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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도 힘겨워한 대작 오페라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92), 신앙과 자연에 귀의한 현대음악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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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음악가를 두고 천직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20세기 작곡가가 메시앙이다. 영어 교사인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시앙은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과 책 대신에 오페라 악보를 청해서 작품을 익혔다. 열 살 때는 첫 화성학 스승인 장 드 기봉으로부터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악보를 받았고, 이 악보를 본 뒤 작곡가가 될 결심을 굳혔다.

 
오늘의 클래식
김성현 저 | 아트북스
스트라빈스키부터 진은숙까지 현대 작곡가 40인 열전
우리 시대에 태어난,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세기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곡가 가운데 40명을 소개한다. 클래식 음악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에 대한 좌표를 스스로 세운 후, 거기에 이르는 길을 독자에게 친절히 안내한다.
올리비에 메시앙

1941년 1월 15일 독일령 실레지아의 괴를리츠 포로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한창인 가운데,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의 수용소 무대에 수백여 명의 전쟁 포로가 모여들었다. 1939년 지원병으로 참전했다가 이듬해 포로로 사로잡혔던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가 초연된 날이었다. 4중주의 일반적 편성(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과는 달리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이 연주를 맡았다. 수용소에서 만난 음악가 4명이 연주할 수 있었던 악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앙 자신도 조율도 제대로 안 된 고물 피아노를 구해서 초연에 참가했다. 훗날 메시앙은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이뤄진 당시 초연을 회상하며 “그 뒤로도 그토록 대단한 이해와 관심을 보여준 무대와 관객을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흔히 음악가를 두고 천직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20세기 작곡가가 메시앙이다. 영어 교사인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시앙은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과 책 대신에 오페라 악보를 청해서 작품을 익혔다. 열 살 때는 첫 화성학 스승인 장 드 기봉으로부터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악보를 받았고, 이 악보를 본 뒤 작곡가가 될 결심을 굳혔다.

열한 살 때인 이듬해 파리음악원에 들어가 1931년 졸업한 메시앙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대공황 이후의 냉혹하고 암울한 경제 상황이었다. 1929년부터 파리 오?라 가르니에 극장 북쪽의 트리니테 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 샤를 케프를 보좌했던 메시앙은 1931년 선임자가 숨을 거두자 이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했다. 당시 파리의 최연소 정식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1992년 타계할 때까지 60년간 이곳에서 봉직했다.

메시앙이 60년간 봉직한 트리니테 성당

메시앙은 1930년대 젊은 동료 작곡가들과 함께 ‘젊은 프랑스’ 혹은 ‘4인조’로 불리는 그룹을 결성하고 당대 프랑스 작곡계에 대해 심도 깊은 비판을 가했다. 그는 “숙고할 시간도 없이 작품을 쏟아내거나 성급하게 서두르는 게으름, 포레와 라벨의 아류나 쿠프랭의 조악한 추종이라는 게으름”을 주목조목 따졌다. 말년의 성자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전투적 모습이다. 가곡 「미(Mi)를 위한 시(詩)」나 관현악곡 「잊힌 제물」로 유럽과 미국에도 서서히 이름을 알리던 도중, 메시앙은 제2차 세계대전과 맞닥뜨렸다.

포로 생활에서 풀려난 메시앙이 복귀한 터전이 모교인 파리음악원이었다. 다른 교수들이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 즈음에서 수업 진도를 멈추고 있을 때, 메시앙은 나치 치하에서 금기에 속했던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 드뷔시와 라벨,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와 버르토크 등 당대 음악을 텍스트로 삼는 대담성을 보였다.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이 젊은 스승의 음악관은 “우리의 의도는 ‘불가능성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청각적으로는 정제된 즐거움을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숭고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미 확고했다. 20세기 초반에 ‘쇤베르크 사단’이 존재했다면 20세기 중반에는 ‘메시앙 군단’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가 40년간 몸담았던 파리음악원은 현대음악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44년부터 메시앙에게 작곡을 배운 불레즈는 “사막 같이 황량한 학교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화성학 선생에 불과했고 평판도 좋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공부한다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를테면 대세를 거역하면서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피에르 불레즈 등이 모두 메시앙의 작은 교실에서 각자의 음악 언어를 찾아나갔고, 현대음악에서 기폭제와 뇌관 역할을 단단히 하게 된다. 메시앙 역시 “그들이 없었다면 감히 꿈꾸지 못했을 공부를 그들의 질문 덕분에 계속 해나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메시앙의 음악세계는 하나의 단일한 틀로는 설명하기 힘들 만큼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1949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투랑갈릴라 교향곡〉이 초연됐지만, 제자 불레즈는 ‘매음굴의 음악’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다. ‘사랑의 노래, 기쁨, 시간, 운동, 리듬, 삶과 죽음의 찬가’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한 이 교향곡에는 실제로〈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첫 아내였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클레르 델보는 1940년대 들어서 뇌 위축증으로 오랜 투병에 들어갔다. 아내는 195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점차 기억력을 잃어갔고, 남루한 행색의 남편 메시앙은 서툰 가사 솜씨로 아들 파스칼을 홀로 돌봐야 했다. 당시는 처음에는 제자였고, 그 뒤에는 동료 연주자였으며, 마지막에는 삶의 동반자가 됐던 두 번째 아내 이본 로리오 와 조금씩 가까워진 시기이기도 했다.

1949년 메시앙은 피아노 곡 「음가(音價)와 강세의 모드」를 통해 곧장 총렬주의로 나가며 ‘아방가르드 음악의 대부’로 불렸다. 이 곡에서 작곡가는 하나의 음높이에 일정한 강세와 길이, 음색 등을 부여하면서 작품을 짜 나갔다. 기존의 음높이에만 적용되던 쇤베르크의 음렬(音列)이 단순 방정식이었다면 메시앙의 총렬주의는 음높이와 강세, 길이와 음색이 서로 연관을 맺는 고차원 복합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 제자들이 주도하는 총렬주의가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 등을 통해 절정에 이를 즈음, 대부인 메시앙은 정작 그 흐름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1951년을 기점으로 그는 새에 관한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고, 프랑스에서 미국 유타의 협곡까지 세계 각지에서 새 소리를 채집하고 작품에 적용하면서 자연에 귀의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그는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인간의 음악에서는 새의 노랫소리처럼 고결한 자유를 갖춘 선율이나 리듬을 찾을 수 없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피아노 작품집인 1958년의 〈새의 목록〉은 거의 3시간에 육박하는 곡의 하나하나가 곧바로 새에 대한 묘사다. ‘수학’ 교실에서 벗어난 작곡가는 어느새 ‘자연’ 속으로 성큼 들어가버린 듯했다. 메시앙은 새를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음악가’라고 불렀고, 600종 이상의 새 소리를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종교적 양식을 띠지 않은 작품에도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는 것이야말로 메시앙 음악의 특징이다. 첫 아내 클레르를 위한 연가곡 「미를 위한 시」를 통해 메시앙은 부부 사이의 애정을 그리스도와 교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작곡가 스스로도 “종교적 예술이 존재한다면 필연적으로 그 모습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신이라는 단일한 존재에 대한 관념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신은 모든 존재에서, 모든 존재 위에서, 그리고 모든 존재 아래에서 현현하며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평생 종교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그의 신앙은 ‘음악계의 스피노자’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범신론적이었다. 1992년 타계 석 달을 앞두고 작곡가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유신론자라는 사실에 불편해한다. 하지만 신은 콘서트홀이나 바다, 산과 심지어 지하 등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작곡가 자신은 부인했지만 그의 신앙은 때때로 신비주의적이기도 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한 장면

말년에 매달렸던 유일한 오페라인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병마와 싸우던 70대의 노작곡가가 7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오페라의 주특기인 살인과 음모, 사랑과 애욕은 일절 등장하지 않고 8개의 에피소드에 따라 성인의 내적이고 영적인 세계만을 고찰하고 있다. 120명의 오케스트라와 150명의 합창단이 필요하고, 2,500페이지에 이르는 악보에 악보 무게만 10킬로그램, 공연 시간은 5시간에 이르는 대작이다. 작곡가와 두터운 교분을 나눴던 지휘자 정명훈은 이 오페라에 대해 “연주나 공부는 물론이고 당장 악보를 들고 다니기부터 쉽지 않은 곡”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정명훈과 메시앙

격랑의 20세기에도 현실로부터 초연했기에 ‘현대음악의 성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메시앙이 말년에 실제 성자를 오페라의 모티프로 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후에도 메시앙은 〈피안의 빛>과 「4인을 위한 협주곡」 등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작곡에 몰두하다가 1992년 타계했다.

메시앙의 음악세계는 언제나 혁신과 보수 사이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언제나 중요했던 건 음악의 방향성보다는 음악을 대하는 자세였다. 지난 2008년 작곡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와 미쓰코 우치다,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과 피에르 불레즈, 사이먼 래틀과 정명훈 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메시앙의 음악 세계를 재조명했다. 종교와 사랑, 음악과 자연이 그에게는 언제나 하나였기에 지금도 많은 연주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존경을 끌어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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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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