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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찬사 동시에 받은 영국인 작곡가

랠프 본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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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윌리엄스는 찬송가와 민요뿐 아니라 뱃노래까지 800여 곡을 채집했고 이 작업을 통해 잠들어 있던 영국의 민속음악을 일깨웠다.

 
오늘의 클래식
김성현 저 | 아트북스
스트라빈스키부터 진은숙까지 현대 작곡가 40인 열전
우리 시대에 태어난,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세기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곡가 가운데 40명을 소개한다. 클래식 음악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에 대한 좌표를 스스로 세운 후, 거기에 이르는 길을 독자에게 친절히 안내한다.
랠프 본윌리엄스

케임브리지 대학과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공부한 랠프 본윌리엄스는 1903년부터 영국 민요를 수집하고 있었다. 당시 본윌리엄스는 찬송가와 민요뿐 아니라 뱃노래까지 800여 곡을 채집했고 이 작업을 통해 잠들어 있던 영국의 민속음악을 일깨웠다. 선율이 남아 있지만 노랫말이 사라진 작품은 작사자에게, 거꾸로 가사는 남아 있지만 멜로디는 유실된 곡은 동료 작곡가들에게 창작을 의뢰하면서 적극적 복원까지 시도했다.

훗날 본윌리엄스는 “2년간 이 세상에서 가장 최상의 것과 긴밀하게 교제한 것은 그 어떤 소나타나 푸가보다 훨씬 더 나은 음악교육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버르토크와 졸탄 코다이가 동유럽에서 현장 답사를 거쳐 자신의 작품을 통해 민족음악의 발전을 이끌었던 시기와도 대략 일치한다.

 

1912년 1월 본윌리엄스는 “작곡가의 양식은 무척 개인적이겠지만 그 개인 역시 한 나라의 구성원이며 가장 위대하고 잘 알려진 예술가들은 가장 국민적인 예술가이기도 했다. 바흐, 셰익스피어, 베르디, 월트 휘트먼은 모두 세계인이고자 했지만 예술적 영감의 출발점은 항상 민족이었다”는, 자신의 음악적 자의식과 지향점을 집약한 내용으로 강연했다. 이런 작곡가의 생각은 20여 년 뒤인 1935년『민족음악』이라는 책으로 정식화되기에 이른다.

본윌리엄스는 영국의 음악적 유산을 충실하게 계승했지만, 필요? 때마다 베를린과 파리 등 영국 바깥으로 유학을 하면서 음악적 지평을 넓혀갔다. 스물다섯 살 때인 1897년 애들린 피셔와 결혼한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막스 브루흐를 사사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인 1908년 또 다시 “둔탁하고 답답하며 막다른 길에 이르렀고, 프랑스적인 품위가 좋을 것 같다”며 파리로 건너가 라벨에게 배움을 청했다. 스승 라벨이 오히려 세 살 연하였다. 브루흐와의 만남이 낭만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라벨과의 교유는 본윌리엄스가 목말라했던 체계적 관현악 기법을 흡수하는 계기가 됐다.

라벨과의 만남이 처음부터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본윌리엄스는 첫 레슨에 자신의 작품을 가져갔지만 라벨은 모차르트의 양식에 따라 작은 미뉴에트를 작곡하라는 과제를 내줬다. 본윌리엄스는 “모차르트의 미뉴에트나 쓰려고 내 시간과 작업, 경력을 다 바쳐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런 충돌 덕분에 오히려 세 살 터울의 두 작곡가는 손쉽게 사제(師弟)이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훗날 본윌리엄스는 “라벨은 선율 대신에 음색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관현악을 쓸 것인지 일러주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예술적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이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관현악을 통해 자신의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풀어갈 방법론을 얻게 된 것이었다. 라벨은 후에 “내 음악을 쓰지 않은 유일한 나의 제자”라고 본윌리엄스를 평가했다.

1903년부터 구상에 들어갔던 교향곡 1번 「바다」가 라벨과의 만남을 거쳐 6년여 만인 1909년에 완성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라벨은 제자의 작품을 프랑스 음악계에 소개하기 위해 애썼고, 본윌리엄스는 스승을 영국에 초청하면서 음악적이고 인간적인 교유를 이어갔다. 라벨은 “나는 파리지앵이지만 런던을 그리워하는 파리지앵”이라는 편지를 제자 본윌리엄스에게 보냈다.

본윌리엄스의 스승이 라벨이었다면, 음악적 동반자는 「행성」의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 였다. 본윌리엄스는 2년 연하인 홀스트와 1896년 왕립음악원에서 만난 직후 절친한 친구가 됐다. 본윌리엄스가 “내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던 홀스트는 17세기 이후 오랫동안 묻혀 있던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와 〈요정 여왕〉등을 잇달아 연주하면서 영국 음악의 전통을 재조명했다. 이런 의기투합을 통해 본윌리엄스와 홀스트 등은 20세기 초반 영국 음악계를 주도하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1910년 본윌리엄스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오랜 기간 심혈을 쏟았던 교향곡 1번 「바다」가 리즈 페스티벌에서 그해 10월 빛을 본 것이다. 오랫동안 악보상으로만 존재했던 작품이 실제 소리를 내게 됐고, 본윌리엄스는 초연 직전 며칠간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할 정도로 초조해했다. 교향곡 「바다」초연 직전인 9월에는 글로스터의 합창 페스티벌에서 「토머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도 초연했다. 이 무대에서 함께 선보인 작품이 바로 엘가의 「제론티우스의 꿈」이었다. 작곡가의 출세작이 된 이 환상곡에는 본윌리엄스가 채집하고 발굴했던 튜더 왕조 시대 영국 음악의 정취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 왕립의무대원으로 참전했던 본윌리엄스는 전쟁이 끝난 뒤인 1919년 모교인 왕립음악원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 작곡가는 마흔일곱 살이었다. 1921년에는 바흐 합창단의 지휘자로 부임했고 아내의 신병 치료로 1928년 사임할 때까지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 등을 연주하며 바흐의 종교곡을 의욕적으로 재조명했다.

당시 바흐 연주는 300명에 이르는 합창단원을 기용해 독일어 가사를 때때로 영어로 바꿔 부르고 하프시코드 대신 피아노를 사용했다. 작곡 당대의 옛 악기와 연주법을 적극적으로 되살리는 ‘시대 연주’가 대세를 이룬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전통적이고 낡은 연주법이지만, 본윌리엄스는 타계하기 직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바흐의 종교곡을 지휘할 만큼 애착을 쏟았다. 영국이 20세기 후반 ‘시대 연주’의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복고적이지만 헌신적으? 바흐에 매달렸던 본윌리엄스의 공이 컸는지 모른다.

작곡가는 생전에 엘가를 잇는 영국 음악의 계승자로 추앙받았지만, 엘리자베스 러천스 같은 영국 현대 작곡가들은 ‘쇠똥’ 같은 음악을 끼적거린 것에 불과하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작곡가이자 비평가인 피터 월록도 본윌리엄스의 교향곡 3번「전원」에 대해 “대문을 쳐다보고 있는 소 같다”고 평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본윌리엄스는 ‘계승’보다는 ‘단절’의 대상에 가까웠던 셈이다.

반면 작곡가 타계 50주기였던 2008년을 맞아 긍정적인 재조명 움직임도 활발하다. 실제 「전원」이라는 표제처럼 평화로운 교향곡 3번 이후에 발표한 교향곡 4번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서 영향을 받아 격렬한 갈등과 분노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의 5~6번이라는 순서가 본윌리엄스에게는 4번과 3번으로 뒤집힌 셈이었다. 그 직전 1931년에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은 헝가리의 동시대 작곡가 벨러 버르토크를 사로잡기도 했다.

본윌리엄스는 가장 영국적인 작곡가로 추앙받았고 숱한 종교곡을 남겼지만, 평생 무신론과 불가지론에 기울었다. 또한 젊은 시절 영국식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경도됐지만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마흔두 살의 나이로 기꺼이 참전했을 만큼 내면적으로는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재평가 작업에서 흥미로운 언급 가운데 하나가 영국 평론가 리처드 모리슨의 말이다.

숭배자나 혐오자 모두에게 본윌리엄스는 영국의 역사와 풍경을 상징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영국이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죄책감, 세계적 영향력의 쇠퇴, 정체성의
위기 등을 겪으면서 과거 문화를 기념하는 것을 점차 불편하게 여기게 됐다.


본윌리엄스는 말년의 인터뷰에서 “‘모더니즘이냐 전통적이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가’라는 점”이라고 했다. 일흔 살의 작곡가가 존 버니언의 종교소설 『천로역정』에 바탕을 둔 교향곡 5번을 발표했을 때 모두 ‘백조의 노래’가 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여든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년간 4곡의 교향곡을 더 쏟아낸 ‘대기만성’의 작곡가였다. 결국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은 타계 1년 전인 여든다섯 살 때 완성됐고, 3개월 전에 초연됐으며, 숨을 거둔 직후에야 녹음됐다.

1952년부터 지휘자 에이드리언 볼트가 작곡가의 교향곡 전곡을 처음으로 녹음하기 시작하자, 본윌리엄스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조언을 건넸다. 작곡가가 타계한 1958년 8월 26일도 당초 교향곡 9번의 녹음에 들어가기로 예정됐던 날이었다.

“나는 살면서 줄곧 아마추어적인 기법을 다스리기 위해 싸워왔다. 지금 그것을 다 마스터했지만 사용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작곡가의 말은 “늙어버린 이제야 목관악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하지만 이해하게 된 지금 나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라고 했던 하이든의 겸허한 고백과도 꼭 닮아 있다. 본윌리엄스의 삶과 음악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건 다름 아닌 ‘장인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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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현

조선일보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다. 예술의 전당 월간지에 현대 음악 작곡가 시리즈를 기고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 EBS FM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에서 음악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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