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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훌륭한 책이 아니지만…” -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책 속에 길이 있다? 아니, 불완전한 세계의 혼란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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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책에 대한 김훈 작가의 태도는 한결같다. 강연을 들어도, 인터뷰한 것을 봐도, 글 쓴 것을 읽어도, 늘 그렇다. 거칠게 한마디로 줄이자면, 이렇다. “책 속에는 길이 없다.”

내가 아는 한, 책에 대한 김훈 작가의 태도는 한결같다. 강연을 들어도, 인터뷰한 것을 봐도, 글 쓴 것을 읽어도, 늘 그렇다. 거칠게 한마디로 줄이자면, 이렇다. “책 속에는 길이 없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는 상투어를 과감히 벤다. 어떤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길을 본 적이 없다. 책 속에는 글자가 있다. 말의 구조물이 있는 거다. 지식은 있으나 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땅 위에 있는 거다. 나와 자식, 친구, 이웃 사이에 길이 있는 거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있으나 마나다. 책 속에 있다는 길을 이 세상의 길로 끌어낼 수 있느냐, 내가 바뀔 수 있느냐가 문제다. 혹시 말을 잘못 알아듣고 김훈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쓰는 사람은, 정말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웃음)”

어른들은 ‘책속에 길이 있다’고 강제 주입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책을 읽은 그들은 책(의 길)과 달랐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책과 그들은 별개였다. 나 역시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책 좀 읽었다는 이들의 행태나 꼬락서니가 영 아니기도 했다.

나는 책과 (그것을 읽건 쓰건) 사람이 별개라는 심증을 가졌다. 책은 사람이지만, 또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 이런 책 좀 읽소, 이렇게 책 많이 보우, 하고 자랑질(?) 일삼는 이들,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과 무관했다. 삶과 혹은 세상과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앎도 아니요, 실천도 아닌, 그리하여,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 혹은 위장술로 끝나는 어떤 책읽기. 나는 사실 늘 그것이 두렵고, 그리 되지 않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것이 김훈 작가의 ‘책읽기(론)’을 종종 되새김질 하는 이유다.

또 내가 아는 한(그러니 오해일 수도 있겠으나), 젊음에 대한 김훈 작가의 태도도 한결같다.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젊은이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젊음을 예찬하는 여느 상투어들를 또한 벤다. 그는 젊음을 신뢰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젊음은 무지하고 무질서하며 계통이 없는 시절이니까. 그는 그것을 졸업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한편으로 질서와 계통이 가지런히 배열돼 있는 사람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 자신도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허나 그것을 부끄러워하진 않는단다. 그가 아마도 젊은이 앞에 있는 게 무서운 건, 뒤죽박죽 혼란스러움을 받아들이는 무질서와 계통 없음의 좌충우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는 청춘의 빛나는 한때를 다룬 소설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솔직히 기대가 된다. 어떤 파열음이 일어날까. 질서와 계통 없음이 김훈의 문체와 어떻게 협주할까.

지난 11월29일, 김훈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책 읽는 강의실’이었다. 그는 최근
『내 젊은 날의 숲』을 냈다. 주제는 김훈의 책과 인생. 역시나 책이 있었고, 인생이 그 길을 따랐다. 뭣보다, (생물학적)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그는 다시 책읽기를 꺼냈고, 그 책이 그의 삶에 어떻게 삼투압하고, 발효됐는지 언급했다. 아울러 젊은이들이 세상과 어떻게 만나는 것이 좋을지를 건넸다.


김훈, 책을 말하다


김훈 작가는, 책을 아주 많이, 그것도 뒤죽박죽 읽은 사람이다.

물론 그것을 자랑스레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말한다.
“내 또래 친구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벌어먹고 살기 바쁘니까 책을 읽지 않는다. 매일 노동해서 벌어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강박처럼 읽으라고 강요하는 사회도 무섭다. ‘권장도서’라는 이름의 폭력과 해악도 있다.

그는, 지금 기술서적을 읽고 있다. 가령, 이런 책이다. 항해술, 비행기조종술, 연판공, 항해사자격증 시험문제집 등. 대부분 모르는 얘기고, 반쯤 이해한단다. 그런데도 그는 본다. 그 책들에서 그는 문학(성)을 느낀다. 삶과 인간, 그리고 자연. 거기엔 거친 바다, 집채만 한 파도 앞에 놓인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뚫고 가야하는지가 적혀있다. 그는 이 책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밤바다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 선원의 동작과 생각을. 감동적이다. 위대한 문학작품 읽는 것보다 더 감동적이다.

소방관들이 어떻게 불을 꺼야하는지 적힌 실무지침도 읽는다.
“불이 타는데, 인간들이 아비규환인데, 소방관은 어떻게 그것을 뚫고 들어가서 사람을 구해야 하는지를 써 놨다. 역시 감동적이다. 나는 공자나 맹자를 읽을 때보다 소방관 실무지침 교재를 읽을 때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재난, 재앙 속에 인간의 거룩한 모습이 있다. 그런 것들이 날 감동시킨다.”

김훈 작가는 『삼국사기』 등의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쟁의 기록. 살인과 학살도 빠지지 않는다. 저자 김부식의 문체에 의하면, 피가 흘러 강물이 흐르고, 그 위로 방패와 창이 흘러간다. 모든 주민이 전투원이 되는 시대. 식량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포로를 데려와도 먹일 수가 없었다. 포로로 끌고 오지도 않고 적들을 무조건 베었다. 그렇게 살아야했던 시대.

『삼국사기』를 읽을 때, 놀라웠고 의문이 들었단다. 잔혹한 그 전쟁은, 도대체 무슨 전쟁이었던 것인가. 정의? 불의? 알 수 없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싸움인지, 선과 악의 싸움인지, 아름다움과 추함의 싸움인지, 김부식은 단 한 줄도 써놓질 않았다. 그것이 삼국사기고, 우리는 그 싸움이 무슨 싸움인지 알 수가 없다. 김부식은 냉엄하게 그 현실을 들여다봤을 뿐이다. 결국 그 전쟁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싸움. 그것이 곧 삼국사기의 싸움이다.

반면, 늘 함께 쌍으로 거론되는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큰 차이가 있다. 일연의 붓끝은 김부식의 것과 달랐다. 고려가 몽골과 야만적 전쟁을 치르던 시기에 태어나 죽었던 일연. 그의 평생을 관통했던 전쟁은 가장 야만적인 전쟁 중 하나였다. 고려 왕실은 강화로 도망가 있었다. 한반도는 몽골의 것이었다. 의병이 몽골군에 대항했으나, 한반도는 그야말로 잿더미. 일연이 일흔이 돼서야 끝난 전쟁, 일연은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그런데, 일연은 김부식과 달리, 시대의 야만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황룡사 편을 보자. 거기엔 몽골의 만행이 없다. 다만 황룡사를 기획하고 만들 때, 그 마음속에 있던 이상과 평등, 자유의 원형만을 썼다. 몽골의 야만성에 의해 부서질 수 없는 정신의 원형. 대부분이 그랬다.

그는 이렇게 평가한다.
“『삼국사기』는 사실의 편에 쓴 사람의 기록이고, 『삼국유사』는 아름다움의 편에 쓴 사람의 기록이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사실을 따라가는 책이 『삼국사기』라면, 진실을 따라가는 책은 『삼국유사』다. 같은 시대였지만, 책은 다르다. 시선도 다르다. 어느 책이든 나름 불완전한 세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어떤 책도 세계의 완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책 속에 길이 있다기보다 길이 없는 세상에 불완전한 모습을 그려낼 수밖에 없다.” 김훈 작가의 커밍아웃이다. 나는, 김부식의 세계를 따라가려는 사람이다. 즉, 그는 아름다움을 말해도 사실의 바탕에서 글을 쓰고, 그렇게 쓰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 기자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기자를 해서 그렇게 글쓰기를 했는지도 모르고.

김훈 작가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책은, 『논어』다.

체계를 갖춘 책도 아니요, 언어와 행동의 단편적인 파편을 끌어 모았음에도, 그는 『논어』를 위대하다 말한다. 그 이유는, 구어체다. 구어체 문?의 일상성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성인은 구어체로 일상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거구나.

“진실은 일상에 있고, 전달하는 언어는 선명하고 단순한 꾸밈없는 구어체다. 정말 감동적이다. 공자는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구어체로 말한다. 생활 속에서 전개된 일의 파편을 썼다.”

서양을 보자. 즉, 성경. 동양과 서양의 경전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단다. 성경은 신이 아니면 쓸 수 없다. 반면, 공자의 말씀은 단순하고 선명하다. 죽음이나 초월의 세계를 말하지 않는다. 속세에서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자들이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사람이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말할 뿐.

책 속에는 불완전한 세계의 혼란이 있다. 그런 혼란을 길이라고 하는 걸까? 그는 책을 많이 봤지만, 길을 느낀 적은 없다고 했다. 분명한 사실은, 책에는 활자가 있고, 언어의 구조물이 있다는 것. 책 속에 길이 있다? 글쎄, 그것은 더 따져봐야겠단다. 고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끝없는 미완성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김훈의 책이다.


김훈, 인생을 말하다


김훈 작가는 대학 영문과에 잠시 다녔다.

졸업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60년대 중반, 가난하고 억압받던 시기에 보냈던 청춘. 그때, 낭만주의 시들을 읽고 배웠다. 인간 마음에 있는 자유, 평등, 희망이 실현가능하다고 믿는. 아름답고 혁명적인 세계관이 있는. 그것이 당시의 억눌리고 짓밟힌 청년을 아편처럼 매혹시켰다. 그 매혹은 시들을 그의 심장에 박았다. 지금까지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외울 수 있는 이유다.

김훈 작가는 그때 『난중일기』도 만났다.

그를 뒤흔들고 변화시킨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장면. 그 책에는 희망이 없고 절망만 가득했다. 『난중일기』를 처음 만난 청년 김훈의 단상이었다. “대단히 훌륭한 책도 아니요, 단지 매일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장수의 병영일지였다.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하는 이순신의 모습이 있었다. 위대한 장군이 아니라, 매일의 싸움을 뚫고 나가야하는 인간의 모습을 봤다.”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이순신, 『난중일기』를 만났던 때가 3학년1학기. 다음 학기, 37개월의 현역으로 입대했다. 그것으로 학교와는 안녕이었는데, 전방 보초를 서면서 그는 『난중일기』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어느 날, 돌연 연필을 들고 『칼의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난중일기』이후의 간격을 나름대로 완성해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난중일기』는 책을 읽은 뒤 35년, 혹은 이순신 장군이 일기를 적은 시대로부터 400년 후에 태어난 젊은이의 책을 바꾼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 게 아니다. 매일의 싸움을 감당해낼 수밖에 없는 무인이 있을 뿐이다. 문장가도 아니요,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고 아군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 그럼에도,
“그분의 문장이 무척 좋았다.”

일기의 한 대목. 진주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은 글이다. 해군은 그 전투에 직접 관여할 수가 없었고, 전령을 통해 그 소식을 전달받았다. 속수무책의 이순신 장군. 일기를 썼다. 철저히 사실만.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슬픔, 비통함이 적지 않았을 것이나, 무인의 고통이 그 문장 안에 다 있다. 깔끔하고 냉엄한, 무인이 칼 한 번 휘두른 것 같은 문장이다. 나는 그런 문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칼의 노래』에서 그 문장을 흉내 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를 죽이는 날도 선명하게 글을 썼다. 무자비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해야 했던, 그는 장군이었다.

“(일기에) ‘거듭’이 나오면 무서웠다. 거듭 군율을 어겼다. 이런 식이다. 그러면 죽을 거거든. 그분은 부하를 베었다, 라고만 썼다. 딴 말이 없다. 그리곤, 저녁에 바람이 불었다, 로 끝났다. 그 글이 미치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해군은 바람이 불면 뻘 위로 배를 올려놔야 한다. 배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그러니 개인 정한이나 원한이 없다. 저녁에 바람이 불었다, 에는 말하지 않은 슬픔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나는 그런 문장을 지향하고자 했다.”

김훈 작가는, 소설을 써야 했다.

『난중일기』는 완전하지 않았다. 불완전과 혼란에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그 책을 읽는 사람에게 또 다른 길을 찾게끔 만들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책에 세계의 완전함이 있었다면, 그는 무엇이 됐을까. 그는 말한다. “소설가가 아닌 성직자가 됐을 것이다.” 미완성, 불완전에 의지해서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소설을 써야 했다.


김훈에게 묻고, 김훈이 답하다


앞으로 쓸 작품은 뭔가.

“그건 영업상 비밀에 속하는 건데… (웃음) 대충만 말하자면, 청춘의 절정에 관한 것이다. 원효와 의상, 두 사람이 18살 때 당나라에 함께 가려고 하다가 의상만 당나라로 간다. 원효는 다시 경주로 돌아가는데, 알다시피 새벽에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나서다. 그날이, 그들 청춘의 가장 빛나는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은 정반대의 길을 간다. 그런 청춘 말이다.

안중근 의사는 31살에 죽었는데, 전해 이토 히로부미를 쐈던 아름다움이 있었다. 새로운 세계. 죽음을 무릎 쓰고 들어간 세계. 그런 청춘의 빛나는 대목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떻게 소설로 엮을지는 말 못하겠지만.”


세상이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이며, 계통이 없다고 한 말, 시간이 흐르면서 동감하고 있다. 젊을 때 생각했던 위대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독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분이 있다면.

“글쎄, 막막하다. 나는 개인의 위대함도 소중하지만, 문화?문명의 축적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위대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긍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다. 데레사 수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인도 콜카타의 버려진 사람들을 챙긴 분이다.

나는 인류라는 말을 모르겠다. 그 분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개별적인 존재를 씻기고 먹였다. 인류라는 군집명사는 모르겠는데, 이 분은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개별적인 존재를 먹여 살리는 것, 그 분을 위대한 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 분들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이념이나 관념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어떤 에세이에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독자는 사실 뭔가를 얻기 위해 책을 산다. 그, 말할 수 없는 것이 글쓰기의 전략인가.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그 질문은 표현의 한계나 언어의 한계를 말한 것일 텐데, 삶은 경험될 수 있지만 설명될 수는 없다. 언어가 될 수 없는 것 중에 시간이 있다. 『남한산성』에서 고립무원에 빠진 시간을 묘사하려다가 실패했다. 언어가 가진 동어반복적인 운명이 있다. 동어반복, 참 무서운 것이다. 사전에서 ‘노랗다’를 찾으면 개나리꽃이 어쩌고저쩌고, 나온?. 요즘 사전은 빛이 프리즘을… 이러면서 설명하지만. 같은 말이다. A는 A이다. 구태여 입을 벌려 말할 필요가 없다. 사전은 동어반복의 거대한 시스템이다. 동어반복에 빠지면 똥통에 빠진 것과 같다. 말해질 수 없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 독서가 사는 것과 상관없는 사치일 수도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듣고 싶다.

“평생 나의 고민인데, 나는 이리 생각한다. 내 삶, 마음, 존재가 쮂상과 직접 맞부딪치는 것을 원한다. 세계화의 직접성이다. 나와 세계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걸 차단하는 것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책, 미디어, 인터넷 등 기호로 된 모든 것이 그렇다. 나는 이것들을 걷어내고 싶다. 그런 허영심을 갖고 있다. 그런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런 소망을 따르자면 성철 스님의 뒤를 따라야 할 것 같다. 그러려니 말이 너무 아깝다. 삶과 직접성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글로써, 말로써.”


책속엔 길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20대 청년들은 책을 보면서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청년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길을 찾았으면 좋겠나.

“나는 길을 못 찾고 여기 있는데, 그런 나한테 길을 물으면… (웃음) 나는, (청년들이) 책보다 이 세상에서 길을 찾길 원한다. 길은 책이 아니다. 땅바닥에 있는 것이다. 책속에 길이 있다 해도 삶으로 나갈 수 없다면 그건 책속에만 있는 길이다. 세상에 난 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것이다. 청소년에게 책을 보라고 닦달하는데, 나는 어른들이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국영수를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면서. 왜 (청소년들이) 책을 못 보는지 뻔히 알면서 말이다. 친구 얼굴을 보고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것을 아는 인간이 돼야 한다. 그건,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면 폭력이 왜 나쁜 것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다.”

신조가 있다면, 처세술 같은 것이라도 좋다.

“가장 좋은 질문이다. 처세라기보다… 내가 세상에 처세할 일은 없다. 다만 처신할 일은 있다. 나는 생의 대부분을 혼자 고요히 지내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건 은둔이나 소극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고, 건전하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다. 이런 자리에도 되도록 안 오려고 하고.

혼자 지낸다는 것, 그건 참 중요하다. 나는 거짓말 하는 것, 게으른 사람을 싫어한다. 그것이 나의 처신이다. 내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남의 윗자리에서 남을 지배하고 지도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근면하고 성실한 시민이 되길 원한다.

이건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자유가 아니고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규율과 훈련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젊은이에게 바라는 바고, 나도 거기에 맞춰 처신하려고 노력한다. 대개 소설가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 규율하지 않으면 건달이나 날라리가 된다.”


소설에서 김민수 중위의 전역이 12월이다. 그런데 학군장교가 이때 전역을 하려면 전역일이 미뤄져야한다. 학군장교는 6월말에 제대한다. 사실적인 소설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해명을 부탁한다.

“그건, 소설의 결함이 아니다. 그 소설이 완결성을 얻자면 그 남자는 그때 제대해야 하고 눈이 내려야 한다. 다른 때 제대하면 난 망하는 거거든. (웃음)”

문체가 스트레이트다 보니 감정이입이 없다. 독자가 빈 부분을 메우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작가 의도와 빗나갈 수도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이 아버지 죽음에 임박해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데, ‘너도 각오해라’고 한다. 어떤 의도인가.

“독자에게 불친절한 글쓰기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넓으니 오독하기도 하고.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더 친절하게는 할 수가 없다. 각오하는 말도, 너도 준비하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까? (웃음) 글쎄, 생각해보겠다. 다시 판 찍을 때, 어떻게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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