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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사라진 집은 무너진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혹자는 나를 무속의 신들을 믿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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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사라진 집은 무너진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혹자는 나를 무속의 신들을 믿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신론자이다. 내가 사라진 신들의 연대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신들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그것이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축이자 원리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몰려 IMF 관리체제로 들어갔을 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였던 금모으기 운동을 떠올려보라. 왜 사람들은 손해나는 짓을 그렇게 열심히 서로서로에게 감동하며 벌였던 것일까. 그것은 국가, 민족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상상의 공동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란 크건 작건 상상 속에선 하나의 집이다. 카오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성화된 공간으로서 집, 희미해지긴 했지만 우리 어릴 적, 집을 카오스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코스모스로 성화하려 애쓰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 바탕에는 숨어 있다.

“현대인은 성스러움과 거리가 먼 세속적 인간이지만 동시에 전통시대 인간의 후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이 아무리 성스러운 것과 거리가 멀다고 해도 그의 내면에는 성스러운 것들의 파편이 존재한다.”

엘리아데의 이 명제는 한 사회가 움직여가는 원리로 확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현대인은 세속적 인간이기 때문에 현대사회의 기본은 냉정한 이해관계와 냉혹한 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시장이다. 하지만 한 사회가 그런 냉혹한 원리로만 굴러갈 수는 없다. 한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다른 쪽에 지역사회니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공동체적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국가는 카오스로부터 상상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갖는다. 또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장 시스템, 긴급구호 시스템 등을 갖는다. 그리고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는 시장의 과도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정력을 발휘한다. 이 양자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위기에 빠지게 되고 심하면 해체되기도 한다.

한국은 지금 시장과 공동체의 균형이 무너져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천안함 사태에서도 보듯이 카오스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군사체계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상상적 공동체의 폭을 남한으로 좁혀 북한을 공동체의 밖으로 내쫓았다. 북한은 살기 위해 급격하게 중국에 의존해가고 있고 외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동북 3성화로 궁극적으로 한국이 북한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또 사회안전망 등의 복지예산의 삭감, 의료 민영화 등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게다가 국가가 시장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부자와 재벌과 건설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혜택을 주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겨 시장의 불균형을 더욱 키우고 있다. 어떻게 한국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라진 신들의 연대기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집이 서울로 이사 온 것은 1970년 전후이다. 서울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겪은 가장 충격적인 일은 와우아파트의 붕괴였다. 당시에 작은형은 공고 건축과를 졸업하고 말단 공무원으로 마포구청 건축과에 근무하며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작은형이 어느 날 얼굴이 하얘져 집에 들어왔는데 뉴스에 와우아파트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무너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작은형은 와우아파트를 지을 땐 고등학생이었던 터라 처음에 간단한 조사만 받고 별탈이 없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나는 와우아파트의 붕괴 원인, 과정 등에 대해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것을 듣게 되었다.

작은형의 말로는 와우아파트를 지은 건설업체는 그 공사를 따기 위해 엄청난 뇌물을 구청, 검찰, 기자들에게 줄줄이 상납했다고 했다. 그렇게 새어나간 돈과 이윤을 공사비를 줄여 건져내야 하니 시멘트나 철근을 말도 안 되게 적게 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구조역학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시간이 문제였을 뿐이지 무너지지 않으면 이상한 거였다고 했다. 건축과 직원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불안불안해 했다는 것이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살기 위해 짓는 건물에서 오로지 이윤을 얻기 위해 무너질 위험성을 뻔히 알면서 철근과 시멘트를 빼먹다니!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신들이 살거나, 살았던 흔적을 간직하? 있는 집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아파트를 신들이 살거나 살았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집, 즉 단순한 거주기계가 아니라 공동체적 가치로 바라보았다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철근과 시멘트를 빼내어 무너지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는 그 양계장의 닭장 같은 형태부터 시작해서 될 수 있슴 한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적당히 만들어 파는 거주기계에 불과한 것이지 집이 아니었다. 기계이기 때문에 무너지는 불량품도 나오고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70~80년대를 지나면서 서울은 아파트로 덮여가기 시작했고, 아파트가 부자들이 사는 가장 모던하고 좋은 집으로 자리매김되며 일확천금의 투기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나와는 반대로 한국에 왔다가 아파트를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은 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이란 책에서 소상히 밝혀놓고 있다.

그녀는 아파트라는 주거문화가 박정희 정권이 정책적으로 만들어내고 정착시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박정희 정권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을 통해 재벌에게 경제적 특혜를 주었다. 또 계층상승을 해오는 중간층들을 대규모 단지에 입주시켜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통해 특혜를 주고 하층과 격리시킴으로써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확보하려 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파트를 매개로 한 정권?재벌?중산층의 삼각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이 삼각동맹은 시장적 탐욕의 삼각동맹이다. 거기엔 어떠한 공동체적 가치도 들어 있지 않다. 서울은 이 시장적 탐욕의 삼각동맹이 만들어낸 도시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 이 도시의 중심부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렸다. 신들이 사라진, 즉 공동체적 가치가 스며들어 있지 않은 도시는 와우아파트처럼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탐욕만이 작동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가 않다. 시장과 공동체가 상호 긴장하며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경제도 언젠가는 무너진다. 지금 서울에서는 하나의 건물 하나의 다리가 아니라 아파트로 상징되는 탐욕의 환상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했던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아마 올해와 내년 사이에는 본격적인 폭락이 시작될 것이다. 이 폭락과 함께 탐욕의 환상도 무너질 것이고 한국의 경제도 다시 한 번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이 무너짐 속에서 반성하고 배워야 할 것은 시장이 아니라 공동체적 가치이며, 공동체적 가치와 시장의 균형이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사라진 신들의 연대기를 되짚어보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사라진 신들은 공동체적 가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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