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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홍대 여신 한희정의 특별한 유혹 - YES24 인디씬 팬미팅⑤ 한희정 <잔혹한 여행>

“어느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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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진행하는 ‘인디씬 팬미팅’ 다섯 번째 주인공은 홍대 원조 여신으로 꼽히는 한희정. 2001년 밴드 ‘더더’의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 이후 2003년 포크 듀오 ‘푸른 새벽’으로 활동하며 어쿠스틱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로 팬들에게 개성 있는 인상을 남겼다.

그녀가 노래를 멈췄다.

“너무 밝은데요. 조명 좀 낮춰주세요. 더……. 더……. 더……. 좋네요.”

무대는 거의 깜깜해졌다. 데뷔 이래 처음 해본다는 팬미팅이기 때문일까. 마찬가지로,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는 처음 봤을 팬들을 생각해서일까. 어두운 빛이 감도는 홍대 클럽 타(打)에서 듣는 한희정의 목소리는, 앨범보다, 감미롭게 들렸다.

흐릿한 실루엣, 눈을 거의 가린 정도의 검은 앞머리. 팬들이 들고 있는 플랜카드 문구의 ‘나이스 바디’보다는 좀 여윈 듯한 팔다리의 한희정은 ‘어느 가을’로 무대를 열었다. 기타 소리를 타고 매혹적인 음색이 흘러나오자, 클럽에는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예스24에서 진행하는 ‘인디씬 팬미팅’ 다섯 번째 주인공은 홍대 원조 여신으로 꼽히는 한희정. 2001년 밴드 ‘더더’의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 이후 2003년 포크 듀오 ‘푸른 새벽’으로 활동하며 어쿠스틱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로 팬들에게 개성 있는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08년 솔로 앨범 <너의 다큐멘트>, 2009년 미니앨범 <끈>, 근작 <잔혹한 여행>을 발표하며 여성 싱어송 라이터의 입지를 굳혔다. <잔혹한 여행>은 이전보다 조금 더 쓸쓸하고,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노래 7곡이 수록되었다.

지난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였고, 농업인의 날이었고, 지체장애인의 날이자, 떠들썩했던 G20 정상회담을 시작한 날. 여기 모인 백 명의 팬들에게는, 홍대여신 한희정을 만나는 이유만으로 특별했을 그 “어느 가을에……” 우린 들었다. 그녀의 노래를.

첫 밴드앨범 <잔혹한 여행>


팬미팅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한희정은 팬들의 우려와 달리 그리 긴장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보러 빼빼로데이에 이곳까지 찾아온 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상당히 궁금한 듯 했다. “이렇게 춥고, 번개도 치는 날. 여러분, 대체 어떤 생각으로 오셨어요?” 객석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대답들이 튀어 오른다. “가까이 보고 싶어서요.” 그제야 한희정, 연신 두리번거리던 눈빛을 거두고 활짝 웃는다. “오늘, 커플들 못지않은 행복한 추억 만들어요!

파스텔 뮤직의 양승훈 사원의 진행으로, 간단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전보다 솔직하고, 조금은 엉뚱한 모습으로 한희정의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었다. 팬들은 숨죽인 채 그녀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고, 간간히 그녀가 웃을 때마다 뭇남성 팬들은 코러스처럼 호응해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원래 사교적인 편이 아니라,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최근에 그런 성격을 개조하는 시간을 가졌다. 1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더니, 애정이 생기고, 그들이 궁금해지더라. 그들과 소통하고, 위로하고, 합주했다. 그러다 앨범이 나왔고, 이렇게 팬미팅도 하게 되었다.”

앨범 제목이 ‘잔혹한 여행’이다. 어떤 의미인가?

“이 앨범에 실린 곡은, 소통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완성해 둔 곡이었다. 그때 1년은 스스로에게 잔혹한 시간이었다. 지난 번 앨범 <끈>에, 인연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았다면, 이번 앨범은 반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날의 끈을 놓쳐버려서 잔혹한 여행이 된 셈이다. 이제 소통을 시작했으니, 다음 앨범은 어떻게 나올지 나도 기대가 된다.”

기존에는 어쿠스틱 사운드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밴드 사운드로 녹음했다. 변화의 계기가 있다면?

“밴드의 로망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밴드 음악은 내게 항상 전제되어 있던 셈이다. 이전에는 함께 작업할 멤버도 없었고, 환경이 열악했다. <끈>발매기념공연 때 지금의 밴드를 만났는데 실력도 좋고, 마음도 맞아 이번 작업도 함께 하게 되었다. 원래 콰르텟, 네 명의 조합을 좋아한다. 이번 앨범은, 마치 네 명이 모여 연주를 하고 있는 착각이 들게끔 만들고 싶었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올 거라는 확신 있었다”


10대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학교, 집, 도서관을 오갔다. 초등학교 때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요즘 컴퓨터로 곡 작업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는데, 그 당시에는 1시간짜리 레슨도 못 견뎠다. 전공을 피아노로 바꾸고, 레슨을 받았는데, ‘역시 나는 연주자는 아니구나.’ 싶어 관뒀다. 고등학교 때, 일탈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대학은 남들처럼 점수를 맞춰서 갔지만,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다 대학 2년을 마치고 음악을 시작했다. 학교를 관두고 밴드를 찾아다녔다. 오디션을 보는 중에 ‘더더’를 만났다. 좋은 사람들이었고, 음악을 시작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준 팀이었다. 그렇게 음악을 시작했다. ”


첫사랑, 첫키스의 추억을 알려 달라.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자꾸만 힐끔거리는 선배가 있었다. 자리를 파하기 전에 다가와서 ‘너랑 한잔 하고 싶다.’고 하더라. 남자답고 멋있는 선배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집 전화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첫 사랑이 시작되었고, 선배와 2년 정도 만났다.”

솔로라고 했는데,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 연하도 괜찮은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매너나 경제적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중심이 확실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은 흔들림이 없고, 아집도 없다. 대화가 통한다. 연하? 물론 오케이다.(웃음)”

한희정이 추천하는 책, 영화, 음악들


음악 외에는 어떤 취미가 있나?

“음악은 숨쉬는 것처럼 항상 하고 있다. 그밖에 책, 영화, 게임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SF다. <지구가 멈추는 날>을 보면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지만, 고치지는 못하는 딜레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전쟁>은 박테리아 때문에 멸망하는 이야기인데, 완벽한 스토리라고 본다.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인간이 잔인한 존재라고 느꼈는데, 어느 날 내가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파괴를 즐기고 있더라. 그래…… 인간은 정말 잔인하고 폭력적이다.(웃음)”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한계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 좋아한다. 카프카의『변신』을 좋아한다. 그런 작품을 읽을 때 각성하는 기분이 든다. 그밖에 한강 소설가를 좋아한다. 『내 여자의 열매』를 보고 팬이 되었다. 윤성희 소설가도 굉장히 좋아한다. 최승자 시인의 『즐거운 일기』, 법정 스님의 『일기 일회』도 즐겨보는 책이다. 법정 스님의 책은, 잘 알고 있는 얘기를 하지만, 그걸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음악이라면?

“피아졸라, 라디오헤드. 개인적으로 최근작이 좋다. 블러드레스슈즈, 뮤. 내 음악적 기반은 해외다. 이번 앨범을 듣고 이국적이라는 분들도 계시는데, 해외 음악으로 음악을 시작해서 그렇다. 물론 국내 음악도 좋아한다. 국내에는 김광석, 이영훈, 장필순, 이소라 님을 꼽을 수 있겠다.”

소녀 같은 외모와 달리, 곧 서른(!)이다. 한희정에게 서른의 의미는 어떻게 다가오나?

“최승자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왔다. 집에 이전 시집이 집에 있어서 다시 읽어봤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느껴졌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됐다는 걸 느꼈다. 그럴 때 나이 먹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음악인으로 나이 먹는 것은 좋다. 예전에 만든 음악과 지금 만든 음악이 다르듯이,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


한희정, 빼빼로를 선물하다

빼빼로데이에 걸맞게 특별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한희정이 준비한 빼빼로 선물이다. 애초의 계획대로 그녀의 수제 빼빼로가 등장하지는 않았다. “장까지 보고, 빼빼로 만들 준비는 마쳤으나, 만드는 법을 숙지하지 못해 실패”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한 진심을 담아 커다란 빼빼로를 준비했다.

사전에 신청 받은 사연을 꼼꼼히 읽고, 한희정이 직접 행운의 당첨자를 선정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빼빼로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가루로 보관해 평생 기념하겠다.’는 다소 코믹한 사연도 응모되었으나, 위로가 필요한 사연, 행복을 나누고 싶은 사연의 주인공이 무대 위로 초대받았다. 객석의 부러운 웅성임 속에 세 명의 팬들이 한희정에게 직접 빼빼로를 선물 받았다.

“우리 이제 뭐할까요? 신청곡 받을까요?”

그날의 신청곡,「우리 처음 만난 날」 「솜사탕」 이 접수됐다. “「우리 처음 만난 날」 부를 때, 저는 관객들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준비된 팬들, 기꺼이 떼창에 응해주었다. 작고 은은하게 퍼지는 목소리들. 남녀 골고루 비율이 섞인 덕분에 꽤 멋진 화음이 만들어졌다.

이날의 자리와도 잘 어울렸던, 그녀의 1집 타이틀 곡. “우리 처음 만난 날 / 시간의 등에 키스를 했지 / 우리 처음 만난 날 / 행복은 단꿈을 꾸었지 / 아무런 약속도 이런 날엔 / 하지 않는 게 좋겠지” “공연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씩 기타만 들고 나가 공연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때와 느낌이 또 다르네요. 팬미팅 타이틀 하나 붙였을 뿐인데, 좀 떨려요.”

어느 가을에 우린


지난번 노리플리아 팬미팅 때처럼, 밖에는 비가 내리고, 번개도 쳤다. 그런 날씨가 오히려 이 작은 클럽 안의 분위기를 오붓하게 만들어주는 듯 했다. “날씨에 걸맞게 우울하게 불러드리지요.”라며 그녀는 마지막 곡 「잔혹한 여행」을 불렀다. 이어지는 팬사인회로 팬미팅은 마무리 되었다.

또 한번의 소통, 한희정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지금과는 또 다른 음악을 만드는 어느 날에 이날 밤 들었던 팬들의 목소리가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팬들 역시, 어느 가을에 불쑥 다가왔던 그녀의 유혹을, 목소리를 기억하겠지. 그렇게 험상궂은 날씨에 떠난 잔혹한 여행은, 예상보다 따뜻했다.

어느 가을에 우린 나란히 서 있다
유난히도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함께 흥얼거리던 노래
너의 어릴 적 이야기와 서툰 고백 가을에 폭폭히

                     - 「어느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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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한희정 - 잔혹한 여행

10,400원(2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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