대 교수들 중 ‘사실상’ 전부 주류 경제학자라는 점이다. 여기서 주류 경제학자란 수학과 통계학을 많이 쓰는 시장주의자들로 시카고학파를 지칭한다. 이 학파를 태동시킨 시카고대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다.

2007년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김수행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부에서 유일한 비주류 경제학자였다. 정년퇴임을 1년 앞둔 그해, 김수행은 퇴임 후 오게 될 교수가 주류 경제학자일 것이라며 “아무리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의 시대라 하지만 33 대 0이라니 이건 너무하다”4)고 했다. 여기서 33 대 0이란 32(주류 경제학자) 대 1(비주류 경제학자, 김수행) 비율이 이듬해가 되면 33 대 0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김수행은 “제자이자 케인즈주의자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우리 학교에 왔으면 바랬지만 그것조차 잘 안 되더라”고 씁쓸해했다.5)

한편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 서울대가 장하준을 탈락시킨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울대는 더 나은 후보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비주류인 장 교수에게 자격 미달이라며 퇴짜를 놓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 교수는 당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전 세계 대학 순위에서 10위 안에 드는 명문대의 교수를,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서울대 교수들이 자격 미달이라고 내친 것은 놀랄 만한 지적 자신감이다. 훗날 서울대 총장이 된 정운찬 교수도 당시 학문적 다양성을 위해 장 교수의 임용을 지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6)

서울대 교수 임용 탈락과는 무관하게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거는 저서를 연이어 출간한다. 『사다리 걷어차기』(2004), 『개혁의 덫』(2004), 『쾌도난마 한국경제』(2005), 『국가의 역할』(2006),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2007),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2008) 등이다. 그리고 2010년 10월 드디어 문제(?)의 화제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내놓았다.


장하준 열풍의 이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는 출간 4개월 만에 40만 부 팔렸다.
3년 전에 출간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50만 부를 넘어섰다. 『사다리 걷어차기』『쾌도난마 한국경제』 등 다른 저서까지 합하면 100만 부를 훌쩍 넘는다. 이 가운데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는데, 2008년 ‘국방부 불온도서’로 지정된 이후 오히려 탄력이 붙었고, 최근 『23가지』 열풍에 힘입어 상승효과를 거두고 있다.

화제작 『23가지』는 주류 경제학에서 주창해온 시장개방과 자유무역, 세계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허구를 들춰낸다. 자본주의 중에서도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해 메스를 들이댄 이 책이 대중에 이토록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베스트셀러 요소로 ‘3T’를 언급한다. 타이밍(Timing), 타깃(Target), 타이틀(Title)이다. 늘 성립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유용한 개념이다. 『23가지』는 우선 제목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다 탄탄한 내용으로 제목이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호응을 얻은 이유는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해 더욱 불안해하고 답답해하던 대중의 정서와 지적 욕구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융 지원 조건으로 요구한 구조 조정과 민영화,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해왔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의 삶의 질은 나아진 게 없이 오히려 소득 불평등에 따른 양극화의 골만 깊어졌다. 2008년엔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목격했다. 이에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기존 정책을 재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과 해법에 대해 어떤 경제학자나 전문가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 시점에 장하준이 등장해 대중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것이다.

『23가지』가 뜬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장하준은 풍부한 사례를 동원해 탄탄한 논리를 전개해가는 건 물론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매력적인 글을 써낸다. 이는 우파 진영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는 장하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그의 책이 “정교한 논리와 풍부한 사례 때문에 웬만한 사람이면 그의 논리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을 정도다”7)라고 말한 바 있다. 자유기업원 원장 김정호는 장하준이 훌륭한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빼어난 스토리텔러라고 말했다.8)

장하준은 주류 경제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수학과 통계학을 동원한 난해한 경제이론이 아닌, 각국의 역사와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경제 논리를 전개해간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그의 인문사회적인 소양과 전공인 제도경제학에 기인한 바 크다. 원광대 교수 조용헌에 의하면 장하준은 홍익초등학교 시절부터 구내 홍익대 도서관을 자주 방문했는데, 역사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워낙 많이 빌려 읽어 도서관 직원이 그의 아버지가 그 책을 보는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9) 한편 그의 전공인 제도경제학은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을 분석하는 데 있어 정치사회적 제도와 환경을 중시하는데 그 때문에 장하준의 경제 담론은 역사적 사례가 풍부하고 글의 전달력도 탁월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주로 약자를 배려한 경제학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23가지』에 언급된 담론들을 보자.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등이 주를 이룬다. 개발도상국 편에 서서 선진국들의 사악한 행태를 비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맥을 같이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의 반대편에는 강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가 있다. 언젠가 장하준은 “선진국들이 한 짓을 보면 원자폭탄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10)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처럼 불의에 저항하는 고발성 글은 독자의 공분과 지적 자각을 일으켜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장하준의 역할과 의미


책의 열풍만큼이나 장하준의 역할과 의미는 크다. 우선 지식의 무장 해제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다. 상당수 지식인은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잘 모른다. 어깨에 힘주고 대중과 거리를 둔다. 여기엔 자신의 위치에 대한 보상 심리와, 남들과 다르다는 구별 짓기 의식이 한 몫을 차지한다. 난해한 이론과 용어로 제 영역에 장벽을 쳐두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런데 지식은 지식인의 전유물일까? 인터넷 시대 이전엔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대세인 오늘날엔 지식인의 이런 행태는 통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수학과 통계학을 동원해 경제담론을 역설하는 동안 장하준은 경제학의 본질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며 겸손하고 친숙하게 대중에 다가섰다.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나머지 5퍼센트도 아주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숨은 근본 논리는 쉬운 말로 설명 가능하다. …… 식품 공장, 정육점, 식당 등의 위생 기준이 어때야 한다는 것은 전염병 학자가 아니어도 모두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경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상세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11)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기에 독자들이 그에게 호감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좌우를 막론하고 경제학자들은 쉽게 쓰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때 일부러 그러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어떤 경제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자기 논리를 이해하면 오히려 걱정한다더라. ‘내가 잘 못 가르쳤나?’하고.(웃음) 어느 학문이나 학자들이 자꾸 진입장벽을 만드는 못된 버릇이 있다. 어릴 때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엄숙한 표정으로 처방전에 멋들어지게 영어로 사인하는 모습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스피린 한 알’ 뭐 이런 거였다.”12)

이렇듯 장하준은 기존의 주류 경제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철학과 행태를 보여왔다. 지금처럼 경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돼 있을 때 장하준처럼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지식인이 나타나면 대중은 크게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해박한 지식과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로 먹기 좋게 밥상을 차려주는데 누가 이를 마다할 것인가. 경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말이다.

최근<중앙일보> 경제부 에디터 고현곤은 「장하준 한 명 못 당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라는 의미심장한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칼럼에서 주류 경제학자들과의 저녁 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참석한 학자들에게 왜 진작 장하준 책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그런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얼굴 내미는 학자들 문제 있어서’ ‘바빠서’ 등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애써 무시해온 장하준의 책이 40만 권이나 팔린 사실에 그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며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주류 경제학은 위기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위기다. 복잡한 수학 방정식으로 계량화하거나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덧씌운 경제 모델에 몰입해 있다. 그 모델은 정확한 것도 아니어서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내놓는 경제 전망은 민망할 정도로 빗나가기 일쑤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난해한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13)

이어 고현곤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대중과의 스킨십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그들이 현장에 발을 디디고 대중과 소통하지 않으면 주류 경제학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파 진영에 이런 조력자가 있다는 게 한편 위안이 된다.

장하준의 역할과 의미 두 번째는 일관성 있고 효과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해간다는 점이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풀어본다.

언젠가 공병호는 “격차 확대를 향한 욕망과 행동이 표출되는 곳이 시장이고 이를 통해 문명은 끊임없이 나아가게 된다”14)는 말을 했다. 시장지상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병호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존중하고 신봉한다. 장하준도 시장을 존중한다. 다만 신봉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시장도 틀릴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재미있게도 신자유주의자들이 종교처럼 신봉하는 ‘시장’에서 장하준의 책이 대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인정한 장하준이 틀렸다고 입을 모은다. 자유기업원 원장 김정호도 한마디 거든다. “인기가 옳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15)

맞는 말이다. 다만 시장지상주의자가 그런 말을 하니 어색할 따름이다. 공병호의 논리를 연장하면, 격차 확대를 향한 욕망과 행동이 표출되는 곳이 시장이고, 그곳에서 장하준은 성공했고, 이를 통해 문명은 끊임없이 나아가게 되는 것 아닐까. 장하준이 그들의 비판을 다음처럼 ‘풍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농담 섞어 말하자면) 시장지상주의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거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시장에서 성공했다면, 적어도 시장주의 시각에서는 (좋은 책이라고) 인정해줘야 한다.(웃음) 나처럼 ‘시장도 틀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시장에서 많이 팔렸다고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다’라고 해도 된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분들이 그렇게 말하면 이율배반이다.”16)

장하준은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설득을 위해 ‘비유’를 전략으로 자주 사용한다. 예컨대 자유시장주의(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시장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같은 자동차도 취객이 운전하면 살인 무기가 되지만 응급 환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면 사람 목숨을 구하듯이, 시장은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성능이 개선된 브레이크를 장착하거나 더 효율적인 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자동차 품질을 개선할 수 있듯이, 시장도 참여자들의 태도와 동기 그리고 시장을 지배하는 규정을 적절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17)

이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마냥 앞만 보고 달려온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걸어 차분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동안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규제 완화 또는 철폐, 민영화, 주주자본주의 등을 강조했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소득분배 악화와 성장률 저하 그리고 금융위기 빈발, 급기야 2008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이래도 신자유주의가 대안일까.

장하준은 보호무역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사례로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겐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아들은 그에게 의존해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뿐인가. 일을 하면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아들은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도 모른다.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경쟁에 더 많이, 더 빨리 노출될수록 아들의 발전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아들은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들이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18)

이 비유는 개발도상국에 자유무역을 강요해온 선진국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장하준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제반 시설과 경제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보호무역과 보조금, 각종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에 관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 시절에 사용했던 정책이며 오늘날 그들이 부자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정책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보호무역으로 인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선진국들이 팔 수 있는 시장도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


장하준 같은 민족주의자도 필요하다


민족주의. 장하준과 관련한 ‘뜨거운 감자’다. 재벌 문제에 대응해온 장하준의 행태 이면엔 민족주의 의식이 비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라 하면 사람들은 으레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정서적 호감 또는 비판적 거부. 필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거부한다. 어떤 내용을 가진 민족주의냐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민족주의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제국적*공격적 민족주의’와 ‘저항적*방어적 민족주의’이다. 약소국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민족주의와 강대국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족주의가 같은 개념일 수는 없다. 한국이 부와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를 탄압하는데 민족주의를 동원하면 그릇된 것이지만, 일본제국에 저항하고 방어하기 위한 민족주의는 정당하다는 뜻이다.

앞서 장하준이 약자를 배려하는 경제학을 펼친다고 말했다. 그런데 장하준은 재벌 문제에서 노동자 편만 드는 게 아니고 때론 재벌을 두둔하는 듯한 행태도 보인다. 왜일까. 필자가 볼 때 장하준이 재벌을 바라보는 관점은 ‘재벌 대 민중’보다는 ‘재벌 대 외국금융자본’ 개념에 가깝다. 아마 외국금융자본의 영향력과 파급력 때문일 것이다. 외국금융자본과의 구도에서 재벌은 장하준에게 약자가 된다. 그와 동시에 재벌은 민중과 대립하는 면도 있으니 장하준이 자신의 재벌관을 ‘중도’라고 표방하는 게 아닐까.

사례 하나를 들어본다.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의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된 해외금융자본은 재벌의 경영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해외 투기자본 소버린이 SK 주식 15%를 매집하면서 최태원가의 경영권을 위협하는가 하면, 제일은행은 뉴브리지캐피탈에 인수되면서 소비자 금융 전문 은행으로 주저앉았다. 사악한 주주자본주의를 도입했던 재벌이 바로 그 주주자본주의에 의해 부메랑을 맞아버린 것이다. 이때 장하준은 ‘사회-재벌 대타협론’을 주장한다. 우리 사회가 재벌에게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주되 재벌 역시 사회적 책무를 위해 노력하라는 게 요지다. <시사IN> 이종태 기자의 표현대로 장하준은 “재벌의 폐해보다 외국 자본주의의 폐해가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해외금융자본의 위험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본 장하준이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19)

장하준은 방송 토론이나 인터뷰 등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미국 시가총액의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돈이 2%만 들어와도 한국의 모든 상장기업을 살 수 있다.”20) 따라서 규제 장치를 강화하고 인수합병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철학이다.

우리는 한때 ‘론스타’ 같은 어느 별에서 온지 모를 ‘스타’ 하나를 만났다. 그 ‘스타’는 ‘먹튀’라는 재앙을 남기고 자기 별나라로 돌아가버렸다. 제2의 론스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 장하준이 우려하는 건 그런 것이리라.

그가 이건희를 추종하는 것도 아니고, 삼성에게 노조를 인정하라고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삼성에게 전근대적인 행태를 버리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된다고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면, 아울러 때로 재벌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취할 때 그 배경이 외국투기자본과의 대립 구도 하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그의 민족주의는 일각에서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나쁜 민족주의가 아니다. 장하준의 말로 글을 갈무리한다.

“나는 민족이 영원히 불변하는 실체라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하며 또 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민족이란 집단이 일단 형성되어 있다면 중요한 것이고, 세상이 돌아가는 핵심적 축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안녕을 걱정하는데, 이런 걱정이 민족주의라면, 나더러 민족주의자라고 해도 할 수 없지 않겠는가.”21)


1) 박광희, 「장하준 교수 “무역장벽 없애서 부자된 나라 없다”」, <한국일보>, 2011년 2월 18일 인터넷판.
2) 정태인, 「미국인보다 더 미국스러운…」, <경향신문>, 2007년 3월 20일 인터넷판.
3) 김종목*손제민*장관순,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Ⅲ-(1)지식인생산공장, 미국」, <경향신문>, 2007년 6월 24일 인터넷판.
4) 이왕구,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주의 분석에 유효”」,<한국일보>, 2007년 11월 14일 인터넷판.
5) 이왕구, 앞의 글.
6) 곽정수, 「장하준은 진보의 우군인가」, <한겨레21>, 2011년 2월 11일 인터넷판.
7) 공병호, 「거짓말 경제학… 재야 이코노미스트의 조언」,<매경이코노미>, 2008년 10월 8일.
8) 온종림, 「김정호 “장하준? 그저 훌륭한 이야기꾼일 뿐”」, <뉴데일리>, 2011년 1월 11일.
9) 조용헌,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1』,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98쪽
10) 오승주,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왜 23가지냐고?”」, <오마이뉴스>, 2010년 12월 24일.
11)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2010, 15∼17쪽
12) 오승주, 앞의 글.
13) 고현곤, 「장하준 한 명 못 당하는 주류 경제학자들」, <중앙SUNDAY>, 2011년 2월 27일 인터넷판.
14) 이정환, 「궤변으로 점철된 공병호의 장하준 비판」재인용, <미디어오늘>, 2008년 1월 25일.
15) 김정호,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경제 논리 틀린 것 많다」,<중앙일보>, 2011년 2월 8일 인터넷판.
16) 이종태, 「“내가 재벌을 옹호한다고?”」, <시사IN>, 2011년 2월 22일 인터넷판.
17) 장하준, 앞의 책, 328∼329쪽.
18)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부키, 2007, 107∼108쪽.
19) 이종태, 「과녁 빗나간 ‘장하준 책’ 비판」, <시사IN>, 2011년 2월 22일 인터넷판.
20) 박광희, 「장하준 교수 “무역장벽 없애서 부자된 나라 없다”」, <한국일보>, 2011년 2월 18일 인터넷판.
21) 이종태, 「“내가 재벌을 옹호한다고?”」, <시사IN>, 2011년 2월 22일 인터넷판.

글 : 이태준 / 사진 : 부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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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태준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마케팅 부장이다. 이 출판사에서만 13년 간 몸담고 있다. 저서로는 『이회창 대통령은 없다』(월간말, 200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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