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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거슈윈의 음악 세계(George Gershwin, 1898~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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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일대를 일컫는 틴 팬 앨리가 미국 대중음악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일대에는 노래 악보 출판사들이 밀집해 있었고, 작곡가와 작사가도 자연스럽게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클래식
김성현 저 | 아트북스
스트라빈스키부터 진은숙까지 현대 작곡가 40인 열전
우리 시대에 태어난,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세기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곡가 가운데 40명을 소개한다. 클래식 음악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에 대한 좌표를 스스로 세운 후, 거기에 이르는 길을 독자에게 친절히 안내한다.
조지 거슈윈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일대를 일컫는 틴 팬 앨리가 미국 대중음악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일대에는 노래 악보 출판사들이 밀집해 있었고, 작곡가와 작사가도 자연스럽게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 조지 거슈윈이 직업 음악가로 발걸음을 딛기 시작한 곳도 바로 틴 팬 앨리였다. 오늘날로 치면 음대 작곡 전공생이 아니라 가요 기획사의 소속 작곡가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불과 열다섯 살 때인 1913년 여름, 뉴욕 북쪽 캣스킬의 호텔 리조트에서 임시 피아니스트로 주급 5달러를 받은 것이 그의 첫 음악 활동이었다. 이듬해에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틴 팬 앨리로 직행해서 유명 악보 출판사 레믹에 취업했다. 열일곱 살 때인 1915년 첫 자작곡인 「당신을 잃은 뒤」를 발표했고, 연말마다 울려 퍼지는「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작곡가로 유명한 어빙 벌린을 만나서 조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다.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짙은 색 정장과 넥타이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소년 거슈윈의 모습은 피아니스트라기보다는 마치 은행원처럼 보인다.

거슈윈에게 음악은 이론적 바탕이나 학습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습득하는 본능적인 것이었다. 악보 출판사의 피아니스트로 출발해서 뮤지컬 극장에서 오케스트라의 휴식시간에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가벼운 오페레타의 반주자까지 다양한 경력을 쌓던 거슈윈은 스물한 살 때인 1919년 「스와니(Swanee)」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첫해 팔려나간 악보만 100만 권에 이르렀고 거슈윈이 그해 벌어들인 돈은 1만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이 곡으로 가난과 작별하고, 곧바로 브로드웨이 극장으로 진출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스와니」의 악보 표지

1922년 거슈윈은 당시 ‘재즈의 왕’으로 불리던 폴 화이트먼과 만났다. 해군 군악대를 지휘하다가 제대 후에 자신의 재즈 밴드를 이끌고 있던 화이트먼은 1924년 거슈윈에게 새로운 작품을 의뢰했다. 훗날 대표작이 된 「랩소디 인 블루」였다.

바쁠 때는 불과 닷새 만에 새로운 뮤지컬을 써내야 했고, 제작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피아노 스케치를 쓰고 나면 전문 편곡자가 오케스트라 편곡을 대신 맡아주는 시스템에 익숙해 있던 거슈윈에게 본격적인 관현악곡은 부담이었음이 분명했다. 작곡가는 화이트먼의 제안을 가볍게 여기고 잊고 있었지만, 화이트먼은 “거슈윈이 재즈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다”고 발 빠르게 언론에 흘렸다. 자신의 관현악곡 작곡이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거슈윈은 단 5주 만에 작품을 써내려갔다.

1924년 1월 뉴욕 에올리언 홀의 초연 당일, 지휘를 맡은 화이트먼은 초조한 나머지 공연 취소를 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날의 초연은 “스트라빈스키의〈봄의 제전〉보다 위대하다” “재즈를 집안 부엌에서 꺼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20세기 미국 음악사의 중요한 하루로 기록됐다. 뉴욕의 ‘히트곡 제조기’가 드디어 콘서트홀에 상륙한 것이었다. 거슈윈은 소설가 피츠제럴드가 ‘재즈의 시대’라고 불렀던 192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1925년에는 미국 출신 작곡가 가운데 처음으로 『타임』의 표지에 등장했다. 작곡가 스스로도 “재즈가 3분짜리 댄스용 음악만이 아니라 더욱 큰 주제와 의도를 지니고 있는 음악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랩소디 인 블루」이후, 거슈윈의 영역은 급속하게 콘서트홀로 확장됐다. 더불어 그는 체계적인 음악이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고, 1928년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작곡가 라벨의 쉰세 살 생일파티에서 사사를 청했지만, 라벨은 오히려 “왜 일류 거슈윈이 될 수 있는데 굳이 이류 라벨이 되려고 하느냐”면서 말렸다.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의 스승이었던 나디아 불랑제 역시 비슷한 이유로 거절했다. 거슈윈이 이번엔 스트라빈스키에게 배움을 청하자, 스트라빈스키는 그에게 작곡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거슈윈이 “1년에 10만 달러쯤 된다”고 하자 스트라빈스키는 “그렇다면 나야말로 당신 제자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대의 어떤 미국 작곡가도 거슈윈과 같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적이 없었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1928년 거슈윈은 음렬주의 계열에 있던 알반 베르크와 빈에서 만나 교유했다. 베르크가 현악 4중주를 위해 편곡한 〈서정적 모음곡〉을 감상한 뒤, 이번엔 거슈윈의 작품을 청하자 그는 수줍게 사양했다. 유럽에 대한 미국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음악의 겸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베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거슈윈 씨, 음악은 음악일 뿐입니다.”

거슈윈은 결국 1932년 당시 러시아의 음악이론가로 이름 높던 요세프 쉴링거를 만나서 뒤늦게 체계적인 공부에 들어갔다. 역시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블라디미르 드로즈도프는 “거슈윈은 20대부터 이미 유명 인사였지만, 언제나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알았고 공부하려는 의지와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1926년 뒤보즈 헤이워드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포기(Porgy)』를 접한 거슈윈은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이사회 의장이었던 오토 칸에게 ‘대형 재즈 오페라’를 써달라는 위촉을 받자 이 작품을 오페라로 쓰기로 결심했다. “소수의 교양인보다는 다수에게 호소하겠다”고 마음먹은 작곡가는 단짝 작사자인 형 아이라 거슈윈, 원작자인 헤이워드와 함께 작업한 끝에〈포기와 베스〉를 내놓았다. 「서머타임」「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It Ain't Necessarily So)」 같은 명곡들이 이 오페라를 통해 탄생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작품이 단지 멜로디 좋은 곡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거슈윈은 이렇게 답했다. “그 노래들이 좋은 곡인 한, 나는 그 곡들을 쓴 것이 부끄럽지 않다. 베르디 오페라의 대부분은 ‘히트송’을 담고 있으며, 〈카르멘〉 역시 히트곡의 다발이다.” 『엉클 톰의 오두막집』과 마찬가지로 이 오페라 역시 백인들이 바라보는 착한 흑인 상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전설적 소프라노 레온틴 프라이스를 비롯해 많은 흑인 가수들이 이 작품을 통해 당당히 오페라극장에 설 수 있었던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었다.

거슈윈의 관현악은 때때로 구성적인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이를테면 작곡가이자 비평가 버질 톰슨은 〈포기와 베스〉를 본 뒤에 “거슈윈은 오페라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굳이 단점을 꼬집기보다는 매력에 주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작곡가가 어린 시절 흠모했던 벌린의 말처럼 “거슈윈은 내가 아는 유행가 작곡가 가운데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된 유일한 경우”였던 것이다.

‘크로스오버’라는 말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그는 클래식과 대중음악, 오페라와 뮤지컬 등 장르 사이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영역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발시켰다. 작곡가는 “과거 다른 나라의 위대한 음악은 언제나 민속음악에 기반해왔다. 재즈, 래그타임, 흑인 영가와 블루스, 남부 산악 지역의 노래들과 카우보이의 노래 역시 미국 예술 음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슈윈은 “나는 100년 동안이나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선율들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을 만큼 타고난 ‘멜로디 메이커’였지만, 서른아홉 살의 이른 나이에 뇌종양으로 타계했다. 그리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거슈윈은 20여 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4편의 영화음악, 오페라 〈포기와 베스〉, 「랩소디 인 블루」를 비롯한 20여 편의 관현악곡, 387곡의 대중적인 히트곡을 남겼다. 거슈윈과 쇤베르크는 어쩌면 가장 거리가 먼 작곡가인 듯 보인다. 하지만 미국 망명 이후 거슈윈의 절친한 테니스 친구가 되었던 쇤베르크는 작곡가가 타계한 뒤 이런 추도사를 남겼다.

많은 음악가들이 거슈윈을 진지한 작곡가로 여기지 않는다. 역사가 그를 요한 슈트라우스와 오펜바흐, 레하르 같은 가벼운 작곡가로 볼지, 드뷔시와 브람스, 푸치니 같은 진지한 음악가로 판단할지 나 역시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예술가이며 작곡가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표현했으며 그 아이디어는 항상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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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훈

오늘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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