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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징역 선고하니 모두 박수 쳤다”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박노해

혁명이 가장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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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5년 만에 시집을 펴낸 박노해 시인의 강연이 만추한 밤 그가 몸담고 있는 광화문 나눔문화 한 켠에서 열렸다.

지난 10월, 5년 만에 시집을 펴낸 박노해 시인의 강연이 만추한 밤 그가 몸담고 있는 광화문 나눔문화 한 켠에서 열렸다. “단풍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가을이 벌써 갔습니다. 좋은 시절은 금방 지나네요. 서울의 꽃이 어디 있나 했더니, 이 자리에 다 모이신 거 같습니다.” 시인은 강연장을 가득 메운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먼저 전했다. “스펙이 되지도, 말초적인 재미를 주지도 못하는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만 해도 이 시대의 속도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박수도 보냈다.

『김예슬 선언』의 주인공, 김예슬 씨의 사회로 시작된 강연은 마르셀 칼리페(Marcel Khalife)가 노래한 다르위시의 시 「나는 당신의 이름을 지나쳐간다(Amour be ismki)」로 막을 열었다. 박노해 시인이 찍은 사진이 노래와 어우러지며 상영되었다. 사회자는 “펜으로 쓴 시와 빛으로 쓴 시를 감상하는 시간”이라 표현하며, 이어서 박노해 시인을 다시 소개했다.

“시인은 말을 성전에 고하는 자라고도 불리며,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고통 받는 진리를 외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는 생각보다 주위에 참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인은 지구상의 멸종위기 1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야생동물을 보고 계시는 셈입니다(청중 웃음).

저는 시가 흐르지 않는 것과는 상대하지 않습니다. 시가 흐르지 않는 사람, 시가 흐르지 않는 정치. 오늘 이 시간이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내 안에 시인과 탐험가와 혁명가를 살려내는 불꽃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작은 원칙을 지켜 나가기 위해 애쓰는 분들과 일터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는 일상에서, 이 시간이 위로 받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책의 표지가 붉은 색인 이유에 대해서 “우리를 사라지게 하는 모든 자들과 모든 것에 대한 레드카드”라고 말한다. 그리고 “들고 있으면 간지나지 않겠는가”하고 독자들에게 되물었다. 마지막 이유는 좀 더 실용적이다. “연애가 사라진 시대, 그래서 이 책을 들고 계신 분에게는 서로 서로가 적극적으로 프로포즈 하시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맨 처음 뛰어내린 물방울이 용감하다


시인은 계속해서 질의응답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언제나처럼 첫 질문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시인은 “맨 처음 뛰어내린 물방울이 용감하다”는 말로 독자들의 질문을 독려했다. 첫 질문은 대학생의 고민이었다.

대학생입니다. 이 시기에 꼭 해봐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시고 싶은 거 하시라(웃음). 자신 안을 잘 들여다보시면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바깥의 이야기에 너무 현혹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밤에도 십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IMF에서 통계 낸 수치입니다.

스무 살 무렵은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하여 우리 시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등을 묻는 시기입니다. ‘1, 10, 100’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불꽃을 만들어 줄 100권의 책을 읽으며, 헛된 희망과 유행에 휩쓸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계산하지 않고 가슴으로 만나는 친구, 서로를 활짝 열고 기댈 수 있고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10명을 만나길 바랍니다. 서로 마주보는 상대는 금세 싫증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명의 진정한 스승 또한 만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음을 유지하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아가씨가 색맹이시군요(웃음). 저도 이제 머리가 하얗습니다. 나이가 듭니다. 외모가 늙는다는 것을 의식할 사이가 없긴 합니다. 분쟁지역을 가면 수십일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자연 ‘박피술’을 자주 받습니다. 밤에는 얼리고, 낮에는 태웁니다. 그러면 몇 번 물집이 잡히고 살이 벗겨집니다. 물리적인 노화는 기쁨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흰머리, 뽑아서야 되겠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사진을 많이 찍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사진은 빛으로 쓴 시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자신의 핏방울을 먹으로 쓴 시이죠. 결국 같은 것 같습니다. 시가 흐르지 않는 장면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진이 쌓이다보니, 방식이 생겼습니다. 해외에 가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분쟁지역에 가면 사람들이 우선 경계를 하죠. 마음을 열고 함께하면, 오히려 아이들이 제 걸음을 경호해줍니다. 사진을 찍도록 허락하고 도와줍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약자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 사진이라는 것을 말이죠.

권력을 쥔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 역시 사진입니다. 시인은 책상에서 죽을 일이 없죠. 하지만, 카메라를 든 이상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사진과 시가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상승 작용이 되었습니다.

덧붙여 이야기 한다면, 절대로 직업이 꿈이어서는 안 됩니다.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가장 비현실적이고, 이상과 꿈 그리고 혁명이 가장 현실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극적으로 적응해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무섭고 세계가 무섭습니다. 5학년 아이가 있는데, 교과서에서 벌써 자본주의를 가르치더군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마침, 시인의 시집을 읽고 위로가 되었는데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3, 40대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일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 386세대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원하는 거해라’라고 말하고,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에 와서 사인을 받고, 좋은 책을 골라 읽히고, 그런 자녀들이 가장 불행해 보이더군요.

‘후배는 선배 그늘 속에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중에 가장 높은 도는 기독교 아니라, ‘내비도’라는 말도 있죠(웃음). 삶은 버티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냥 무심하게 야생으로 방목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까.

야생초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제 도시에 희망은 없습니다. 이곳에서의 교육은 ‘똑똑한 바보 만드는 것’에 다름 없습니다. 아이들의 감각지가 파괴되었습니다. 다들 은퇴 후에 작은 전원 주택에서 자급자족하며 사는 게 꿈 아닙니까. 지금부터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다.

자본주의에 걸쳐있는 한 발을 빼야 합니다. 내 삶이 자급자족을 하지 않고, 세계 경제에 좌지우지 되는 삶이 어떻게 나의 삶이 되겠습니까. 이대로라면, 기후가 먼저 보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비극적으로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대지에 뿌리박는 삶 쪽으로 가야합니다.”



가치관과 신념이 뚜렷하신데 때로는 흔들림과 유혹도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극복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또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다시 삶을 사시게 되었을 때의 마음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이십대 분들은 이념과 거대 담론을 혐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념에는 진공상태가 없습니다. 하지만 잡초는 계속해서 자랍니다. 이념이 없다면, 사형을 선고 받았을 때도 힘들었겠지요. 물론,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웃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너무 행복했습니다. 고문장에서 저는 짐승이었습니다. 감옥에 가니까, 말 그대로 천국이었습니다.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형수의 운동장은 삼 미터 높이에 피자 한조각 크기에 하늘만 보였습니다. 사형 날 수를 남겨두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후에 대법원장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하니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교도관이 감옥에서 썩는다는 데 박수치는 건 처? 봤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가서 뭘 하겠다는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편지 교류도 하지 않았죠. 그 와중에도 영치금이 떨어지는 게 가장 슬펐습니다. 공부하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감옥에서 재밌는 속설이 있습니다. 형(刑)이 긴 사람의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잘 산다는 속설이지요. 저의 펜이 없어지고, 책이 없어지고 심지어 팬티도 없어졌습니다.(청중 웃음) 갈수록 마음을 비우게 되었지요.”


노동운동을 해야겠다는 첫 시발점은 무엇이었는지요. 그리고 『노동의 새벽』을 쓸 때의 첫 마음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얼마 전이 전태일 열사의 40주기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노동자의 분신이 또 있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공장에서 일하던 당시, 임금이 한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동자의 임금은 항상 뒤로 밀렸습니다. 자발적 파업이 숱하게 벌어졌죠. 저는 신부 공부를 하고 있었던 터라, 앞에 나서지 않았었습니다.

하루는 성당에 가서 앉아 있는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 지금 뭐하느냐’ 묻더군요. 그때부터 농성에 참여했습니다. 협상에서 어떻게 이야기할 지 논의를 했고, 그 회의를 기점으로 노동자들이 승리를 할수 있었습니다. 많은 공단에서 자문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박노해는 조직의 귀재이다’ 라는 말을 어느 도지사가 했다고 하더군요(청중 웃음).

노조위원장으로 출마하면서 안기부에 수배가 되고, 이렇게 살다보니 기계가 되어가는 거 같았습니다. 매 순간 가슴이 철렁철렁했습니다. 나의 알맹이가 빠져 나가는 거 같았습니다. 지금, 정규직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 시가 공단 일대에 퍼졌던 적이 있습니다. ‘학출’들에게 조언해주던 시기였습니다. 그맘때 산재를 당했습니다. 십오일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앓았으면서, 『노동의 새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십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386세대는 ‘너희들이 싸우고 쟁취해야한다. 스펙만 쌓을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지만, 이십대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20대를 어떻게 보는 지요.

“얼마 전, 프랑스에서 연금개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자 데모를 했습니다. 위원장이 열여덟살이더군요. 과거 이십대는 군사독재, 분단, 반공, 극우……, 이런 지적인 흐름과 의식을 깨트리면 됐습니다. 오늘날은 과거처럼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지식이 너무 많아,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됩니다. 많아지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같지요.

평생학습, 자기계발이라고 상품을 만들어 팝니다. 소통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지적인 것을 평탄화합니다. 일상생활의 굴레가 심화 되었습니다. 생활과 문화의 안쪽까지 다 파고들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일상생활 문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됩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아질수록 좋은 사회이지요.

일상이, 자본주의 최후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십대의 굴레는 자기중심주의, 입니다. 철저한 개인주의이지요. 유리벽에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루이비통과 샤넬이 첨단 무기가 되었지요. 개인으로 고독해졌습니다. ‘나는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상품들이 도처에서 팔립니다. 이처럼 여러 장벽을 갖고 있는 것이 이십대입니다.

요컨대, 『김예슬 선언』은 386세대를 몇 단계 넘어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은 민주 정부 10년 동안 진보세력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에게도 돌멩이가 날아오겠지요(웃음). 그래도 진리로 나아갈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언어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독자의 질문에도 마치 준비해둔 이야기를 풀어내듯 위트와 확신을 가지고 답안을 제시했다. 박노해 시인은 “좋은 친구가 없었다면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4년 뒤에도 변하지 않고 만나 뵙기를 바란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시집의 표제작,「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힘주어 낭송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거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북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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