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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잘하고 싶으면 말을 적게 하세요! - 『연애에 말 걸기』 명로진

명로진, 사랑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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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랑에도 신호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파란 신호등이면 가고, 빨간 신호등이면 설 텐데.

17세기를 살다간 여성, 니농 드 랑클로는 사랑을 통해 일찌감치 그 본질을 파악했다. “군대를 지휘하는 것보다 사랑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재능이 필요하다.” 비약하자면, 군대의 참모총장, 합참의장, 대장 따위, 별 달고 심지어 차에도 성판 달고 으스대는데, 사랑 앞에선 별로 그럴 만한 게 아니란 얘기다. 기실 그만큼 사랑은 훨씬 어렵다. 공부를 해야 한다.

사랑 혹은 연애에 대한 고민이 차고 넘치는 시대다. 사랑 하고 싶고, 연애를 좀 더 잘 하고 싶은 이들이 게시판, 블로그 등에 남기는 고민의 흔적을 보라. 그게 아니라도, 카페만 가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연애를 고민하는 이들이 친구를 붙잡고 늘어놓는 넋두리, 카페는 안다. 커피는 안다. 아, 커피에 녹아든 연애의 고민. 말 걸고 싶으나, 말 걸기 어려운 연애.

허나, 사랑은 꽃밭이 아니다. 천국이 아니다. 백기완 선생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 “사랑한다는 것은 꽃밭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가시밭과 수렁을 헤쳐 마침내 제 가슴의 꽃밭을 일구는 눈물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것은 혁명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가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자, 한 우주가 일으키는 빅뱅이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 고로 연애를 한다는 것은 한 우주를 만나는 것과 같다.

결코 진부하거나 식상하지 않으며, 상투적이지 않은 것이 사랑 이야기다. 세상에는 지구에 사는 사람보다 많은 사랑이 있다. 한 사람이 한 사랑만 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엔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 사랑 이야기가 늘 변주되고 다른 이유다. 흥미를 안겨주는 이유다.

인디라이터, 에세이스트 명로진도 여기에 가세했다.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6대륙의 사랑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그리고 말을 건다. 연애에, 독자에, 세상에. 『연애에 말 걸기』. 올해는 기필코 연애하자, 고 신년 목표를 잡았다면, 명로진의 사랑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도 되겠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흔해 빠진 ‘연애 기술서’나 ‘연애 실용서’는 아니다. 사랑이나 연애에 어떤 답을 주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랑과 연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지난 11일,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서울 홍대 부근의 한 레스토랑에서 명로진에게 말을 걸었다. “사랑이 사랑 외의 모든 것과 맞바꿀 수 있는 질량을 가졌다”고 했는데,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떻게 사랑에 말을 걸었는가. 어떤 사랑을 말하고 싶었나.


“사랑하고 있을 때는 못 썼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이상은이 노래했다. 명로진은 대신, 사랑할 땐 사랑을 쓰지 못했다. 오래 전부터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으나. 늘 사랑하고 있어서, 사랑을 쓰지 못하는 아이러니. 누군가에겐, 그렇게 사랑은 아이러니다. 정작 사랑을 썼다. 명로진의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20~30대 친구도 만났다. 취재를 했다. 사랑은 늘 그렇게 이야기가 된다. 똑같은 사랑(이야기)은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수백만 아니 어쩌면 수천만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책이 있다. 명로진(과 그가 취재한 사람들)도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보탤 수 있어서 기쁘고 좋았다. 허나, 사랑도 그렇다. 마냥, 좋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 또 다른 쓸데없는 이야기를 보탠 것 아닌가. 사랑은 양날의 감정이다. 사랑 이야기도 마찬가지구나.

그렇다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프롤로그에서 명로진은 말한다. “사랑을 잃고 나서, 사랑을 하지 않을 때, 사랑이 멀어져갔을 때 나는 써야 했다. 그 방법 말고는 없었다. 사랑하거나 쓰거나였다.” 에세이스트 명로진. 다양한 에세이 주제가 있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 꼭 한 번은 짚고 넘어야 할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

지난해였나. 한 출판사 대표가 물었다. 정말 쓰고 싶은 책이 뭐에요? 정말로 연애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요. 왜 안 썼어요? 써 달라는 출판사도 없고,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써 보세요, 제가 밀어드릴게요. 일사천리. 계약서가 작성됐고, 계약금도 들어왔다. 원고를 다 썼다. 허나, 출판사에 사정이 생겼다. 영화가 엎어지듯, 책이 출간되지 못하는 백만 스물두 가지 이유 중 하나.

다만, 후배를 잘 둬야 하는 이유. 낙심을 희열로 바꿀 수 있는 후배가 있다. 후배가 랜덤하우스 편집부에 아는 사람이 있다며 원고를 보냈다. 출판사에 말 걸기. 물론, 오케이. 책이 나왔다. 『연애에 말 걸기』. 독자에 말 걸기도 할 수 있게 됐다. 사랑도 걸면 걸리면, 참 좋겠다.

오직 사랑하지 않는 사람만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랑에 대해 글을 쓰고, 사랑을 전파한다. 나는 늘 사랑에 대해 끼적였으므로 나는 늘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은 이다지도 멀고, 삶은 이다지도 지겹다. (p.242)


“미치지 않고, 기쁘지 않고, 환희를 느끼지 않으면 어찌 사랑할 수 있으리오.”


『연애에 말 걸기』는 제목 그대로다. 연애를 권한다. 연애를 해야 하는 이유?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명로진에겐 사랑과 일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 사랑을 꼭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잘 한다. 그는 그렇게 믿는다.

사랑하고 연애한다는 것, 그건 상대방의 요구를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연애를 못하면? 당연히 감이 떨어진다. 연애를 하면 예민해진다.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속뜻이 무엇인지. 촉각이 곤두서고 신경이 발딱 선다. 일도 그렇게 하면 못할 리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필요성.

당신 안에 잠자고 있는 연애 본능을 일깨우라. 연애를 해야 몸과 마음이 산다. 연애를 해야 일도 잘할 수 있다. 일이 잘 안 되어서 연애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지 않으니까 일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일이 바빠서 연애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못하니까 일이 바쁜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연애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없는 것이다. (p.253)

뭣보다 사랑하면 터져 나오는 환희. 명로진은 그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신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났을 때, 전후 상황 가리게 만들었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것이다. 6대륙에서 수집한 사랑 모두 그랬다.

사랑이 주는 환희는 압도적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다른 것은 필요 없게 된다. 오직 두 사람이 누울 자리가 필요할 뿐이다. 두 평 반의 방이든, 숲 속의 풀 위든, 비박의 침낭 속이든. (p.43)



“사랑에 대한 탐구, 세상 모든 예술과 창작의 근원이다.”


명로진은 현재진행형의 ‘사랑탐구가’ 같다. 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탐구해야 할 주제다. ‘사랑 종결자’? 고로, 그런 건 없다. 제 아무리 애틋한 키스(들) 남발해도, <시크릿 가든>이 사랑 종결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니까. 예술은 그래서 영원하다. 창작도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사랑하는 마음 또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 사랑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 없이 문화예술 행위가 가능한가? 명로진은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명로진의 확신이다. 세상의 훌륭한 예술가들 마음엔 사랑에 대한 탐구심이 있을 것이며, 사랑에 대해 탐구하고 싶은 마음을 접을 때, 창작은 고갈된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단어, 지금 시대 너무 오염된 것 아닌가? 변질되고 퇴색해서, 흔해 빠진.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너무 손쉽게 다루는 것, 아닐까. 나는 늘 궁금했고, 궁금하다.

그에 의하면, 사랑하는 것은 유익이 된다. 『스님의 주례사』에서 법륜스님은, “덕 보려고 결혼하는 것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유익을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에 유익이 되는 것. 아, 사랑이 영감과 창작을 불러일으키는 이율세.

우리는 유익을 구하고 나서야 사랑을 얻으려 한다.… 우리의 존재를 완성하고 나서 사랑이 와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삶의 순서를 뒤바꾼 채 살아가고 있다. 사랑을 얻는 것이 우리의 유익이 되는 것을. 장난감을 놓아야 사랑이 얻어지는 것을. 사랑을 얻어야만 우리의 존재가 완성되는 것을. (p.25)


“세월이 변하니까, 세상이 변하니까, 사람도 그에 따라 변화해 간다.”

전에는 지고지순하고, 순정을 가진 사랑이 대우 받았다. 지금도 영화나 소설에선, 그런 것들이 여전히 대우 받는다. 어떤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꾼다. 일평생 함께 가면서 퇴색하지 않은 사랑. 명로진도, 그런 것에 존경을 표한다. 그럼에도 그는 단죄하고 싶지 않다. 평생 8~9명을 사랑했건, 그 이상이나 이하건, 한 사람에 대한 순정이 아녔다고 섣불리 바람둥이야, 그러면 안 돼, 라고 말하진 않겠다.

물론, 오래오래 사랑하면 좋다는 것에 그 역시 토를 달고 싶진 않다. 얼마 전 병문안 때문에 요양원에 가서 한 사랑의 풍경을 봤다. 삶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한 할머니가 계셨고, 그 옆에서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간호를 하셨다. 식사 시간,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밥을 떠 주고, 입을 닦아준다. 그것으로 끝이 아녔다. 주머니에게 뭔가를 꺼내는 할아버지. 할머니 입술에 챕스틱을 발라주는 것이었다. 감동적이었다. 아름다웠다.

아마도 할머니와 할아버지,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것만으로 그 사랑을 재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사랑의 깊이를 감별하고 측정하는 것도 많은 사람이 범하는 오류다. 사랑이 석 달이었다고, 그 사랑을 모독하거나 쉽게 그 강도를 감별해선 안 된다.

어떤 사람은 30년을 기다리며 사랑을 지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3개월도 못 가 변절하기도 한다.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사랑을 규정하는 것은 연애의 강도를 감별하는 한 방식이다. 그러나 누구나 30년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누구나 3개월 만에 변하는 것도 아니다. (p.199~200)

명로진은 당초, 이 책의 제목을 ‘연애엔 정답 없다’고 정하려고 했다. 연애에, 사랑에 정답이 있겠나. 사랑은, 연애는 당사자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단순한 이치. 사랑에 세상의 윤리를 갖다 대지 마시라. 누구도 당신의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연애는 온전히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세상의 윤리가 아닌 사랑의 윤리에 따라, 당사자들의 선택에 의해 사랑은 흘러가야 한다.

사랑은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누가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가" 하는 문제다. 사랑의 윤리는 함께하고 싶은 두 사람이 함께할 때 ‘옳다’고 말한다. 함께하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이 억지로 함께할 때 ‘옳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은 종종 세상의 윤리를 무시한다. 세상의 윤리가 잘못이라서가 아니라 사랑의 윤리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p.89~90)


“연인 관계라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라고 노래했다. 변한다. 명로진도 “연애는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것”(p.161)이라고 했다. 대니언 고틀립의 말도 인용했다. “우리의 마음이 요동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허나, 많은 연인들은 그걸 알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한다. 상대가 변하는 것, 혹은 가끔은 내가 변하는 것.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중의 하나다. 열렬히 사랑하다 떠났다. 그건 상대방이 아무리 착하고 칭찬받아도, 나한테는 나쁜 년이요, 몹쓸 놈이다.

그도 차기도 하고, 차여보기도 하면서 생각해보니, 그 사람 잘못이 아니다. 어떤 끌림이었을 거다. 말하자면, 첫째는 나보다 젊다든지, 가슴이 넓다든지, 돈이 많다든지, 뭔가가 있었기에 끌렸던 경우. 그것을 설명하든 그렇지 않든. 둘째는 상대도, 나도 모르는 무엇.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의한 끌림. 그(그녀)였기에 자석처럼 끌려간 경우. 알려고 해도 모른다.

그러니, 변화도 그럴 수 있고, 이별도 그럴 수 있다. 직업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옹졸해서 일수도 있지만, 불현듯 변할 수도 있다. 더 이상 끌림이, 끌림이 아닐 수도 있다. 연애는, 사랑은 생이 그러하듯, 굴곡을 넘나든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권태도 사랑의 일부다. 명로진이 연애의 비밀을 소곤거린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보면서도 더 늦게 헤어질까’를 푸는 것.

문제는 사랑하는 연인들은 더 자주 보려 하고, 그 감정은 자주 볼수록 무뎌진다. 만남이 잦아지면 권태가 찾아오고, 만남이 귀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 해결책? 없다. 연애의 난제들에 대한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당사자도, 타인도. 답이 없다. 사랑은, 이별은, 때론 그렇다. 길을 묻는다고 사랑이 늘 답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사랑아, 길을 묻는다.

『연애에 말 걸기』는 읽다 보면, 그렇다. 사랑(연애)할 것을 권한다지만, 그건 이별 후에 다시 사랑하기다. 현재진행형의 ‘사랑’보다 사랑한 후의 ‘이별’에 좀 더 무게가 실렸다. 혹은 사랑에 대한 반성문이다. 이별도 역시, 사랑의 일부다. 많은 이들은 사랑을 잃고 나서 책을 든다. 그러니 이 책도 실연의 아픔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는데 비중을 뒀다. 명로진의 호탕한 웃음이 함께 하는 자백(?)이다. “굉장히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다.”

인생이 좋은 까닭은 지난 것보다 앞으로 올 것이 늘 더 낫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라. 당신의 인생도 그렇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을 리 없다. 당신의 실연에 파이팅! (p.196)


“입의 언어는 폐하고 몸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라.”

명로진이 최근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그런 얘기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되도록 말을 적게 하라. 엊그제, 다시 읽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에는 이런 말이. 연애는 살과 살이 부딪히는 일이다. 명로진은 생각한다. 연인 사이엔 말이 많을수록 사랑이 식을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건, 명로진은 현실적으로 말한다. 주고받는 것. 그는 사랑을 주고받는, 아주 좋은 비율을 51:49로 본다. 49를 받고 51을 주거나, 51을 받고 49를 주거나. 다만 사람들은 80을 받고 20을 주거나, 심지어는 99를 갖고 1을 주려는 사람도 있으니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고. ‘너는 있기만 하면 돼. 내가 다 줄게’하는 말, 현실성이 없다.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 달란다. 그럴 때도 있지만, 항상 준 걸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다 주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다 주는 게 아니라는 것. 그건 부모 자식 간에나 가능하고, 상대방이나 나를 위해서나 균형추가 엇비슷한 게 좋다는 것. 명로진의 사랑 비율.


“사랑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다. 사람을 변화와 성쇠와 등락이 섞인 가능태로 받아들인, 건강하고 성숙해 보이는 은과 민철의 사랑(과 이별).” (p.200~202) 그건 사랑에 대한 사유와 공부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녔을까. 그래서 명로진은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며, 권태가 찾아오기 전에 공부하자고 말한다.

사랑의 대한 가장 선구적인 책 중의 하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우리, 다른 기술을 배우려고 공부하면서 사랑에 대해선 공부를 안 한다. 제주 방언에 뺄래기라고, 아주 영리하고 영악하게 꾀를 부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있단다. 그는 21세기 한국에 사는 20~30대를 뺄래기라고 본다. 영리하고 판단력과 지각이 있는 사람들. 그들은 승진하기 위해 공부하고, 카페를 열기 위해서도 공부를 한다.

그럼에도 사랑에 대해선 뭐든 되겠지 생각한다. 그건 잘못이란다.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책도 읽고, 남자라면 여자들 심리나 감수성, 생물학적 문제에 대해 알아둬야 하고, 여자도 마찬가지. 고로 사랑, 더 늦기 전에 공부하자. 인간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서도.

가슴으로 사랑하기 위해 머리로도 사랑해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지식을 모으고, 지혜를 동원해야 한다. 사랑을 위해 책을 읽고, 구상하고, 플롯을 짜야 한다.… 독립적이며 자유롭고 지속 가능한 사랑을 하라는 말이다. 신선한 냉매를 추가하라는 말이다. 든든한 거름을 묻어두라는 말이다. 그래야 사랑이라는 꽃이 시들지 않는다. (p.171)

그는 여자를 ‘잠수함 요원’, 남자를 ‘조급증 환자’에 비유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자와 남자, 다르다. 제 아무리 여성성이 강한 남자라도, 여자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생물학적 차이가 있고, 다른 점 명백하게 있다. 여성은 대개 그렇다. 평화를 지향한다, 관계를 지향한다. 반면 남성은, 업적 지향적이고, 평화보다 투쟁을 더 좋아한다.

남성다움. 그는 그것이 꼭 힘이 세고, 물리적인 강함만 의미한다고 생각진 않는다. 남성다움은 원시시대엔 가부장이었고, 자기 가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남성다움의 본질은, 그래서 한편으로 친절함과 배려라고 생각한다. 여성다움의 본질이라면, 관계 지향적이고 사랑하고 나누면서 평화롭게 사는 것. 그러니, 같은 거다.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때, 사랑이 빛나지 않을까.

조급증 환자들은 즉각적인 것을 원한다. 묻는 즉시, 답하기를 바란다. “나가자”고 말하는 즉시 문밖으로 나와 있기를 원한다. “사자”고 말하는 즉시 물건 값을 지불하기를 원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곧바로 잠자리로 가기를 바란다. “먹자”고 말하는 즉시 음식이 식탁에 차려지기를 원한다. “마시자”고 말하는 즉시 폭탄주 석 잔을 들이켜고 취하기를 바란다. “결혼하자”고 말하고 바로 식장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아기를 갖자”고 말하고 바로 아기가 태어나기를 원한다. (p.165)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어떤 연인이나 부부는 서로 비밀이 없어야 하고, 일심동체여야 한다고 강박하며 집착에 가깝게 상대방을 묶는다. 과연 그것은 사랑일까. 명로진은 한숨부터 내쉰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이야기. 서로 사랑하면 사랑이다. 그 사랑이 식기 시작하면, 집착이 된다. 즉, 사랑과 집착은 똑같은 양태를 지니고 있다. 두 사람의 생각이다. 풀로 만족하면 누가 뭐래도 사랑, 하루에 수백 번 전화하고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여도 사랑. 허나, 그게 식으면 똑같은 행동을 해도 집착이 된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별체입니다. 서로의 사생활을 보장해주고 서로에게 자유를 주세요. (p.22)


“진짜 사랑하면 덜 주는 게 더 힘들다.”


조규만의 노래 「다 줄 거야」가 있다. 사랑하면 이 노래가 곧 그 마음이다. 허나, 명로진은 황학주 시인이 쓴 『당신, 이라는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부분을 꺼낸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그리워하면서, 내가 가장 괴로운 것은 사랑을 더 많이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사랑을 줄여야 하는 거라고 읊조리고선 이렇게 절규한단다. 이 사랑을 줄여야 할까요.

당연하단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주고 또 주고 싶으니까. 그러니 더 주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하지만, 덜 주는 건, 다르다.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일까, 생각도 해야 하니까.

아이 키울 때를 예로 든다. 어렸을 땐 마땅히 다 주어야 한다. 100%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니까. 그러다 중고등학생이 됐을 땐 그렇지 않다. 줄여야 지혜롭고 올바르다. 다 주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머니가 늙고 지쳤을 때 애는 몸은 어른이지만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난 다 줬는데, 넌 뭐야, 이런 말이 나온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

그를 위해 당신의 시간을 모두 쓰지 말고 레시피 개발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라. 손님을 탓하기 전에 다양한 메뉴를 내놓을 줄 아는 좋은 요리사가 돼라. (p.174)



“용서하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다.”

『연애에 말 걸기』에는 용서와 잊음의 에피소드도 나온다. 선이와 단, 마론과 로넷, 기하와 하니, 민기와 나리, 승수와 운정의 이야기. 영화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한. 사랑과 용서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명로진은 예를 들어 설명한다. 아끼고 사랑하는 여동생이 있고,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치자. 그 남친, 친오빠가 보기엔 모자라고 못됐고, 주변 사람을 다 힘들게 하는, 속된 말로 인간쓰레기다. 오빠라면, 두 손 들고 말리지만, 먹히지 않는다.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여동생 말고는 없는 거다. 남들 보기엔 정말 아닌데.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못 되게 군다면 여동생에게도 그럴 거다. 근데, 여동생은 그걸 용서하면서 사는 거지.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용서는 이런 것이다. 이 남자가 저지른 잘못과 상처, 이 남자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중에 어느 것이 큰지 생각했을 때,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크면 용서가 된다. 그건 천하의 살인마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용서하지 못한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는 거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나 용서 못할 기준이 있다는 것. 나는 용서 못해도, 남은 용서하는 부분이 있고, 남은 용서해도 나는 용서 못하는 그런 부분이 있다. 명로진이 말하고 싶은 바다. 모든 것을 용서하랄 수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사랑하면, 용서도 달라진다.

당신이 진실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가 저지르는 어떤 짓도 용서하게 된다. 그가 다시는 잘못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를 용인하게 된다.… 사랑하게 되면… 무슨 용서를 하게 될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 (p.190)


“간 보고 어장 관리하고, 너무 따지니까, 야성이 없어지는 거다.”

겁쟁이들은 머뭇거린다. 다칠 것을 염려해서 자기 방어에만 몰두한다. 상처 받을 것도 두려우니까. 사랑은, 상처도 감수해야 한다. 상처도 사랑의 일부다. 명로진은 결혼을 언급한다. 결혼은 경제력, 가문 등의 조건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조건보다 사랑이 중요하고 사랑을 믿는다.

조건은 늘 변하기 마련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따지고 또 따진다. 조건에 자신의 행복을 맡기는 거다. 주체적인 태도가 아니다.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종속되는 것. 그렇게 따지니 야성이 없어진다. 그런 것이 사랑의 리얼한 면이나 원시적인 모습을 퇴색하게 만든단다.

당신은 해보지도 않고 실패할 일부터 걱정한다. 내일 이후에 다가올 아픔 때문에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누려야 할 기쁨을 놓치고 있다. 고슴도치처럼 자기방어의 무기들을 밖으로 드러낸 채 누가 와서 자기를 좀 안아주기를 바란다. (p.233)

명로진은 책에서 “다음에는 더 좋은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더 좋은 사랑? 그는 말한다. 불가능한 사랑이다. 늘 가슴이 뛰고, 밖에서 불쾌하고 상처 받아도, 그 사랑이 그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빨간 약과 같은. 처음에는 물론 다 그렇겠지만, 그게 늘 그랬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그는 ‘불가능한’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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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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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범죄, 불평등, 동물 학대 등 오늘도 뉴스는 불편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인간 본성은 악할까? 네덜란드의 대표 언론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 기존 연구의 허점을 밝히고 인간의 선함을 입증했다.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법

천문학자에게 천문학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주의 비밀을 찾아 헤매는 천문학자도 현실은 연구실 안에서 데이터와 씨름하느라 바쁘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비정규직 행성과학자로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천문학자 심채경의 첫 에세이.

가지각색 고민에 대한 요시타케 신스케의 대답

아기부터 어른까지 인생은 수많은 고민들의 연속입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고민들에 유쾌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지쳐서 그런건지 자기 상태를 모를 때는 지친 셈 치고, 아무도 날 봐주지 않으면 큰 소리로 울어보라는 천진한 답변이 유머러스한 그림과 어우러져 깊게 다가옵니다.

생활과 가까운 언어로 전하는 공감과 위로

박솔뫼식 감각으로 선보이는 공감과 위로의 이야기. 작품의 인물들은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지만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삶에는 존재하거나 존재했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삶을, 가능성을 그린다. 한번쯤 떠올려보았을 생각과 상상이 활자가 되어 펼쳐지는, 낯설고도 친근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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