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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여자의 옆방에 사는 건 재앙

내 방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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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여자의 옆방에 사는 건 재앙이다. 그곳이 만약 대학가 원룸촌의 작은 방 옆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기회가 된다면 방을 뺄 것을 진지하게 충고한다.

204호 여자군. 또 시작이군. 여자는 그 좁아터진 공간 안에서도 용케도 섹스를 즐긴다. 도중에 흐느끼거나 울거나 소리 높여 웃기도 한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이 고시원에서 못 산다. 방음은커녕 날이 갈수록 뛰어난 통음 효과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널빤지벽 시스템은 오직 서라운드 입체 음향에 익숙한 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김미월 『서울 동굴 가이드』


사랑에 빠진 여자의 옆방에 사는 건 재앙이다. 그곳이 만약 대학가 원룸촌의 작은 방 옆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기회가 된다면 방을 뺄 것을 진지하게 충고한다. 스물몇 살, 연애중인 여자는 뱀파이어처럼 낮밤이 바뀌어 잠도 잘 자지 않을 것이다. 어쩜 불면증에 걸린 박쥐처럼 거꾸로 침대에 누워 피 냄새를 맡듯 핸드폰으로 애인의 자취를 찾아 헤맬지도 모른다.

열애 중인 여자는 냄새로, 목소리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자국 소리로도 수없이 많은 연애의 흔적들을 남기는데, 그것의 대부분은 엄청난 양의 전화통화와 흐느낌들이다.

그 여자의 옆방에 산 지 두 달, 나는 ‘웃음소리’에 대한 짧은 단편 하나쯤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울음소리’라면 책 한 권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은 슬퍼서 울고, 어느 날은 기뻐서, 어느 날은 싸웠다고 우는 여자가 옆방에 산다고 상상해보시라. 기적적으로 화해한 날 남자가 그녀의 방에 찾아오면 그땐 기뻐서 엉엉 운다.

어디 그뿐인가. 한 동안은 새벽 4시쯤 전화기로 들려오는 옆방 여자를 위한 난데없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유행할 때, 나는 현빈이 불러 유행시켰다던 「그 남자」를 몇 번이나 들어야 했다. 이 거지같은 사랑, 그 남자는 웁니다, 라는 가사가 나올 때쯤이면 나도 ‘이 거지같은 인간들아, 좀 조용히 살자!’라고 소리치며 울고 싶어졌으니까 말이다.

짐들에 점령된 방 안 풍경은 스산했다. 물건들이 살림살이로 쓰일 때와 이삿짐으로 꾸려져 있을 때의 방의 얼굴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나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이사를 할 때마다 느꼈음에도 좀체 익숙해지지 못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벽을 따라 두서없이 세워 놓은 이 집의 내장들을 훑어보았다…이 집의 심장은 무엇인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 김미월 『여덟 번째 방』


생각해보면 지난 일 년 참 많이도 이삿짐을 꾸렸다. 원고를 쓸 수 있는 작은 책상과 노트북 하나면 족했으므로 짐이 많을 리 없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두 달, 서울의 연희동에서 석달, 다시 강원도 원주에서 두 달 그리고 한남동 집과 안암동의 작은 원룸에까지. 글이 잘 써질 것 같으면 어디든 짐을 쌌다. 방과 방 사이를 떠도는 동안, 달력의 그림이 바뀌듯 옆방과 옆방 사람들 역시 계속 바뀌었다.

평론가가 옆방에 있던 어떤 방에서는 그가 읽으며 추천했던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나 ‘필립 투생’의 짧고 강렬한 소설들을 읽었다. 평론가는 새벽 세시에 일어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다섯 시간 동안 글쓰기를 생활화한 사람이었는데, 일 년이면 만장이 넘는 원고를 쓴다고 했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책이 아닌 바로 옆에서 바라보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라, 나는 잠들지 못한 새벽에 그가 글을 쓰느라 일어나는 소리를 희미하게 듣다가 중요한 것은 역시 문학에 대한 어떤‘태도’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물은 98도나 99도씨에서는 끓지 않아요. 물은 반드시 100도씨에서만 끓잖아요. 그러니까 100도씨까지 가려면 끊임없이 쓰는 수밖엔 없는 거죠. 그저 정해진 양을 묵묵히 쓸 수밖에 없어요. 일관되게.”


오후에는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거나 가끔 커피를 마시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좁아지는 진중한 그의 미간을 바라보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마감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를 만들어 내던 내가 한심하고 쑥스러워졌다. 사진작가 배병우 역시 언젠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질을 담보하는 것은 역시 절대적인 작업량이라는 것이다.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철학적인 여행 소설을 읽으며 나는 그가 말한‘글쓰기에 최적화된 몸에 대해 생각했었다.

시인이 옆방에 거주하고 있던 때, 종종 시집을 읽거나 시인이 쓴 에세이를 읽었다. 허수경의 『길모퉁이 중국식당』을 다시 읽은 것도 옆방 시인 때문이었다. 책을 읽다가, 자신의 삶을 한편의‘시’처럼 만들어 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그 구절엔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 그는 평화주의자였다. 68세대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녹색당 일에 평생을 바쳤다. 평생 돈을 버느라 시간을 소비한 적이 없다. 많은 68세대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소위 '대안적인 삶'을 살았다. 가족들은 현실적으로 무능한 그를 떠났다. 그들의 동료인 녹색당 사람들이 정권을 잡자 그는 녹색당에서 나왔다. 그리고 68세대들이 골방에 앉아 만들던 작은 소식지를, 지금도 잊혀져 아무도 만들지 않는 그 소식지를 다시 만들었다. 낮에는 공사장에 나가서 일을 했다. 그것으로 그는 빵을 벌었다. 아니 빵과 함께 담배도 벌었다. 그는 골초였다. 그러던 그가 올해 초 담배를 끊었다. 아주 단방에. 올해부터 담배세가 전쟁을 협조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 피는 옆방 시인이 가끔 휴식을 위해 방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그에게 감추어진‘시인의 세계’에 대해 엿듣기도 했다. 말하자면 시 한 편에 얼마인가는 단편 한 편에 얼마인가라는 말만큼 불경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에서 ‘시 한 편에 3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듯한 밥이 되네~’에 대해 토론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밥을 먹고 사는 문제로, 정확히 말해 시 한 편에 3만 원조차 안 주는 현실에 대한 얘기였다. 도대체 변한 게 없었다.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시인이 배시시 웃다가 이것이 ‘아이러니’라며 다시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담배냄새’인 나 같은 사람마저 담배 피우지 마,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난 일 년, 몇 달 단위로 내 방은 계속 바뀌었다. 어느 달은 애주가로 소문난 소설가가 옆방에 오기도 했고, 어느 달은 삼교대로 일하는 간호사 출신의 극작가가 옆방에 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간호사였지만 소설가가 된 어느 작가의 정신병동을 소재로 한 소설을 읽기도 했고, 소설가가 화자로 나오는 작가 소설을 읽기도 했다. 나란 인간은 참으로 줏대가 없어서 옆방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읽고, 쓰고, 느끼는 것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참 기이한 체험이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청춘의 계단을 밟고 이사를 다닐 때마다 조금씩 좁아지고 낮아지고 어두워졌던 방들. 문이 잘 닫히지 않던 방, 저녁마다 서향으로 난 ?에 노을이 번지던 방, 장마 때면 침대 다리가 물에 잠기던 방, 정전이 잦던 방, 그가 들어오고 싶어 했던 방, 방, 방들. 그 많은 방들에 나는 내 20대를 골고루 부려 놓았다. 부등식 ‘방<집’이 아니라 등식 ‘방=집’이 성립되는 곳이었다. 그 많은 방들을 거치며 이제 나는 서른이 되었다. 요즘도 나는 지나온 길 위에 두고 온 나만의 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한다. 방들 속에 고여 있는 기쁨과 슬픔과 꿈과 절망과 환희와 분노는 하나 같이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말랑말랑해진 그 모서리들을 만져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2010년 원주에서는 김미월의 소설 『여덟 번째 방』을 읽었다. 서울로 대학을 간 후, 모두 여덟 번의 이사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바닷가 고향집에서 서울의 친척집, 대학가의 하숙방, 단칸 셋방, 옥탑방, 반지하 골방, 원룸에서 또 다른 방으로 옮겨 다니는 스물 몇 살 여자의 이야기 말이다.

작은 책상과 싱글배드, 10개 정도의 햇반이 들어가는 냉장고가 돌아가는 원주의 방에서 그 책을 읽었다. 새벽에는 가끔 고라니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부분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지경으로 방은 고요했다. 그런 방에서라면 얼마든지 책을 읽거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두 개의 단편과 스무 권쯤의 책을 읽고 여덟 개의 단편을 엮은 내 첫 번째 소설집의 마지막 교정지를 고쳤다. 그리고 ‘방=집’이 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일본에서도,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이 시대의 20대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방을 떠나던 날, 방의 모서리들을 일일이 만져보았던 것 같다. 그곳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인스턴트식품들을 찍어 ‘이 많은 인스턴트식품은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제목으로 트위터에 올렸다. 얼굴이 나오지 않는 기념사진이었는데, 어쩐지 그것이 이 방의 내장기관들인 것 같아 모조리 소화돼 사라지기 전에 기억해두고 싶었다. 방의 짐들을 정리하고 서울에 올라가기 전날 밤, 좀 울었던 것 같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말한 제2의 여자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는 두 가지 전제조건은‘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말했었다. 놀랍게도 울프는 고정수입의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명기해 놓으며 (500파운드!) 바로 그 ‘돈’으로 자기만의 방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로망 같은 게 아닐까. 자신만의 작업실을 찾기 위해 방랑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러므로 일종의 모험담에 가깝다. 제주도 어느 해녀의 집으로, 마라도의 어느 섬에서, 홍제동의 여덟 평 작은 오피스텔에서 자신만의 ‘방’을 찾았다고 얘기하는 작가들을 나는 종종 보아왔다. 나 역시 나만의 방을 찾기 위해 지금도 유랑민처럼 떠돈다. 이제 곧 대학가 이 원룸촌을 떠나 어디론가 가야 하니까 말이다. 내 방은 어디에 있을까. 마흔이 되면 이제 떠돌지 않고 나만의 방을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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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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