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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엘백화점 김주원 사장님의 언어습관에 관한 고찰

<시크릿가든>이 획득한 리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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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이 끝났다. 인어 공주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처럼, 내 일상에 그들이, 그 드라마가 물거품처럼 사그라지고 있다.

출처_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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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영혼 체인지보다 충격적, <시크릿가든>의 종영

<시크릿가든>이 끝났다. 인어 공주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처럼, 내 일상에 그들이, 그 드라마가 물거품처럼 사그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며 활동하시는 김주원 사장을 볼 때마다, 옛 애인 보는 듯 애잔한 마음이 든다. 우리 길라임 양 자리에 아직 허락한 적 없는 탕웨이(<만추>), 임수정(<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을 세워 둘 때마다, 옛 추억에 잠기는 마음들 심심하게 위로하고자 늦게나마 <시크릿가든>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어쩌다 나는 김주원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하필 왜 나야? 김~수한무~거북이와 두루미~ 내가 이걸 밤마다 어? 오죽하면 이래?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왜 하필 난데?”라고 김주원에게 따지고 싶은 분들, 염장러브씬 남발하는 엔딩을 보며, 나도 모르게 “김~수한무~거북이와 두루미~” 무한 리핏했던 동지들에게 이 글을 고하는 바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자기 성찰하는 재벌 3세 김주원

김주원은 촬영 현장 속의 길라임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출처_ SBS


<시크릿가든>은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재벌 3세 남자와 가진 것보다 부족한 게 많은 스턴트우먼의 사랑이야기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지는가?’ ‘이 둘 사이의 계급 격차, 환경의 격차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어떻게 외부의 방해를 물리치고 사랑을 완성해나갈 것인가?’ 이것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갈등의 축이 된다.

작가 김은숙은 그야말로 로코(로맨틱 코미디) 신공을 자랑하는데, 단 2회, 두 시간 만에 두 사람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김주원이 ‘미친놈처럼’ 길라임에게 빠져든 상황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로코가 첫 번째 과제, ‘이들은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지는가?’의 단계에서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데에 비해, <시크릿가든>은 조금도 주춤하지 않는다. 김주원은 길라임의 (나와는 다른) 멋진 모습에 단번에 빠져든다. 그리고 김주원의 인생 최대의 난제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몇 회에 걸쳐 고민하게 만든다.

이제껏 드라마를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다른 조연들보다 두드러지게 아리땁고 매력적인 여자주인공(이하 ‘여주)을 두고 ‘이 여자는 그냥 평범해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남자주인공(이하 ‘남주)는 평범하다고 가장한 여주를 무시하고 얕본다. 3~4회쯤, 우연한 계기로 남주는 여주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대부분 드라마 속 사랑은 남주의 이런 고백으로 시작된다. “내가 이제껏 이런 적은 없지만…… 너를 사랑하게 됐어.” 뭐, 이런 식이다.

이 말에는 “절대 너의 뛰어난 외모와 몸매에 호감을 느낀 건 아냐. 드라마 몇 회에 걸쳐 보여준 너의 순결한 영혼, 천방지축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야. 이걸 알아둬.”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남주는 시청자들보다 먼저, 때로는 혼자 여주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종종 그런 일에 속아준다. 하지만 <시크릿 가든>은 달랐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드라마에게 이렇게 일갈할 뿐이다. “세상이 동화 같니?”

자신을 설득하며 동시에 시청자들을 설득시킨 김주원

김주원이 내린 사랑의 확신은 해피엔딩을 향한 가장 탄탄한 버팀목이 된다.

출처_ SBS


선남선녀 남주, 여주가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순리지만, 김주원은 여타 남주, 여타 재벌답지 않게 끊임없이 “내가 왜 너를 사랑하는가?” 되묻는다. 이 드라마가 이전과 다른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부분이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 <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박신양)은, 길라임처럼 스턴트우먼도 아니고, 이렇다할 직업도 없고 (명색은 시나리오 작가, 때때로 영화관 알바 근무) 씩씩하기만 한 강태영을 사랑할 때, 김주원 만큼 고민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이런 자기 성찰이 있고난 후에야, 김주원은 자신이 길라임을 ‘미친놈처럼’ 좋아한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이 점이 중요한 까닭은, ‘까도남’에 나쁜 남자였던 김주원이 길라임 같은 평범한 여자를 보호하고, 결국 목숨까지 내놓는 순정을 발휘한다는, 놀라운 변화에 탄탄한 개연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드라마가 온갖 황당한 상황과 극적인 난관을 물리치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때, 그의 말처럼 “후회도 들겠지만, 그렇게 후회도 해가면서” 오래오래 잘 살겠구나, 싶어지는 거다. 결국, 김주원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설득하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을 설득시켰다.

김주원이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싸운 것은 길라임의 계급이었다. 김주원이 그것을 고민하고 노력하며 넘어섰을 때, 시청자는 영원한 사랑,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판타지에 대한 불신을 거두게 된다. 시청자들에게 사랑의 판타지를 선사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이렇게 그려졌다.

자기 주체의 화신,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처_ SBS


김주원이 이렇게 스스로 성찰하고,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모든 것을 주체로부터 인식하는 사고 습관 덕분이었다. ‘내가’라는 자기 인식이 돋보이는 김주원 특유의 대사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건 정확해, 내가. 칼 같다고, 내가.”
“인어공주, 내가 하겠다고. 내가.”
“그런 쪽에는 재주가 있다고. 내가.”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대사들을 보라. 이 세계는, 이틀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길라임의 ‘죄송합니다’의 세계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김주원의 ‘내가’화법에는 내 의지, 내 기준대로 세상을 이끌어가겠다는 욕망이 엿보인다. 반면 길라임이 남발하는 ‘죄송합니다’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자제심, 타인의 세계의 운행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물러섬이 반영된 표현이다.

“난 너무 억울하고 약 오른다고.
뭐든 해볼 생각이야. 이런 멍청한 짓도 포함해서
지금 내가 대놓고 매달리는 거야.”

시청자들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주원을 부러워하고, 자기 욕망을 정확히 아는 주원을 멋있어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욕망을 절제?판단할 줄 아는 주원을 우러러(사회 지도층의 언어로는 ‘존경’)보게 된다. 김주원 캐릭터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이러한 점이 충분히 어필되었기 때문이다.

이유 있는 차도남의 까칠함

“나를 지켜보는 눈이 얼만데, 내가 대접해준 만큼 날 대접해 줄 순 없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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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막말을 서슴치 않는 김주원, 제아무리 현빈 얼굴을 하고 있더라도 밉다. 남의 마음 따위 일랑 관심 없고, 그저 사회지도층의 윤리로 길라임의 빈티를 지적하는 그런 남자. 받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길라임에 빙의돼서) 꽤나 고민했더랬다.

“나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오기 전에 한번쯤은 자기 자신을 점검했어야지. 내가 정말, 돈 2천원 받자고 그쪽을 여기까지 오게 할 놈은 아니잖아? 내가 안본 옷은 없어? 성한 가방 없어? 시간이 없었어? 상황이 안됐나? 아님, 가방 하나 살 돈도 없는 거야? 대답해봐. 설마 내가, 가방도 하나 못사는 여자 때문에 종일 2천원 핑계로 설렜던 거야?”

‘탯줄 끊고 나올 때 싸가지도 같이 끊고 나온’ 자? 말뽄새를 보라. 길라임이 어쩔 수 없는, 그녀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공격하는 진짜 나쁜 남자. 물론 로엘 백화점 사장을 만나러 갈 때, 길라임은 유독 언벨런스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김주원은 ‘옳은 소리’를 따갑게 던진다.

“나를 지켜보는 눈이 얼만데, 내가 대접해준 만큼 날 대접해 줄 순 없었던거야?”

그래, 니 말 옳다. 다 맞다. “근데 그게 다 맞는 말이라는 게 열라 아프다.” 삼신할머니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나 세상 편하게 사는 족속보다, 나를 비롯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더 가까웠을 다수의 시청자들, 로맨틱 코미디 보면서, 김주원을 미워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같이 아팠다.

그의 까칠함은 적어도 재벌 3세가 정신연령 3세를 빙자하며 부렸던 말도 안 되는 투정은 아니다. 한국적 계급사회를 비추어봤을 때 구구절절 옳은 소리. 물론 길라임이 그를 만나기 전, 몇 번씩이나 옷을 갈아입으며, ‘나답지 않게 꾸미는 것보다 나답게 하고 나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낸 장면을 짧게 보여준다. 이 둘이 서로 배려할 수 있는 범위가 좀체 교차를 이뤄내기 어려운 현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내 노력이 우스워?” 사회지도층의 윤리와 이해

계급적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김주원은 많은 시도를 한다.

출처_ SBS


이 계급적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김주원은 많은 시도를 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길라임이 일하는 액션스쿨에 드나든다. 하지만 가난을 공부한다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고 상대를 온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노력은 더 큰 갈등을 일으킨다. 적어도 매순간 김주원은 솔직하다. ‘너를 이해했어’라고 말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어’라고 말한다.

“어떤 사회적 계층인지 짐작은 가. 완벽히 ‘이해’한 건 아냐. 그럼 시간을 줬어야지. 내 노력이 우스워? 최소한 넌 뭘 했는데? 그쪽은 나에 대해 단 5분도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화는 내더라도 그쪽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냐? 설마 내가 그쪽 편을 들길 바라는 거야? 나 잠깐 멋지자고 그러면, 그게 엄마를 더 화나게 하는 줄 뻔히 아는데, 그걸 기대한 것 자체가 동화지.”


이 난공불락의 자아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접수하나, ‘길라임’이라는 대입 값이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좀체 자기 방정식, 주어의 수식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김주원의 최선은, 방안에서 혼자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답을 찾아내는 거다. 내 의지, 내 중심대로 돌아가는 세계 속에서의 ‘나’는 혼자 참고, 견디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타인의 세계를 상상하거나 그리워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반면 노력 없이 김주원을 짐작하려고만 한 길라임은 번번이 상처를 받는다. 짐작은 자기도 모르게 기대를 부추기고, 그 기대가 무너지는 찰나의 순간, ‘이해’라는 다음 차원의 도약이 좌절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해하고 노력하고, 실험을 통해 자신이 진짜 궁금한 것을 알아내려고 하는 김주원은 태도에서 다분히 사업가 기질이 엿보인다. 이렇게 계산이 빠르고, 실천력이 남다르니, 매회 일은 뒷전이고 연애사업에만 골몰하고 있는 그가 ‘천부적인 경영능력’을 가졌다는 설정마저 과장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가 끝난 후, 한 인터뷰에서 “재벌이라는 통속적인 캐릭터를 다르게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도 읽고, 그림도 있는 교양있는 재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 진정 김주원 재벌은 남달랐다. 하지만, 김주원이 진짜 똑똑해 보일 때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감상할 때보다, 드라마 속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때가 그랬다.

그가 칼 같이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저 병원비 3,000원 받겠다고 길라임을 쫓아다니는 장면, 빌린 것을 돌려받는 장면이 아니라, 시청자도 알법한 일들, 충분히 짐작되는 일들. 이를테면, 남주의 엄마가 달려와 여주를 괴롭히는 장면. 여주가 남주를 만나지 않겠다는 억지 약속을 하고 잠수를 타는 장면에서 김주원은 ‘왜 저러지? 나(만) 몰라라’ 하고 있지 않는다. 그는 적극적으로 나서서(엄마에게 찾아가 따지거나, 잠수 탄 길라임 집 문을 두드리거나) 사건을 해결하거나 갈등을 증폭시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때문에 <시크릿가든>의 사건 진행은 쾌속질주다. 두 사람이 바뀐 것이 오스카나 무술감독에게 들켰을 때, 김주원이 아픈 길라임을 데리고 도망갔을 때에도 드라마는 공연한 우연이나 엇갈림으로 이야기를 돌리지 않고, 직구를 날린다.

들키면 털어놓고, 사라지면 금세 찾아낸다.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각자의 문제를 고민하는 순간, 서로를 생각하거나 그리워하는 장면은 느리게 편집되어 있다. 그건 시청자들이 인물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을 줄 시간을 벌은 셈이다. 그렇게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시청자들 마음까지 걸어 들어왔다.

오스카는 댁들이 그렇게 막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냐

오스카의 수많은 스캔들…그의 경지에 오른 대화법을 보자면 이해도 간다.

출처_ SBS


사실 이 드라마 속에서 진짜 판타지한 캐릭터,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는 오스카다. 비록 오스카가 빈틈 많은 허당 한류스타로 등장하고 있지만, 여자를 진정 배려해주고, 여자의 마음을 헤아려줄 줄 아는 인물이다.

대화법을 비교해보자. 김주원은 길라임 개인을 사랑하려고 하기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라는 그녀의 계급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거다. 이에 길라임 역시 ‘여자’라는 집단을 대표해서 김주원에게 답하고 있다.

“물거품 되자고 예쁘고 행복하게 사랑 키워 갈 여자가 어딨니? 세상 어떤 여자도 끝을 내놓고 사랑을 시작하진 않아. 우린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우린…… 답이 없어.”

우리의 한류스타 오스카는 한 사람을 생각할 때, 한 무리의 대표가 아닌, 개인 그 자체를 봐준다. (그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녀를 꽃처럼 호명한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경지에 오르셨다.

“뭐 그런 것까지 마음 써요. 안 그래도 지금 구멍 숭숭일 텐데. 많이 당황하셨죠? (김주원) 너야 지나간 얘기지. 너야 오늘이 오늘이지만, 라임씬 오늘도 내일도 어제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평창동 거실 한 가운데에 서 있다고. 네가 여자 맘을 알아?”

이렇게 여자도 놓치고 있는 여자 마음을 헤아려줄 때, 한류스타 오스카는 마치 우리의 ‘언니’로 빙의한 듯 보인다. 이럴 때면, 그 허당스러운 모습까지 모성애를 자극할 지경.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 오스카처럼 상대를 꿰뚫어보고 배려할 수 있다면, 이런 남자와는 굳이 몸까지 바뀌지 않아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길라임이 매번 오스카에게 아무 이유 없이 “꺄악” 없는 애교까지 부리는 이유도 납득이 간다.

윤슬이 김주원의 약혼자로 가족모임에 참석했을 때, 윤슬은 오스카를 모른 척 한다. 김주원은 오스카에게 달려가, 내가 부른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오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오라고 해서 화난 거 아냐. 내가 정말 화나는 건, 네가 그 자리에서 그 여자를 망신 줬다는 거야.” 김주원은 아마도 이해하지 못할 경지. (물론, 수많은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겠지만) 오스카는 거기에 가 있다.

<시크릿가든> 일상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물다

봉투를 확인한 길라임
“에게~ 생각보다 스케일이 작으시네요. 아, 혹시 달에 한번씩 주시는 건가?”

출처_ SBS


결정적으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상황과 캐릭터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면서, 드라마를 하나의 환상으로 거리두지 않게 했다는 점이다. 즉, 드라마의 주인공이, 대사가, 상황이 시청자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김주원과 길라임은 매 주말 방영시간 외에도 어디선가 예쁘게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시청자들이 일상 대화속에서 유행어처럼 그들의 대사를 따라 쓰며 즐거워할 때, 드라마는 현실과 브라운관의 경계를 서서히 허물었다.

뿐만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에서 클리셰라 불리우는 뻔한 설정들을 패러디하고, 비웃으며 현실과 판타지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던 점도 유효하다. 마치,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고 얘기하는 듯 하다. 대표적으로 이 장면이 그렇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 ‘이 돈 받고 떨어져’ 씬이 이 드라마에는 아래와 같이 그려졌다.

“내가 분명 다시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텐데?”
“에이~ 먼저 불러내셔 놓구”
“넌 내가 우스운 모양이구나. 그래 차도 받고 옷도 받고 이제 마지막으로 뜯어내고 싶은 거 줄게. 자, 고졸이라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거야. 이걸로 깔끔하게 정리하자. 지장 찍구. 안 그럼”
“얼굴에 물 부으시게요?”
“못 할거 같니?”
“오케이. 일단 보구요. 에게~ 생각보다 스케일이 작으시네요. 아, 혹시 달에 한번씩 주시는 건가?”

이 밖에도, 드라마 속 엑스트라가 ‘이태리 장인이 만든’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파리의 연인>의 대사를 패러디 하는 등의 일련의 ‘놀이’가 드라마 밖에서 시청자들이 끊임없이 드라마를 패러디하는 작업과 이어져 있다. 김은숙 작가 역시 시청자를 브라운관 속으로 적극 끌어들인 셈이다.

이 어메이징한 드라마, 적어도 속은 기분은 들지 않아

결국 탄탄하게 구축해놓은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격하게 오가면서, 이 드라마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상대만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했고, 몸이 바뀐 인체탐험은 남들에겐 다 있는데 그쪽만 없는 것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몸이 바뀐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두 사람이 있게 되는 셈이다. 그렇지 않고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은 살아온 공간과 환경이 너무도 달랐다. 또 이러한 판타지를 빌리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사랑이었음을 드라마도, 시청자도 알고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게 만든, 이 어메이징한 드라마는 리얼하게 느껴진다. 거짓말 같은 해피 엔딩이지만, 적어도 속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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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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