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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누드 작품의 85%는 왜 여자일까? - 『그림수다』 김영숙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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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그림수다는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됐다.

그날의 그림수다는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됐다. “여성들은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었다는 점이 크겠죠. 18세기, 미술교육의 중심지였던 로마와 파리에 있는 아카데미는 여성들의 수학을 공공연히 금지하기도 했고 설사 교육을 받게 하더라도 여성들은 실물 드로잉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성은 그려지거나 만들어지는 존재이고, 남자는 그리거나 만드는 존재라는 구분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이 같은 세태를 일찍이 지적한 단체가 있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벗어야만 하는가?’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유명한 ‘게릴라걸스’.

“근대미술 분야를 차지하고 있는 미술가들 중 5퍼센트만이 여성미술가인데 비해 누드를 그린 작품의 85퍼센트는 여자를 그린 것”이라고 말하는 게릴라걸스는 1980년대부터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익명의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14년간 약 70여 종의 포스터를 제작해 거리에 유포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여성문제뿐 아니라, 이종차별, 낙태, 전쟁 등 사회적 이슈를 과감하게 도입한 그들의 포스터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p.162)”

“이러한 성의 불균형이 두드러지면서, 특히 시각화하는 예술가들의 성비 불균형에 따른 악영향은 여타 장르보다 크다고 봐요. 여성주의 미술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인 것이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림을 주문하고 돈을 지불하던 사람도 대다수가 남자였기 때문이죠.”

작가는 준비해온 그림을 설명하며 ‘수다’를 이어갔다. 선사시대의 미술부터 이집트 미술과 고대 그리스를 거쳐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나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순으로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미술사를 훑어나갔다. 백여 장에 달하는 슬라이드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림 속 인물과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계속됐다. (필자는 작가가 언급한 여러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추려 짧게 소개한다. 일독에 앞서 해당 작품을 검색하여 그림과 함께 읽어가기를 권한다.)


“그림 안에 이야기 거리가 풍부해야 잘 팔린다고 합니다. 장 레옹 제롬의 「배심원 앞에 선 프리네」는 이야기가 많은 작품 중 하나이죠. 1861년, 파리의 <살롱>에 입선한 이 작품은 프리네의 전설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요. 프리네가 법정에 서 있고, 그를 지켜보는 배심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여성의 누드 쇼’같은 이 관경에서 원래 프리네의 노출은 가슴까지라고만 해요. 아름다운 몸매로 신의 마음마저 녹일 뻔한 프리네는 그 많은 곳 중에 자신의 눈만 가리죠. 자신을 감상하는 남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해요.”

작가는 이와는 반대로 “그림 안에서 감상자를 당당히 응시하는 인물도 있다”고 말한다. 바로 마네의 그림 속 인물이다. 마네 이전의 그림들에 등장한 누드들은 이른바 신화 속 미녀들이라면, “마네의 그림에 등장한 나체의 여성에게서는 싸구려 선술집 여자의 냄새”가 나는 셈이다. “마네는「올랭피아」라는 작품을 <살롱>에 제출, 또 한 차례의 소동을 일으켰다. 16세기에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아프로디테’를 보고 착안했다고 알려진 이 그림은 어두운 배경과 꽃을 든 흑인 시녀의 색조와 대조적으로 읜 시트와 우윳빛 여인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이 작품은 유곽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실제 모델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도 등장했던 빅토린무랑이라는 여성으로 화류계에서 종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소식에 의하며, 이 작품을 둘러싼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해, 작품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그림을 전시장 높은 곳에 걸어두는 소동까지 벌여야 했다.(p.250)”

그런가 하면 드가는 여성의 정면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목욕 후 몸을 닦는 여자」처럼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인들의 일상을 그리면서도 완벽한 몸매나 우아한 자태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아요. 드가 자신의 말대로,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본 그 순간의 모습을 그릴 뿐인 거죠.”

여성의 눈, 남성의 눈

같은 인물, 같은 이야기라도 남성 화가가 표현하는 것과 여성 화가가 표현하는 것의 차이가 확연한 경우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유디트’다.

(왼쪽부터)젠틸레스키<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카라바조<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클림트<유디트>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시리아의 장수를 없애기 위해 젊은 과부였던 유디트가 적진에 직접 들어가 그를 유혹해 만취하게 한 뒤 목을 베어 결국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성서 구절에서 그림의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 조국을 구한 유디트에 대한 찬사는 당연한 것이기에 여색을 탐하고 이스라엘을 침공한 장수 홀로페르네스는 죽어 마땅한 존재로 묘사되어야 이치에 맞는데, 이 주제는 화가마다 다르게 해석되어 그려졌다. 특히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포와 환멸을 느끼는 온순하고도 가여운 여인이라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환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폭행을 당한 경험까지 있었던 여성 화가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카라바조의 그녀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나아가 사무적이기까지 하다. 하녀도 적극적으로 유디트를 돕는다. 클림트의 그림 또한 성적인 뉘앙스를 강조하여 치명적인 여성상을 그려낸다.(p.181)”

작가는 이어서 우리나라의 효녀심청보다 더한 효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그림은 “그림을 사는 사람들에게 에로티시즘을 선사”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이 죄를 지어 굶어죽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 노인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딸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면회를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먹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효심에 감복한 로마 법정은 노인에게 내린 형벌을 중지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많은 화가들이 이런 훌륭한 효심자극용 소재를 놓치지 않았다. “카를로 프란체스코 누볼로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효녀의 이야기를 정성껏 그림으로 그려냈죠. 그림을 주문하는 이가 당연히 남자인 세상이었고, 그림을 그리는 자도 대개 남자였으며, 그것을 둘러싸고 감상하는 이들도 대부분 남자였던 속내가 저런 그림을 낳게 한 것이라는 해석을 해도 무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주의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가 귀스타브 쿠르베예요.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같은 작품은 특별히 주문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포르노에 가깝죠. 라캉도 그 그림을 소유했고, 덮개로 가려놓았다고 하죠. 그러나 그 작품이 오르셰 미술관에서 모든 관람객이 볼 수 있는 자리에 전시되어 있는 건, 쿠르베의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쿠르베는 ‘내게 천사를 보여주면 천사를 그리겠다’는 말로 유명할 만큼, 현실을 반영하는 그림이 진정한 사실주의라고 생각하는 화가였어요. 동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그린「오르낭의 매장」같은 작품을 통해 서민의 시대, 서민의식을 표현했죠.”

작가는 연대순으로 강연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미술사를 알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그건 그림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는 말과도 닿아있는 것이죠.” 두 시간의 강연은 미술사강의이기도 했고, 여성학강의이기도 했으며, 세계사 혹은 인류학강의로 부를 수도 있겠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즐거운 ‘그림수다’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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