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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습니다 - 여행과 책 그리고 세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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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언젠가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 나는 언젠가 이탈리아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미래의 미지의 여행자에게

아, 나는 언젠가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 나는 언젠가 이탈리아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성야고보 성당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여행을 가고 싶어하던 노년의 미켈란젤로의 꿈과 다급함에 대해서 듣고 싶고 지상의 이해관계를 떠나 우주의 심연을 파헤치려고 별자리를 연구하길 원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를 다시 헤아려보고 싶고 한 여름의 로마에 가서 텅 빈 원형 경기장에 다시 서보고 싶습니다.

베네치아에 가서 다시 한번 비발디 음악을 흘려들으며 비둘기에 쫓겨 다니고 좁디좁은 골목길에서 가면 쓴 남자를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피렌체 성당의 은은하고 오묘한 색채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여행 이야기라면 언제나 넋을 잃습니다. 오늘만해도 바티칸 성당의 토르소 이야기를 듣느라 점심을 건너뛰어야만 했습니다.

그 토르소는 누구의 몸뚱이였을까요? 꿈틀대는 멋진 근육을 가진 그 토르소의 주인공은 무슨 일 때문인지 피로와 회한에 잠겨 고개를 떨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토르소의 주인공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표범의 발톱이었습니다. 표범의 발톱이 어떻게 토르소 주인공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그 마음으로 서울의 침대에 누워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습니다. 동물 한 마리가 휙 사라져가며 흔적을 남겨놓은 화석을 들여다보듯 책을 읽습니다. 난 잠시 고고학자이자 고생물학자, 비밀과 가면 해독자라도 된 것처럼 책장을 넘겨봅니다. 나를 집시들이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고 있는 달밤의 로마로 데려다줄 마법의 양탄자는 책 한권뿐입니다.

괴테의『이탈리아 기행』은 내가 최초로 아무 목적도 없이 필사해 본 책입니다. 그렇게 옮겨 적은지 대략 십 년 뒤에 나의 첫 책 침대와 책이 나오는데 침대와 책을 낸 뒤로는 책에 인용하기 위해서 많은 작가들의 말을 옮겨 적게 되었으니 괴테의 이 책은 순전히 나 자신의 감흥으로 필사해본 유일한 책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책을 쓰는 동안 썼다기보다는 배웠다는 말을 곧잘 하곤 했는데 이번에 『이탈리아 기행』을 다시 보니 거의 똑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괴테는 나는 여행을 했다기보다는 배웠다. 여행을 하는 동안 졸업하기 힘든 학교의 학생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방랑은 얼마나 즐거운 공부인가!’ 라고 말했지요)

괴테의『이탈리아 기행』을 읽고 처음에 받았던 충격도 바로 그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여행자가 되는 것이 졸업하기 힘든 학교의 학생이 되는 것이라곤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부터 미약하나마 ‘배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여행자들은 커다란 세계 안에 작은 세계를 만들면서, 작은 가슴에 큰 세계를 집어넣으려 애쓰면서 길을 걸어 나가는 거겠지요. 나는 인생이 여행으로부터 뭘 배워야 하는지 그 질문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우리의 능력이 되길 바랍니다. 내 사랑이 곧 내 최고의 능력이 되는 것 말입니다. 여행을 사랑하면 여행이 내 능력이, 책을 사랑하면 책이 내 능력이, 음악을 사랑하면 음악이 내 능력이. 춤을 사랑하면 춤이 내 능력이, 그 꿈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괴테의 방법은 일단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나이다.’ 하는 심정으로요. 보고 듣는 모든 것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그 발견의 순간을 재탄생의 순간으로 삼았습니다. 괴테는 여행지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받아들입니다. 생생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생생하게 본다는 것은 괴테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본 것들을 옛날의 상념들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아마 괴테만의 생각은 아닐겁니다. 왜냐하면 저만해도 이와 유사한 어떤 구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것을 기억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였을까요?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굳게 봉인 되어 가면을 뒤집어쓴 그릇일까요? 세계가 숨겨놓은 보물일까요?

어쨌든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우리가 포기하지 말 정신의 모험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분리시키지 않는데서 시작될 것 같습니다.우리 가면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우리 자신도 모릅니다.

혹시 별거 아닌 인간으로서의 위축되고 초라한 겸손함과 무기력과 슬픔 말고는 아무것도 떠올릴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을 오랫동안 아주 아주 열심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항상 뭔가가 있다고 한 예이츠의 말대로 우린 우릴 들여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압도당하고 사로 잡혀야만 축복을 얻으리’란 구절이 들어가는 시의 제목은 ‘사랑’이었습니다. 나는 이 구절을 오래전에 미켈란젤로에 관한 책에서 읽었는데 미켈란젤로가 쓴 것인지 그 당시 유행하던 소네트의 일부였는지 명확치 않지만 그래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다보면 어쩐지 이 구절이 자꾸만 맴도는 것입니다.

내가 필사한 두 부분은 이렇습니다. 괴테는 어느날 밤 숙소에서 이런 일을 겪습니다.

“그리 우아하지 않은 여관에 들어가 너무 지친 나머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내 위에서 일어난 아주 기분 좋은 현상을 바라보았다. 전에 결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아름다운 별이 떠 있던 것이다. 좋은 일을 예견해주는 사랑스러운 광경에 새로운 힘이 났다. 하지만 곧 사랑스러운 빛이 사라지며 나를 홀로 어둠 속에 방치해 버린다. 동이 틀 무렵에야 비로소 이런 기적이 생긴 이유를 깨달았다. 지붕에 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가 그 순간 내 머리 위를 지나간 것이었다”

어쩐지 양치기와 아씨의 머리 위에 떠오른 알퐁스 도데의 별 같지 않나요? 나 역시 지붕의 틈새를 탓하기 보다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별을 사랑하길 택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좋은 것은 충분히 길지는 않으니까요.

별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한데 우리 여행자들은 이런 일에 좋은 예감을 갖습니다. 난 이 문장을 읽고 난 뒤 하늘의 별은 혼자선 의미 없이 빛날 뿐이란 걸 알았습니다. 별을 바라보는 안으로부터 타오르는 또 하나의 별빛 같은 시선이 없다면요.

그런데 이게 여행자의 시선 아닐까요? 길을 나선 동안 뭔가 만나게 되리라는, 어쩌면 슬플 수도 있는 그러나 밝고 오래된 소망 같은게 살짝 엿보이지 않나요? 찬란한 것은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대부분의 시간은 단순한 일상에 바쳐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여행자들은 아름다운 것을 포착해 내려는, 그 아름다움 속에 자신의 한 부분을 깃들게 하려는 의지와 관찰력을 포기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옮겨 적었던 또 한 부분은 베네치아 곤돌라 노래에 관한 것입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가운에 나는 곤돌라에 올랐다. 두 명의 가수는 배의 앞쪽과 뒤쪽에 각각 앉았다. 이들은 노래를 시작했고 번갈아가며 한 소절씩 불렀다…폐부를 뚫고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는 섬이나 운하의 물가에 대놓은 나룻배에 앉아 목청껏 소리가 올려나가게 한다. 그러면 노랫소리는 잔잔한 수면 위를 퍼져나간다.

그 선율을 알고 가사를 이해하는 어떤 사람이 멀리서 노래를 듣고 이어지는 시구로 응답한다. 여기에 다시 먼젓번 사람이 응답한다. 이렇게 한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의 메아리로 기능한다.

노래는 며칠 밤이나 계속되고 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응답을 거듭한다. …멀리서 밀려오는 그 목소리는 슬픔이 없는 탄식처럼 아주 이상야릇하게 들렸다. 그 속에는 눈물이 나게 감동적인 것까지 무언가 믿을 수 없는 요소가 담겨있다. 나는 기분 탓으로 돌렸지만 늙은 하인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 노랫소리가 이상하게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네요.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감동적인데요”

그는 내가 리도의 여인들, 특히 말라모코와 펠레스트리나 출신 여인들의 노래도 들어보기를 바랐다.
…게다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여인들은 남편들이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면 바닷가에 앉아 폐부를 찌르는 목소리로 이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곤 합니다. 그러면 남편들도 멀리서 아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런 식으로 서로 대화를 나눈다고 합니다.”


괴테는 이 구절을 쓰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이 노래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진실해서…어느 고독한 자가 자신과 같은 기분을 느끼는 다른 사람이 듣고 응답하도록 저 멀리 드넓은 세상으로 보내는 노래인 것이다”

이 곤돌라 사공의 노래는 처음 읽었을 때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보고 싶습니다. ‘어느 고독한 자가 자신과 같은 기분을 느끼는 다른 사람이 듣고 응답하도록 저 멀리 드넓은 세상으로 보내는 노래’ 같은게 혹시 당신에게는 있는지요?

혹시 일을 할 때 그런 생각을 하나요? 아니면 혹시 한밤에 홀로 깨서 뭔가 쓰거나 혼잣말을 할 때, 괜히 거실을 서성일 때 그런 생각을 하나요?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는요?

나 자신은 어쩌면 무심코 곤돌라 가수들과 그 아내들을 모방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아아 내 목소리 들리나요?’ 그러면서 글을 쓰는거지요. 저기 먼 곳에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확실히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맘을 정확히 헤아리는 어떤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이 구원입니다. 그 사이는 깊고도 넓을 수 있지만 내가 외치는 한 상대방은 듣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상상하다보면 제 아무리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을 구원한 오르페우스가 될 수 있는 것처럼도 느껴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피그말리온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각품을 인간으로 바꿔 달라고 기도하고 마침내 그 소원이 이뤄져 그녀가 “저예요”라고 했을 때, 그 기쁨을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노래 부르기도 기도하기도 쓰고 속삭이기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탈리아 기행』에는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무진 애를 쓰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선원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 옆에 꼭 달라붙어 있던 소년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어떨 때는 우리 위에서 보이다가 어떨 때는 우리 아래에서 보이는 저기 바보같은 조그만 불빛은 대체 뭔가요?” 아버지는 다음날 설명해 주겠다고 약속했겠지요. 그런데 날이 밝고 보니 그건 등대 불빛이었습니다. 위 아래로 흔들리던 것은 등대 불빛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괴테는 이 부분에서 너무나 풋풋하고 순진한 고등학생처럼 이렇게 쓰고 있는 겁니다.

“나 역시 격렬하게 요동치는 바다에서 항구를 향해가고 있다. 내 눈에도 그 불빛이 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날카롭게 주시하기만 한다면 결국에는 해안에 도달할 것이다”

대문호 괴테가 조금은 교회 청년부 학생같이 심심하게 느껴지나요? 그러나 괴테의 이런 풋풋함과 올바름 때문에 나는 행복했습니다. 괴테는 이렇게 풋풋한 마음에서 시작해 끝없이 읽고 그리고 배우고 듣고 여행하면서 소설 원고를 고치고 여행지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여행지에서 괴테의 씩씩함은 그가 이미 얻은 명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오로지 매순간 충실하겠다는 결심과 노력, 엄격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등대의 불빛뿐만 아니라 도시의 한 평범한 불빛도 누군가에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불빛 하나에 인간 전체의 문제가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곧 있으면 한 소년이 그 불 아래서 크리스마스 꼬마전구를 깜빡여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녀가 울면서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런 불빛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머물렀던 도시를 떠날 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걸까요?

아, 나는 언젠가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습니다. 괴테처럼 오소리 배낭하나 매고 새벽에 집을 나와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식물도감을 들고 나무들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하프를 켜는 작은 소녀를 보고 싶습니다. 풍랑을 만나 배가 흔들리자 손수건을 흔들며 무사하기를 갈구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 보고 싶습니다. 횃불을 들고 박물관의 그림들을 멀리서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기행』에서 출발해 또 다른 많은 상상을 합니다. 오늘 나는 내게는 잠도 좋지만 석상이 더 소중하다고 말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보고 싶습니다. 여인의 몸에 투영된 새벽과 낮과 밤 황혼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재에 묻혀 하루 대신 영원을 선택한 폼페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상상으로 내 여행의 적금을 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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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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