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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봤어! 분명히 괴물을 봤다고…” - 『퀴르발 남작의 성』최제훈

현상과 환상 넘나드는 파격적인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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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휘어잡은 작가가 있다. 지난 9월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하자, 기다렸다는 듯 신문지면과 인터넷 상에는 많은 리뷰와 추천글이 쏟아졌다.

최근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휘어잡은 작가가 있다. 지난 9월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하자, 기다렸다는 듯 신문지면과 인터넷 상에는 많은 리뷰와 추천글이 쏟아졌다.

2007년 제7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성 밖을 빠져나온 최제훈 작가.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출간을 기념하는 낭독의 밤이 열렸다. 성이 아닌 홍대 인근에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이 행사에 독자들은 일찍이 자리를 채웠다. 낭독의 밤에는 최제훈 작가의 낭독 사이사이에 강동호 문학평론가가 묻고 최제훈 작가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많이 바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합니다.”

각 인터넷 서점의 리뷰며 평점이 굉장합니다. 이 자리를 채워주신 분들만 해도 굉장히 많으신데요. 특히 여성분들이 많네요(웃음).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시다, 이렇게 첫 번째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말로 그 상황에 변화가 생긴 거야. 어느 날 언니가 목장 두세 개는 살 수 있는 거금을 약속하며 캐서린을 양녀로 달라고 제안했을 때, 왜 단호히 거절하지 못했겠나. 그렇게나 사랑하던 딸인데. 거의 포기했던 게임에서 에이스가 한 장 들어온 거지.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언니가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는 모습에 그녀는 은밀한 쾌감을 느끼는 거야. 비로소 언니에게 느끼던 이질감이 걷히고 이제는 마음껏 부러워하고 질투할 수 있는 존재, 자신이 따를 수 있는 존재로 보이는 거지. 선한 마음이건 사악한 마음이건 처음 시작은 그렇지 않나.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될 수 있겠다.”(「퀴르발 남작의 성」, p.15~16)

심사위원을 경악시킨 표제작이자 데뷔작의 낭독이었습니다. 여러 형식의 글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환상적인 작품을 탄생하였는데요.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지요.

“물론입니다. 등단을 시켜준 작품이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글을 쓰는 게 여의치 않았어요. 통장에 돈이 떨어질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2006년에 일을 그만두었죠. 그리고 난 뒤에 쓴 첫 번째 작품입니다. 그렇게 쓴 글로 등단까지 하니 꿈만 같았죠.”

습작기간에도 이런 파격을 시도하셨나요.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이 그즈음 썼던 소설입니다. 딱히 실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무슨 연구원은 아니지 않습니까(청중 웃음). 다만 단선적이 아니라, 다층적인 작품을 쓰고 싶었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실존하는 인물인지 궁금해 하는 분이 많습니다. 리얼리티가 확보된다는 게 재미있는데요. ‘퀴르발’은 사드의「소돔과 120일」에서 나온 이름이기도 한데, 특별히 차용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예전에 사드의 책을 쭉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경우 사드를 염두 해두고 만들었죠. 아이를 파는 장면은 실제 소문이 있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왕이면 주인공의 이름도 사드의 책에서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소설 인물의 이름은 주로 마음속에 이미지와 매치가 되는 것을 고르는 편이죠.”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지난 4월 14일,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실내복 차림으로 안락의자에 파묻혀 있었네. 평소와 다름없이 침체되고 무기력하고 칙칙하고 후줄근한 오후였지. 간밤에 요상한 꿈까지 꾸는 바람에 기분이 더욱 엉망이었다네. 내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벽난로 선반 위에 쓰러져 있는 낡은 백과사전으로 나왔는데. 나무좀들이 다가와 나를 사각사각 갉아먹더군. 걸?하게 트림까지 하면서. 그 소리가 종일 귓전을 맴도는 거야. 사각사각, 꺼억, 사각사각, 꺼억……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지만 조화로운 멜로디는 한 소절도 떠오르지 않더군. 하는 수 없이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상념을 따라 마구 활을 긁어댔지. 아마 지독한 소리가 났을 걸세. 급하게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들리기에 드디어 마사 부인의 인내심이 바닥난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문을 열고 뛰어든 이는 마을의 젊은 경관이었다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경례를 붙이더군. “홈즈 선생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마틴 경위님이 급히 도움을 요청하십니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p.53)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좋은 소설이란 건, 내용도 중요하지만 문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이국적이면서도 위트 넘치는 문장이 이채로웠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홈즈는 저와 인연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사촌형 집에 탐정 백선이 있었어요. 홈즈, 루팡,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등이 수록되어 있었죠. 그 이후로 탐정 소설, 특히 홈즈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죠. 제대 후 영국으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소설에 나오는 홈즈의 집주소를 찾아갔더니, 홈즈 기념품점이 나오더군요. 거기서 산 라이터를 얼마 전 술을 마시고 잊어버렸어요(청중 웃음). 어쨌든, 훗날 문화 다큐에서 홈즈와 도일의 관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서 도일은 홈즈를 질투했다는 것이죠. 글을 쓰게 되면서, 언젠가 도일과 홈즈의 관계를 그리고 싶었고, 큰 그림을 그리고 쓰게 된 것이죠.”

(도일의 심정이) 작가로서 공감이 되시나요.

“이렇게 유명한 인물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니 공감이 되지는 않죠. 만약 도일의 심정이 되어 본다면, 도일은 역사, 과학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또한 심령술에 심취했던 도일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합니다. 이성적인 홈즈에 대한 반감이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추측만 있습니다.”

다음은 문학과 지성사 문지 편집부에서 준비한 단답형 질문입니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 빠르게 답해주세요. 최제훈에게 편집장은?

“친구죠.”

최제훈에게 농담이란?

“힘, 유머란 굉장히 강한 힘입니다.”

최제훈에게 마감이란?

“여유(청중 웃음). 청탁이 많이 온 적이 없기 때문이죠.”

최제훈에게 소녀시대란?

“소원(청중 웃음). 사실 걸그룹 노래는 비슷하게 들렸는데, 「소원을 말해봐」는 특별하게 들렸어요.”

최제훈 인세란?

“핵심이죠.”

최제훈에게 물 분필이란?

“머릿속에 연필. 작가 사진에도 물 분필로 쓴 글자가 보이죠. 지필 버릇입니다. 소설의 판을 모두 구상해두고 쓰는 버릇이 있어요. 처음엔 종이를 쓰다, 바람에 날아가고 해서 화이트 보드를 사려고 했으나, 비쌌더군요. <닥터 하우스>란 드라마의 주인공 습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경영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특이한 이력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언론에도 부각되고 했는데,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간신히 졸업한 정도입니다. 많이 듣는 질문이죠. 곤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차피 글을 쓸 놈이 왜 경영학과를 갔나, 라는 질문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맞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저는 ‘틀’을 뒤집고 싶었으니까요.”

가장 좋아하는 책과 싫어하는 책을 뽑아주신다면 무엇인지요. 그리고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에 매력을 느꼈어요.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을 모두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죠. 원서도 샀지만 읽지는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가장 싫어하는 책은, ‘영어책’입니다. 정확히는 영어 교재죠. 세계 여행을 위해 영어 학원을 여러 번 다녀서, 영어교재만 쌓이고 있어요(청중 웃음). 다음에 만나실 작품은, 작년과 올해 연재했던 소설이 될 거예요. 내년 초 출간 예정입니다.”

글쓰기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이나 혹은 개인이 글쓰기에 끼친 영향이 있으신지요.

“글쓰기 작업이 개인 삶에 끼친 영향이라면 순수 독자캷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직업이 되면서 순수 독자로서의 기쁨이 사라졌다는 점이 아쉽죠. 고정 수입이 없어져 힘든 부분이 생겼고, 불면증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상쇄하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이에요.”

괴물을 위한 변명


호러에 가까운 소설과는 달리, 작가님을 직접 보면 순정에 가깝습니다. 그 쪽 장르를 좋아하시나요.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이야기도 좋아하지만, 말랑말랑 한 것 보다는 치열한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근데 이 소설들이 많이 ‘호러’스러운 가요?(청중 웃음) 돈 주고 공포영화를 본 적은 거의 없을 정도로 호러매니아는 아닙니다. 어쩌다 작품을 묶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웃음).”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구원투수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저기, 우리 학원에 저랑 동갑인 선생님이 있는데요…… 마르지 않는 가십의 유전, 입방아의 순교자, 마리아의 탄생 설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동갑내기 선생님은 학원 최고의 뉴스메이커였다. 휴게실에서는 매일 그녀의 복음을 전파하는 찬양 대회가 열렸다. ○○○선생 말이야. 어제 퇴근하는데…… ○○○선생 말이야, 글쎄, 아까 점심시간에…… ○○○선생 말이야…… ○○○ 선생은 결국 ‘마리아’라는 성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수연이도 눈알 굴리기 시합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타임을 외치고 마리아를 마운드에 올렸다. 마리아 얘기를 할 때만큼은 그녀도 눈을 반짝이며 제법 수다스러워졌다.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p.207~208)

“(이 작품은 작가 대신, 여성 독자가 낭독했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제가 얼마나 무미건조하게 읽었는지 알겠네요(청중 웃음).”

저도 마리아가 살아서 온 줄 알았습니다. 이 소설은 다른 작품과 다르게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작가의 세계관을 전해줍니다.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네요.

“독자분들과 만나는 자리가 처음인데,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의 만남이 많이 기억날 것 같네요. 즐거우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이라…… 혼자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나도 좀 알지. 내가 실패를 가려줄 방패가 필요했다면, 자넨 증오할 대상이 필요했겠군. 그래서 자네도 펜을 들고, 내 이야기 위에, 다시 자네의 이야기를 겹쳐 써내려간 건가?” 선장은 연신 딸국질을 하며 웃어댔다. 청년은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가락 끝까지 밀어 넣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꼿꼿한 걸음걸이로 선술집을 나갈 때까지, 선장은 테이블에 엎어져 웃음인지 신음인지 거친 숨소리를 흘리며 웅얼거렸다.
“난 봤어…… 분명히 괴물을 봤다고…… 그 흉측한 놈을……”(「괴물을 위한 변명」,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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